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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4

    <754 – 아무도 모르게(12)>

     

    용사는 강하다.

    학기 초, 이슈타르가 오크노디를 포함한 모든 상급반 학생을 순수 무력으로 찍어누르던 것을 생각하면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슈타르가 오크노디에게 따라잡히고 어느샌가 용사만의 압도적 무력이 퇴색되었음을 생각하면 그 한계도 알 수 있다.

     

    정체기.

    용사의 성장곡선에는 둔화구간이 있다.

     

    [세계가 평화롭구나.]

     

    그 이유는 평화에 있다.

    용사가 아카데미 생활에 안주해서.

    가혹한 용사행을 멈추고 동료를 구하는 일상에 마음 깊이 빠져들어서.

    자연스럽게 절실함을 잃게 된다.

    그 순간, 용사의 성장은 동력을 상실한다.

     

    [절박해지거라.]

    [감정을 불사르거라.]

    [나의 작은 태양이여…]

    [먹지 않는 생명은 없다.]

    [먹지 않는 정열도 없다.]

    [그대의 정열에 절박함을 바칠 때, 비로소 작은 태양은 빛을 내뿜으리라.]

     

    그것이 대부분의 회차에서 <전쟁세대>의 아스타로트가 <평화세대>의 이슈타르를 능가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 고블린용사에게 유일신 소페미아가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늘. 지상. 바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 부족의 모두를 가난과 질병에 노출하는 것. 인간들이 저지른 짓, 용서 못해 고브!”

     

    지상에 닥친 인간교수라는 이름의 재난과 도피하듯이 지하로 숨어든 무수한 고블린 부족들.

    보통 하나의 변종이나 상위종이 이끄는 부족이 여럿이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용사의 마을에는 온갖 속성의, 온갖 클래스의 변종이 모두 모였다.

     

    [너희의 마지막 희망이 이 땅에 잉태하였노라.]

     

    유일신 소페미아의 인도와 계시.

    그들은 고블린 용사의 존재에 도달했다.

    그리고 전율했다.

    강하다.

    이 아이가 성장한다면 능히 자신보다 뛰어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대전사의자질이있다고브.”

    “대마도사의자질도있다고브”

    “대주교가될자질도있다고브”

     

    모든 고블린 상위종이 눈에 불을 켜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들 최상위클래스의 변종도 이 장소에는 존재했다.

     

    “제국재건과복수를위해서는황제가되어야한다고브.”

    “고블린엠페러…!”

    “황제라면기꺼이양보할수있다고브.”

     

    구심점을 잃고 몰락한 고블린들.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 있는 황제의 존재.

    이건 강하다.

    황제는 제국을 소유한다.

    제국에서 비롯된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이 된다.

    병력도, 명예도, 심지어는 강함마저도.

    <수집>에서 비롯된 강함을 그 메커니즘은 모를지언정 효력만큼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세계를 구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어 고브!”

     

    고블린용사는 그런 눈앞에 주어진 기회를, 알기 쉬운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모든 클래스>에 동시에 도전하겠어 고브!”

    “올클래스?!”

    “무리다고브!!”

    “멀티클래스는클래스의숫자만큼성장이느려진다고브!!”

    “제국의희망이될황제가헛된전투직에낭비되어선안된다고브!!”

     

    한 가지 재능에 몰빵하며 해당 재능과 연계된 상위변종으로만 진화를 거듭하는 고블린사회에서 다재다능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재능의 방향성도 맞지 않을뿐더러, 고블린의 짧은 수명이 느린 성장을 용납하지 못했다.

    다양한 공부란 곧 다재무능.

    어느 한 분야도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참사로 이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다재다능이란 말은 지금껏 고블린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올클래스라니.

    그런 건 전대미문의 도전이다.

    그럼에도 그 도전에 나서야 할 이유가 있었다.

     

    “황제는, 우리 세계를 침범한 인간계의 악마들을 저지할 수 있었어 고브?”

    “그건…!”

    “무리다고브…”

     

    그렇다.

    고블린월드에 속한 모든 고블린의 충성과 지원에 힘입은 고블린황제조차도 손 쓸 새도 없이 제국과 함께 비명횡사했다.

    무자비한 악마들의 침공 앞에서는 황제의 힘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황제 이상의 힘이 필요해 고브!”

    “그런힘이있을리가없다고브!”

    “힘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고브. 주어진 힘이 아닌 만들어낸 힘으로 황제에게 주어지는 모든 클래스의 지원을, 지원이 아닌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고브!”

