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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나는 화로를 내버려 두고 문 쪽으로 향했다.

       

       어쨌든 간에 이 문을 넘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더냐.

       

       문을 툭툭 건드려 본다.

       

       음. 지난 번 엔리와 함께했을 때 보았던 문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구나.

       

       애초에 부술 수 없도록 설계된 무언가인가.

       

       그래도 한 번 주먹을 내질러 보기나 하자꾸나.

       

       실패하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으로 이치를 그린다.

       

       그리는 것은 내가 평생토록 수련한 권의 길이니 그 형체는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다.

       

       길을 따라서 마력을 흘린다.

       

       이미 한 번 몇 번이고 해보았던 일이다. 실패할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권을 내지른다.

       

       콰앙!

       

       놀랍게도 문은 권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체를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문이 달려 있던 벽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며 저 앞으로 날아가 버리며 통로가 생겨났다.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통로를 여는 데에 성공했군.

       

       역시 괜한 고민을 하는 것보다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구나.

       

       <…엑? 저거 부서지는 거였어?!>

       

       – 엔리도 몰랐음?

       – 이게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거신가.

       

       문 안 쪽에서는 한 흡혈귀가 거대한 거미와 싸우고 있었는데 그 놈은 내가 날려버린 문짝에 얻어맞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거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미의 앞니가 흡혈귀의 목을 향한다.

       

       저 정도로 크기가 커지니 거미도 영 징그럽구나.

       

       흡혈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거미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 듯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본의는 아닐 지라도 싸우는 걸 도와준 셈인데 그 도움을 이렇게 갚을 셈이더냐.

       

       배은망덕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래서 짐승은 안된다니까.

       

       흥분해서 달려드는 거미에게 주먹이라는 진정제를 놓아 준 후 방 안을 살폈다.

       

       흡혈귀가 이 안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찾는 게 이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일텐데.

       

       거미줄로 된 고치 하나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나 그 곳으로 향했다. 안에서 풍겨오는 것은 흡혈귀의 냄새였다.

       

       음. 이 녀석은 일단 재워둘.

       

       <화령 씨! 잠깐 멈춰요!>

       “무어냐.”

       <그 고치 안에 있는 흡혈귀가 저희가 찾는 거에요!>

       

       아. 그렇더냐? 빨리 알려주어서 다행이구나. 하마터면 대화를 위해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뻔 했어.

       

       고치를 뜯어보자 안에는 여자 흡혈귀 하나가 있었다.

       

       꽤 값이 나갈듯한 갑옷과 등 뒤에 맨 종이뭉치가 인상적인 여성은 고치에서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감사표현을 했다.

       

       “고마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 점점 숨이 막혀 오더라니까?”

       “그런가.”

       “당신은 여행자님? 아니면 병사님? 설마 흡혈귀 사냥꾼은 아니지? 응?”

       

       여자는 무척이나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죽을 뻔 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거의 단답으로만 대답을 하고 있음에도 제멋대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그녀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고민하던 무렵 저 멀리서 토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그 스크롤이야!”

       

       저 녀석 아직 근처에 있었지. 하도 존재감이 희미해서 잠시 잊고 있었군.

       

       “뭘 하는겐가! 흡혈귀 사냥꾼이 되고 싶다 하지 않았나! 빨리 눈앞의 흡혈귀를 처리해!”

       “당신 흡혈귀 사냥꾼이었어?!”

       “네가 하지 않겠다면!”

       

       토브는 등 뒤에서 석궁을 뽑아들더니 일순도 고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화살에 여성이 눈을 꾹 감았다.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화살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체념이 빠르군. 발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화살의 경로에 손을 끼워 넣어 화살대를 붙잡았다.

       

       – ???

       – 석궁으로 쏜 화살이 잡힌 거야?

       – 어떻게 저게 됨???

       

       “어떻게 되느냐 물어도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만.”

       

       이게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여러 요소가 섞여 이루어 낸 결과라서 말이다.

       

       지금 아무리 설명을 해봐야 그대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니 그냥 감탄이나 하거라. 그게 서로 마음이 편하다.

       

       붙잡은 화살을 반토막을 낸 후 토브에게 다가간다.

       

       “뭐야! 왜 흡혈귀를 지키려 하지?! 원래 배신을 하러 온 것인가!”

       “흡혈귀고 뭐고 내 알바 아니다.”

       

       종족이니 은원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대들의 사정이다. 내가 그것을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지.

       

       저 여자를 지킨 이유는 어디까지나 엔리가 스토리 진행에 필요하다 말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지금이라도 엔리가 나를 말린다면 내 기꺼이 발을 물릴 의향이 있다.

       

       허나 그대의 앞에 도달한 지금도 엔리는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는 구나.

       

       “인류의 배신자가!”

       “잠시 잠이나 자도록.”

       

       턱을 가볍게 후려쳐 줌으로써 기절을 시킨 후 그 몸을 붙잡아 축 늘어져 있는 거미의 옆에 던져 놓았다.

       

       둘 중 누가 먼저 깰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운명에 달린 일이지.

       

       다시 여자에게로 돌아오자 그녀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 인간 맞지?”

       “보면 알지 않나. 냄새부터가 다를 터인데?”

       “근데 왜 내 편을 들어준 거야? 내가 이런 말하기도 그렇지만 흡혈귀는 인간의 적이잖아?”

       

       그런 설정인가.

       

       하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인간과 함께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은원에는 아마 길고도 무거운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내가 혈교를 상대할 적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어쩌란 것이야.”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은원은 본래 은원의 당사자들이 풀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방인은 규율에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법이지.

