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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4

        

       한정판이라는 것은 남다른 가치를 가진다.

       그 가치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 즉 ‘한정된 기회’라는 부가가치가 더해져서 생기는 일종의 환상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구할 기회가 한정되었다는 것은 곧 귀하다는 말과 같았고, 한정된 숫자는 물건의 가치와 만족감을 확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한정판이라는 말이 붙으면 조바심을 느끼고, 정당하게 지불해야 할 가치보다 더 많은 대가를 주고서라도 그것을 얻고자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그 가격을 주고 살 필요가 없는 물건임에도 ‘한정판 프리미엄’이라는 고급스러운 포장을 한 바가지를 쓰면서까지 한정판을 사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세린이 이 일에 파고드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밖에 맛보지 못할 극상의 비밀이라는 것은 이세린에게 있어서 ‘한정판’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평소 보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위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릅쓰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비밀을 탐구하는 데 항상 안전을 염두에 두었던 이세린치고는 꽤 경솔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녀의 혈연메이트인 조금 머리가 짐승 같은 이아린이 안다면 화를 버럭 내면서 그녀에게 관절기를 걸어서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하겠다고 반성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고통을 줄 것이고, 엘라의 경우에는 진지한 얼굴로 설교를, 아샤의 경우에는 그녀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위험한 일’을 그만두도록 만들 것이겠지.

         

       하지만 이세린에게도 변명거리는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탐스러운 비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제철은 지금이니까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라는 그녀 자신에게만 통할법한 변명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동안 비밀을 은밀하게 들춰보면서 아무런 일이 나지 않았다는- 바꿔서 말하면 행적 그 자체가 곧 신뢰가 되는 ‘무사고 경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권력자의 금고부터 시작해서 중국 공안이 국내에 설치해놓은 비밀경찰서까지.

       듣기만 하더라도 ‘어떻게 성공했냐?’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그러한 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음에도 그 누구도 이세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으며, 그 누구도 그녀의 얌전해 보이는 인상 속에 수많은 비밀을 담아두고 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가족마저도 그녀가 얼마만큼 아는지, 그동안 모은 비밀들로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레모리가 최근 들어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익히도록 하는 기술로 어느 정도 무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

       좋게 말하자면 자신감, 나쁘게 말하자면 자만.

       그것이 지금 이세린이 이 일에 발을 담그도록 한 원동력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저울의 추는 ‘자신감’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그레모리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더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권능, 권능으로 얻어서 익힌 비밀스러운 이능들, 위기 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해두었던 주물이나 아티팩트들, 심지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주술까지도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고 있는 상태다.

       위기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어지간한 능력자는 정면에서 쳐부술 수 있을 정도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몸 정도는 쉽게 빼낼 수 있을 수준이라 할 수 있으니.

         

       이세린이 판단하기에, 그리고 그레모리가 판단하기에도 이세린은 이 비밀에 파고들 최소한의 기준은 만족한 상태다. 혼자서 이 비밀에 관여하고 있는 강자나 집단을 쳐부수고 다닐 수 있을 수준은 되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몸이 위험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확신했기에 이 일에 발을 담근 것이다.

         

       ‘파고들수록 재미가 있는 비밀이라니…. 마치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같은 느낌….’

         

       [ 그러고 보니 사랑스러운 계약자의 친구, 엘라라는 아이가 선물해준 마트료시카가 있지 않았느냐? ]

         

       ‘으응. 생명력을 부어서 만든…인공 보석과 송진을 직접 굳혀서 만든 호박(Amber)을 사용해서 만든 마트료시카….’

         

       그래.

       이세린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마트료시카와 같은 것이었다.

       얼마 전 엘라가 세공 관련 강의에 만들었던 보석 마트료시카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장난감.

       햇빛에 비춰보면 인공 토파즈의 노란색과 파란색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루비의 붉은빛이 불꽃처럼 눈을 현혹한다. 호박의 고급스러운 색이 보석 안쪽에서 눈코입의 형상을 이룬다. 그리고 그 호박으로 이루어진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마트료시카를 잡아 들어 올리면 그 안에는 자그마한 또 다른 마트료시카가 들어있다.

         

       보석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빛의 세공품.

       세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만들어낸 작품.

         

       그래, 그것은 작품이었다.

       엘라 자신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의 재능으로 빚어낸 하나의 작품.

       세공 강의를 진행하던 특별 강사마저도 화들짝 놀라서 이것을 자신에게 팔지 않겠냐며 말할 정도였으니, 필시 그것은 놀라운 재능이리라.

         

       하지만 엘라는 그것을 파는 대신에 이세린에게 선물했다.

       자신이 세공 강의를 듣도록 한 것이 이세린이니, 이 작품은 이세린이 갖는 것이 옳다면서.

         

       그렇게 엘라가 만든 첫 작품은 이세린의 손에 들어왔고, 그녀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비밀스럽게 몰래 훔쳐- 아니, 위치를 이동시켜서 자신의 장식장에 놓은 가치 높은 물품 중에서도 가장 좋은 위치에 놓인 보물이 말이다.

         

       ‘예쁘지…. 마트료시카….’

         

       그 보물을 볼 때마다 떠오른다.

       기쁜 듯한, 하지만 약간은 수줍은 듯한 얼굴로 자신에게 마트료시카를 주던 엘라의 모습이.

       자신보다 이아린과 훨씬 친하다고 생각했던 엘라가 이아린도, 아샤도 아닌 자신에게 가장 먼저 마트료시카를 건네주었던 그때의 기억이.

