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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2

    <752 – 아무도 모르게(10)>

     

    120색 크레파스로 종횡무진 영혼도화지를 누비는 티토소가를 보며 모브, 로지니, 헤스티아는 솔직하게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도 크레파스 주면 안돼?”

    “저런 특별한 크레파스는 더 없어! 애초에 찾는 사람도 없어서 하나라도 만들어진 게 신기한 일인걸?”

    “그렇겠지… 나라도 마법검 한 자루 만들어다가 팔 생각을 하지, 크레파스 마도구를 만들진 않을 거야. 심지어 소모성이잖아.”

     

    마법사인 로지니의 평가는 크레파스의 가치평가를 한층 더 올려주었다.

     

    “얘는 화염고브고 얘는 수중고브야!”

    “집은 왜 태우고 있어?”

    “뭔가를 태워야 화속성처럼 보이니까!”

    “이쪽은 수도관 아래에 갇혀있습니다.”

    “그래야 물속성처럼 보이니까!”

     

    지금쯤 고블린월드의 고블린들은 무슨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을까.

    크레파스를 쥐어준 나조차도 조금은 두렵다.

    강력한 동맹이 될 고블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티토소가의 피조물로 변모하니, 이러다 동료차원계 하나를 통으로 날려먹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깐만! 이쯤에서 안전장치 하나만 걸자.”

    “어떻게?”

    “고블린들의 약점을 그림 모퉁이에 하나씩 새겨두는 거야. 그럼 어떤 고블린도 우리가 약점을 이용하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어!”

     

    사실 영혼도화지의 기존 사용법은 이거다.

    외계의 영혼화가들은 맛난 영혼들을 길러다가 잡아먹기 위해 고블린들의 영혼에 공포를 새겼다.

    장르가 달라서 지들끼리 코즈믹호러로 가고 있는 일종의 격을 잃은 아신亞身, 신에 버금가지만 신이 되지 못한 존재들이다.

     

    ━━━

    아신 : 격에 큰 손실을 입어 신의 위계에서 아신의 위계로 추락한 존재. 피해를 복구하거나 새로운 격을 쌓기 전에는 신위를 되찾을 수 없다.

    ━━━

     

    요컨대, 이 그림계를 천방지축 쏘아다니거나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격을 잃은 아신들과도 싸우게 되는 무시무시한 곳이란 말이지.

    근데 그걸 무서워하기엔 내 포인트가 너무 많다.

     

    ━━━

    소지 포인트 : 102억 포인트

    ━━━

     

    포인트는 무엇으로든 바꿀 수 있는 재화다.

    기프트 아카데미 내부에서 통용되는 교장이 만든 화폐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다른 존재들이 다루던 무언가이기도 했다.

    그 무언가의 정체란 바로 <신앙심>.

    기사단에서 공적을 쌓고 보급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듯이 교단에서 공적을 쌓고 신앙의 증표로 받아 각종 교단권능을 하사받거나 이적을 사용하는데 사용되는 신앙의 증거가 원시포인트였다.

    각 신들마다 존재하는 별개의 신앙포인트.

    그것을 지상에 존재하는 반신이자 현인신 오모시로이 교장님이 하나로 취합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포인트라고 부르는 물질의 실체다.

    포인트는 어떤 신에게도 통용되는 신앙포인트.

    달러 같은 기축통화다.

     

    “아카데미의 좋은 문화, 고블린들에게도 알려주는 거야.”

    “어떻게?”

    “포인트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거지!”

     

    포인트가 있으면 고블린들을 압도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은 하위 화폐를 사용하며 포인트를 소지할 일이 적지만, 어떤 스킬이든 10배수로 사용하면 습득하는 단련업적을 통해 소량의 포인트를 얻는다.

    각 스킬과 관련된 신들이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뿌리는 포인트다.

    그런데 이 포인트를 <마법시계>를 이용해 편리하게 사용하는 아카데미 학생들과 달리, 외부인들은 포인트가 적립된 기기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다가 얼떨결에 포인트를 사용하기도 한다.

    애초에 포인트가 신앙에서 비롯된 존재니까.

    강한 믿음과 기도로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글러먹은 이유로 사용되는 포인트를 보면 조금은 아깝기도 하지.

     

    -제발 스페이드 에이스가 나와서 이번 판 포커에서 친구들을 좆바르게 해주세요!

    -일어나기 싫은데 1시간만 더 자고 싶어…

    -거울 속에서라도 좋으니까 씻고 나서 내가 잘생기게 보였으면 좋겠어… 제발!

     

    도박판에서 기도를 해버리는 바보.

    침대에서 뒹굴다가 늦잠을 자는 바보.

    뿌옇게 증기가 찬 거울 너머에서 복권 긁는 마음으로 제 얼굴로 가챠를 돌리는 바보.

     

    온갖 바보들이 황당무계한 곳에 펑펑 쏟아붓는 포인트를 보면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욕심 없이 검소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에 하늘이 돕는다, 운이 따랐다는 표현이 성립할 수 있다.

    낭비되지 않은 포인트가 일상을 깨뜨리고 찾아온 위기의 순간에 적재적소로 사용되니까.

    그렇지 않은 게으르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나태한 일반인은?

