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51

    <751 – 아무도 모르게(9)>

     

    브론즈 교수는 성질을 죽이며 어울리지도 않는 예의를 차리던 가식의 시간을 내던지고, 다른 교수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마하바라타 교수가 쓰레기들만 잘 모아놓아서 고민할 여지도 없었지.’

     

    다른 어떤 교수보다도 오랜 시간 재단의 뒤를 캐왔던 브론즈 교수이기에 그녀는 온갖 속성의 고블린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건 재단이 지닌 모든 차원 지식의 총집합이나 다름없는 대위기라고.

    그런 위기를 앞에 두고 조교가 어째?

    매년 4학년들의 졸업과제로 삼아?

    위기감이 없어도 도를 넘어섰다.

     

    ‘제군들의 경솔함을 탓하게.’

     

    쓰레기 교수들로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발전하고 수가 불어났을지도 모를 고블린을 봉쇄한다.

    이걸로 고블린월드 차원계를 이용한 재단의 중간계 대습격은 저지된다.

    비공정의 동력원으로 용맥을 대신하고, 고블린제국에 축적된 마석으로 마나를 보충하며, 교수들이 아카데미로 돌아갈 때 쓰려고 아껴둔 마법진으로 문을 개방하면 혼자만 유유하게 돌아갈 수 있다.

     

    “부지런하게도 사시는군요.”

    “인기 많은 여자는 찾는 곳이 많거든.”

     

    그런 브론즈 교수의 앞에 나타난 ‘메이드장’을 보며 브론즈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놀랐다. 설마 본인과 같은 아카데미 교수도 아닌 재단의 사람에게 행동을 읽힐 줄이야.”

    “당신이 재단의 뒤를 캐왔던 사실을 재단의 정보망을 담당하는 암살메이드들이 눈치 채지 못하리라 여겼다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언제 어디서 걸렸지?”

    “재단은 악의조직이기에 선행으로 일반인을 포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인식을 이용해서 확보한 재단의 후원을 받는 일반인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본인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남자의 씨앗을 잉태하고도 스토킹하러 온 외간 여자와 비밀데이트라니, 속이 쓰리군.”

     

    메이드장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먼지털이도구를 곤봉처럼 치켜들었다.

     

    “동력원, 마석, 마법진. 준비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곱게 저희에게 양도하고 물러서십시오. 그러면 목숨은 해치지 않겠습니다.”

    “제군들이라면 도둑년에게 순순히 모아온 전리품을 갖다 바치겠나?”

    “도둑이 아닙니다. 우리는 재단을 떠나기로 결심한 배신자들입니다.”

    “호오…? 그건 예기치 못한 답변인데. 흥미롭군. 무엇이 제군들이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지?”

     

    암살메이드.

    이들의 존재는 대륙 각국의 권력자들에게 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디에나 있는 일상 속의 커다란 위험이 되었다.

    오죽하면 암살메이드가 걱정되어서 메이드 대신 비서를 쓰다가 암살비서한테 당한 일화를 두고, 암살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 취향대로 비서 대신 메이드를 곁에 두다가 죽겠다는 제국 귀족의 명언이 아카데미에까지 퍼졌겠는가.

    그토록 재단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암살메이드=재단이라는 인식을 구축한 이들의 배신 선언은 쉽게 나올 이야기가 아니었다.

     

    “재단은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 요소를 음지에서 확보, 격리, 운용하는 조직. 재단에서 행하는 모든 악업은 언젠가 인류에 진정으로 자유를 선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저희의 손과 마음을 기꺼이 더럽혀왔습니다.”

    “그 믿음이 깨졌나?”

    “고블린월드의 고블린들은 중간계 전체의 질서가 무너질 심대한 위협이었습니다. 이는 이사장이 저희 암살단과 계약하며 보여준 인류 미래의 청사진에 포함되지 않은 배신행위입니다.”

    “호오.”

    “설령 이 계획으로 기존 중간계 지배자들이 무너지고 재단이 새로운 질서를 바로 세운다고 한들, 중간계는 초토화되고 잿더미로 전락할 겁니다. 이미 한 번 약속을 저버린 이사장이 폐허에서 쌓아올릴 인류의 미래가 우리가 약속받은 미래와 같다는 믿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단 이사장의 직속삼장.

    메이드장의 배신선언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함께 떠나도 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본관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려고 하지?”

     

    메이드장의 서늘한 시선이 브론즈 교수에게 닿았다.

     

    “여기서 나간다면 브론즈 교수께서는 아카데미로 돌아가 고블린월드에서 일어난 일을 전하고, 교수전력이 급감한 아카데미에 발생할 재단의 습격에 대비하고자 하실 겁니다. 제 추측이 맞습니까?”