     

    그렇기에 용사에게는 역사를 새롭게 쓰며 도전할 자격이 있었다.

     

    [고블린 종족 절멸 진행도 82%]

    [용사의 잠재력 8200% 증가]

     

    해당 종족이 위기에 처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욱 강력해지는 용사시스템이 용사고블린에게 강대한 힘을 허락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용사에게는 다른 고블린들이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좋은밤되라고브.”

    “밤에는푹쉬어야성장한다고브.”

     

    낮의 스승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용사고블린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스승은 밤의 스승이었다.

    밤의 스승은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

    용사가 잠들 때.

    오직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블린종족을 절멸로 몰아넣은 괴물들과 같은 인간족이 꿈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사투를 벌이던 용사였으나, 이제는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오늘은 늦었네!”

    “늘어난 마나고리를 안정시키느라 늦었어 고브…”

     

    최적의 신체사이즈를 찾아 빠르게 성장한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족 여자아이.

     

    “그럼 복습부터 해!”

     

    아이의 손에서 빛이 뿜어지는 순간, 용사는 마나감지를 모조리 차단하고 공간을 베어내며 빛이 이어지지 않는 단절된 차원의 저편을 거닐었다.

    꿈속임에도 현실과 다름없는 극심한 고통이 몸을 무디게 만들고, 뇌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파스스.

     

    그런 고통을 견뎌냈기에 비로소 빛이 잦아들고 역습의 기회가 열렸다.

     

    <공간도약>

    <배후찌르기>

    <강제마나충돌>

     

    공간을 뛰어넘어 다시금 정상차원계에 발을 딛고, 배후를 점하며 뒤에서부터 검을 내지른다.

    검 끝에 싣는 기운은 짧은 수명을 지닌 그녀가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허락하는 서로 다른 속성마나퍼즐의 반발현상을 이용한 폭발.

    그 데미지는 자신의 신체에도 고스란히 돌아오지만, 충격을 흡수하고 흘려내는 고등테크닉을 터득한 지금은 능히 열 번도 넘게 연속으로 견딜 수 있다.

     

    <오크노디식 블랙홀실드>

     

    그런 고등테크닉을 이용한 공격으로도 유효타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용사의 밤스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합격이야!”

    “스승. 스승은 내 일격을 가볍게 막아내었어. 정말 이런 수련이 악적들에게 통하겠어 고브?”

    “머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무리이긴 한데, 용사는 원래 무리 좀 하면서 크는 직업이니까 괜찮아! 역대 최강의 포텐셜에 클래스보정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스승은 그녀를 인정하고 기대감을 보였으나, 용사는 그것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나는 부족해 고브.”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어떡해? 모처럼 모두가 함께 만든 걸작이라서 얼마나 기대가 많은데!”

    “스승은 같은 인간족이 죽이려고 한 우리를 도와줘도 되는 거야 고브?”

    “들키면 혼나기는 하겠지만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게다가 배드엔딩을 피하려고 만든 루트를 멋대로 부수다니, 잘못은 교수님들이 먼저 했는걸!”

     

    의미는 모르겠지만 스승의 분노는 진짜였다.

    가르침 또한 진짜배기였다.

    힘을 더 세게, 더 거칠게 휘두르는 방법만을 알려주던 낮의 스승들과는 전혀 달랐다.

     

    적은 힘을 절묘하게 다루는 법.

    무의미해 보이는 속성의 진정한 활용법.

    작게 나눈 힘을 조립하여 이루는 증폭술식 사용법.

    강대한 공격을 피하는 법.

    다양한 위기에 대처하는 법.

    마치 이 세상 모든 직업의 전투법을 터득하기라도 한 것처럼 전수되는 지식들은 올클래스를 목표로 하는 용사에게 가뭄 끝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세계를 지키고 싶지?”

    “지키고 싶어 고브.”

    “그럼 넌 나랑 같은 거야!”

     

    스승의 해맑은 외침에서 용사는 무언가를 느꼈다.

    꿈속이기에 가능한 감정의 교차.

    무의식적인 인식.

    꿈의 주인인 용사는 본능적으로 스승이 흘린 감정을 따라 올라가 기억의 일부를 엿보았다.

     

    인세에 강림한 정령왕들의 포효.

    무너지는 아카데미.

    대재해를 맞이하는 중간계.

    교장과 선황의 빈자리에 자책하는 사람들.

    종말의 날에 비로소 일어서는 마왕.

    빛을 잃은 성검과 함께 쓰러지는 용사.

    촉발되는 멸망트리거의 후보자들.

