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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5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자그마한 계기다.

       거창할 필요조차 없는, 정말로 자그마한 계기.

       듣기에는 너무 사소해 보여서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은 충분히 어떠한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는 것이 종국에는 태풍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고, 혹자는 한 걸음이 모여서 결국에는 위대한 걸음이 된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딱히 그러한 거창한 비유가 없더라도 이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즐거워 보여서 대회에 참가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지식을 탐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말을 걸어서 인연을 쌓기도 하고.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선행부터 악행까지.

       그 모든 것은 사소한 것으로 촉발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탄이 쏘아지는 것은 검지의 자그마한 까딱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세린의 행동은 거침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저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도 귀찮고 위험해 보이는 일에 뛰어들 이유가 충분한데, 거기에 엘라와 혈연메이트 이아린과 관련된 일이라는 아주 훌륭한 명분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 훌륭한 명분이다.

       혹시 일이 틀어져서 들킨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명분, 핑계.

       그것이 등에 업혀있으니 이세린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권능을 품은 발자국이 이곳저곳에 찍혔다.

       부드러운 모래 속을 수영하듯이 벽을 거침없이 뚫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다니고, CCTV조차 속이는 권능의 힘으로 그 어떤 곳이든 막힘없이 돌아다닌다.

       비밀을 꿰뚫어 보는 눈은 비밀번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버리고, 열쇠가 필요한 곳이라고 할지라도 권능으로 만들어낸 딱 맞는 만능열쇠로 그대로 열어버린다.

         

       문과 벽, 감시장비, 사람의 눈까지.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으니- 이세린은 그야말로 현대의 투명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보다도 은밀하고, 침묵하는 밤보다도 조용한.

       그렇게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불청객.

         

       그렇게 이세린은 국정원, 홍익애국단, 마약상까지.

       그레모리가 짜둔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며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이라는 연못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분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맑은 연못을 휘저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동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혼란스럽게 만들면 뭐 어떤가.

       딱히 그녀가 크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저택에서 살 때 박진성이 얼핏 말했던 업(Karma) 이야기로 따져보자면 이세린이 끼어들기는 했으되 죄다 좋은 일인데다가 나쁜 짓을 했던 사람들을 벌주는 것이니, 악인들에게 필연적으로 닥치게 될 업보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어지간한 봉사활동보다도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뭐, 혼란스러워진다고?

       그래서 누가 손해를 보기나 하나?

       다른 사람 모두 행복하고, 이세린 본인도 행복하고.

         

       [ 훌륭하구나. 권능의 힘이 강해져서 조금 헤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벌써 이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니! 역시 귀여운 계약자는 천재로구나! ]

         

       게다가 이세린 본인의 소중한 동반자인 그레모리 역시도 그녀를 이렇게나 칭찬하고 있지 않은가.

       이세린이 다루는 권능을 보면서 감격했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까지 말이다!

         

       [ 계약자야, 귀여운 계약자야. 권능을 다루는 모습이 정말 깜찍한 것이 공주가 따로 없구나. ]

         

       조금은 빡빡하게 느껴질 법한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저 모습이라니.

       귀찮아하면서도 앞으로의 즐거움을 위해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저 모습이라니.

       권능을 우아하게 두르고, 깜찍하게 사용하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을 보면서 보이는 귀여움이라니.

         

       그레모리는 이세린이 위험하지 않도록 힘을 쓰느라 잔뜩 쪼그라든 몸으로 이세린을 안아주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단순히 이세린의 품에 안기기 위해 몸을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며 생긴 부담과 혹 이세린이 위험해질까 힘을 쥐어짜서 전수한 권능의 여파 때문에 작아진 몸은 이세린의 자그마한 머리보다도 더 작아진 상태.

       그렇기에 그레모리의 포옹은 이세린을 껴안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세린의 품에 안기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행복했다.

         

       ‘…공주는…좀….’

         

       이세린은 자신의 품에 쏙 들어와 칭찬을 늘어놓는 그레모리를 보면서 볼이 슬쩍 붉어졌다.

       공주라는 칭찬이 낯간지러운 까닭이었다.

       하지만 쑥스러워하면서도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결국에는 미소를 참지 못해 활짝 웃고야 말았다.

         

       자그마한 동물을 품에 안고 배시시 웃는 소녀의 모습.

       행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 * *

         

         

         

         

       세상의 모든 것은 평균을 유지하려 한다.

       한쪽이 높아지면 한쪽이 낮아져야 하고, 한쪽의 옅어지면 한쪽은 짙어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질서이며 법칙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이세린의 행복만큼 불행해지는 이들 역시 존재해야만 한다.

