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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타오르는 마차의 불길 속.

   크라슈가 거센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호흡이 엉망진창이다.

   뼈와 근육은 당장이라도 쉬라며 아우성치었고, 정신은 멸화침식의 열기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월음지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르니 몸이 한계라며 재촉한 탓이었다.

     

   “후우, 후.”

     

   내쉰 숨과 함께 크라슈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늘어트린 묵검에서는 아까와는 다르게 미약한 흑염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반면에 그 앞에 있는 상대는 멀쩡했다.

   무장공주는 큰 피해 없이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 다 서로에게 치명타를 먹인 적은 없다.

     

   우선, 크라슈의 공격은 무장공주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둘의 경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탓이다.

     

   반면에 크라슈는 무장공주의 모든 무장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공격에 당하지 않고자 악착같이 피했다.

   제 육감 덕에 예지에 가까운 힘을 지닌 그이니 피할 수 있는 공격은 모두 피했던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몸은 더더욱 엉망이 되었다.

   그녀의 모든 공격을 피하려면 자기 뼈를 깎아야 하는 멸화침식을 한계까지 써야만 했으니까.

     

   “뭔가 숨겨둔 수가 있는 것처럼 자꾸 굴더니…….”

     

   그런 크라슈를 보며 무장공주가 세검을 휙휙 휘두르며 두 눈을 번뜩였다.

     

   “새끼, 다 허세였냐?”

     

   드디어 눈치챘나.

     

   “너 썅, 세계 침식자 아니지? 내 무장도 다 알고 있고, 대체 정체가 뭐야? 세계 침식의 힘을 쓰고 있고. 어디 누구 종이냐?”

     

   무장공주는 더 이상 상대해 주는 것도 짜증 난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공격하는 족족 다 피해버리는 크라슈를 상대하는 게 질린 탓이다.

   거기다 자기 무장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니, 그녀로서는 기분이 나쁜 수준을 넘어섰다.

     

   크라슈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숨을 돌리곤 자세를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대뜸 묵검을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 기이한 행동에 무장공주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 크라슈가 말했다.

     

   “……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냐?”

     

   무장공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만 좀 애옹 거리라고.”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무장공주는 더 이상 상대해 줄 마음이 없다는 듯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내가 이쪽 아이들은 좀 아끼거든?”

     

   그 순간 그녀가 푸욱 하니 자기 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목 안쪽에서 비수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아낸 무장공주의 눈이 샛노랗게 빛났다.

     

   “근데 넌 이상하게 내 감이 말해. 여기서 꼭 죽이라고.”

     

   발록의 화가 두려워 크라슈를 섣불리 죽이지 못했던 그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런 건 잊기로 했다.

     

   크라슈는 세계 침식자가 아니다.

   그런 놈이 자기 무장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 말은 즉, 저 녀석이 후에 더한 적이 되기 전에 죽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딸랑-

     

   그녀가 종 모양의 장신구가 달린 비수를 쥔 순간 주위 분위기가 한순간에 반전되었다.

   분명 흑염으로 타오르고 있었던 마차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마치, 여태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그녀의 범 같은 눈동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적의를 드러냈다.

     

   크라슈는 숨이 턱 하니 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거기에는 거대한 범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냥감을 죽이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맹수 말이다.

     

   그것만 보아도 그녀가 지금까지 수파악을 위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십삼 마장.’

     

   무장공주가 직접 숫자를 붙인 열세 개의 무장 중 하나.

   아홉 번째 마장, 지옥룡주.

     

   그 특성을 잘 아는 크라슈는 그 앞에서도 헛웃음을 흘렸다.

     

   “웃어?”

     

   그걸 본 무장공주의 두 눈이 확 일그러졌다.

     

   반응을 보아하니 자신의 십삼 마장을 아는 모양인데.

   저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슈아 델피아.”

     

   그러자 또 한 번 크라슈가 그녀의 풀네임을 불러왔다.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

     

   무장공주가 짜증을 부리자 크라슈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불러 봤다.”

