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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8

    <758 – 용사답게(4)>

     

    교수들은 비상이 걸렸다.

    불시의 기습인지, 함정에 빠지기라도 한 건지.

    일개 고블린 따위에게 교수가 한 명 죽었다.

     

    “그 친구, 뭐 하던 양반이었지?”

    “생산학부에서 마갑제조술을 가르치던 양반이었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그런 고등한 기술을 고블린 따위가 알아낼 리는 없을 테니.”

    “살인마법이나 살인기술을 연마하고 또 연마하여 궁극에 도달한 전투직 교수의 경험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 맞지.”

    “우린 그 어리석은 친구처럼 방심하지 말자고.”

     

    교수들은 안심했다.

    죽은 교수가 그리 대단한 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마갑 기술의 잠재력 자체가 그리 대단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마갑이란 골렘제조기술이 제국에 의해 금기로 지정되며 궁여지책으로 마련된 초소형 유사골렘제작기술.

    방어장갑을 한계까지 압축해서 전신갑옷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은 부자들의 유희에 가깝다.

    기술을 빼앗겨도 잃는 것은 부자들의 유희요, 그 유희를 이룰 레어메탈은 고블린월드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간계에서 인위적으로 개발한 기술들이니.

     

    “미개한 고블린 따위가 인류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급이 개발한 최신육전병기의 개량형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자네들… 우리가 고블린월드에 쳐들어온 이유가 고블린들이 비공정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임을 잊은 건 아니겠지…?”

    “……”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고블린들의 기술이 예전처럼 조악하지 않다는 것.

    노력을 모르던 원시고블린들에게 기술개발이란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타고난 강함을 토대로 더 강한 힘으로 더 뛰어난 발명품을 약탈한다.

    혹은 피지배종을 착취하여 더욱 값진 장비를 강제로 개발하도록 쥐어짜 낸다.

    이것들이 고블린들이 값진 장비를 지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공식이 이제는 깨졌다.

    고블린은 더 이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아무리 그래도 레어메탈만큼은 무리다! 그 탐욕스러운 고블린들의 습성상 부족 단위의 강자들이 귀한 물건은 모두 제 무기에 녹여 넣었겠지. 그걸 압수해서 마갑제작에 필요한 양의 레어메탈을 확보하는 건 지금의 몰락한 녀석들에게는 불가능해!”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고블린 사회에서 값지고 부유한 물건, 희귀하고 강력한 물건은 언제나 상위계급의 것.

    그렇기에 값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자 고블린 변종, 고블린 상위종들은 자신의 클래스를 상징하는 물건에 레어메탈을 모두 녹이고 합쳐 제련하여 강화시켰다.

    아무리 탐욕스러운 고블린들이라도 타인의 클래스를 상징하는 물건을 탐하진 않았으니까.

    자신의 것이 더 귀하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무겁기만 하고 가치도 떨어지는 하위클래스의 무구를 사용하지는 않는 까닭이었다.

     

    고블린 제국이 몰락하여 광물을 캘 피지배종도 없다.

    쌓아놓은 부와 자산도 잿더미가 된 제국과 함께 대지 저 밑바닥에 잠들어 건져낼 길도 없다.

     

    고블린 용사의 기적은 단 한 번의 천운으로 일어났기에 기적일 뿐이다.

    행정학부 소속 제국파 출신의 모락스 교수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

    “…”

    “죽은 양반도 이러다가 죽었겠지?”

     

    그래, 이게 다 벌레 소탕을 게을리해서 그런 거다.

    모락스는 즉시 계약의 서를 펼쳤다.

     

    “모락스의 이름 아래에 바쳐진 자식들이여, 죽음의 풍요를 누릴 대가를 여기 바칠지어다.”

     

    모락스는 중간계에 일어난 대기근을 이용해 한때 나이 어린 자식들을 지닌 아낙네에게서 어린아이의 영육과 쌀 한 포대를 교환했다.

