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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기술 특이점 오기 전, 대전쟁 이전 과거.

         그러니까… 대강 2010년, 2020년 언저리의 통념은. 아무리 사이버펑크로 변할 잠재력을 품고 있던 세계라 해도 원래 지구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가령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기에 모두가 진솔해질 수 있다! 라던가.

         네트워크는 미래 인류의 주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같은 이론도 있었을 테고.

         

         어쨌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온갖 인간 군상들의 집합소로서 훌륭하게 기능했었고, 그건 2196년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도 매한가지였다.

         

         언제나 표리일체. 겉과 속이 항상 같은 사람은 절대 없다.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평생 진실만을 말해온 사람도 약간의 겸양이나 다른 구실을 내세워 본심을 감추는 일 정도는 존재한다.

         

         그게 나쁘다고 뭐라 하려는 게 아니라… 아카이브(Archive; 인터넷 페이지나 글, 이미지 혹은 영상들을 따로 백업해두는 정보 보관소)에 남은 흑역사나 은밀한 개인 취향.

         극한의 컨셉충이자 빌런으로 활동했던, 영광스러운 기록을 들킨다고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당사자들이. 자신들을 손쉽게 특정할 수 있는 검열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버리는, 슬픈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말이다.

         

         

         일반 네트워크 사용자의 눈에는 그저 제목과 내용, 티격거리는 댓글과 닉네임들만 보이겠지만 우리처럼 고용된 네트워크 검열관의 시야에는 조금 더 자세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해당 글들이 작성되기 위해 거친 기지국 명칭이라든가, 사용된 접속 포트의 주소.

         몸에 박은 통신 임플란트를 사용하고, 심지어 그 시술을 받은 기록이 남아있어서 조회된다면 아예 작성자의 시민증 내용까지 자동으로 띄워졌다.

         

         예의상 사회보장번호는 가려 놨지만… 한탕주의에 미친놈이나 어디 외딴 마을에서의 재시작을 꿈꾸는 용병이 있다면 금융 범죄 수십 건 정도는 순식간에 발생하리라.

         

         그야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엔지니어 겸 해커니까, 원하면 얼마든지 개소리와 헛소리를 기관총처럼 난사하는 시간 재벌들의 신상을 뒷조사할 능력은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와중에도 이렇게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 아 ㅋㅋ 본인 일어나자마자 밥 먹으려고 배달 음식 찾다가, 할인품목 보고 크리스마스인 거 방금 눈치챔. ]

         : ㅁㅌㅊ?

         

         > 십새 존나 잘 사나 보네… 휴일 특근도 거르는 거 보니까….

         > 죽일까? 마스터???

         > 븅신. 분명 이브 새벽 근무 끝나고 휴일 수당도 못 받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글 싸는 거일 듯 ㅋㅋㅋ.

         

         우선 이 글을 쓴 친구는 접속 위치가 중층부 아파트 단지로 표시된다.

         자다가 일어났다는 말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집에 늘어져 있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이를 박박 가는 게 느껴지는 둘은… 옐로우 등급 시민증이 표시되는 게, 각박한 생활여건이 가시 돋친 반응을 이끌어 낸 걸로 보인다

         …상당히 구체적인 추론을 하는 마지막 녀석?

         이용하는 전파 기지국이 공장 구역에 있는 걸 보니 아마 본인이 밤새도록 일해서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닐까…?

         

         

         [ 넷붕이… 올해도 옆구리가 시렵다…. ]

         : 하지만 섹스로이드는 사기 싫다… 나는 따듯한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 올해도 눈물로 쓸쓸히 보낸다….

         

         > 어차피 임플란트 존나 박고, 항생제 존나 빨아서 너나 비슷하게 맛간 인간 vs 오직 너만을 위해 정성껏 준비된 순결한 성욕의 구원자.

         > ……어?????

         

         

         [ 그래도 연말에 기업지정 휴일인데. AI 관리자도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 ]

         : 절대 잘 보고 있던 짝짓기 영상이 반기업적 선전자료 감지로 삭제 당해서 화난 거 아님. 아무튼 아님.