    중요한 순간에 하늘도 버렸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표현처럼 쓸 포인트가 없어서 인생의 평지풍파를 직격탄으로 맞아버린다.

     

    ‘아발론이 지금 모습을 유지하는데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느라 인생의 억까를 당할 거라는 이야기는 비밀로 해야지!’

     

    귀여운 마법소녀가 되는 대가로 억까 좀 당하는 거면 개이득 아닌가? 아님 말고!

     

    “이거 봐. 포인트를 무서워하는 고블린이야!”

    “귀엽네.”

    “어떻게 이게 고블린이야?”

    “힝… 열심히 그린 건데…”

    “아앗, 엄청 고블린같다! 완전 고블린이다!”

     

    티토소가의 울음탱크에 시동이 걸리자 쌓아올리던 잡생각의 탑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달려가 티토소가를 번쩍 들고 높게높게 놀이를 해주자 울음기가 금방 가시고 꺄악꺄악 비명이 이어졌다.

    티토소가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는 사이에 얼른 눈초리로 티토소가를 울리면 안 된다고 눈치를 주니 친구들도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최정예 친구들답게 소통이 편해서 다행이야!

     

    “근데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허접하잖아. 아무리 근본을 갈아치우려고 애써도 다 짓밟혀 죽으면 그만 아니야?”

     

    지금은 외관에도 신경 쓰며 신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열심힌 헤스티아지만, 한때는 힘을 숭상하던 용병답게 지적하는 부분이 제법 날카로웠다.

     

    “그렇긴 하지?”

    “그럼 특별히 강한 개체도 만들어 보는 게 어때?”

     

    매주 페이퍼던전탐사대에서 다양한 모험을 경험하면 싫어도 느끼게 되는 사실이 있다.

    힘 센 놈들은 어디서나 깽판을 치고 있구나.

    일단 힘이 있으면 아무리 멍청해도 뭐든 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

     

    “얼만큼 세게 만들려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고블린이 착한 고블린이면 고블린사회 전체가 인간에게 친화적이고 위험하지 않게 변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내친김에 주변의 도화지를 가득 끌어모아서 거대한 그림을 그려도 좋을 여백을 확보했다.

     

    “음. 근육은 이래야지.”

     

    자기 외모 아니라고 무작정 우락부락하게 그리려는 헤스티아를 저지했다.

     

    “마나연공법에 능통해지면 작은 고블린이 더 강할 수도 있어!”

    “그러네. 요즘 다이어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일단 크게 그리고 싶었나봐.”

    “그럴 수 있지!”

     

    내친김에 소화기 효율도 조정하고, 아무튼 좋겠다 싶은 건 다 추가한 고블린을 그렸다.

     

    “마법재능은 내가 묘사해도 돼?”

    “얼마든지!”

     

    로지니는 창의력이 중요한 적염학파의 학풍을 적극 발휘하여 환상의 불꽃쇼 시연과 전국 불꽃쇼 기안을 관리하는 총괄관리자의 실력을 한껏 뽐냈다.

    티토소가가 묻은 허접잡졸 마법사들에 비하면 이게 진짜 마법사지, 싶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꾸준한 단련과 무한한 성장이야말로 생명체가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안 그러면 내 인생이 너무 불행한걸.”

    “그래그래, 모브의 자아실현도 추가하자!”

     

    덕분에 엄청나게 강하고 마법도 잘 다루면서 노력도 아끼지 않는데 몸도 우락부락하지 않은 엄친아 고블린이 탄생했다.

     

    “이런 걸 고블린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야?”

    “힘세고 덩치 큰 고블린은 홉고블린이라고 부르기는 하지. 변종이 없진 않아. 마탑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한 변종만 12타입이 있어.”

    “홉고블린은 어떤 타입이야?”

    “스탠다드 타입.”

    “그럼 우리가 만든 것도 변종이야?”

    “마탑 기준으로는 그렇지. 조금… 종족값이 말도 안 되게 크게 올라간 것 같지만.”

     

    로지니가 바닥에 대고 낙서를 했다.

     

    ━━━

    [로지니의 종족값 예측범위]

    고블린 종족값 : 1~10

    인간 종족값 : 30~300

    엄친아 종족값 : 1000이상

    ━━━

     

    여기서 말하는 종족값이란, 태어난 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기능수치의 총합을 의미한다.

    당연히 수치가 높을수록 강하다.

    소위 말하는 ‘재능’이라는 거다.

    잘하는 일이니까 재밌게 하고, 재밌게 자주 쓰니까 더 성장하는 선순환도 이어지겠지.

    심지어 모브 덕분에 수련을 좋아하는 기질도 추가되었으니, 얘가 성장하면 어디까지 강해질지는 이제 상상도 안 된다.

     

    “힝, 좋겠다. 기능 하나에 몰빵되면 시작부터 극의 하나 가지고 태어나는거네!”

    “티토소가도 태어날 때부터 마력 짱 많았잖아!”

    “히히. 그렇긴 해.”

     

    갑자기 친구들의 표정이 일제히 떨떠름해졌다.

     

    “그럼 우리가 지금 고블린계의 엄친아가 아니라 고블린계의 티토소가를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거야?”

     

    가챠는 까봐야 안다.

    나도 몰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블린계의 엄친아 vs 고블린계의 티토소가

    가챠 승부존!!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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