    “정확하군.”

    “그렇기에 당신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는 생명보다 죽어가는 생명이 더 많다고 하는 고요한 강철과 죽음의 차원계에서 이사장은 절멸병기를 개발했습니다.”

     

    이사장은 신무기의 존재를 기밀정보로 취급하고자 했으나, 너무나도 강력한 병기는 원치 않아도 그 위해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재단의 방첩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메이드장 정도 되는 위치라면 본인이 알고자 하지 않아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휘하 메이드들이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다 주기 마련이었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오늘 아침 메뉴는 두더지 구이에 야채를 곁들인 두더지 수블라키, 고급 향신료로 시즈닝된 두더지 스튜라고 합니다. 우린 왜 저렇게 못 먹습니까.

    -시끄럽습니다. 흰빵이나 먹으세요. 아카데미 열등생들은 당신들보다 훨씬 열악한 음식을 먹습니다.

     

    절벽에서 제자를 집어던진다는 어느 괴팍한 노인처럼 부하들에게 감정을 도려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무감을 훈련시켜야 하나 후회가 생길라 치면, 공포와 존경의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단원들이 찾아와 제 멋대로 떠들어대고는 했다.

     

    -단장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아카데미 고학년들이 재단장학생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식당에서는 엄청난 식단을 만끽하지만 그건 보여주기용 쇼일 뿐, 실제로는 랩실에서 돌을 먹이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단장님은 전부 알고 계셨던 겁니까?

    -…맞습니다.

    -끽해야 흰빵이랑 다를 것도 없는 흑빵이나 먹는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들입니다. 악의조직 타이틀을 저희 암살단이 아니라 기프트 아카데미에 넘겨줘도 되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흑빵을 먹는 줄 알았던 애들이 돌을 먹는다는 식으로 그녀가 알던 것보다도 훨씬 열악하고 악독해진 방식의 인재육성방법이 알려졌다.

    호들갑 심하고 겁 많은 암살단원들이 어느 날 사막의 소국 하나를 증발시킨 핵무기에 대해 기겁하며 이야기를 물고 오는 것도 메이드장에게는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다.

    불만과 시기, 질투, 우리도 지금보다는 나은 복지환경에서 일할 자격이 있다는 노동투쟁 따위로 무장한 단원의 장난 섞인 얼굴과 시위용 푯말처럼 들이미는 보고서.

    모든 것이 익숙했다.

    보고서를 내민 손이 하나뿐이며, 변질되고 무너져 가는 신체의 상태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점까지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사장이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 마나사용자가 핵폭발의 <부수적 피해>에 얼마나 저항하고 생존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의도적으로 피폭을 시켰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긍했습니다. 분하지만, 이 정도의 무기와 경과보고를 보고도 이사장의 질서에 거역할 이들은 없으리라고 믿었기에.”

    “그런 이사장이 보기좋게 고블린월드로 통수를 쳤으니, 제군의 인내심도 이젠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군.”

    “아카데미를 비워야 합니다. 이사장이 아카데미에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교장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교수가 피할 수 없는 마나오염에 노출됩니다. 마나사용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아카데미를 노린다는 확증은?”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정보를 토대로 핵무기를 보관한 보관소에 장난질을 쳐두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선에서만 상당량의 핵무기가 소실되었으니, 남은 핵무기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려 할 겁니다. 그 대상이 <기프트 아카데미>입니다. 부하의 목숨을 빼앗은 저주받을 무기는 제가 막아내야만 합니다.”

     

    브론즈 교수는 그녀의 말에 담긴 진의를 깨달았다.

     

    “당신, 죽을 작정이군.”

    “말로는 전해지지 않을 겁니다.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강제로 아카데미에서 모두를 퇴거시킬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뜻을, 제 부하의 목숨을 유린한 이사장을 향한 유일한 복수의 방법이니.”

     

    이사장의 직속삼장이 계획을 전하고 피난을 외친다고 한들, 순순히 그 말을 믿거나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이드장은 몸소 아카데미를 습격하여 살해당한 뒤, 자신의 기억을 아카데미에서 강제로 열람하여 진상을 깨닫게 만들고자 했다.

    그 계획의 성공유무와는 별개로 브론즈 교수는 메이드장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당신, 나이는 몇이지?”

    “올해로 서른다섯입니다.”

    “학생보단 늙었지만 암살단의 수장치고는 어리군.”

    “남은 수명이 십 년도 안 된다고 하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과연. 잠력을 끌어다 쓰며 미래가 없는 힘으로 경지를 당겨왔군.”

