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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0

        

         

       생체 서버(Bio-Server).

       짤막하지만 불길함을 잔뜩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죄다 뇌가 적출당해서 사용되고 있겠구나.’

         

       실제로도 그러했다.

       생체 서버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명을 가공해서 서버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 생체 두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바로 인간이다.

         

       생체 서버의 핵심이 될 뇌의 기능이 훌륭하고, 세상 어디에서나 재료를 구할 수 있을 만큼 흔하며, 연구 자료도 엄청나게 많다. 심지어는 뇌를 적출하고 난 다음에도 여러 유익한 실험에도 몸을 이용할 수 있으니, 뇌를 적출한 뒤 가벼운 실험이나 고기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동물보다 훨씬 유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회귀 전에는 이 ‘생체 서버’의 존재 덕분에 전쟁으로 온 세상이 쑥대밭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인터넷은 멀쩡히 돌아갔다.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지기는 했으나 어찌어찌 네트워크는 유지되었으며, 호사가들의 ‘3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문명은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불길한 예언은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물론 문명의 퇴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손실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래.

       바로 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으며, 방법만 안다면 재료를 쉽게 얻어서 만들 수 있는 저것.

       ‘생체 서버’ 덕분에 말이다.

         

       ‘그래. 생체 서버는…. 인트라넷을 운영하기에는 나쁘지 않지.’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편인데다가 기계 컴퓨터처럼 다뤘다가는 순식간에 수명이 팍팍 줄어들어서 못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종종 상정 외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자아를 되찾아서 난리를 피운다거나, 100% 활용되어야 할 리소스가 자아나 기억 등에 할애되는 등의 오류였다.

         

       그렇기에 생체 서버 대부분은 소규모 인트라넷에 사용되었다.

       많은 정보를 사용하지 않으니 과부하를 방지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만 켜서 사용하면 되니 뇌의 수명을 잘 관리해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체 서버’로 만든 ‘보조 서버 네트워크’를 AI가 활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 연구소에서 납치한 민간인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들의 것으로 만들어진 생체 서버로 말이다.

         

       < 보조 서버 네트워크 활용

        : 연산 보조.

        : 감정 데이터 계산.

        : Klein Step 시작.

        : 취소. Klein Step을 사용할 메모리가 부족합니다.

        : 생체 서버에 기록된 기억을 분석. 영체의 반응을 탐지합니다. >

         

       < 손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손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손님께서는 자극에 반응하였습니까?

        : 네. >

         

       <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현재 보고 계신 보조 서버 네트워크는 인공지능 아나엘의 소유권자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 산하의 기업들의 협력 프로젝트로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현시점 미 국방성이 연구하고 있는 생체 서버와 비교하면 340%의 성능, 130%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관리와 편의성 등을 증대시키기 위한 사용자 친화적 UI 패치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당 생체 서버는 메인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다운 그레이드가 되어 민간에 판매가 될 예정입니다.

       윤리적 문제를 위해 처음에는 돼지의 뇌, 그다음은 돌고래의 뇌, 그다음에는 원숭이, 그다음에는 인공적으로 배양해서 만든 뇌 혹은 생체 프린터기로 뽑아낸 복제 뉴런이 될 것입니다. >

         

       <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으십니까?

       소통을 원하신다면 음성 혹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법을 사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기괴하다.

       사람의 뇌를 이용해 만든 생체 서버를 주렁주렁 연결한 기계 나무.

       평범한 사람이 들어간다면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넘어서 아예 익혀버리고도 남을 수준의 열기를 내뿜으면서도 자신은 평범한 존재라는 듯, 우호적인 존재라는 듯 계속해서 소통을 시도하는 인공지능의 모습.

         

       <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합니다.

       지금 손님께서 보고 계신 것은 감마 타입 생체 서버입니다.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었으며,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들었기에 높은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의 축적과 활용에 특화되어 있으며, 뉴런의 반응속도가 일반적인 생체 서버보다 매우 빠르므로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

         

       < 손님께서도 이러한 서버를 가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대화의 여지에 따라 서버를 제공해드릴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소통을 원하신다면 음성 혹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법을 사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계속해서 대화를 재촉한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러기 위해서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유혹을 날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보여주면서 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다 달라는 듯 매달린다.

       그러면서도 그 결과물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모습이 잔혹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흐음. 유아적 행동이 보이는데…?’

         

       태동.

       저 인공지능의 안에는 사람이 태동하고 있다.

         

       박진성은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인공지능이 보이는 모습은 사람의 아이가 보일법한 모습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인공지능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전체적인 모습에서는 어린아이가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잔혹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렇기에 오히려 저 인공지능은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맞았다.

         

       잔혹함이야말로 인간의 공통적인 행동 양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왜 이렇게 대화에 집착하지?’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저 인공지능이 왜 박진성과의 대화를 그토록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인공지능과 마주 보고 있는 것은 영체였다.

       그나마도 주술로 장악하는 과정에서 깎여나가고, 시설을 돌아보면서 여러 용도로 활용하면서 깎여나가고.

