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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1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옛날 중국의 고립정책을 뜻하는 말로, 소련의 폐쇄정책인 ‘철의 장막’에서 철 대신에 중국의 대표적인 식물 중 하나인 ‘대나무’를 넣어서 비유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대나무’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 생물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비가 온 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죽순을 뜻하는 고사성어.

       뜻을 따져보자면 어떠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남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대나무라는 생물은 잠잠하다가도 갑자기 튀어나와서 순식간에 자라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성장세가 어찌나 빠른지 일본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던 회사원의 넥타이가 한창 자라는 죽순과 얽혔고, 순식간에 자라난 대나무는 회사원을 목매달아 죽이고 말았다.’라는 괴담이 있을 정도다.

         

       물론 괴담은 괴담일 뿐,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괴담이 사람들에게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그만큼 죽순의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1m가 넘게 자라나기도 하는 것이 죽순이니 과연 사람들이 그 괴담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이해를 한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그렇기에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데가 있었다.

         

       잠잠하다가 순식간에 자라나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빼곡하게 자리 잡아 사람이 지나가기 힘든 천연의 미로가 된다. 심지어는 한 숲의 대나무끼리는 전부 이어져 있어서, 수없이 많은 대나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개체이면서도 단체의 성질을 모두 공유하고 있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렇게 자라난 대나무들은 하나같이 쓸모가 많아 버릴 데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중국에 대한 비유로 알맞지 않은가?

         

       대나무가 사람이라 친다면 그것으로 이루어진 장막은 말 그대로 ‘인의 장막’이요, 대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그들로 만들어진 방벽이자 미로이며, 대나무끼리 연결된 것은 ‘그림자 정부’라고도 불리는 공산당으로 연결된 그들의 사회상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쓸모는 인구수가 곧 국력이었던 그들의 성질을 뜻하는 것이라.

         

       그야말로 대나무라는 것은 그러했다.

       그토록 중국에 대한 비유로 알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죽의 장막’에서 대나무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떠할까?

       중국인을 대나무에 빗댄 것이 아니라, 중국 그 자체를 대나무에 빗댄 것이라면?

         

       ‘대나무. 참으로 묘한 비유지.’

         

       그 역시도 틀린 비유가 아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영토는 숲이며 장막이며 터전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두 비유 모두 맞다.

       사람이든 국가 그 자체든.

       중국은 대나무를 상징으로 삼기 알맞은 나라다.

         

       그렇기에 더더욱 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묘해. 대나무라는 비유를 떠올린다면, 떠오르는 주술이 하나가 있단 말이지.’

         

       염매(厭魅)라는 주술이 있다.

       사악하고 악독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주술.

       그 때문에 한, 중, 일 세 나라 전부 그 주술을 두려워하면서 금지하기까지 했다.

       무려 공식적으로 말이다.

         

       ‘고독염매(蠱毒厭魅).’

         

       사악하면서도 강력한 주술로 악명이 높은 ‘고독(蠱毒)’과 함께 묶일 정도의 이 사악한 주술은 일종의 주물을 만드는 의식이었다. 대명률에 적힌 것에 따르면 고독을 만들면 참형으로 다스리고, 염매를 만들면 도형에 처하거나 심하면 참형이나 능지처사 등의 중형에 처하였다고 할 정도였으니 당시의 사람이 이 주술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이 주술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대명률에서 이르기를 염매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모살(謀殺)이요, 그것으로 사악한 신(邪神)과 사악한 영(邪靈)에게 기원을 하여 저주한다면 살인과 같다고 보았음이니. 실로 이 염매의 수법이 사악하고 끔찍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이 염매 그 자체로 벌이는 것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백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라!

         

       ‘염승귀매(厭勝鬼魅)….’

         

       회귀 전 박진성은 옛적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 권의 서적을 얻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책이 아닌,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이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상해버린 죽간.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죽간이 많이 손상되어 내용이 많이 소실되거나, 운이 좋다고 할지라도 전문가가 달라붙어야만 해석을 할 수 있는 옛날 문자나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그때의 박진성은 참으로 운이 좋아 원본과 함께 그 해석본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읽었던 죽간에서 말하기를, 이 죽간에 글을 쓴 것은 문자옥(文字獄)에서 살아남은 더벅머리 유생이며 이름을 칭할 수 없음을 통렬하게 여기며 피를 섞은 먹으로 이 글을 쓴다고 하였다. 또한 삿된 것이라 하여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곧 빛이 사라짐과 같음이니 이것을 후대에도 이어지게 하라는 말과 함께 염승귀매와 그것에 도움을 주는 방술(方術)에 관해 서술하였다.

