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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0

    <750 – 아무도 모르게(8)>

     

    고블린은 노력하지 않는다.

    짧은 수명,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힘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단련해서 강해지지 않는다.

    강한 적을 사역해서 먹이와 여자로 길들이고 그들의 힘을 휘두르면 그만이다.

     

    부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

    부자의 배를 가르고 재산을 약탈해서 제 소굴에 쏟아붓고 축제를 벌이면 그만이다.

     

    여자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매력을 가꾸지 않는다.

    파트너가 있다면 죽이고, 저항이 심하다면 손발의 힘줄을 끊고, 소굴로 납치해서 범하면 그만이다.

     

    당연히 성장을 위해 꾸준히 단련하고 수련할 인내심도 없다.

    날 때부터 타고난 완력을 지닌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고블린 전사가 되려 하지 않았다.

    어려운 마법은 날 때부터 어마어마하게 높은 친화력으로 마법을 다루는 극소수의 고블린마법사를 제외하면, 누구도 배우지 않았다.

    천직.

    재능.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그릇의 크기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고블린이다.

    그렇기에 고블린은 강해지지 않는다.

    강해지지 않는 종족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물많이마시면수속성마나퍼즐생긴다고브!”

    “살려줘라고브…물고문제발그만고브…”

     

    수속성 적응훈련을 하면서 도랑 위에 뚜껑을 닫고 동족들을 물고문하는 고블린마법사.

     

    “불많이쐬면불속성마나퍼즐생긴다고브!”

    “어어불번진다고브”

    “싯파우리마을좆됐다고브!!”

     

    화속성 적응훈련을 한다고 불 지르고 버티기 훈련하다가 마을에 불이 번져서 달아나는 개폐급 견습마법사 고블린들.

     

    “암컷범하기보다힘으로나보다강한녀석을굴복시키면훨씬기분좋다고브.”

    “아이고남의마을곡식창고에서이게무슨짓이냐고브!”

    “오늘은상체100kg조진다고브. 우리마을에선먹을걸로장난치지말래서곡식못든다고브.”

     

    자연스럽게 ‘농작’을 하는 고블린들에 이어서 ‘단련’으로 강해지는 고블린들.

     

    “이거봐라고브. 손가락을교차하면… 짜잔. 꽃받침이된다고브!”

    “이상하다고브. 이녀석수컷인데왜귀엽냐고브.”

     

    심지어 ‘살육’, ‘약탈’, ‘고문’ 외의 놀이방법을 깨닫고 ‘애교’를 부리며 ‘장난’을 치는 고블린까지.

     

    “이딴 게 고블린이라고?”

    “이게 어떻게 고블린이야. 이건… 그냥 색깔만 다른 초록인간이잖아.”

     

    고블린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정신의 근본적인 부분부터.

    종족적 본능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졌다.

    교수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공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태 파악을 못 한 연차가 덜 쌓인 초임교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초짜 티를 냈다.

     

    “기껏해야 고블린 아닙니까. 인간처럼 굴어봤자 지놈들이 뭐 얼마나 위협적으로 변하겠습니까?”

    “당장은 미개한 원시인 수준이지. 하지만 ‘자원’을 비축하고 ‘전쟁’ 외의 오락을 깨우치며 부족이 커지고 종족애가 생기기 시작하면 고블린들의 수가 줄겠습니까, 늘겠습니까?”

    “늘겠죠…?”

    “그렇습니다. 인류가 농사를 통해 자원을 비축하며 성장하고 세를 불렸듯이, 지금까지는 피지배종, 노예종들을 부리면서 최소한의 식량만을 구하고 노예종의 수에 따라 부족민의 수에 한계가 생겼던 고블린들이 이제는 한계 없는 성장이 가능해진 겁니다.”

     

    사악한 지혜에 능통한 아카데미 대도서관 금서지기이자 <어둠의 역사학>, <책 안전하게 읽는 법>, <금서, 이렇게 읽으면 살 수 있다> 강의를 가르치는 교수 포르네우스.

    아카데미 교수로서 필요한 지식이 있거든 반드시 마주치며 지혜를 빌려주는 이가 엄중히 경고하는 말에는 실린 무게감이 달랐다.

     

    “심지어 고블린은 수명이 짧은 대신, 아이를 엄청나게 낳습니다. 무섭도록 빠르게 수가 불어나는데도 지금까지 다른 차원계들이 고블린들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이유는 서로 죽고 죽이다가 넘쳐나는 인원이 어쩌다 차원계 밖으로 침공을 나가기 때문이죠.”

    “그럼 동족애가 생기고 문화가 싹트며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 고블린들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차원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계까지 쌓이고 쌓일 겁니다. 그리고 부족단위, 혹은 개인 단위의 어설픈 침공이 아닌 세계단위의 대침공이 시작되겠죠. 그것도 전투계급이 ‘훈련’을 통해 늘어나고 ‘병기’를 노획이 아닌 자체개발을 통해 확보하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군세가.”

     

    만일 이들이 무난하게 힘을 길러서 중간계에 도달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 전까지 치르던 북부전선에서의 마계와의 전쟁이나 지저에서 열린 언더월드와의 전쟁이 우스워질 정도의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인류의, 중간계 전체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차원전쟁의 시작이다.

     

    “절멸시켜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 한 마리의 고블린도 남김없이 해치우지 못하면 중간계가 무너집니다.”

     

    지혜를 얻은 인간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로 드래곤 교장만 제외하면 중간계의 지배종이 되었듯, 고블린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허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이 친구들, 근육 키우는 법도 몰라서 운동을 막 하는 꼬라지 보면 자세라도 좀 가르쳐주고 싶은데.”