         

         > 그… 우리 친구는 좆 된 걸 알아채는 위기 감지 능력이 아예 없나?

         > 응~ VPN 켰어~ 관리자는 암호화 데이터 검사 안 해~

         > 어, 씨발. 벌금 고지서가 왜 날아와? 미쳤어???

         

         

         [ 하… 얼마나 재수 없어야 씨발 무슨 성탄절에 해고를 당하냐?? ]

         : (복권 당첨 안내 통지서 이미지). 그야 출근을 안 했으니까 해고 당하짘ㅋㅋㅋㅋㅋ! 하~~ 10년 근속하고도 시멘트 냄새나는 구시가지 단칸방에서 탈출할 준비 덜 됬다고 찡찡대던 새끼 지금도 있냐?

         

         > 다음 주 연금 복권도 당첨 안 됬으면 너부터 찾아서 죽인다.

         > 됐! 씨발련들아! 됐!!!

         

         

         “풉….”

         

         하지만 격식을 차리긴커녕 엉망진창에 가까운 가상 세계의 맨 얼굴은, 이래서 넷 정키가 끝도 없이 양산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으면, 여기서도 그냥 원래 한국이나 별다를 바 없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있는 것 같아서 진한 향수와 더불어 나약한 마음도 샘솟는 게 느껴졌다.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나?”

         

         “……딱히!”

         

         어느새 돌아온 브로커 아재에게서 일회용 컵을 건네받았다.

         마시멜로 비슷한 맛이 나는 코코아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의지가 좀 돌아왔다.

         

         …좋아, 딴짓은 이쯤 해두자.

         

         내가 무슨 기업의 앞잡이도 아니고.

         파이브 아이즈 활동을 방해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그다지 없지만 명색이 의뢰인데, 그것도 적발하는 게시물마다 크레딧을 챙겨주는 미니게임 같은 돈벌이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웠다.

         

         지직…!!

         

         컵을 바닥에 내려놓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슬금슬금 신호의 세기를 올리자, 단말기 회로에서 전기 튀는 소음이 귀를 간지럽혔으나 곧 연결이 안정되면서 사라졌다.

         

         예전에 바보같이 도시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뒤져보려다 뇌 혈관이 끊어질 뻔했던 기억을 되살려 요번에는 주무를 범위를 명확히 설정한다.

         

         유포되는 불법선전물에 대항한 단발성 의뢰인만큼. 제대로 된 업무분장이나 가이드라인 따위는 없었지만 나에겐 파이브 아이즈와 관련된 퀘스트를 수행했던 경험이 있다.

         

         단순한 암시나 은근한 뉘앙스를 통해 지하 조직의 사상을 퍼트리고 규모를 확충하는 건 무리.

         감성과 낭만만으로 사람들은 체재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범한 글이나 영상에 본격적인 선동 자료로 이어지는 링크 등을 은근슬쩍 끼워 넣어. 스스로가 찾아냈다는 결과를 만들어 관심을 끌고 흥미를 자극한다면 어떨까?

         

         거기에 좋았던 부분만 예쁘게 포장된 역사와 현실의 모든 불합리함을 해결해줄 것 같은 새로운 사상까지 제시한다면?

         

         싹을 피울지 안 피울지는 개인의 자질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기업에게 있어서 달갑지 않은 씨앗이 광범위하게 뿌려지는 건 명백하리라.

         

         쿠구궁….

         

         육중한 굉음과 함께 심상이 움직인다.

         

         서재-통제 영역-의 벽을 저멀리까지 확장하자 새로운 책-데이터-가 잔뜩 꽂힌 책장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그들이 하는 일은 일종의 동아리 홍보. ……너무 비약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다면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와 게시판을 순서대로 쫙 나열해 거기서부터 차례차례 더듬어 나가면 그만이다.

         

         “우선…… 작성자 신원이 확실한 자료는 제외.”

         

         검열관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절반이 넘는 책들이 돌연 피어난 불길에 휩싸여 서재에서 퇴출당했다.

