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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리온과 결혼식을 올리고 약 1년 정도가 흐른 후.

        나는 크게 부푼 배를 살살 매만지며 침상에 몸을 뉘었다.

        인간의 임신 기간이 대략 10개월 정도였던가?

       

        ‘임신한 지 8개월 정도 지났으니, 슬슬 산란을 준비해야겠구나.’

       

       ……아니지. 산란은 ‘난생(卵生)’을 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였지?

        새끼를 낳는 포유류 동물들은 ‘출산(出産)’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슬슬 출산을 준비해야 할 때다.

       

        아이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아주 미세하게 육체의 호르몬과 골격, 근육 등을 조절한다.

        그러면서 자궁을 살짝 움직여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위치를 조금 조절한다.

       

        꾸물!

       

        아! 아이가 살짝 움직였다.

        기분 좋은 듯 꾸물거리는 아이를 배 위에서 살살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육체는 내가 용금으로 만들어 낸 아바타에 불과하다. 본체보다 감각도 낮고, 힘도 약하다.

        하지만 본체와는 다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도 존재한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지금과 같이 인간으로서 임신을 했을 때다.

       

        알을 배고 있을 때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아이와 공명하는 이 느낌.

        어머니인 내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감각을 주고받는 이 느낌은 탯줄을 통해 어미와 연결된 포유류 동물들만의 전유물일 것이다.

       

        “후후. 누굴 닮아서 이렇게 건강한 것인지…….”

       

        “당연히 저 아니겠습니까?”

       

        내 배를 쓰다듬는 내 손 위로, 내 아바타의 손보다 더욱 두꺼운 손이 겹쳐진다.

        그 손의 주인을 따라가자,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리온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그야…… 부인의 남편으로서의 자신감?”

       

        멋있는 척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리온.

        그런 리온의 머리 위에서 슈르네가 리온의 머리를 콱 깨물었다.

       

        = 까불지 마!

       

        “으갸갸갹?!!”

       

        언제나처럼 사이가 좋은 둘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            *            *

       

       

        “엄마~!”

       

        나를 닮은 은발에, 중간중간 금색 머리카락이 섞인 인간 남자아이가 나에게 뛰어왔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내 품에 와락 안긴다.

       

        “미하일.”

       

        “엄마! 저쪽에서 예쁘게 생긴 돌멩이를 찾았어요!”

       

        리온을 닮은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재잘거리는 아이.

        그래. 이 아이가 바로 리온과 내 아바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미하일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궁금하구나.”

       

        “그렇죠? 제가 가서 가져올게요!”

       

        “그럴 필요 없단다.”

       

        스윽!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미하일을 안아 든 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보았는지, 이 어미에게 알려주련?”

       

        “저쪽이에요!”

       

        미하일을 안은 나와 그런 내 뒤로 시중을 드는 시녀와 호위 기사들이 따라나선다.

        아이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황후궁에 존재하는 정원의 구석이었다.

       

        “어디였더라?”

       

        내 품에서 훌쩍 뛰어내린 미하일은, 그대로 정원에 놓여져 있던 커다란 바위로 다가가더니…….

       

        “웃차!”

       

        드드득!

       

        그대로 자기 몸집보다 5배는 거대한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맙소사!”

       

        “역시 황제 폐하의…….”

       

        “반신의 자식 역시 반신인 것인가?”

       

        “인간이 아닐지도…….”

       

        뒤에서 시녀와 호위 기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보다 인간이 아니라니?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미하일은 엄연히 ‘인간’이 맞다.

       

        나의 본체는 분명히 드래곤이다.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리온과 결혼한 것은 내 본체가 아닌, 용금을 떼어 만들어 낸 ‘아바타’다. 그리고 내 아바타의 종족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미하일은 엄연히 ‘인간’인 것이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일단 미하일의 아버지인 리온이 슈르네의 계약자고, 리온의 어머니인 내 아바타는 용금으로 빚어낸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 아바타는 필요에 따라 육체의 형태부터 유전 인자, 원자 단위까지 다시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리온과 반쯤 의무적으로 결혼했고, 아직도 리온을 바라보는 감정이 반려자가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미하일은 나와 리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비록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의 아이이지만, 나는 어머니로서 내 아이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고픈 욕망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리온과 결혼 후 매일매일 합방을 치르면서도, 처음 4개월 정도는 일부러 아바타의 배란 기능을 정지시켰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이 세계에서 생존하기에 유리한 유전 인자를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법 고민했지.’

       

        낮에는 황후로서의 일거리가 몰려오지.

        밤에는 리온이 날 재우지 않겠다면서 달려들지.

        그 와중에도 귀족 여성들은 나를 바라보며 질투를 불태우며 시비를 걸고, 리온이 실망하지 않도록 관계 중에 기분 좋다는 듯 연기도 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아이에게 물려줄 최상의 유전 인자 조합도 고민해야 했기에 제법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그 고생을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된다.

       

        쿵!

       

        “엄마! 이거예요!”

       

        “호오. 정말로 예쁘게 생긴 돌멩이구나.”

