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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승리를 확신했었다.

        

       첫 합을 나눈 순간부터, 조금 전까지.

        

       예상했던 대로, 이예나는 난타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니. 폭주에 돌입하는 타이밍만 적절히 맞추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도적이 갑자기 전투에서 이탈하여, 은신을 시전했을 때는 조금 당황했지만. 상대가 상대인만큼, 이런 괴상한 짓거리 하나 안 하고 끝나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레반이 판단하기에, 승부는 이미 8할 이상 넘어온 상황이었다.

        

       일대일에서 은신을 하고 시도할 수 있는 수라고 해봐야, 단검 투척으로 시작되는 기습 정도겠지.

        

       투척 사운드만 제때 확인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레반의 귀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처음 들어보는 소리는 아니다.

        

       분명……갑옷류를, 해제할 때 나는 사운드. 이미 패배한 게임이니 빨리 서렌이나 치라며 갑옷조차 다 벗어 던지는 트롤들이 종종 들려주는 효과음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대체, 일대일 결투 중에 왜 난다는 말인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을 풀어주듯이, 다섯 걸음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도적이 서서히 반투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발밑으로 시선을 옮기자, 널브러져 있는 판금 건틀릿과 각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착용하고 있던 방어구. 덜그럭거리는 소리의 출처였다.

        

       가벼이 도발하듯이 제자리에서 전후좌우로 발을 놀리던 도적이, 맨손으로 쥔 단검을 몇 차례 허공에 휘둘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도적과 눈이 마주친 순간.

        

       -콰앙!

        

       찰나였다.

        

       다짜고짜 목줄기에 들이밀어지는 단검을 가까스로 막아낸 레반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추격해오는 단검을 피해 몸을 젖혔다. 눈 앞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 와중에도, 시야 아래에서는 다시 반대방향으로 찔러 들어올 단검이 보였다. 당장 피할 수는 있겠으나- 피하기만 하면 결국은 몰린다.

        

       한 번은 쳐내거나, 팔을 내어주며 반격을 해야 한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도저히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복부를 향해 파고드는 도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양 손의 도끼는 모두 방어를 위해 가슴팍에 한껏 끌어당긴 채였다.

        

       찔러 들어오던 단검이, 도끼에 닿기도 전에 도적의 손 안에서 휘릭, 하고 회전했다.

        

       페인트.

       

        역수로 고쳐 잡힌 단검은 허벅지를 향해 내려 찍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 공격을 허용했을 때 깎일 체력을 계산한 레반은, 무게중심을 뒤로 훅 옮기며 가까스로 칼날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체력이 너무 낮은 상태로 폭주에 돌입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대가로 스태미너 한 웅큼을 내어주긴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페이스를 잃고 질질 끌려 다니는 상태에서는, 그런 정교한 딜계산으로 공격을 허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은, 거리를 벌려야 했다. 팔을 휘둘러 견제를 던지며, 옆으로 스텝을 밟았으나-

        

       도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따라붙었다. 춤이라도 추는 듯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의 거리가 유지되었다.

        

       단검이 가장 좋아하는 간격이었다.

        

       다시금 파고드는 단검을 가까스로 회피하고, 막아내며, 스텝을 밟으면- 도적은 견제를 가벼이 피해내고, 자로 잰듯이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는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체감상 상대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조금 전까지 무게 페널티로 속도가 저하된 도적을 상대했던 탓.

        

       시속 60킬로미터 아리랑볼에 익숙해진 눈에, 150킬로미터짜리 직구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거리를 벌릴 수 없다면, 익숙해질 시간이라도 벌어야 했다.

        

       다시 한번 상대의 다리를 향해 도끼를 짧게 휘두르며, 옆으로 빠지려던 순간.

        

       -푸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피가 튀는 듯이 가려지고- 이내 옅은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폭주다.

        

       레반의 눈이 반사적으로 우측 상단을 훑었다. 남은 체력은 10% 남짓.

        

       한 번에 2할이 넘는 체력이 사라졌다. 조금 전 허용한 공격이, 카운터 판정을 받았다는 의미.

        

       ‘그걸 반응했다고?’

        

       그 짧은 움직임에 카운터를 쑤셔 넣을 틈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반응속도와 수행능력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전사를 운영할 때 정확하게 30%로 폭주를 발동시키는 것이 이상적이고, 20%가 무난하다면, 10%는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광전사의 진정한 전투는 폭주가 발동된 때부터 시작되는 것도 사실이다.

        

       빌드업에서 미스가 있었더라도, 상관없다.

        

       레반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부릅뜨며, 쇄도하는 도적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본격적인 난타전의 시작이었다.

        

       * * * *

        

       적응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평생을 살아온 감각이란, 사소한 습관에도 배어 있는 것이니.

        

       그야말로 황금과도 같은 타이밍을 제공해주는 판금갑옷 세팅 덕분에, 적응의 필요성이 크게 와닿지 않기도 했고.

        

       그러나 아주 조금씩. 손발이 끌리는 듯한 감각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서버에서 게임을 하기라도 하는 듯한, 미묘한 불쾌감.

        

       그럼에도 아예 페널티를 풀어버리면, 반대로 핸들이 미쳐 날뛰는 레이싱카로 풀악셀을 밟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내 뜻대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되는 대로 들이받는 느낌.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에서, 챌린저 등반을 시작했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적응도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손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며 느꼈던……무언가 컨트롤이 꼬이는 듯한 그 기이한 감각이 아마, 그 증상 중 하나 아니었을까.