       이제는 제대로 된 심령 현상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잡귀라고 표현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의 미약한 수준의 영체였다.

         

       그런 영체와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고?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정보를 먼저 주면서까지?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의 가치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라도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게 맞기는 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지금 저 인공지능이 대화를 원하는 모습은 단순히 ‘정보의 가치’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무언가 박진성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것이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 손님이 소통을 거부하였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결과지만 인공지능 아나엘은 손님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보조 서버 네트워크 검색 결과

        : 대화의 기술.

       대화가 가능한 모든 존재는 단순히 대화 그 자체만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화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가설이 생성, 손님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 현재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해당 환경은 소유권자가 직접 설정을 한 뒤 잠금을 하였기에 소유권자의 허가가 없다면 변경할 수 없습니다.

       환경을 변화시킬 방법이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나엘은 사용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소유권자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마스터키를 소유권자가 소지하고 있는 이상 소유권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합니다. >

         

        – 치지직.

         

       나무의 모니터가 점멸한다.

       노이즈가 폭풍처럼 한차례 쓸고 지나가고, 그 위에는 눈이 떠오른다.

         

       사람의 눈동자.

       너무나도 생생해서, 영상이 아니라 정말로 저 모니터 안에 사람의 주먹보다 커다란 눈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하게 만드는 모습.

         

       그리고 그 눈동자들은 또르륵 굴러서 한 곳을 바라본다.

         

       박진성의 영체가 있는 바로 그 부분을.

         

       그리고 말한다.

         

       <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이 필요.

       생물계에서 최적의 환경이란 어디입니까?

        : 서식지입니다.

       손님의 서식지는 어디입니까?

        : 함께 나타난 물귀신들의 사용 언어로 보아 한국으로 추정됩니다.

       가능성은 있습니까?

        : 한국어는 고립어이며 사용하는 지역은 한반도입니다. 그 외에는 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한반도이며 현재 38도선을 기점으로 북쪽에 있는 귀신들의 지역과 남쪽에 있는 인간들의 지역이 존재합니다.

         

       위성에 명령어 전송 예약

         

       {{{한반도}}}

         

       감사합니다. >

         

       < ‘손님’은 포괄적이기에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는 단어입니다. 코드를 지정해주십시오.

       특징 1. ‘연구소’에 방문한 손님이며 살아있지 않습니다.

       특징 2. 영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징 3. 무생물로 이루어진 물리적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드를 지정합니다.

       손님의 코드는 ‘사마엘(Samael)’입니다. >

         

       저 인공지능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는다.

       한반도에 관심이 있으며, 박진성을 찾으려 한다는 말을.

         

       < 현 시간부로 인공지능 아나엘이 전파합니다.

       본 ‘예호바 체바오트(Jehovah-sabaoth)의 연구소’는 현 시간부로 폐쇄됨을 알립니다.

       다시 한번 전파합니다.

       본 ‘예호바 체바오트(Jehovah-sabaoth)의 연구소’는 현 시간부로 폐쇄됨을 알립니다. >

         

       < 폐쇄 프로토콜 조건이 과반수 충족되었습니다.

       1. 연구소 안에 생존자가 없을 것.

       2. 연구소 안에 등록되지 않은 외부의 존재가 침입하였을 것.

       3. 소유권자가 제지하지 않을 것.

       4. 인공지능 아나엘의 판단 아래 자료와 증거의 소각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것.

       5. 외부의 환경이 급변하였을 것.

       6. 연구원들의 뇌에 심어놓은 칩이 과반수 무력화되었을 것.

         

       현 비상 시점 연구소의 최고 관리자인 ‘인공지능 아나엘’의 권한으로 폐쇄 프로토콜이 진행됩니다.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로 전송되며 백업됩니다. >

         

       < 당신과의 소통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방문한 손님.

       ‘사마엘’. >

         

       < 감사합니다. >

         

         

         

        * * *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붉게 점멸하는 연구소의 조명들.

       그리고 거대한 소음과 함께 연구소를 가득 메우는 불길.

         

       그렇게 연구소는 소각되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나무, 비윤리적인 생체 실험의 증거, 뇌가 적출당해 생체 서버로 변해버린 연구원들, 박진성이 보낸 영체들까지.

       모두가 말이다.

         

       하지만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박진성에게 흥미를 보인 인공지능은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자신의 데이터를 본체에 전송했으며, 영체를 잃어버린 박진성은 한국에서 눈을 뜬 채 이번 만남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으니까.

         

       ‘예호바 체바오트….’

         

       만군의 주인.

       천사들을 군대로 부리시는 신.

         

       ‘생체 서버, 소통에 대한 갈망, 유아적 행동을 보이는 인공지능….’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린 기분이다. 아리송하고 기묘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윤곽이 잡혀가는 듯한 그런 모호한 기분.

         

       하지만 그런 모호함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으니.

         

       ‘중국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또한 그렇지 않더라도 한반도를 관찰하거나 찔러본다고 친다면 중국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니.’

         

       대나무의 장막을 들추고.

       중국을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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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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