   “뭐?”

     

   별 의미 없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시간 끌기였을 뿐.

     

   쩌적!

     

   왜냐하면 바닥이 결국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재가 되며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콰광!

     

   벽들이 일제히 뜯겨 나가며 마차의 밖으로 휘날렸다.

   분명 마성궁 안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불어온 거센 바람이 무장공주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무장공주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녀가 무너지는 바닥을 피해 서둘러 뒤로 물러선 순간 크라슈도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너, 씨, 뭔 짓을!”

   “뭔 짓이긴, 불에 닿은 나무는 타는 게 정상이잖냐.”

     

   크라슈는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마차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흑염의 열기를 이기지 못한 마차의 모든 것들이 전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쩌저저저저저적! 쿠웅!

     

   기둥들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며 지붕이 달리는 마차의 바람을 따라 통째로 뜯겨 날아갔다.

     

   다그닥, 다그닥!

     

   동시에 마차 앞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정작 말은 보이지 않고, 뜯겨 나간 벽들 사이로 열심히 스쳐 지나가는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모든 걸 잃어 가는 마차는 그 상태로도 흑염에 계속해서 잡아 먹혔다.

   무장공주는 자꾸만 부서져 가는 바닥을 피해 벽에 급히 붙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닥을 보니 이 마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러나 벽에 붙는다 해도 답이 없었다.

     

   흑염의 불길은 그녀가 있는 벽조차도 모조리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알려 줄까.”

     

   그 순간 그녀와 마찬가지로 벽에 붙은 크라슈가 입을 뗐다.

     

   “이그니스로 타버린 문은 이유는 모르지만, 복구가 안 돼.”

   “어?”

     

   그 말을 듣자마자 무장공주의 고개가 번쩍하니 들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바쁘게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안 가 깨달았다.

   4개 중 3개의 문이 전부 이그니스로 불타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중에서 사라지지 않은 문은 딱 하나.

   지금 크라슈가 등지고 있는 문 하나뿐이었다.

     

   “뭐, 뭐!”

     

   무장공주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귀와 꼬리가 바짝 서며 지금 이 상황이 위험함을 깨달았다.

     

   벨로킨이 이그니스를 통해 우연히 발견하게 된 8층의 비밀은 바로 이그니스로 타오른 마차는 복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마성궁이지만 바깥은 세계 어딘가의 들판과 이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마차의 공간이 부서지는 순간 그곳에 있는 이는 들판 바깥으로 튕겨 날아가 버린다.

   벨로킨은 이 우연을 이용해 낙천을 쓰러트리고, 끝내 우뢰성까지 얻었다.

     

   “그런데 지금 문이 하나뿐이네?”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크라슈가 도발 섞인 웃음을 그렸다.

     

   쿵!

     

   그 순간 크라슈가 등을 뒤로 밀어 그대로 하나 남은 문을 열었다.

   이 문 말고 나갈 수 있는 문은 모조리 타버려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뜻인가.

   무장공주가 당장 크라슈를 따라 문을 나가지 않으면 그녀는 방금 전 지붕과 같이 어딘가로 날려 보내질 거란 소리였다.

     

   다 타버리고 있는 마차 속, 무장공주는 꼭지가 돌아 버리는 감각을 느꼈다.

     

   악착같이 자기 공격을 흘리면서 뭘 하나 했더니.

   이놈은 지금까지 자기 모르게 마차를 불태우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일부러 자기 신경을 살살 긁어 마차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말이다.

     

   상대의 수를 파악하기 위한 신중함이 순식간의 독이 되었다.

   과감함이야말로 지금 가장 필요한 수였는데 말이다.

     

   무장공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크라슈에게 놀아났다는 걸 깨달은 그녀의 얼굴이 분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씹새끼가! 감히, 감히 날 가지고 놀아!”

     

   크라슈가 뒷걸음질과 함께 문을 넘어섰을 때.

   그녀가 지옥룡주를 역수로 쥐어 들었다.

     

   푸욱!