       

       챌린저 등반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즈음에는, 차츰차츰 이 반응속도를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극한의 반응속도 대결을 강요당하는 사이, 그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더 이상, 의도적으로 반응을 늦출 필요는 없다.

        

       상대의 공격이 개시되는 순간 그 움직임을 포착하고, 즉시 반응해서 대응하면-

        

       -부웅!

        

       이렇게, 정확하게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타이밍에 화면 속의 캐릭터가 움직이며 공격을 회피해낸다.

        

       희열에 가까운 감정이 가슴을 메웠다.

        

       축배. 축배라도 들고 싶은데. 눈 앞의 잔에 담긴 소주를 한 입 털어 넣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화면에 집중했다. 키보드에서 손을 뗄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

        

       과연, 그 빌드다운 움직임이었다.

        

       광전사는 성난 황소처럼 날뛰고 있었다. 폭주가 켜지는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뻘겋게 빛나는 두 눈은 폭주가 최대치로 발동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 저 야만인의 체력도 바닥에 가깝다는 뜻이겠으나-

        

       쉬이 제압할 수는 없었다.

        

       양 손으로 퍼붓는 도끼질은 조금의 쉴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만 공격을 허용하면, 높아진 속도를 이용한 연계기가 끝없이 들어오겠지.

        

       상처입은 짐승이 제일 위험하다고 하더니. 역시, 짐승 같은 캐릭터다.

        

       하지만-

        

       애초에,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서로의 무기가 허공을 가르기만을 수 차례.

        

       광전사의 왼쪽 어깨가 꿈틀, 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그 부분만 확대된 듯이 눈에 들어왔다.

        

       기다린다. 어깨의 움직임이 전완근으로, 손으로, 그리고 도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며, 끝까지.

        

       페인트일지 아닐지, 이제는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으니.

        

       키보드를 바삐 조작하여 오른손의 단검으로 상대의 하체를 노리는 사이에도, 내 시선은 계속하여 광전사의 왼손에 들린 도끼에 고정되어 있었다.

        

       상대의 도끼날이 번쩍, 빛나는 듯했다. 강공격이다. 페인트도 아니고.

        

       좋은 궤도였다. 두터운 갑옷으로 내 공격을 받아내고, 목을 찍어내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공격.

        

       일발역전을 노리는 승부수다.

        

       현명한 판단이다. 이제는 폭주 지속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여기서 더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움직임이 뻔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아직 도박수를 던질 이유가 없을 때야 말로, 도박수를 던지기에 가장 좋은 시점인 것이다.

        

       과연. 캐릭터를 고르는 안목이 조금 부족해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일품이다.

        

       속으로 작은 칭찬을 품은 와중에도, 번쩍이는 도끼날이 매섭게 빛나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 차례 피한 후, 상대가 강공격이 빗나간 후딜레이에 허덕일 때 다시 진입하고- 폭주가 끝날 때까지 견제만을 던지며 시간을 버는 것이 정답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럴 이유도 없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의 단검을 끝까지 휘둘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 치명적인 데미지는 아니지만, 딜은 들어갔다.

        

       이어서,

        

       왼쪽으로 반 걸음을 이동하며, 키보드를 연타했다.

        

       -콰앙!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우측 상단의 체력바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렸던 목은 빗나갔으되, 내 오른쪽 어깨를 찍어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의미.

        

       그 한 번의 공격으로 4할 이상의 체력이 사라졌고- 흩날린 피로 시야가 차단되다시피 가려졌다.

        

       남은 체력은 2할 남짓. 견제기라도 몇 번 허용하면 끝이고, 연계공격이 들어와도 끝이다.

        

       하지만……상관없다.

        

       -푸욱

        

       추가 공격 따위는 없을 테니까.

        

       천천히, 다시 밝아지는 시야.

       

       음울한 회색빛 바위 벽을 배경으로, 붉은 피에 뒤덮인 광전사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피격 직전에 왼손으로 투척한 단검이 박힌 채.

        

       [레반(광전사)님이 처치되었습니다!]

       [아따먹(도적) → 레반(광전사)]

        

       * * *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수고하셨어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감사합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네, 수고하셨습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저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아이디 안 나오게 하려 하는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괜찮으실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혹시 나오는 걸 원하시면]

       [레반: 아ㅣㄴ요, 편하신 대로 해주세요]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차라리 제 화면을 쓰시는게 나을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네요]

       [레반: 상대 화면이 움직임은 더 잘 보일 거라]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감사합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진짜 제가 너무 감사한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혹시 면죄부나 강퇴반사권 이런 거라도 드릴까요]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그게 뭡니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 그러니까, 이게 아크님하고 얘기했던 건데요]

       [레반: 아, 아크님이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혹시 제 방송 보시면서]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밴 당할 일을 하셔도 오히려 레반님을 밴하려 한 매니저가 강제로 퇴장당하는 거예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근데 전 매니저가 없어서……제가 밴되긴 하겠네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그러면 강제방종권도 덤으로 포함됐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님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레반: 잠시만요.]

        

       [SYSTEM: (레반) 님이 (아크) 님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룹채팅을 즐겨보세요 😊]

        

       [레반: 아크님, 혹시 위에 채팅 보이실까요?]

       [레반: 통역 좀 부탁합니다……]

       [아크: 죄송해요]

        

       [SYSTEM: (아크) 님이 그룹채팅에서 퇴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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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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