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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9

        

         

       불청객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중국 렌터카 회사에서 빌린 전기차를 타고 조금 외져 보이는 도로를 드라이브하기를 몇십 분.

       쭉 이어진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와중, 운전해주고 있는 매니저의 눈에 저 사람이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

       근처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일까? 아니면 농사를 짓던 농부일까?

       먼지가 잔뜩 끼고 헤져서 손때가 가득 타 있는 옷을 입고 있는 그 남자는 멍하니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전기차가 조용해서 오는 소리를 못 들은 건가? 아니면 귀가 안 좋은 사람인가?’

         

       매니저는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한국에서도 종종 보는 광경이지 않은가.

       멀리 빙 돌아서 가기 귀찮다면서 도로 한복판을 거슬러 가는 사람부터, 술을 퍼마시고 도로 한복판에 떠억 누워서는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무슨 광전사라도 되는 것처럼 도로 위에 쌩쌩 내달리는 차를 몸으로 가로막고 시비를 거는 사람까지.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은 법.

       매니저는 지금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남자 역시 그와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들이 진입한 도로가 그리 차량의 통행량이 많지 않은- 다르게 말하면 조금은 으슥한 분위기의 도로였는지라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건널목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다 통행량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저 남자의 차림을 보아하니 시골 사람 비슷한 느낌인데, 그래서 그냥 건널목 없이도 도로를 무슨 대로라도 되는 것처럼 이용하는 것이겠지.

         

       매니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앙- 경적을 눌러 경고를 한 뒤 지나치려 했다.

         

       “뭐, 뭣…!”

         

       끼이이익-!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옆으로 비켜 가려는 그들의 차를 몸으로 가로막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당신 미쳤어-?!”

         

       그 황당하기까지 한 자해공갈에 매니저는 창문을 열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이 땅이 중국이라는 것조차 잊은 채, 저 남자가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다는 사실을 순간 까먹을 정도로 격노해서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체 왜 차를 막아요? 가세요!”

         

       매니저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에게 중국어로 말했다.

         

       “….”

         

       하지만 남자는 요지부동.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차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 뭐지. 내가 잘못 말했나? 아닌데…. 내가 중국어가 몇 급인데….”

         

       남자의 태도 때문일까?

       매니저는 순간 자신이 중국어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마저도 현지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중국어 실력이 갑작스럽게 잘못될 리가 없지 않은가.

         

       매니저는 눈앞의 남자가 일부러 차를 가로막고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면서 차창을 닫고 공안을 부르려고 하는 그 순간.

         

       “이보게. 거기 안에 있는 처자…낭자? 점이나 한 번 보고 가시게.”

         

       목소리가.

       목소리가 들렸다.

         

       쭈글쭈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에 맞지 않는 목소리.

       좋게 봐줘야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목소리로, 발음이 뭉개지고 서툰 중국어로 그렇게.

         

       그러고는 얼굴이 가렵기라도 한 듯 손을 올려서 주름살 가득한 이마를 벅벅 긁는다.

       때가 꼬질꼬질 끼어있는 손톱을 세워서 이마를 긁는 그 손길이 어찌나 거친지.

       그런데도 피부를 찢어버릴 듯한 억센 손길에도 소리조차도 나지 않는다.

       긁는 소리조차도.

         

       그러고는 다시 말하는 것이다.

         

       “점, 보겠는가?”

         

       머리에 쓰고 있는 촌스러운 모자 때문인가.

       푹 눌러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로의 각도가 그래서 그런 것인지 눈이 보이질 않는다.

       눈에 음영이 드리운 듯하고, 푹 파인 눈동자는 얼핏 윤곽만 보일 뿐 그 진의를 꿰뚫어 보기가 힘들다.

       마음의 창이 눈이라도 친다면 저 사람의 마음은 어둠이 가득 끼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나 안을 숨길 리가 있겠는가….

         

       “…이거.”

         

       매니저는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평범한 농민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든다.

         

       너무나도 뒤늦게 찾아온 확신.

       두피에까지 소름이 오돌토돌 돋는 느낌이. 이 느낌이.

       너무, 너무 늦게 찾아왔다.

         

       창문을 닫아야 한다.

       밖과 차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되어버린 창문을 닫아야 한다.

         

       매니저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창문을 닫았다.

         

       터업.

         

       하지만 예상하였다는 듯 남자의 손이 턱 하니 창에 끼어버린다.

         

       덜컹.

       덜컹.

         

       중국산이라서 그런 것일까?

       사람의 손이 끼었음에도 차창은 계속해서 올라가려 한다.

       사이에 끼인 손목을 잘라버려야 성이 차겠다는 듯 덜컹거리면서도 위에다가 계속 힘을 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자는 제 손목이 잘릴 위기가 두렵지 않은지, 아니면 제 손목이 잘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것인지 물끄러미 차 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차 안.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차이네를.

         

       그러고는 입을 제대로 크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달싹거리는 움직임으로 다시 한번 묻는 것이다.