         

         내 뇌를 혹사해서 벌이는 작업이라는 감각은 있지만, 몇 번을 해도 마법 같은 일이라는 감상도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나이를 먹어 대마법사가 되어버렸다고 자랑하고 싶어도 누구한테도 못 보여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갑자기 화가 나네.”

         

         남은 책 무더기에서 순수하게 텍스트만 존재하는 글들을 불태우자 또 양이 반으로 줄었다.

         거기서 또 암호화된 코드나 이미지, 영상이 포함되지 않은 잡담들은 소각.

         

         여기까지 필터링을 마치자 다른 쪽 자료들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는데, 해커 커뮤니티 자료는 거의 그대로인 게 조금 웃겼다. 이 예비 범죄자 놈들.

         

         촤라락—!

         

         남은 책들이 펼쳐지고 그 내용이 분해된다.

         이제부터는 실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윗선에 보고부터 올리고 수상한 정보들이 포함된 데이터를 삭제. 또 삭제. 마구 삭제!

         

         확인도 안 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건 아니다.

         아카이브에조차 남지 않게 완전히 삭제되는 만큼, 이들이 던진 외부 링크를 타고 들어가 실체는 판명한 후에 작업을 진행했다.

         

         ‘미합중국, 그 뜨겁고도 찬란한 이름!’, ‘독재의 비극과 결말’, ‘꽃피운 악 메가 코프’ 등등 하나같이 명칭들이 어질어질했다.

         옛날이라고 기업이 존재하지 않던 것도 아닐진대 조금 웃겼다.

         

         ……그래도 ‘한강의 기적, 결국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시민’ 이라는 선전물은 재밌게 읽었다.

         

         기업이 했던 역할은 한없이 축소하다 못해 누락하고. 국가가 세운 틀과 원칙, 그리고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엄청 강조한 건 똑같았지만.

         여기서 우리 사회는 지금 200년 전 동아시아의 약소국만도 못하다! 같은 소리를 볼 줄은 몰랐다.

         

         …아, 맞다. 떠나기 전에 먹거리 골목에 있던 한식당도 잊지 말고 꼭 들려야지.

         

         그렇게 얼마나 더 철벽 같은 검열을 유지했을까?

         저쪽이 포기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미니게임의 스코어보드가 다섯 자리 수를 넘어갔을 때.

         

         촤라락….

         

         이상함을 느꼈는지, 난잡하게 흩뿌려지던.

         파이브 아이즈로 추정되는 세력의 무차별적 전단지 배포가 주춤한다.

         

         보안 분야의 혈투는 옛 수성과 공성과는 완전히 반대되게. 화이트 해커(방어자)와 블랙 해커(공격자)의 싸움 양상은 언제나 블랙 해커 측이 유리해야 정상이라고 믿어 왔겠지만….

         

         “내년에는 참견 안 할 테니까. 얌전히 물러나라고.”

         

         선생도 말하지 않았나?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사람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초인의 탄생을 불러왔다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나도 가상 세계의 초인 지망생으로서, 주요 캐릭터나 네임드 해커급 상대가 아닌 이상 쉽사리 져줄 마음이 없었다.

         

         지평선까지 늘어났던 서재의 책장엔 어느새 종이 한 장 남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지배권과 통제력을 공격당하던 관문 정보전에 비하면 처리하는 정보량은 많았어도 부담은 훨씬 덜했다.

         

         그럼 어디… 남은 시간 동안은 명령받은 대로 퍼레이드를 구경할까, 아니면 또 뻘글이나 탐독할까 고민하던 찰나.

         

         “응?”

         

         설정한 필터에 맞는 책 한 권이 갑작스레 눈앞에 소환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묘한 선전물로 향하는 링크 대신, 사설 채팅 채널로 연결되는 링크가 정교하게 암호화되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야 이 개떄끼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

    데블린의악마 님이 돌연 400코인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흐에엑. 치킨 사먹으라는 명령 꼭 지키겠습니다!

    덕분에(?) 오늘은 한 시간 정도밖에 지각을 안 했어요!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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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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