    “그게 지금 할 소립니까, 플라톤 교수? 당신이 가르쳐주는 운동동작, 중량치는 방법 하나하나가 인간족 골통을 깨는 살인무술로 돌아온단 말입니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는 교수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모인 교수들의 면면도 그리 정상은 아니었다.

    애초에 학생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일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았고, 이에 마하바라타 지도교수는 젤 밉상인 교수들을 차출했다.

     

    자기만 아는 나르시스트.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학대파.

    학대라는 개념이 없는 성장에 미친 성장귀.

     

    기프트 아카데미 인성 하위 20%의 괴짜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냥 우리가 정기적으로 와서 고블린 인구의 99.9% 정도만 죽이고 모아놓은 자산만 가져가면 자원수급도 편하고 개꿀 아니냐? 우리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아니 미친. 제국에선 어떻게 이런 또라이를 교수로 꽂았어? 마왕군에서 우수인재로 스카우트를 해가도 위화감 없을 미친 소리를 하네!”

    “맞아. 아무리 그래도 정기적인 대학살은 너무 귀찬잖아. 이거 노동 학대야. 연구하기도 귀찮은데 쓸데없는 일에 부르지 말고 4학년 졸업과제로 매년 주기적으로 청소하게 시켜.”

    “…변방교수도 쓰레기기는 마찬가지잖냐! 미친놈은 서식지와 국적을 불문하고 그냥 미친놈이야!”

     

    서로 니가 더 미쳤네, 쟤가 더 미쳤네, 입에 거품 물고 옥신각신하던 교수들은 문득 제일 점잖게 미친 교수가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 출신의 만만한 허접여제가 다스리는 지금의 제국이 아닌, 교장과도 협상을 통해 매년 제국파 교수를 꽂을 정도로 대단한 <선황>이 다스리는 제도에서 당당히 황궁까지 침입한 미친 도둑.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랭킹보드의 세계십대도둑 항목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정의도둑이 어느새 회의도 생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교수들은 공포를 느꼈다.

     

    “브론즈 그 교수, 가끔 우리들 답안지를 훔쳐서 자기네 제자들한테 보여주지 않나?”

    “실험재료에도 한 번씩 손대고 가끔은 고학년 제자들도 훔쳤지.”

    “교장이랑 선황만 아니면 목숨도둑은 자기가 되었을 거라며 의적 노릇을 반만 하는 걸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던데, 우리한테 쌓인 감정이 많아 보였지?”

     

    안 그래도 평소부터 굉장히 찝찝한 관계를 유지하던 교수였지만, 자신들이 수도 많고 브론즈 교수 혼자서 뭘 할 수도 없는 환경이기에 지금까지는 크게 개의치 않고 서로 무시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고블린월드로 날아온 지금은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현지조사를 하겠다며 비공정 밖에 내려와 고블린들의 문명을 조사하고 있는 처지다.

     

    “아니겠지.”

    “일이 꼬이면 우리랑 여기서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을 싸우게 될 텐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어디서 임신도 했다던데, 육아를 생각해서라도 고블린월드에서 오래 머무르려고 하진 않을 거야.”

     

    아무리 브론즈 교수라도 선은 지킬 거라고 위안을 삼던 교수들.

    그런 교수들의 머리 위에서 별안간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동력원을 상실한 비공정이 추락했다.

    고블린제국 수도 한복판에 추락한 비공정은 투쾅콰쾅 굉장한 폭음과 함께 십자가 모양의 거대마력흔을 띄워 올렸다.

    신앙에너지를 원료로 삼아 가동하던 비공정의 장렬한 최후였다.

     

    “우리 이제 뭐 타고 돌아가지?”

    “탈 거 없어. 차원문 알아서 열고 돌아가야지.”

    “고블린월드는 영맥이 어디에 있지?”

    “영맥이고 자시고 고블린 새끼들이 다 헤쳐먹어서 남는 게 없는데?”

    “…차원문 진짜 어떻게 여냐?”

    “방법이야 있는데… 마석이 없으면 초거대마법진을 그리고 마법의 이해도가 높은 보조마법사가 잔뜩 동원되면 되기는 해.”

    “여기서?”

    “그래, 여기서.”

     

    도랑에서 수속성 적응훈련을 하다가 익사하려는 고블린을 건져내고, 불속성 적응훈련을 하다가 집을 쫄딱 태운 죄로 전사고블린에게 볼기짝이 터지도록 얻어맞는 고블린을 구해낸 교수들.

     

    “비공정 만들 정도로 똑똑한 놈들도 있는데 그런 놈들 놔두고 이런 걸로 해야겠어?”

    “걔들은 방금 수도랑 같이 다 뒤졌잖아.”

    “…”

     

    이 허접한 녀석들을 키워다가 비공정 띄우던 고블린제국 최고 엘리트로 키워야 한다.

    팔짜에도 없던 고블린 제자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교수들은 눈앞이 암담해졌다.

    차라리 가망도 없는 오리지널 원시고블린이라면 모를까, 이 동네 고블린들이 어설프게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고 마공정까지 운용한 꼬락서니를 보았으니, 안 할 수도 없었다.

    그래, 눈 딱 감고 하자.

    교수들의 마음이 조금은 기울었다.

     

    “마석이라도 찾아보게. 이놈들을 애지중지 키울 것도 아닌데 오크노디식 마나습득법을 응용해서 마석을 삼키고 마나를 빠르게 쌓도록 만들면 생각보단 빠르게 성장하겠지.”

     

    고블린제국 마석창고를 털어보면 뭐라도 있을 거라고 잔해를 뒤지던 교수들이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뒷목을 잡았다.

    뒤따라온 교수들도 먼저 뒷목을 잡은 교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치를 덜었다.

     

    ━━━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다녀감.

    ━━━

     

    보란 듯이 남겨둔 티배깅 쪽지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제자에 그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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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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