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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어느 조직이나 매해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 한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결점이 없을 수 없는 거니까.

       하여 사고가 발생하는 건 그다지 이상할 일이 아니고, 후속 조치를 얼마나 잘하는지가 조직이 가진 역량을 알려주는 기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수습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중요하지, 당장 일어난 사건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허나,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왕실에서 감사(監査)가 올 예정이라더군.”

       “재상님, 아니 학장님 눈치 본다고 평소에는 나오지도 않던 것들이 기회 좀 잡았다고 난리군.”

         

       왕실이 학술원을 들쑤시고 있다.

       지금도 병사들이 학부를 돌아다니며 모든 서류를 뒤지고 업무를 방해하고 있으니….

         

       교원들의 불만이 차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그들은 무작정 왕실을 욕하는 건 아니었다.

         

       이번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으니 협조할 의사도 있다.

       그러나….

         

       “듣자하니 왕실에서는 이미 테러가 발생할 조짐을 알고 있었다고 하던데?”

       “하, 이거 완전 마녀 사냥이잖아? 학장님이 뭘 잘못했다고-!”

       “누가 아니래.”

         

       왕실이나 학술원이나 대동소이한데, 왜 학술원에만 이토록 질타를 받는가?!

       -이러한 불만이 교원들 사이로 스며들며 분노를 야기했다.

         

       “거름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군.”

         

       이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는 탄식.

         

       실상, 왕실뿐만 아니라 모두가 테러의 조짐을 보고 받았다는 것은 제법 유명한 소문이었다.

       어느 기사 한 명이 열변을 토해냈으나, 단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

         

       어찌 보면 뒤늦은 반성이고, 모두가 죄인이 아닐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반대로 지금 누구 한 명이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없다.

       만약 여기서 책임을 뒤집어쓰면 무조건 누군가는 단두대로 가야 했고, 단두대로 한 사람이 가면 그 책임자의 식솔 전원이 형장의 이슬이 될 테니까.

         

       하니 왕실에서 오는 감사도, 학술원 내부에 도는 불온한 소문조차 지금은 그 무엇도 믿어선 안 되었다.

       이미 진흙탕 싸움은 시작된 거였고,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 터.

         

       “…그런데 대체 ‘최초 보고자’의 정체가 뭐야?”

       “모르지, 누구도 정보를 모르니까.”

       “소문에 의하면 어느 덩치 좋은 기사라고 하던데….”

       “덩치 좋은 기사면, 으음, 서, 설마…?”

       “괜한 억측은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그분에게 실례니까.”

       “그, 그러지.”

         

       최초의 보고자.

         

       테러가 일어나리란 선언을 가장 먼저 학장과 왕녀 등에게 말한 인물이 있었다는 소문.

       어느 순간 모두의 귀에 들어간 소문이며, 사람들이 최초의 보고자를 찾고 의심하는 건 당연한 심리였다.

       아무래도 정보의 출처를 의심하고 파고드는 것이 상식적이니까.

         

       …한데 이상하도록 보고를 올린 당사자에 대한 정보가 돌지 않았다.

         

       조사라도 하여 찾아낼 수 있음에도 말이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병사들조차 소문을 들었음에도 쉬쉬하고 있으니….

         

       여러 의미로 특이한 흐름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아, 미치겠네. 정보 제공자를 쫓으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왜 위에선 쫓지 말라는 거지?”

       “쓰읍, 이렇게 된 거 그냥 파고들어 봐? 공 좀 쌓을 수 있을지 누가 알아.”

       “어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다른 사람들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왕실을 비롯하여 학술원의 윗줄까지.

       그 누구도 정보의 출처를 쫓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범인이 아니란 명령이 내려왔고.

       절대 파헤치지도, 피해를 입힐 생각도 하지 말란 경고마저 엄중하게 떨어졌다.

         

       하여 조사원들은 시간 죽이기 업무만 할 뿐,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쉬운 수단을 포기해야 했다.

       괜한 벌집을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하며.

         

       그리고 지금, 최초의 보고자이자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리라 추정되며, 동시에 이번 사건을 통해 ‘학술원의 영웅’ 칭호를 획득한 어느 기사는….

         

       “─앞으로 새롭게 검술학부에 편입하게 될 소심이라고 한다. 모두 잘 대해주도록.”

         

       “소, 소심이가 아니라 데릭인데요….”

         

       “네 짬에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나?”

         

       “…여기 군대였습니까?”