     

   그 순간 그녀의 심장에 지옥룡주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을 찰나로, 순식간에 그녀의 몸 위로 지옥룡주의 붉은색과 새까만 흑색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지옥에서만 자라는 꽃이 피어오른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 솟은 뿔과 꼬리가 돋아났다.

   동시에 용과 같이 변한 다리와 팔이 위압적으로 드러났다.

     

   꾸득!

     

   그녀의 부풀어 오른 허벅지가 한계치까지 힘을 모은 순간.

   

   

   

   

   

   

   그녀의 육체가 순식간에 한점으로 압축되듯 쏘아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뒤늦게 들려오는 폭음과 함께 가뜩이나 타오르던 마차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전부 박살이 났다.

   그러나 무장공주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이대로 크라슈가 지난 문을 뚫고 나가 크라슈의 목을 찢어 버릴 작정이었다.

   악귀나찰과 같은 꼴로 분노에 휩싸인 그녀가 순식간에 입구의 도달 했을 때.

     

   그녀의 눈에 크라슈가 비쳤다.

   

   

   

   

     

   마치, 자신이 오기를 줄곧 기다렸다는 듯.

   거합술의 자세로 조용히 숨을 들이쉰 채 검집 안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크라슈가 말이다.

     

   그녀와 크라슈의 눈이 아주 짧게 마주친 그 찰나, 무장공주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녀가 올 것을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던 그의 정신은 이미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싹!

     

   크라슈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세계 침식의 힘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름을 느낀 그녀의 모든 털이 곤두섰다.

   

   

     

   “개새끼가아아아!”

   

   

   

   

   

   

     

   동시에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듯 욕설을 내뱉으며 길어진 손톱을 내질렀다.

     

   닿지 못한다.

   닿지 못하는 것을 아는데.

   저 망할 얼굴을 어떻게든 뜯어 버려야만 했다.

     

   그러나 분노한 그녀에게 화를 풀 시간은 주지 않겠다는 듯.

   이윽고, 크라슈의 정신 속에서 피어난 용오름이 불길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의 검의 완성을 알렸다.

     

   화륵-

     

   멸화침식(滅火浸蝕)

   이식(二式)

   멸화천검(滅火天劍)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터져 나온 흑염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8층 전체가 한차례 거세게 흔들렸을 만큼 그 거대한 폭풍은 마차 안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며 결국 방금전 마차 구역의 끝을 고했다.

     

   “후우, 후.”

     

   숨을 몰아쉰 크라슈의 눈앞.

   멸화천검에 갈기갈기 찢긴 벽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장공주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단지, 말발굽 소리가 들판 너머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무장공주는 지금쯤 마성궁과 교묘하게 이어져 있는 지상의 어느 들판 위를 마차를 추락한 여파로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것이다.

     

   ‘그 여자가 고작 그걸로 죽을 리는 없겠지만.’

     

   멸화천검은 크라슈의 전력이지만 십삼 마장을 사용한 무장공주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준이 못 된다.

   그러니 지금쯤 멀쩡한 모습으로 화란 화는 다 토하고 있을 거다.

     

   다음에 만나면 정말 죽자고 죽이려 들겠지.

   물론 그때는 지금과 결과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보다 먼저 내가 죽겠네.”

     

   크라슈는 그렇게 중얼거림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장공주와의 싸움에서 소모한 심력과 멸화침식 덕에 정신과 육체가 같이 지끈지끈했다.

     

   ‘이런 살얼음판을 걷는 짓은 다시는 안 하든가 해야지.’

     

   우뢰성만 아니었어도 이런 짓은 안 했다.

     

   푸드덕-

     

   [ 기어코 해냈느냐. ]

     

   그러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새까만 까마귀가 한 마리 있었다.

     

   “크림, 라크라디온은.”

     

   무장공주 일은 해결했다.

   이 공간에서 사라져 버린 만큼 그녀의 분신들도 지금쯤 증발했을 터.

     

   그러니 크라슈가 질문하자 크림슨가든이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 직접 봐야 할 거다. ]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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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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