         

       “이 새끼…. 감히 민족을 배신하고 왜놈들한테 기술을 팔아넘기려 들어? 한민족 백 년의 적이 일본인데 감히….”

         

       “아, 아닙니다! 저는 일본에 기술을 팔아넘기려 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중국에서 원활하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분을 줘야만…!”

         

       “뭐? 중국? 한민족 천년의 적 중국에 지금 기술을 팔아넘기려고 했다고?!”

         

       첫 번째로 불행해진 것은 대기업 임원.

       몸을 담고 있는 대기업에서 몰래 기술을 빼 와서 팔아넘기려 들었던 사람이었다.

         

       『 프리미엄 vs 가성비. 디스플레이 경제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

         

       현재 한국과 중국은 디스플레이로 경쟁을 하는 상태.

       한국은 고품질의 디스플레이로, 중국은 적당한 품질에 엄청난 물량 공세로 디스플레이 업계를 지배하려 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나라의 경쟁은 고착 상태였으며, 어떻게든 상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 두 나라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기업 임원에게 누군가가 접근해왔고, 마나 필름 안정화 기술을 팔아만 준다면 어마어마한 거금을 주겠다며 유혹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원이 기술을 팔아넘긴 뒤 매국노라면서 욕을 먹을 것을 두려워하며 머뭇거리자 마나 필름 안정화 기술을 적용한 자회사의 지분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던지기까지 했다.

         

       일확천금의 기회.

       눈 한 번 딱 감으면 대대손손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회.

       임원은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기술을 팔아넘기려 했는데-

         

       “너 같은 민족 반역자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너는…. 그래. 산업스파이 짓을 하려는 게 들키려는 낌새가 보이자 요트를 타고 중국으로 가려고 했고, 그러다가 실수로 북한 땅으로 들어가서 귀신에게 죽어버릴 거다.”

         

       “예? 그게 무, 잠깐. 지금 당신 나를 귀신 먹이로 주겠다고…?!”

         

       “아니지. 네가 실수로 귀신 먹이가 되는 거지.”

         

       “미, 미친! 너 지금 나를 죽이겠다고, 살인을 저지르겠다고?! 제정신이야?!”

         

       “민족 반역자 새끼가 무슨 사람이라고. 너는 아무리 잘 봐줘도 짐승이야.”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홍익애국단의 무인 한 명이 그를 납치해 고문했다.

       그리곤 민족 반역자니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느니 등의 온갖 폭언을 한 뒤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고.

         

       그렇게 그는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말이다.

         

       다른 홍익애국단의 사람에게 걸렸다면 죽지는 않았을 터인데.

       심해 봐야 고문을 당할 뿐, 결국에는 감옥에 갇히거나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 정도로 끝나게 되었을 터인데….

       홍익애국단 내에서도 과격파로 분류된 강서구 지부, 그 안에서도 극단적인 과격파로 유명한 능력자에게 걸린 것이 그의 불행이라 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 불행해진 사람은 택배로 마약을 거래하던 평범한 마약상이었다.

         

       그는 거래하기 위해 마약을 담은 봉투를 들고 동료가 뚫었다고 하는 빈집으로 의심 없이 향했다. 그리곤 공유받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그대로 ‘빈집’에 진입했는데….

         

       “살다 살다 이런 일도 겪어보네.”

         

       “….”

         

       “야. 넌 무슨 생각으로 애들 인형 배때지에 약 채워서 배달왔냐?”

         

       “….”

         

       “내가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래. 대체 너 뭔데?”

         

       그렇게 진입하자마자 마약상은 비어있어야 할 집에서 여러 사람과 눈이 마주쳐버렸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마약의 냄새를 맡은 능력자 한 명이 그를 재빠르게 붙잡았다.

         

       변명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제압이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분명 빈집이라고 했는데.

       새롭게 뚫어놓은 거래 장소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그 장소에 사람이 있고, 마약 냄새를 맡고 순식간에 자신을 제압하는 능력자는 왜 있는 것이며, 왜 이렇게 흉흉한 기색이 풍기는 것인지….

         

       마약상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

         

       그렇게 두 사람이 불행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만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균형은 맞아야만 한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져야만 했다.

         

       “…민족 배신자 한 놈 보냈으니, 나한테 투서 보낸 놈을 한 번 파봐야겠지?”

         

       “잔챙이 마약상인 줄 알았는데…. 왜 이놈이 털어놓은 이름 중에 정치인이랑 중국 블랙 요원 놈들 이름이 보이지?”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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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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