    힘의 격발로부터 돌아갈 시기를 놓쳐 인류의 적으로 전락하는 아카데미의 최중요 전력들.

    갈수록 더해지는 절망속에 죽음으로 도피하는 자들.

    끊임없이 축소하는 인류한계선.

     

    그 모든 비극의 단상들을 인지하고 있는 예언자와도 같은 시선의 소유자.

    밤의 스승, 오크노디.

    용사는 그녀가 악마같은 인간들과는 다른 유형의 인간임을 인정했다.

     

    스승은 자신의 미래에 더욱 가까웠다.

    그것도 처참히 깨지고, 가혹하게 무너지고, 잔인하게 실패하는 미래에.

     

    “약속할게 고브. 동족을 위해서라도, 스승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악마들을 물리칠거야 고브!”

     

    용사는 진심으로 다짐했다.

     

     

    * * *

     

     

    SSS급 용사 고블린이 탄생했음을 알아차린 직후, 나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어? 이러면 이슈타르가 나가리 되는데??”

     

    용사는 신의 사도.

    신의 지원을 받는 대리인이다.

    용사가 여럿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지원을 여럿이 나누어 받는다.

    100의 자원에서 기존의 용사가 30만을 할당받았다면 그 뒤로 70이 어디로 분배되는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이미 50이 넘는 자원을 할당받았다면.

    그리고 다른 용사가 큰 지원을 받는다면.

    기존의 용사는 자신의 몫을 빼앗긴다.

     

    전력감소.

    출력약화.

    경지퇴보.

     

    가뜩이나 아스타로트가 등장하며 입지가 불안정한 이슈타르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우리 걸작고브 버리지 마!”

    “그렇게 열심히 그렸는데 영혼도화지를 찢자는 건 아니지…?”

     

    티토소가와 모브의 애걸복걸에 어쩔 수 없이 도화지를 북북 찢는 건 포기했다.

     

    “그럼 짧고 굵게 살다 가게 해주자!”

    “힝… 그게 무슨 뜻이야?”

    “용사는 세계구원이 목표잖아. 오래 살지 못해도 세계는 구하고 가면 본인도 좋아하지 않을까?”

    “쟤네가 무슨 위기에 처해있는데?”

    “교수님들의 습격을 받는 것 같아!”

     

    수많은 모기를 다루며 습득한 하수인과의 교감을 나누는 <상황파악> 기능의 극의가 알려주었다.

    용사의 영혼을 다루며 용사가 내 하수인 판정을 받았고 <상황파악> 기능의 염탐대상이 되었음을.

    황당하게도 고블린월드에는 차원폭발에 휘말린 교수님들이 잔뜩 있다는 사실마저도 말이다.

     

    “그럼 우리 걸작고브 어떡해?!”

    “날 닮아서 똑똑한 엘리트 마법사 고브가 되길 기도했는데…”

    “제대로 수련을 하기도 전에 죽는 거야?”

    “이런 건 너무 불합리해.”

     

    복수에 민감한 싱조차도 무언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친구들이 모두 뜻을 모았는데 나만 뺄 수는 없지.

     

    “그럼 이렇게 하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화력을 내는 기술을 몽땅 가르치고 분신술을 전수하면 교수님들이 깽판 치는 곳마다 분신을 보내서 저지할 수 있을 거야!”

     

    작전은 그랬다.

    분신을 파견해서 모든 증폭기능을 다 꼬라박고 유유히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에 교수님들도 고블린월드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짓을 그만두고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지.

    그러면 용사는 세계를 구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친구들은 걸작고브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만족할 수 있다.

    나도 고블린월드가 쫄딱 망하지 않아서 안심할 수 있다.

    교수님들도 무사히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으니, 모두가 만족하고 안심하는 결과가 찾아온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본래의 작전은 그랬다.

    착오가 있다면 용사가 너무 대단했다는 것뿐이다.

     

    “아니, 분신술을 왜 공격용으로 다 꼴아박아?!”

    “아니, 교수님은 저 정도 출력이면 영역 4단계도 찢고 관통딜 꽂히는 걸 왜 몰라?!”

    “으앙, 난 몰라!”

     

    하나만 보내야 할 분신을 교수님 하나한테 모조리 투입하고 심지어 본체까지 돌격한다.

    단기속성으로 증폭을 통해 강력해진 용사 수어 체가 일제돌격이라는 굉장한 짓을 저질렀는데 교수님은 반대로 실책을 저지르며 일격을 허용했으니…

     

    뎅강.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제국파 교수님 한 분이 덜컥 죽어버린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교수님을 죽인 사악한 다크프린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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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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