     

    “등가교환의 금기를 이룰 외법의 서로 쌓아올린 힘이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내게 바쳐진 영혼들이 내가 짊어질 고난을 대신하리라!”

     

    그에게 이름을 바쳐진 아이들은 모락스의 차원영지에 포획되었다.

    그들이 황폐한 소차원에서 벗어날 방법은 모락스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 하나뿐.

     

    영혼이 쥐여 짜여지는 고통 속에서 그의 경지상승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자아,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나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라. 나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을 바치는 하수인이 되는 거다!”

     

    계약서로부터 자그마한 그림자들이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기어 나왔다.

    과거 아이들의 부모는 제 아이의 소유권을 포기했고, 아이들은 교수와 하나의 계약을 맺었다.

     

    “너희에게 부모를 대신하여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을 선물하마. 이 아저씨를 따라오지 않겠니?”

     

    아이들은 기쁘게, 수줍게, 혹은 조심스럽게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결과가 교수에게 사역 당하며 현계에서 죽어서도 그 영혼이 소차원으로 되돌아오는 아이들.

    영혼이 종속된 <모락스의 아이들>이다.

    그 영육을 빚어내어 몬스터의 형상을 띄고 제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행정학부 <차원계약개론> 강의 교수 모락스.

    그의 부름을 받아 소환된 아이들은 동패급 몬스터 광물추적자 코볼트의 육신을 부여받았다.

     

    “우우…”

    “우우우…”

     

    코볼트들이 고블린들의 토굴을 질주했다.

     

    ‘보인다. 이 지하의 마력분포도가. 유난히 강한 마력을 지닌 물질들의 위치가. 레어메탈이 틀림없겠군.’

     

    수많은 육신을 뒤집어쓰고 모락스를 실망시키면 가혹한 벌을 받으며 단련된 아이들의 감지능력이 모락스의 인지감각에 다양한 정보를 채워넣었다.

     

    ‘고블린 부락도 있군. 다른 교수들은 지하자원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방치하고 있지만 이참에 지하도 깨끗하게 정리해 둬야겠어.’

     

    레어메탈을 채집하고 돌아가는 고블린의 뒤를 밟으니 금방 쥐새끼처럼 숨어든 고블린들을 발견했다.

     

    “미친인간이다고브!!”

    “내, 내가미친인간을데려온거야고브?!”

    “노약자와아이는대피해라고브!!”

     

    코볼트의 육신은 추적으로 제 쓸모를 다했다.

    모락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했다.

     

    “소환코스트의 낭비는 죄악이다. 자폭해라. 그리하면 1개월은 괴롭지 않은 정적 속의 평화를 누리도록 해주마.”

     

    모락스의 아이들은 모든 걸 체념한 얼굴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지하에서 일어나는 마나폭발에 저 위의 교수들이 보내는 매시지 마법이 폭주했다.

     

    -허튼짓은 하지 마라.

    -그건 우리도 나눠 가질 자격이 있는 자원이다.

    -합의되지 않은 자원수탈 행동의 대가를 각오해야 할 거다.

     

    참 헷갈리는 말들이다.

    레어메탈을 자원이라고 부른 건지, 고블린을 자원이라고 부른 건지.

    어느 쪽이건 자원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멍청한 녀석들. 용사가 마갑을 제조할 가능성이 문제라면 그 가능성을 닫을 생각을 해야지, 이 지경이 되고도 자원 욕심이나 부리다니.’

     

    응원은 해주지 못할망정 괘씸한 소리나 하는 교수들의 연락은 의도적으로 차단했다.

     

    “오너라, 대지포식자의 그릇이여. 깃들어라, 고통 없는 1년의 해방을 꿈꾸는 아이들이여.”

     

    모락스의 고통의 감정으로부터 마나를 쥐어짜내기 위한 고문에서 자유로워지는 1년의 해방.

    유혹에 넘어간 아이들의 영혼이 거대한 고위계 몬스터 대지포식자의 그릇에 깃들었다.

