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75

       사라는 웃음이 헤프다.

        

       아, 물론, 그렇다고 사라가 아무에게나 웃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사라는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면 웃지 않는다. 굳이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웃어 보이는 경우도 별로 없었고, 아무에게나 헤실헤실 웃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늘은 사라의 웃음이 헤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하늘 본인도 사라가 아무에게나 웃어주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웃어 보이는 웃음은 딱히 진심이 아니긴 했다. 꾸며낸 것 같은 냉소나, 약 올리기 위한 억지웃음은 알아보기 쉬웠다.

        

       당연히 하늘은 그런 웃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예사라가 ‘진심’으로 웃을 때는 다르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그 웃음은 그야말로 사람 홀리던 여우마저 홀려버릴 것 같은 미소였으니까.

        

       자신을 진심으로 돕거나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에는 자신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웃음이, 사실은 그냥 보통 사람들에게도 보여주는 평범한 웃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뭐, 딱히 충격받지는 않았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니까. 사라가 아침마다 하늘을 보며 지어 보이는 미소는 딱히 의식해서 짓는 미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왕이면 ‘모든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웃어 보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하고 하늘은 생각했다.

        

       그런 미소는 나에게만 보여줘— 라는 수준의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면 질투가 날 수밖에 없다. 사라가 그런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그 한순간은 그 미소를 받는 사람이 하늘보다 더 사라의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기에.

        

       ……사실, 미소뿐만이 아니다.

        

       분명히, 사라는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성격 같은 것은 조금 미뤄두더라도, 그 외모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유혹하는 게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만약 사라가 그렇게 순진하고 천진한 성격만 아니었다면, 사실 남자나 일부 여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학교 내부를 휘젓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외모뿐만이 아니라 뒤에 있는 자본까지 생각하면…… 사라의 성격이 나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었기에, 사라가 ‘진심’으로 보이는 모든 감정은 그 매력을 너무나도 쉽게 증폭시켰다.

        

       입을 삐쭉 내민다던가, 당황했다는 듯 입을 멍하니 벌린다던가, 누군가를 찌릿 노려본다던가…… 사실 노려보는 것은 그 강도에 따라서 좀 무서워 보이기도 했지만, 생각 외로 허점이 많은 사라를 알아가다 보면 그것도 대부분은 오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으헿.”

        

       하늘은 옆자리에 앉은 사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언제나처럼, 사라는 그 쿨한 외모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왜, 왜 그래……?”

        

       점심시간 때, 아마도 자각하지 않은 채로 선도위원을 유혹했던 사라.

        

       아니, 자각하고 있었던 걸까? 하늘은 사라가 그렇게까지 악질이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자신은 없었다. 유혹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가 선도위원을 도발하기 위해 했던 그 악당 같은 행동은 모두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일 테니까.

        

       똑똑한 건지, 아닌 건지.

        

       평생을 새장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사라는 인간관계 파악에 대해서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덕분에 하늘도 나름대로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하지만 참 기이하게도, 사라는 가끔 이상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자신의 처지를 십분 활용하여 모두를 골탕 먹이고 다닌다던가, 언론이 멋대로 퍼뜨린 이미지를 자신 나름대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낸다던가.

        

       ‘자신을 도울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낸다던가.

        

       그것도 모두가 자신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상황에서.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하늘은 사라에게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래, 알고 있다.

        

       원래 친구 간의 사이가 다 그런 것이다. 한쪽에서는 둘도 없을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지만, 한쪽에서는 그저 많고 많은 친구나 지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보통은 서로 그렇게 착각한 상태로 잘 지내지만, 어느 순간 서로 생각하는 관계를 서로에게 들켜버리면 둘의 관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 버린다.

        

       한쪽은 자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상대에 대한 지독한 부담감을 느낀다.

        

       한쪽은 자신의 호의와는 비례하지 않는 상대의 태도에 대해 지독한 배신감을 느낀다.

        

       ……하늘은 자신과 사라의 관계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하지만—

        

       “으힛.”

        

       하늘이 사라의 옆구리를 다시 쿡 찌르자, 사라는 또 한 번 그 괴상하지만 귀여운 소리를 냈다. 주변의 누군가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생각하면 조금 열받는다.

