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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9

       759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29)

         

       – 차진철

         

       생각건대, 저주의 방을 진행하는 것과 비교하긴 어려우나 관측소 역시 마음 편한 장소는 아니다.

       상상도 못 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가인이가 모두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할 것 같습니다.”

         

       아직 호텔에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한다는 알림은 보내지 않았어.

       따라서 이 판단은 302호 내부를 관측하며 가인이가 내린 결론이겠지.

         

       혹은,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소환체 가인이가 상태창을 통해 알렸을지도 몰라.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간단히 설명하죠. 아시다시피, 멋진 신세계란 일종의 마법 의식이자 관리국이 이용한 혼돈 재해의 일종입니다.”

         

       멋진 신세계, 영화관이라는 구조는 일종의 형식 혹은 포장이다.

       실체는 순수한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쉘터에 가깝다.

         

       “영화관에는 사악한 혼돈체들이 관객 역할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멋진 신세계는 인류 보호구역인 동시에 악마 봉인시설인 셈입니다.”

         

       여기까진 나와 엘레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여명의 아들이 영화관을 파괴하지 않은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악마들이 풀려나는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겼을 뿐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

         

       어처구니없지만, 여명의 아들이라는 괴악한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

       사랑의 방식이 우리가 상상도 못 할 형태일 뿐이다.

         

       그는 악마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필멸자의 혼이 뒤틀리고, 천지창조가 늦춰지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영화관을 내버려 두었다.

         

       “다시 말해, 여명의 아들이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판단을 바꾸면 얼마든지 영화관을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이번 회차에선 여명의 아들이 멋진 신세계에 개입한 것 같습니다….”

       “네?”

       “억지로 소연을 천사로 각성시켰습니다. 소연은 첫 회차의 기억까지 일시적으로 회복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수월하게 이해했다.

       첫 번째 시도 당시 알아낸 바에 따르면, 멋진 신세계가 붕괴하면 여명의 아들이 강림한다.

         

       이유는 당시엔 몰랐으나 이제는 안다.

       멋진 신세계에 ‘황혼의 깃털’이라는 정체불명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죄수가 그 여자애에게 황혼의 깃털을 받아낼 생각이었던 건가?”

       “그렇죠.”

         

       가인의 설명에 따르면, 죄수의 계획은 간단했다.

         

       기점을 잡아서 소연을 억지로 각성시킨다.

       그러면 낙원 최후의 수호자였던 1회차 시절의 인격 역시 돌아올 테니, 소연은 다시 여명의 아들을 섬기게 된다.

         

       천사가 된 소연에게 황혼의 깃털을 얻어내면 죄수의 승리.

         

       “영화관에 힘으로 개입하며 생기는 문제는…”

       “계획대로 됐다면, 여명의 아들이 직접 강림해서 해결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강제 개입의 여파로 영화관이 파괴되어도 괜찮다.

       직접 강림한 여명의 아들이 손수 악마들을 몰아내면 그만이니까.

         

       첫 번째 회차와 두 번째 회차, 죄수의 전략이 바뀐 셈이다.

         

       판단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단순하게 이번 회차에서 쓴 방식은 첫 회차 때는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소연에게 1회차 기억을 주입하는 식의 전술은 1회차에선 불가능하니까.

         

       “흥미로운 건, 이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이죠.”

       “뭐?”

       “네?”

         

       여기부터는 예상 못 한 이야기였다.

         

       “302호 내부의 내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큭!”

         

       이 지점에서 가인이 살짝 헛웃음을 터트렸다.

         

       “소연이가 승엽이를 너무 사랑한 것 같답니다.”

       “뭐?”

         

       당황하는 나와 달리, 엘레나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여자들의 감이 더 빠른 게 아닐까?

         

       “그렇네요? 깃털을 아버지에게 주면 애인이 죽고, 애인에게 주면 아버지가 실패하는 상황이잖아요.”

       “그,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거야?”

       “깃털을 파괴했다는군요.”

       “…”

       “이게 어리석은 자는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패배하는 판을 짠다는 말의 뜻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아마도 사랑에 빠진 소녀겠지요.”

       “호텔도 참, 사랑을 어리석다고 표현하다니!”

       “원래 그런 곳이죠. 승엽이도 참 대단하네요. 천사 유혹 전문가라도 되는 건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여명의 아들은 이런 전개를 정말 예측하지 못했을까?

       소연은 1회차 때도 승엽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낙원의 붕괴를 방조했는데?

         

       …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구나.

       성공하면 즉각 죄수의 승리고,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해결 가능성’은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회차 수를 한 차례 낭비하게 하기만 해도 죄수에게 이익.