         

       새로운 뉴 페이스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학기평가에서 검술학부 80명은 모두 높은 성적을 손에 거머쥐었다.

         

       바위 트롤과의 승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있지만.

       놀 수백 마리와 맞서 싸운 기개와 용기를 높게 친 것이고, 그들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아마 현 검술학부 1학년이 받은 성적은 역대 기수들 중 최고 학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몇몇 인원 중에는 이토록 높은 성적을 기반으로 장학금을 받게 되었는데, 말만 장학금이지 말 그대로 생활비 전액이 보장된 격.

       늘 돈에 허덕이는 곰돌이들에게 가뭄의 단비였고, 앞으로 돈 걱정하며 아카데미를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곰돌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귀족 영식과 영애들도 돈보다 값진 훈장이 수여될 예정이었고, 이는 가문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인 바.

         

       누구 할 것 없이 목숨 걸고 전투를 치른 대가가 따라왔으니, 감정이 복받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중 그 누구도 자기가 잘나서 살아남았다 여기는 오만한 것들은 없었다.

         

       “-일단 누구 하나 죽지 않고 모두 무사히 모인 것에 대해 본 교관은 고마움을 느낀다. 모두 잘해줬다.”

         

       오로지 그 덕분에 그들이 살아났음을 알아야 했음이다.

         

       이한.

       이번 테러에서 누구보다 먼저 나서 마물들을 격멸하며, 관객들과 생도 전원을 살렸다고 평가받는 기사.

       더 나아가 왕도를 구했다고 평가받는 영웅!

         

       생도들은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역시, 이름을 날릴 줄 알았지.’

       ‘대단한 분이야, 정말.’

       ‘…어제 보니 교관님 책상에 귀족 영애들이 갖다 놓았을 거로 추정되는 연서(戀書)가 산을 이루던데, …부럽다.’

         

       지난날, 알게 모르게 학술원에 퍼진 그에 대한 악명은 이미 모두 지워진 지 오래였으며, 이제는 공포와 꺼림칙한 시선 대신 선망과 호의 어린 시선이 가득 쏟아지는 중이었다.

       같이 활약한 그들로선, 저들보다 더욱 큰 관심과 명예 등을 얻은 그에게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들마저 스승을 보고 있자면 괜히 가슴이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게.

         

       ‘혼자서 그런 괴물을 막아냈는데, 존경 안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그가 해낸 업적은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신화에 나올 법한 고대의 마물.

       거인과도 맞먹는 육중함을 자랑하던 트롤을 상대로 분전한 것을 학술원의 모두가 보았다.

       만약 그 괴물을 끝까지 막지 못했더라면 학술원만이 아니라, 왕도 전체가 위험해졌을 터.

         

       그러니 그는 영웅이다.

       홀로 무수한 인명을 구해냈으며, 지원군이 올 때까지 끝까지 마물을 막아낸 숭고한 정신을 보인 이였으니까.

         

       …다만.

         

       “교, 교관님, 바깥에서 교관님을 만나고 싶다는 귀족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수업 시간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해.”

       “…백작급인데요?”

       “그럼 내가 직접 갈까?”

       “…직접 가시면 상대의 목을 분지르시겠지요? 그냥 제가 가서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교관 본인은 저가 한 일에 대해 어떠한 감흥도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도리어 귀찮은 관심이 쏟아지는 것에 불쾌감이 많아 보일 뿐.

         

       ‘조교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성질이 단단히 났어.’

         

       만약 데미안이 찾아오는 귀족 혹은 상인들을 능숙하게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진즉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할 일 없는 인간들 같으니.”

       “…그래도 마냥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찾아온 건 아닐 겁니다. 찾아오는 이들 중엔 교관님 덕분에 목숨을 구원 받은 이들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혹 본인이 아니더라도 혈연이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그의 기분도 풀어주고자 타당한 이유를 대신 읊어주는 생도들이었으나, 이한은 콧방귀를 꼈다.

         

       “고마움을 아는 녀석들이 수업 시간에 무작정 찾아오거나 내 집에 무단침입 하는 거냐? 요즘에는 고마움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나 보지? 참 웃기는군.”

         

       “…….”

         

       “아님, 내가 시대에 뒤처진 건가?”

         

       “크흠.”

         

       이 대목에선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무개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참고로 물어보는 겁니다만, 무단침입 한 이들을 어찌 했습니까?”

       “어찌 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처리’했냐고 물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

         

       …그만 물어보도록 하자.

