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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EP.76

     

   플레이어들에게 필드에서의 시간은 빨랐다.

     

   정확히는 패자부활을 위해 필드로 소환된 플레이어들에게는 그 빠른 시간도 부족했고 그들의 공격을 막아 깃발을 지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이 탈락하고 밤이 될 때면 그들 중 일부가 망자로 돌아와 복수를 이행한다.

   수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 강도가 짙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좌표들이 존재했다.

     

   잔잔한 호수.

   운이 좋아 필드의 붕괴 구역을 벗어났던 어인들의 거점은 다른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천혜의 요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 오늘 탈취한 깃발이 총 몇 개인가?

     

   호수의 중심.

   금린의 간이 거처를 만들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청린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어인들에게 하루의 보고를 받았다.

     

   – 총 세 개의 좌표에게서 깃발을 탈취했습니다.

     

   이마에 박힌 녹색 비늘이 두드러지는 어인에게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화 도중에 입을 열지 않는다. 그저 아가미 부근의 막을 떨어 진동으로 소리를 전할 뿐.

     

   사람들은 잘 모르는 수중에서 정확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어인들의 대화법이었다.

     

   – 어슬렁거리던 적들은?

   – 호수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수로 뛰어드는 인원은 확실하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밤이 되면 호수 부근에 그들이 탈락시켰던 플레이어들이 나타나 호시탐탐 깃발을 빼앗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깃발을 탈환하기만 한다면 어인들이 모아 놓은 모든 깃발의 능력치를 그대로 빼앗아 역전을 노릴 수가 있었으니까.

     

   눈에 드러난 위험. 하지만 청린은 망자가 된 플레이어가 오든 말든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 그나저나 청린…… 왜 망자들을 저대로 두는 겁니까? 혹시나 연합이라도 한다면 이곳이 아무리 호수라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어인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린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어인들에게 위협이 될 행동을 굳이 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저들은 연합하지 않을 걸세. 정확히는 못한다는 말이 맞겠지.

   – 예? 그게 무슨…?

   – 말 그대로야. 호수에 뛰어드는 인원이 줄었다고 했지? 그게 왜 그런지 아나?

   – 그야, 인간의 몸으로 어인들을 호수에서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게다가…

     

   같은 능력치의 인간이 물속에서 어인을 이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인들도 결국 한계가 있는 법. 끊임없이 불어난 그들이 한꺼번에 협공을 해온다면 아무리 어인들이라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허나 그의 말에 청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지만, 반만 맞았네.

     

   물론 어인들의 예상치 못한 힘에 선뜻 공격을 못 하는 것일 수 있다. 호수에 들어오는 순간, 어인이 물에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인이 물에서 얼마나 강한지는 청린의 말처럼 반만 중요한 사안이었다.

     

   – 자네는 지금 저들이 왜 여기 모여 있는지 아나?

   – 우리에게 빼앗긴 깃발을 탈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패자부활로 다시 경쟁에 참여하려고요.

   – 그럼 다시 묻지. 그런 상황이라면 저들의 경쟁자는 우리 어인인가?

   – 아……?

     

   청린의 말에 질문을 던진 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기 전에는 어떻게든 강습을 강행했던 자들이 이제는 물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 하는 결정적인 이유.

     

   – 저들도 본인이 고생해서 잡은 사냥감을 남에게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네.

     

   만약 한 좌표가 먼저 깃발 탈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면 먼저 깃발을 차지하기 위해 몰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어인들은 인간들의 공격에 우위를 점하다못해 완벽하게 압승해 거둬 버린 상황.

     

   지금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먼저 물에 들어가 봐야 깃발은 구경도 못하고 남 좋은 일만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 궁금한 건 해결됐나?

   – 아, 아 옙!

   – 그럼 가 봐.

     

   청린의 말에 어인들이 재빠르게 흩어진다.

   그들이 앞으로 할 일은 단체전의 마지막 낮을 기다리며 호수를 사수하는 것.

     

   ‘깃발이 호수에 있다면 지구 좌표의 그 남자도 어쩔 도리는 없겠지.’