       

        나는 미하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론 드래곤의 시선으로 보면 그냥 작은 생쥐의 형태를 닮은 화강암에 불과한 돌멩이였다.

        하지만 이래 봬도 인간의 아이를 낳고 기른 경험이 제법 되는 나다. 이럴 때 어떻게 말해야 아이가 행복해하는지 정도는 잘 안다.

       

        기분 좋다는 듯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문지르던 미하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야 자기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이 갑자기 떨어졌으니까.

       

        = 엄마엄마! 이것 봐!

       

        어느새 미하일을 쓰다듬던 내 손을 낚아챈 슈르네가, 무언가를 내 손 위에 올려 두었다.

        무엇인가 싶어서 시선을 돌리자, 내 손 위에서 죽은 척을 하고 있던 다람쥐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 방금 눈 마주쳤다.

       

        찌직!

       

        필사적으로 다시 죽은 척을 하는 다람쥐를 살피다 슈르네에게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이 다람쥐는 왜 가져온 것이냐?

       

        = 새 친구야! 그렇지?

       

        찌익…….

       

        절대 아니라는 듯 바들바들 떠는 다람쥐.

        하지만 곧바로 내 손에서 다람쥐를 낚아챈 슈르네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며 말했다.

       

        = 리온에게도 자랑해야지!

       

        팟!

       

        그러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 잘 지내면 다행이구나.

       

        “씽!”

       

        슈르네에게 관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서일까? 미하일이 볼을 퉁퉁하게 부풀렸다.

        그런 미하일의 볼을 쓰다듬어 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

       

        “그치만 엄마…….”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미하일.

        자기 질투심을 부끄러워하기에, 자신의 그런 감정을 차마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디 보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지?’

       

        분명히… 아이가 말을 할 때까지 끈기 있게 지켜봐 주면 된다고 했던가?

        미하일을 데리고 정원의 한편으로 움직인다.

        그러자 시녀들이 미리 준비해 둔 차양과 티 테이블이 우리를 반겼다.

       

        의자에 앉고, 시녀들이 준비해 주는 차와 다과를 잠시 즐긴다.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감각이 있었으나, 육체를 조절해 그 감각을 자연스럽게 약화시켰다.

        그러는 사이, 마음을 정했는지 미하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엄마한테 계속 칭찬받고 싶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신수님이 엄마 손을 빼앗아 갔으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슈르네는 아버지가 다른 네 누나인 셈인데 말이다.

        ……아니지. 본체와 아바타는 육체의 형태도, 유전 인자도 완전히 다른 생물이니 아예 남남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내 엄마인데. 신수님 엄마 아닌데.”

       

        “후훗.”

       

        많이 섭섭했는지 미하일이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미하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동시에 미하일의 손을 잡아내 배 위로 올렸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란다.”

       

        “……네?”

       

        “정확히는, 너와 ‘네 동생’의 엄마지.”

       

        미하일의 손이 크게 부푼 내 배 위를 살살 쓰다듬었다.

        미하일을 출산한 이후에도 리온은 매일 밤마다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원자 단위로 육체를 재구성 할 수 있는 덕분에 어떠한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는 나의 육체는 순식간에 리온의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진짜 인간은 그럴 수가 없으니, 내가 적당히 시기를 조절했다.

       

        ‘매번 인간인 척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지.’

       

        인간으로서의 쾌감이라고는 하지만 슈퍼컴퓨터급 성능을 내는 내 두뇌는 그런 쾌감조차 객관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아바타가 느끼는 쾌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처리해야 하는 나는 ‘그냥 쾌감이 느껴지는구나……’같은 감정뿐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의 행위를 훔쳐보고, 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인간이라면 쾌감을 느꼈을 때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같은 매뉴얼을 만들어서 행동할 뿐이었는데, 이것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좀 적당히 해주면 좋으련만.’

       

        그나마 지금은 임신 중이라서 좀 나은데, 임신 중이 아닐 때는 진짜 힘들다.

        관계 중에는 인간답게 행동하느라 정신적으로도 지치고, 인간 평균을 아득히 웃도는 리온을 상대하느라 육체적으로도 혹사당하는 생활.

        매일 아침,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찢어진 근육과 피부, 금이 간 골격을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만약 육체가 튼튼한 내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다.

       

        ‘한마디 하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리온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기를 죽이는 것도 좀 그렇고…….’

       

        “동생…….”

       

        미하일이 내 배를 쓰다듬으며 두 눈을 반짝거린다.

        그런 미하일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나는 작은 비밀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안에 네 여동생이 들어 있단다.”

       

        “……여동생?”

       

        “그래.”

       

        리온의 유전자 중 가장 좋은 것을 선발해 보니, 아이의 성별이 이번에는 여자아이가 되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하일에게는 뭐든 좋았던 모양이다.

       

        “여동생!!”

       

        저렇게 방방 뛰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후훗.”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정원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들이 거인이라고 부르는, 튼튼한 육체를 지닌 장신의 남자.

       

        “아빠!”

       

        “미하일!”

       

        미하일을 번쩍 안아 든 리온이 나를 바라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래 이번 화로 끝내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길어져서 한 편 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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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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