         

       “점을 보시겠는가?”

         

       차이네는 가까이 왔음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눈동자를 흘끗 보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복채는 얼마인가요?”

         

       복채를 묻는 말.

         

       “….”

         

       잠시간의 침묵.

         

       그러고는 후, 하는 김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들썩거린다.

       아니, 들썩거린다기보다는 약간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하지, 복채….”

         

       남자는 창에 끼이지 않은 손으로 목을 긁는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있는 손.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가락이 목을 힘껏 긁으며 지나가고, 이번에는 핏물인지 뭔지 모를 것이 손톱 끝에 주욱 묻는다.

         

       으스스한 도로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자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저 남자의 목에서 흐른 것은 핏물이 아니라 무언가 더 시꺼멓고 끈적거리는 무언가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산뜻하고 가벼워 보이기까지 하니, 저것이 진실로 핏물인지 아니면 구정물이라도 되는지 구별이 되지를 않는다.

         

       뽀득.

         

       손가락이 차창에 마찰하는 소리.

       핏물이 주욱 오선지처럼 차창에 그려지는 광경.

       그러한 광경 속에서 매니저와 차이네는 깨닫는다.

         

       ‘…손이.’

         

       ‘같은 손이잖아…?’

         

       각기 달라야 하는 두 손.

       하지만 저 손은 같다.

       왼손이 두 개.

         

       거울처럼 반대 형태로 되어있어야 할 손이, 마치 복사를 한 다음 붙여넣기를 한 듯이 똑같다.

         

       왼손 두 개.

       그중 하나는 차창에 끼어서, 하나는 차창에 붙어서.

       그렇게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복채 얘기를 오랜만에 들었어…. 이거 즐겁구만….”

         

       남자는 웃었다.

       입을 벌리지 않고, 이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주름살 때문일까?

       남자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노인이 울상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낭자…처자. 중국어는 잘 모르겠어…익숙해지지가 않는군…그냥 편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

         

       축축 처지는 목소리.

       입을 달싹거리고 있음에도 귀에 또렷하게 들리는 성량.

       말을 할 때 가슴이 들썩거리기나 하는지.

       남자는 사람인지 의심되는 기괴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말한다.

         

       “마즈무아젤…차에 타고 있는 마즈무아젤은 무엇을 가지고 있나…?”

         

       마즈무아젤.

       미혼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드무아젤(Mademoiselle)의 사투리로 추정되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서.

         

       “….”

         

       기이하다.

       척 보기에도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온갖 고생을 하고 늙어간 중국 남성처럼 보이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프랑스어라니.

       다른 나라에 가서도 중국어를 사용할 정도로 자존심 강한 중국인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국적과도 연관이 없는 프랑스 단어라니….

         

       기묘한 일이었다.

         

       차이네는 자신을 마즈무아젤이라 부르는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핸드백을 열었다.

       그리곤 뒤적거리기를 한참.

         

       “…여기. 오디션 프로그램 끝난 다음에 기념으로 샀던 스마트워치…. 이거면 복채가 충분한가요?”

         

       “오, 스마트워치. 거기에 서사가 담겨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충분하고도 남아….”

         

       남자의 손이 움직인다.

       차창에 끼어있던 손 하나가 쭈욱 뻗어서 덥석 뒷자리에서 내민 스마트워치를 낚아챈다.

         

       그리곤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때가 잔뜩 탄 칼라에 슥슥 문지르고는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모자를 푸욱 뒤집어쓰고는 차창에 얼굴을 한껏 가져다 댄다.

         

       꾸욱.

       아까 오선지처럼 그려진 핏물이 얼굴과 함께 뭉개지며 번지고, 마치 심리 테스트에 쓰이는 얼룩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창에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얼굴에도 그 피인지 뭔지 모를 액체가 한껏 묻고 있음에도 남자는 불쾌하지도 않은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차이네를 관찰하고는….

         

       “맹수에게 사랑받는 얼굴이야….”

         

       관상을 얘기하는 점쟁이처럼 그렇게 점괘를 말한다.

         

       “사람의 운명은 그 환경과 위치에 따라 다른 법….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마즈무아젤의 운명은 나쁘지만은 않아…. 사냥꾼 같은 것을 했으면 진작에 잡아먹혔을테고…기업 같은 것을 운영했다면 맹수들의 표적이 되어 뜯어먹혔겠지….”

         

       “….”

         

       “마즈무아젤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맹수에게, 맹수 같은 사람에게…. 마즈무아젤이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운명을 훌륭하게 승화시켜주는 것…탁월한 선택이야….”

         

       “….”

         

       “그래…. 거기다가 다르마가 나쁘지 않아…하지만, 그래…특별하거나 흥미롭지는 않군….”

         

       남자는 입매를 끌어올리고, 주름진 얼굴에 더더욱 주름이 가득하게 만든다.

         

       “됐네, 마즈무아젤…더 점을 볼 건 없을 것 같아…이젠 가도 좋아….”

         

       그러고는 축객령을 내리며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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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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