     

   그의 머릿속에 문뜩 김시인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개인전 이후로 가장 경계가 되는 규격 외의 인물.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이 호수가 마지막 전장이 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그 시각 신성국의 진영.

     

   “후우… 어째 망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넌지시 던져진 누군가의 말에 다른 기사들이 고개를 번쩍 들며 그의 말을 거들었다.

     

   “쳐들어오는 빈도수도 확연히 늘어난 것 같다만.”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니, 깃발을 빼앗긴 놈들이 쳐들어오는 건 그렇다 쳐도 조금 전에 그놈들은 안면도 없는 놈들이었잖아.”

     

   기사의 말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그저 그들이 피로해졌기 때문에 착각을 한 것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웬걸. 시간이 지나고 날이 흐를수록 밤에 그들을 찾아오는 망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고 신성국의 플레이어들은 깃발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던 중이었다.

     

   “그나마 저 두 분이 계셨기에 망정이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군.”

     

   그들의 시선이 성녀와 적색 기사를 향했다.

     

   분명 그들과 같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급이 다른 무위를 보여 준 적색 기사.

   게다가 성녀가 신성력을 사용해 기사들에게 강화를 걸어 주고 있었으니 능력치가 고정되는 단체전에서 그들이 패배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경계조는 위치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잠시 휴식한다!”

     

   적색 기사 랜든의 외침에 잡담을 나누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전투가 마무리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밤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네. 고마워요.”

     

   랜든의 말에 성녀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성녀는 지금 그녀의 한계치를 간당간당하게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무리하고 계십니다. 이제 쉬십시오. 주변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상처를 입은 분들이 계시니 더 힘내야죠.”

   “……”

     

   성녀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상처를 입은 기사들을 찾아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행동에 랜든은 마음이 아팠지만 감히 앞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성녀의 사명이었고 그녀를 막지 않는 것이 그녀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뭔가 이상하긴 했다.

     

   다른 좌표의 깃발을 꽤 많이 빼앗았기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찾아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주변에 들리는 기사들의 말마따나, 그들에게 달려드는 플레이어의 수가 상상을 초월했고 신성국과는 관련이 없는 망자 또한 난데없이 달려들기도 했던 것이다.

     

   ‘젠장.’

     

   허나 원인을 모르니 대응할 수가 없다. 그저 성좌들의 농간이 아닌가 추측해볼 뿐.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알 방도는 없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고작 지구의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음을.

     

   ***

     

   “아저씨 이번에는 몇 명이에요?”

   “대략 30명 정도.”

     

   숲의 깊은 곳.

   나와 한가민은 높게 솟아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신성국과 결전을 벌이러 가는 소규모의 플레이어들을 구경했다.

     

   ‘운이 좋았다.’

     

   셋째 날 아침, 신성국의 플레이어들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아직 좌표에 합류하지 못한 우리에게 있어서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밤에 나타나는 플레이어들은 네비게이션 마냥 시스템에게 그들의 깃발을 흡수한 좌표의 위치를 안내받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렇게 꼭꼭 숨겨져 있는 그 동굴을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발견했나 싶었다.

   이 넓은 필드에서 그것도 어두컴컴한 밤에 우리를 찾아낸 망자들. 만약 그 습격자들이 수인들이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을 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내가 했던 추측은 지금 신성국과 밤마다 혈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확신으로 바뀔 수 있었다.

     

   “이렇게 숨어만 있어도 충분히 상위권에는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약간 들뜬 듯한 한가민의 말.

   하지만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보이는 희망에 욕심이 생겼다.

     

   “설마… 우승 노리고 있어요? 이 상황에?”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녀가 나의 의중을 눈치챈 듯,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물론 처음 망자들을 신성국으로 흘려 냈을 때만 해도 나의 생각은 한가민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망자들에게 쫓기는 건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

   Lv.16 깃발

   – 모든 능력치를 Lv.16 만큼 상승시킵니다.

   —

     

   “이 정도면 승산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이제 이걸 보니까 적당히 끝내고 싶지가 않아졌다.

     

   가능성이 있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핵심은 지구 좌표의 깃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랜든의 깃발을 빼앗고 아웃이 되는 방법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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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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