         

       손해가 없는 수다.

         

         

       *

       – 미로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가인이랑 같이 영화관에 왔어.

       스크린을 보니 승엽이랑 소연이가 나오고 있었지.

         

       여기까진 이해했는데, 소연이는 왜 갑자기 천사?

       깃털은 또 뭐야? 왜 갑자기 사라져?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줘!

         

       …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네.

       생각해 보면, 어차피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가인이만 이해하면 되는 문제 – 으앗! 가인이 표정도 이상하잖아!

         

       왜 너도 혼란스럽다는 표정 짓는 거야?

       난 아무것도 몰라도 되지만, 너는 모르면 안 된단 말이야!

         

       그 순간, 화재 현장에서 스크린으로 변한 창문을 바라보던 승엽이가 표정을 굳혔다.

         

       — 출렁!

         

       “으앗! 여, 여기가 바깥 -”

         

       곧, 승엽이가 스크린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게 일종의 기점이었던 것 같다.

       가인이의 눈에 다시금 빛이 깃들었다.

         

       “- 가인 형!”

       “눈 감아!”

         

       불변이 있는 나와 격이 다른 가인이와 달리 승엽이에겐 별다른 정신 저항력이 없다.

       영화관의 관객을 보면 위험할지도 몰라.

         

       그때, 가인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가라고?”

       “예?”

         

       승엽이의 말이 끝날 틈도 없이 벼락같이 움직이는 가인이.

       그는 한 손으로 승엽이 목을 잡아채고, 다른 손으로 날 허리에 끼었다.

         

       뭐야? 올빼미가 당장 나가라고 경고라도 했어?

         

       위기 알림의 이유는 곧 밝혀졌다.

         

       — 쩌어억!

         

       “으악! 스, 스크린이 -”

         

       위대한 자가 억지로 개입했기 때문일까?

         

       영화관의 스크린이 터졌다.

       이는 곧, ‘영화의 끝’을 말한다.

         

       … 관객들이 영화관의 주박에서 풀려났음을 뜻한다.

         

       —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영화관 밖으로 나가려는 시점.

         

       — 스아아…!

         

       역겨운 악취와 함께 불가해한 존재가 입구를 가로막았다.

         

       검고 붉게 물든 인간형의 머리.

       꿈틀거리는 부정형의 몸.

       유황불처럼 새어 나오는 숨결.

         

       영화관의 관객 중 하나!

         

       곧,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도망가십니까? 당신은 그쪽보다 우리 쪽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말입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신성한 태양, 그 위광을 뒤로 한 채 가인이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비켜라. 마귀야, 일찍이 내 앞을 막아서고 살아남은 자가 없다.”

         

       듣자마자 가인이의 말이 블러핑임을 알았다.

       지금의 가인이는 본체가 아니라 소환체이기 때문이다.

         

       가인이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

       싸우면 누가 이기냐를 떠나서 싸울 시간 자체가 없어.

         

       다행히도 상대는 그 사실을 몰랐다.

         

       혹은,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악마가 너스레를 떨며 장난치듯 허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하하!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쪽이야말로 악업의 금메달리스트, 지옥의 상석에 앉을 분이시거늘!”

       “…”

       “막아설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유명한 분 얼굴이나 한번 뵙고 싶었을 뿐이죠.”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켜선 악마.

       가인이는 침착하게 악마를 경계하며 극장을 빠져나갔다.

         

       바깥 공기가 느껴질 무렵, 이상한 이야기가 귓가를 어른거렸다.

         

         

       *

       당신이 모시는 분은 우리를 순리에서 벗어난 존재요 해탈을 막는 마귀들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순리와 역천의 기준은 누가 정했습니까?

         

       시작과 끝이 있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본디 이렇게 만들어졌지요.

         

       아십니까?

       당신이 모시는 분은 모든 중생의 해탈을 바라지요.

         

       해탈이란 곧 윤회의 끝입니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우주의 순환을 멈추려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단 하나의 우주가 영겁 무한 유지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어찌 역천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보기엔 우리야말로 순리이며, 당신이 모시는 분이야말로 역천입니다.

         

       조만간 또 만날 겁니다.

       오늘의 이야기, 그때 진지하게 다시 해 봅시다.

       *

         

         

       “헤엑, 헤엑…”

         

       바깥에 도착할 무렵, 나는 탈출의 여파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비행시간 자체는 끽해야 2~3분 내외였지만, 굉장히 거친 비행이었기 때문이다.

         

       승엽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형! 영화 속에 누나 둘 있어요. 아리 누나랑 송이 누나가 -”

         

       아리랑 송이도 구해야 한다고 말하려던 승엽이는 곧 입을 꾹 다물었다.