       어쩌면 그 마트료시카를 받은 순간부터 그녀는 엘라가 자기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레모리를 소중히 여기고, 가족 정도를 울타리 안에 집어넣었던, 그 외 나머지는 울타리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인지하고 있던 그 인식이 그때 깨진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라는 의미가 그녀에게 조금 더 와닿고, 그녀의 인지가 사회적으로 조금 더 확장하게 된 계기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그녀는 마트료시카를 볼 때마다.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그 보석을 볼 때마다 떠올린다.

       그레모리나 가족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자신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존재.

       자신이 위치를 이동시켜 장식장에 넣어놓았던 의미 있는 물건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저 물건과도 같은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여우 구슬…. 아주 흥미로운 물건이었지….’

         

       그리고 어떠한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과 관련된 것 역시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게 되는 법.

       이세린은 엘라의 고민을 안다.

       이세린은 엘라의 콤플렉스를 안다.

         

       엘라는 이능에 재능이 많이 없어서 들들 볶이면서 살아왔으며, 새로 생긴 언니 호소인 아나스타시아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는 아나스타시아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가장 가까워야 하는 가족이 자연스럽게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쁜 일은 아닐 터.

       특히나 이제는 성질머리가 고약한 오딜리아의 존재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아나스타시아와 자신의 실력을 비교하면서 좌절하게 되는 것 역시 무리가 아니다.

         

       ‘요새는 고약한 말은 잘 안 하고…. 조용히 있기는 하지만….’

         

       물론 오딜리아가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엘라를 들들 볶은 것은 아니다.

       박진성을 만난 후로 오딜리아는 얌전해졌으며, 미국에 갔다 온 후에는 매우 얌전해졌으니까.

       그래서 딱히 고약한 성질머리를 엘라에게 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딜리아의 존재감 자체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딜리아는 존재 자체만으로 엘라에겐 트라우마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의 얼굴만 봐도 질타당하던 그때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세린은 엘라에게 자신이 받은 마트료시카의 값으로 엘라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실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선의이기도 했다.

         

       여우 구슬.

         

       복용해본 결과 생명력에도 유의미하게 영향을 준 그 인공영약을 획득하거나, 혹은 만드는 법을 배워서 엘라에게 선물로 주면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그리고 멍청이 이아린이랑 이아린의 친구? 랑도 관계가 있는 일 같기도 하고….’

         

       겸사겸사 요새 더 짐승 같아지고 있는 혈연메이트 이아린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으니.

         

       그렇기에 이 일은 이세린이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고들수록 흥미로운 비밀, 엘라에게 줄 선물을 마련할 기회, 이아린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문.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엄청난 기회였으니까…!

         

       [ 참으로 착하구나 계약자야. ]

         

       그래.

       그렇기에 그레모리도 이세린의 애교를 받고 허락해준 것이다.

       착하게 자란 계약자가 사랑스러웠고, 이세린의 서툰 애교가 귀여웠으며, 친구를 위해 행동하는 이세린의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러웠으니까 말이다.

         

       [ 그래. 마음껏 비밀을 탐구하거라. 계약자를 위해서 내가 힘을 좀 써볼 테니. ]

         

         

         

         

        * * *

         

         

         

         

       금으로 된 왕관, 금으로 된 왕관. 금실은 금성의 빛보다 반짝이고 밤하늘을 두르고 구름을 실로 자아 장식으로 삼았네.

       소리 없는 발굽 자국에는 반짝임은 남지 아니하나, 그 궤적의 반짝임은 고귀함을 품었으니 과연 발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가 훌륭하도다.

       흔들리는 붉은 모래는 터럭처럼 흔들리며 그림을 자아내고, 갈기 없이 흩날리는 선과 면은 머리카락이 되어 하늘의 별자리와 같은 형상을 그려낸다.

         

       [ 계약자야, 계약자야. 비밀을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말하는 것을 잘 해내도록 하거라.

       자아, 첫 번째로는 강서구에 있는 홍익애국단의 안가에 몰래 잠입해서 일본에 기술을 팔아넘기고 이민 가려는 녀석이 발견되었다는 투서를….]

         

       가녀리고 매혹적인 목소리의 속삭임.

         

       [ …그리고 내가 말한 곳에 가서 대포폰을 획득한 다음 ‘딜러’라고 저장된 사람에게 지정된 위치에서 약을 거래하겠다고 문자를 보내거라. 물론 그 지정된 위치는 국정원 안가 중 하나이며, 국정원 안가에서 요원이 마약상과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유도해서….]

         

       붉은 모래로 그려낸 명화.

         

       [ …마약상의 은신처와 산업스파이의 집에 다른 세력이 끼어들었다는 암시를 주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내부에 정보제공자- 즉 배신자가 있다는 결론이 날 수 있도록 증거들을 뿌리도록 해서….]

       

       비밀을 담은 글귀.

         

       [ …그렇게 홍익애국단과 국정원은 자기 집안 단속과 외국에서 무슨 목적으로 들어오는지 모를 중국의 능력자들을 견제하도록 만들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계약자야, 사랑스러운 계약자야. 할 수 있겠니? ]

         

       ‘귀찮지만…어렵지는 않아.’

         

       [ 그래. 내가 머리를 써서 계획을 짰으니, 우리 사랑스러운 계약자가 노력을 해보도록 해야지. 비밀을 즐기기 위해서 노력해보거라! ]

         

       계약자를 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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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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