    “제 나이에 대한 정보가 당신의 판단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충분히 되었다. 의로움을 알고, 세상의 정의를 위해 거악과의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의적의 뒤를 밟는 뛰어난 추적술까지. 당신은 그림으로 그려낸 듯이 훌륭한 ‘의적’후보다.”

     

    브론즈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본인의 제자가 되어라. 약속한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교장에게서 <불신>을 훔치겠다.”

    “그런 짓이…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지.”

    “그 교장이 순순히 당신의 도둑질을 허용할 리가 없잖습니까.”

    “아니, 허용할 거다. 교장이 아카데미를 만든 진정한 이유는…”

     

    브론즈 교수의 이야기에 메이드장은 말문이 막혔다.

     

    “믿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떼돈을 벌고 싶어서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하면 그 악룡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가지, 그건…”

    “외부인인 내가 이사장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안다고 한들, 당신보다 잘 알 수 있겠나? 같은 문제다. 당신이 교장에 대해 무엇을 안들, 내부인인 내가 아는 것만큼은 아니지.”

     

    마음이 기울었다.

    메이드장은 브론즈 교수와 함께 나갈 것을 결심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자가 7위계급 고수 두 명의 기척을 속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너는, 우리들을 급습했던…”

    “당신이 이사장의 숨겨둔 칼이라던…”

     

    어째서 지금껏 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찬란한 황금색 광휘를 두른 자.

    황금의 마법소녀 아발론이 당차게 허리에 두 손을 얹으며 외쳤다.

     

    “음,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다. 장차 황금이 보여주는 꿈과 희망으로 세계를 지배할 자로서도 그런 사악한 병기를 다루는 존재의 만행을 용납할 수는 없지. 당신들의 탈출, 이 황금의 마법소녀 아발론이 돕겠어!”

     

    브론즈 교수와 메이드장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팡이에 숨긴 암살검과 먼지털이도구에 숨긴 사출형 칼날을 겨누었다.

     

    “이사장의 사악한 계획이 저지당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달할 작정이겠지.”

    “메이드장을 대신할 비밀병기로 육성된 재단의 차기 암살단장. 그 저력을 시험해 드리죠.”

    “왜, 왜 내 말만 아무도 듣지 않는 것이냐…? 이 정도로 귀여우면 조금은 사람 말을 들어줘도 좋지 않으냐!”

     

    아카데미 교수와 재단이사장 직속삼장도 화해하는 마당에 자신에 관한 오해도 풀 수 있으리라 여겼던 아발론이었지만…

    섣부른 기대는 세력을 넘어선 두 고수의 합공으로 돌아왔다.

     

    “재단의 살인병기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네 말은 들을 가치도 없지.”

    “…혹시 오크노디 아가씨한테도 그 말씀, 하신 적 있으십니까?”

    “이런. 제자로 삼기 전에 해볼 걸 그랬군.”

     

    선택적 소통장애에 걸린 두 고수의 습격이 의문의 흑막 아발론을 맹습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아발론은 황금의 권능으로 어떻게든 피하며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권능은 자신을 감출 줄 모르는 황금마나의 특성 탓에 운용이 어려웠다.

    지금 이 힘을 사용했다간 다른 교수들의 눈을 의식해서 힘을 아끼는 두 고수도 단번에 공격의 강도를 몇 단계는 끌어올릴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기억의 편린으로 주입받은 지식이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전투술이니 써보는 수밖에.’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아발론이 생성한 수십 발의 <황금볼>이 허공 가득 펼쳐지며 구체에 닿는 모든 암기와 주변 공간을 집어삼키다가 사라진다.

    메이드장은 귀찮은 공격이라 생각할 뿐이었으나, 브론즈 교수는 아예 확신을 얻었다.

     

    “그 마나운용술… 시킨 적도 없는 제국도둑질까지 저지른 본인의 기특한 수제자의 기술 <블랙홀볼>과 같은 방식이군.”

    “알아봤느냐? 그렇다. 나는 오크노디와 같은 편이다. 너희의 적이 아니란 말이다!”

     

    이 정도면 믿어주겠지.

    아발론의 희망은 눈앞에서 무너졌다.

     

    “오크노디의 스승, 재단의 집사장에게 직접 배운 사악한 어둠의 전투술이겠지. 그 존재가 너와는 양립할 수 없음을 더욱 분명히 만들었다.”

    “이게 그렇게 해석된다고?!”

    “역시 재단은 널 오크노디의 ‘대체품’으로 삼을 작정이구나. 그대를 죽이면 대체품을 잃은 재단도 오크노디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발론은 몰려오는 현기증에 전투 중임에도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크노디의 자동적인 공략성공을 위해 억까의 희생양이 된 아발론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