         

         

         

         

       “-잠시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테러가 있은 후, 나흘 만의 수업이다 보니 궁금증이 많은 그들이었고, 참으로 많은 질문들이 날아왔다.

       하여튼 어려서 그런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한데 그러던 중 시종일관 조용하던 놈이 물음을 던졌다.

         

       “새롭게 편입했다는 생도, 그 생도가 혹시 전날 하늘에서 특이한 암기를 흩뿌렸던 자입니까?”

       “…흠.”

         

       왜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나 싶었거늘, 드디어 새로운 편입생에게 관심을 주는 녀석이 나타났다.

       뭐, 좀 귀찮은 녀석이긴 했지만.

         

       북부의 회귀자 녀석이 스킬 쓰는 (상)태창이에게 강렬한 시선을 줬다.

       여전히 하늘을 수놓았던 만천화우를 기억한다며.

         

       “저, 저기, 저는….”

         

       강렬한 눈빛에 압도당하는 경험과 함께 그가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타인과 어울리는 게 가장 어렵다고 답하는 녀석인데, 그중 가장 부담스러운 놈에게 관심을 받으니 말조차 제대로 안 나오는 모습.

         

       이한은 슬슬 울상을 짓는 편입생을 도와주기로 했다.

       모처럼 스카우트 했는데, 첫날부터 이미지를 조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이한은 ‘다정’하게 경고했다.

         

       “검둥아. 다른 거 다 좋은데, 그 부담스러운 눈깔을 좀 치우렴. 그 검은 동공에서 먹물을 뽑는 수가 있단다.”

       “…….”

       “기껏 데리고 온 내 조교 후보가 도망치면 방금 한 말은 농담이 아니게 될 거란다, 하하.”

       “…죽인다는 말을 뭘 그리 상냥하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인다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제 귀에는 그리 들렸습니다.”

         

       그제야 검둥이, 아니 로엔은 시선을 거두었다.

       감히 귀왕과 대등하게 싸운 기사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정해줄 게 있다면 전 그저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을 뿐입니다. 공중에서 쏟아진 암기 덕분에 희생자가 전무했으니 말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졌던 꽃잎을 닮은 바늘.

       그 바늘이 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졌을 때 대량의 마물이 몰살당했고, 다치거나 체력이 다한 이들은 도리어 힘을 회복하는 경이적인 현상이 발생했으니.

         

       “그날 전 교관님을 대신해 지휘권을 가진 책임자였습니다. 책임자로서 감사를 전할 의무가 있으니, 답변을 바라였을 뿐입니다. …하니, 미리 말하겠다. 당신이 만약 그 암기를 흩뿌린 자라면 경의를 표한다. 라이오넬의 이름을 걸고 이 빚은 반드시 갚도록 하지.”

         

       여전히 부담스러운 시선이 주어졌지만, 방금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소심이를 향한 존중이 곁들여졌고, 진심 어린 감사와 인정이 전해진 바.

         

       사내가 이토록 존중과 경의가 담긴 인정을 받았는데 가슴이 뜨겁지 않을 수 없는 법.

       소심이 녀석 또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실상 이미 정체를 밝힌 셈이지만, 이한은 이런 것 가지고 제자를 타박하는 못난 어른은 아니었다.

         

       ‘검둥이 자식, 나름 귀족이라고 오글거리는 말도 잘하네.’

         

       오글거리지만 상대를 향한 진심이 깃든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특히 저 녀석의 경우는 더욱 강렬했고.

         

       ‘하여튼.’

         

       한 번씩 비범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게 나름 소심이 녀석이 잘 융화될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확인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이한이었으나….

         

         

       “그리고 교관님, 지금 이렇게 질문하는 건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검기로 꽃을 피우는 법을 저도, 아니…. 저희도 배울 수가 있습니까?”

         

         

       후끈!

         

       “…응?”

         

       검둥이 녀석의 두 번째 발언이 이어지는 순간 그를 향한 뜨거운 관심이 모였다.

       마치 소심이는 에피타이저였고, 메인 디시는 저였다는 것처럼.

         

       “…이것들이.”

         

       이한은 황당했다.

       기껏 나한으로 키워놨더니….

         

       ‘매화검수로 전향하려고 그러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강호의 태산북두라 하면 소림이라 했는데, 화산파라니….’

         

       하여간.

         

       ‘근본 없는 놈들.’

       

       

       이한의 마음 속 작은 무협이 꾸짖을 갈(喝)을 외치고 싶어 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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