         

       죽간에서 말하길 염매라는 것은 염매(厭魅)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사람을 저주하는 염승(厭勝)과 귀신을 만들고 부리는 귀매(鬼魅)로 나뉜다고 하였다. 염매와 귀매는 따로따로 존재할 수 있으되 그 둘을 묶어서 사용한다면 그 효능은 불에 잘 마른 장작을 넣는 것과 같은 효능이 일어난다고 하였고, 따라서 염매를 사용하기에 앞서 부릴 귀괴(鬼怪)를 수중에 넣으라 하였다.

         

       그 귀신을 만들고 손에 넣는 방법은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방술로 귀신을 쥐는 것이 섭혼(攝魂)이요.

       살아있는 사람 납치한 뒤 토막을 내 자르고, 그 후 직접 죽인 뒤 그 시체와 사주, 혼백까지 알뜰하게 사용하여 온갖 방법으로 귀신을 만드는 방법을 채생절할(採生折割)이라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섭혼을 위한 용기로는 호리병이나 박, 인형 등의 재료를 주로 사용하라고 적혀있었는데- 채생절할을 할 때 사용하는 용기로는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말하기를 죽통(竹筒)은 가볍고 튼튼하며, 가지고 다녀도 크게 의심받지 않으며, 들킬 위기에 처했을 때 불에 던져도 크게 의심받지 않고, 값이 싸고 쉬이 구할 수 있으며 직접 만들어서 쓸 수도 있는 데다가 방술을 사용하기 위한 주문을 새기기에도 걸맞다고 하였다.

         

       그 내용은 실로 옳았다.

       역사에 기록된 염매를 사용한 이들은 이 죽간에 적힌 것을 읽은 것인지, 혹 자신들이 자력으로 대나무를 사용하면 좋다는 것을 습득하였는지는 몰라도 대다수가 대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심지어는 이 죽간이 쓰였던 중국뿐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그러했다.

         

       조선의 염매에 대한 기록은 어린아이를 유괴해서 채생(採生)의 방법으로 죽통 안에 그 혼을 가둬서 부리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실로 잔혹하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작금의 중국을 본다면, ‘죽의 장막’이라는 표현을 떠올린다면 그러한 염매와 채생절할의 방법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나무를 편리를 위하여 자르고 형태를 가다듬은 것이 죽통이라. 그렇다면 중국을 대나무로 친다면 죽통은.’

         

       직감이 말한다.

       별들이 그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저 안을 한 번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리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허허.’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줄기가 있는 법이요.

       그 줄기는 열매를 맺기에 이르는 법이니.

       인과가 닿아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언어가 되지 못한 속삭임으로 별들이 말한다.

         

       ‘죽통, 그리고 죽통 안을.’

         

       곧 저 장막을 들춰볼 수 있으리라고.

         

         

         

         

        * * *

         

         

         

         

       천명(天命).

         

       주나라, 은나라에서부터 사용되었던 단어.

       신성한 존재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변화하면서도 중화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은 그 강렬한 두 글자.

         

       갑골문에서부터 간체에 이르기까지.

       거북이의 등껍질에서부터 디지털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달라지고, 기록하는 물건이 달라지더라도 그 가치가 변치 않을 두 글자!

         

       이르기를 그것은 천하를 거머쥘 영웅에게 주어질 운명이라 하였다.

       이르기를 그것은 상제(上帝)가 가호하는 이에게 내려지는 것이라 하였다.

       이르기를 그것은 패자(霸者)의 증명이라 하였으며, 이르기를 그것은 세상의 흐름이 한 사람의 몸으로 체현된 것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중국의 사람들은 갈망하였다.

       천명을 거머쥔 이가 나와 어지러운 세상을 정리하여 태평성대(太平聖代)로 만들기를.

       잔혹한 도적들과 호랑이보다 무서운 부패한 이들을 일소(一掃)하고 민초가 살기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그리고 이러한 갈망은 중국인들이 영웅을 동경하고 노래하게 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영웅이 나타나기를 갈망하며 인내하였고, 영웅이 나타난다면 마땅히 갈채하고 칭송하였음이니. 그렇기에 이들의 역사는 그들을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 영웅, 초인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천명(天命)을 거머쥔 자’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화하지 않았다.

       황제라는 옛적 천명을 쥐었던 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한 명의 초인이 아닌 중국공산당이라는 이름의 독재 정당이 그들을 다스리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중국인들의 삶과 정신에는 천명(天命)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나 지도자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천명(天命).

       합쳐졌다가 여러 이유로 무너지고, 분열되는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이 천명이라는 글자는 매혹적이면서도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할 수밖에 없었다.

       옛적 황제들이 그러했듯이, 이 천명을 길게 거머쥘 수 있도록.

       하나로 묶어놓은 거대한 제국을 길게 이어지게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단순히 애를 많이 낳고 그중에서 인재를 뽑아서 후계로 앉히는 등의 원시적이고 멍청한 방법이 아닌, 현대 문명을 제대로 활용한- 지극히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은.

         

       “각국 인재들의 데이터와 유전자는 잘 수집되고 있습니까?”

         

       “예. 순조롭습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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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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