     

    ‘멍청한 녀석들. 이리도 배움이 짧으니 이용만 당하지.’

     

    모락스는 아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격이 높은 그릇은 그 그릇에 깃든 것만으로도 영혼을 가혹하게 혹사시킨다.

    대지포식자 수준의 그릇이면 여기에 깃든 영혼들은 일년간 자아의 형체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다고 봐야 한다.

    1년의 휴식?

    영혼의 재생에 걸리는 시간이 1년일 뿐이다.

    당연히 그 고통은 통상의 고문보다 훨씬 심각하다.

     

    ‘무지를 죄로 여겨라.’

     

    대지를 집어삼키고 굴을 무너뜨리며 고블린들의 지저부락을 파괴하는 대지포식자.

    그 잔혹한 행보에 참다못해 덤벼든 고블린 상위종과 변종들도 한 입 거리처럼 찢겨나가는 광경이 수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나타나면 해치우고 나타나지 않으면 네가 지저에서 살아갈 보급거점을 모조리 파괴한다. 고블린 용사. 이로써 네 죽음은 확정되었다!’

     

    완벽한 가불기라며 자신하던 그때, 한 구의 낡은 갑옷을 입은 고블린이 대지포식자의 앞을 막아섰다.

    묘한 당당함이 느껴지는 자세.

    심상치 않은 기백.

    모락스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저것이 고블린 용사일 가능성을 숙고하고 알아차릴 기회가.

    그가 존재할 리 없다고 여겼던 가능성이 실현되었음을 알아차릴 기회가.

    상위종들이 몰아준 클래스 장비를 녹이고 추출해낸 레어메탈로 마갑을 만든 결과물이 눈앞의 갑옷일 가능성을 조금은 고려할 수도 있었다.

    모락스는 그러지 않았다.

     

    ‘새로 만든 마갑이라면 저토록 낡을 리가 없지.’

     

    나름 괜찮은 눈썰미와 훌륭한 추측이었다.

    고블린 용사가 밤의 스승에게 <골동품> 옵션을 부여하여 사물의 외면을 낡고 오래되게 보이도록 변장하였다는 안타까운 일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대지포식자는 마갑의 압도적인 출력에 돌파를 허용했고, 모락스는 순식간에 제 앞으로 파고든 고블린 용사의 일검을 허용하고 말았다.

     

    “말, 도, 안돼… 방심 따윈, 조금, 도…”

    “쓰레기는 치울 거야 고브.”

     

    용사의 검이 두 번째 교수의 목을 베었다.

    이제 용사는 늘어난 경험치와 기능을 통해서 소차원에 자신의 권속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경험을 얻는다고 한들, 교수가 지닌 수준의 강력한 권능을 발현하지는 못한다.

    허나 계약대상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희망한다면.

    어떻게든 그녀의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면.

    능히 한계 이상의 인원이나 한도 이상의 강자의 영혼도 거둘 수 있었다.

     

    -우리도돕는다고브!

    -악마놈들을해치우기전엔곱게성불못한다고브!

     

    심지어 모락스처럼 영혼들이 도주할 것을 우려하여 격리차원에 보관하지 않아도 항상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을 두를 수 있으니.

    고블린 용사는 소환수의 물량제한, 경지제한, 코스트제한에서 모두 해방되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그릇’ 생성에 필요한 창의력도 먼저 죽은 고블린들이 적극 빌려주었다.

     

    -피지배종에는거대종몬스터도있다고브!

    -영혼비공정도만들수있다고브!

     

    육군과 해군, 공군.

    육해공을 막론하고 소환되는 거대영혼그릇들이 고블린월드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죽여도 소멸하지 않는, 영혼의 파편까지 일소하기 전에는 거듭 되살아나는 불사의 고블린 영혼 군대가 고블린 용사와 함께 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교수들이 드래곤 교장에게 구조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였으며, 교장의 거절로 자신들의 힘만으로 상대해야 할 위기이기도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악마 뺨치는 교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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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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