        

       “저기, 하늘아.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

        

       그 유서를 본 후, 하늘은 주말 내내 사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까지처럼 사라의 부족한 상식을 이용해서 감정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양심에 의한 거부감.

        

       남의 불행을 이용해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지금까지는 모른척해 온 주제에.

        

       마음속 목소리가 속삭였다.

        

       사실 유서가 없었어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새장 속에 갇혀 친구 하나 없이 살아온 아이였다. 굳이 자살하고 싶다고 알려주지 않았어도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유하늘은, 양혜인이라는 사람이 사라가 직접 썼다는 유서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증거가 나오고 나서야 겨우 그런 양심의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사라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냐.”

        

       지금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도, 그저 자신의 기분 하나 때문이었다.

        

       “아니야. 그냥, 좋아서.”

        

       하늘은 은근슬쩍 그렇게 말해보았다.

        

       말로 해보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라의 얼굴이 옆으로 갸웃거렸다. 예쁜 선을 그리는 눈썹이 살짝 모인다.

        

       “……그래?”

        

       의문스러운 표정. 의문스러운 목소리.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태도는 유하늘 마음속의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그런데 말야.”

        

       유하늘은 불쑥 옆으로 몸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교과서 정도는 펼쳐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었다.

        

       사라와 하늘이 몇 번이고 교실 안에서 이런저런 일을 벌이자, 결국 선생들은 하늘마저 무시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물론 하늘이 학교를 빠지면 결석 처리가 되긴 하겠지만. 적어도 수업 시간에 하늘이 사라와 대화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 옳았다.

        

       이쪽을 흘끗거리는 그 태도를 보면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지만.

        

       사람들은 우리 둘의 관계를 뭐라고 생각할까.

        

       태도를 보면 분명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하다. 사실, 하늘뿐만이 아니라 이수아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축구부에서는 소희도 묶어서 문란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렇기에 이렇게 둘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리라.

        

       책상을 붙이고 앉아있는 것도 한몫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학생이잖아? 공부는 해야지.”

        

       사라는 수업 시간에는 거의 졸기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취급이었으니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늘은 생각했다. 정작 사라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무래도 친구로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어쩌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는 하늘 자신의 생각이 반영된 행동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라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

        

       사라는 잠깐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며 교과서를 아무렇게나 펼쳐두었다. 글씨 같은 것은 쓰여있지 않아 엄청나게 깨끗했다.

        

       ……좋아.

        

       그런 모습을 보자, 하늘의 가슴 한구석에 불꽃이 하나 피어올랐다.

        

       그거 아는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방법에는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방법도 있지만, 반대로 수업을 엄청나게 열심히 듣는 방법도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을 낸다면, 그건 그거대로 눈길을 끌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학교에서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거다.

        

       물론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런 상태로 중학교도 지냈을 사라가 공부한다고 첫 학기의 첫 시험에서 1등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기간을 길게 잡고 공부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히헿.”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사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뒷자리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지만, 하늘은 무시했다.

        

       “공부하자, 공부.”

        

       결국, 하늘의 독촉에 이기지 못하고, 사라는 펜을 잡는 것이다.

        

       *

        

       언제나처럼, 수업이 끝나고 체육관에 가서 체력단련을 한다. 다행인지 아닌 건지 판단은 서지 않지만, 신소희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담을 넘는 와중에도 신소희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내심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친구는 친구다. 언제나 보이던 시간에, 보이던 곳에서 보지 못하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 그래. 그렇겠구나.”

        

       하지만 사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늘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오늘 나오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하늘과 이수아의 표정을 보고, 사라는 잠시 고민했다. 마치 그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사라의 표정은 별로 심각해 보이진 않았으니 나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 침묵은 어딘가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라가 알고 있다는 말은, 주말에 단둘이 만났다는 이야기일까?

        

       그냥 친구끼리 만난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같은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소희는 이미 당당하게, 몇 번이나 자신은 사라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으니까. 사심 없이 사라를 만날 리가 없다.

        

       “……그냥 같이 와 보면 알 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사라는 결국 그런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말을 듣고, 하늘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