       가인이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정한 태도였지만, 어쩌면 이런 모습이 모두가 그를 믿게 만들지도 모르지.

         

       — 우르릉!

         

       온 세상을 뒤흔드는 악몽 같은 소리.

       어두컴컴한 하늘을 먹물처럼 물들여 가는 흉측한 먹구름.

         

       불길함을 느끼며 질문했다.

       

       “무슨…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나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

         

       가인이의 설명은 간단했다.

         

       “여명의 아들이 강제로 멋진 신세계에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영화관이 파괴됐어.”

       “그, 그건 이해했어. 악마들이 풀려나는 거야?”

       “죄수의 뜻대로 풀렸다면, 여명의 아들 본인이 해결했을 문제지. 하지만…”

       “하지만?”

       “그의 뜻대로 안 됐네. 아니면, 여기까지도 그의 계획 일부인가?”

       “…”

         

       여명의 아들은 강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며 악마들이 영화관의 주박에서 풀려나기 시작했다.

         

       — 고오오오…!

         

       다시금 들려오는 아득한 소음.

       세상 전체를 뒤덮을 것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는 먹구름.

         

       빠르게 튀어나오는 이야기.

         

       “승엽아, 조금 전 시나리오 이해가 또 갱신됐어.”

       “뭐라고 나왔 -”

       “소연이의 가장 큰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 그래서, 네 이야기도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가장 큰 비밀?”

       “뭔지 알겠어?”

       “…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

         

       담담한 태도.

         

       그나저나, 그 여자애는 아직도 ‘가장 큰 비밀’이 남았다고?

       사람이 아니라 무슨 양파 아니야?

         

       “미로, 얼마나 남았어?”

       “1분 좀 안 되게.”

         

       파멸 직전인데도 펜을 쥐고 상태창에 정신없이 끄적이는 게 참 가인이 답다고 생각했다.

       아까 전, 송이와 아리를 매정하게 포기하고 살아있는 나와 승엽이라도 챙겨서 도망친 것과 똑같구나.

         

       지금은 우리도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바깥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

         

       매정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조차 멋있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 순간, 가인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한 손으로 나와 승엽이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 꼭 매정한 건 아니었구나.

         

       — 철컥!

         

       환영처럼 사라진 가인이.

       남은 것은 혼란스러운 표정의 나와 승엽이.

         

       “아… 우리 이제 죽는 거구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뭐? 죽어? 왜?”

       “하… 이 바보! 감동 깨트리지 말고 조용히나 있어!”

       “…”

       “가인이 말 이해 못했어? 곧 극장의 악마들이 나와서 세상을 지옥으로 – 으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엽이가 내 머리를 가볍게 쳤다.

         

       “야!”

       “야는 무슨! 내가 할 말이지. 헛소리하지 말고 어디 숨을지나 생각해.”

         

       얘 진짜 바보 아니야?

       본인보다 훨씬 똑똑한 가인이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우리도 죽었다고 판단했는데, 니가 뭐라고 –

         

       – 운 하나만 믿는 애였지.

         

       “어, 어디로 숨는 게 좋을까?”

       “일단 뛰자!”

         

       *

       – 김상현

         

       텍사스 외곽에 도착할 무렵, 호텔에서 보낸 알림이 떴다.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

       “…”

       “…”

         

       무슨 상황이지?

       이제 막 일을 진행하려는 중인데?

         

       “… 뭐냐 대체?”

       “우, 우리 쪽 문제가 아니라면 승엽이 쪽이 -”

         

       그렇지.

       해결을 위해선 내 파티와 승엽 군 파티 양쪽 모두가 성공해야 한다.

       한쪽이 실패 확정이면, 다른 쪽의 진행과 무관하게 해결은 불가하다는 것.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했다.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 호텔 개새끼들아! 이거 뭐냐고! 우린 이제 시작했다고 미친놈들아!”

         

       묵성 요원의 거친 욕설에 십분 공감했다.

         

       호텔은 언제나 그렇듯 개새끼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양반탈 님, 우흐흥 님, 골목로망 님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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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ing the Mystery Hotel

Escaping the Mystery Hotel

EMH 괴담 호텔 탈출기
Score 4.5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When Han Kain woke up, he and several other people were inside a mysterious hotel with different rules and different expectations.

Going into each hotel room threw them into other worlds and scenarios where they must brace death at times to escape or lift the curse of the individual rooms for a chance to bring everyone that died during the process back to life.

Using their blessings that were given at the time of entry, they have to weave their way through the rooms while sometimes sacrificing themselves for a higher likelihood of success.

* Very little horror; more of a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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