       

       그리 대답을 하자 여자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너 좋은 사람이구나!”

       <역시 벨라야! 뭘 좀 안다니까!>

       

       – 네? 뭐라고요?

       – 방금 거미 옆에 인간을 먹이로 놔둔 사람이 좋은 사람이요?

       – 내 도덕관념이 이상한 건가.

       

       평소엔 어지간하면 채팅을 치는 이들에게 공감하지 않는다만 이번만큼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구나.

       

       내 뭘 보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

       

       이 흡혈귀야 그렇다 쳐도 엔리 그대는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되지. 그대는 인간이잖나.

       

       <게임에서 사람 좀 죽이는 게 뭐 어때서요! 그렇게 따지면 전 무기징역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엔리를 좀 타박했더니 엔리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음. 시청자들과 다툼을 하며 화가 많이 쌓였나 보구나.

       

       더 건드리면 쓸데없는 말을 할 것 같으니 일단 내버려 두자꾸나.

       

       “이름이 뭐야? 난 벨라 루키너스라고 해!”

       “백화령이라 한다.”

       “화령! 엄청 예쁜 이름이녜!”

       

       내게 달라붙는 벨라의 등 뒤에서 꼬리가 흔들리는 환상이 보였다. 강아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이런 느낌인 걸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신뢰를 주는 게 가능한가? 적어도 벨라의 행동은 연기처럼 보이진 않았다.

       

       벨라가 순수한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게임의 설정상 이런 식으로 묘사가 되는 것인지.

       

       “저기 화령.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길을 알지?”

       “일단은.”

       

       정확히는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엔리가 아는 것이지만.

       

       “나를 바깥으로 데려가 줄래?”

       

       활달한 벨라의 눈동자에서 일순이나마 진지함이 스친다.

       

       단순히 이 동굴 바깥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만은 아닌 것 같구나.

       

       “알겠다.”

       

       아마 그 사정이 이 게임의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 것일 테지.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며 보이는 녀석들마다 친히 즈려밟아준 덕분인지 본인을 방해할 녀석은 동굴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무시무시한 괴물이 왔다간 걸까?”

       

       널부러진 흡혈귀들을 보며 벨라가 공포에 떠는 일은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NPC에게 굳이 공포를 심어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여기! 그 괴물 여기 있어요!

       – 벨라. 지금 네가 달라붙은 그 여자가 괴물이야! 도망쳐!

       – 웃는 얼굴로 흡혈귀를 패던 사람이 옆에 있다니까?!

       

       “시끄럽다. 괜한 소리를 하면 네 녀석들도 흡혈귀랑 같은 꼴로 만들어 주겠다.”

       

       – ㄷㄷㄷ

       – 전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7

       – 우주최강 천마만만세 ^^7

       

       동굴 바깥에선 노을이 지고 있었다.

       

       회색으로 물든 대지가 주홍색으로 물들고, 하얗게 질려 있던 나무들이 얼굴색을 달리한다.

       

       그 모습은 상당히 운치 있는 풍경이었다.

       

       멍하니 하늘과 숲의 모습을 구경하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동굴 안에 머무르고 있는 벨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햇빛 너머에서 주춤거릴 뿐이었다.

       

       “태양 아래에 나설 수 없는 건가?”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됐다.”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을이 지는 중이다. 머지않아 태양이 지겠지. 그 때부터 다시 움직이면 그만이다.

       

       “저어. 그냥 가도 괜찮아. 내가 부탁한 건 동굴의 탈출까지였으니까.”

       

       여태까지 지겹도록 달라붙더니 이제는 또 가도 괜찮다 그러는 것이야?

       

       그거 아느냐. 지금 네 눈에서 미련이 떨어지는 중이라는 걸.

       

       “어디 한 번 물어보자꾸나. 그대는 바깥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어…”

       “없구나. 그럼 다음 질문이다. 동굴 안에 널부러져 있던 흡혈귀들은 그대를 잡으러 온 이들이 맞느냐?”

       

       벨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해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한 탓에 일어난 침묵 아닌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내겐 충분한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럼 자네는 자네를 붙잡으러 온 흡혈귀나 자네의 멱을 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흡혈귀 사냥꾼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가?”

       “둘 정도는.”

       “정면에서 맞붙는다면 둘이란 소리일 테지?”

       “…”

       “비명횡사하기 딱 좋겠군.”

       

       강한 어투로 나무라자 벨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겠지 지금 막무가내로 나섰다간 죽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게 떠나기를 권유한 것은…

       

       여태 본 벨라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정도일까.

       

       “호의를 베풀겠다고 하면 얌전히 따르면 족하다.”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언정 그건 호의를 베푼 이가 감당 해야 할 일이다. 그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죄책감이니 망설임이니 하는 것은 저 멀리로 집어 치우거라.

       

       “뭣보다 본인은 그대에게 걱정을 받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그러니 그대도 얌전히 내 앞에 앉기나 하거라.”

       

       설마 해가 질 때까지 처량하게 서 있을 생각은 아닐 테지?

       

       내가 눈짓으로 반대편 벽을 가리키자 벨라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곁눈질로 내 눈치를 보다 이렇게 말을 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흐음?”

       “동굴의 흡혈귀들을 그렇게 만든 게 너야?”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런. 들켜버렸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4천 돌파에 구독 알람도 300이 넘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게 다 독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여러분들의 추천. 댓글. 선작 덕분에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

    이번 화 시작 부분에서 아라가 헤매는 장면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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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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