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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박서아는 자신의 개인실인 부소장실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장을 위한 마지막 점검.

    그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박서아를 황금 사신은 눈을 반짝이면서 호기심 가득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갓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황금 사신은 이 공간의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회색 사신의 격리실과는 전혀 다르고, 자신이 살고 있는 황금 정원과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널찍한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풀과 나무들이 잔뜩 보이는 풍광.

    머리 위로 내리쫴서 자신의 몸을 포근하게 데워주는 햇살.

    글을 읽을 수 없는 황금 사신에게는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서아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감정만은 여실히 느껴지는 다양한 상장과 표창장들.

    깨끗하게 관리되어 광택이 나는 나무 책상과 컴퓨터, 서류가 정리된 폴더, 세련된 램프, 여러 풍경을 담은 액자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사실 황금 사신은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는 때, 황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조금만 더 이 공간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이곳에는 황금 사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냉장고도 좋았다.

    자신을 둥실둥실 떠받치고 있는 자석도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는 박서아가 너무 좋았다.

    “출장 다녀올게. 잘 있어야 해?”

    황금 사신이 있는 탁자 위로 사탕을 잔뜩 꺼내둔 서아는 황금 사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황금 사신은 그 말 자체는 이해할 수 없어도, 감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이 꽤 긴 시간 동안의 작별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금 사신은 자석 위에서 둥실둥실 떠 있다가, 서아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유령화로 서아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폴짝폴짝.

    황금 사신은 즐겁게 웃으면서 박서아 근처에서 뛰어다녔다.

    박서아가 차량에 탑승하는 순간 차에 몰래 숨어들어 가서, 유령화를 풀었다.

    황금 사신은 그림자 속에 숨어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서아가 차량 운행에 바쁜 사이에, 황금 사신은 조수석에 놓인 가방의 지퍼를 열고 그 안으로 숨었다.

    황금 사신은 가방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숨어서 생각했다. 

    애착 인간과는 언제나 함께야!

    ***

    TV에서 은은하게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안락한 격리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폴짝폴짝.

    황금 사신이 내 배를 트램펄린 삼아 까르륵 웃으면서 뛰고 있었다.

    즐거운 웃음과 함께 온갖 자세를 취하면서 배 위로 떨어져 내린 뒤 다시 뛰어오르는 황금 사신.

    나랑 엄청나게 닮았지만, 다른 존재.

    황금 사신.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내 파괴 조건을 볼 수 없는데, 황금 사신의 파괴 조건은 뭘까?

    황금 사신의 파괴 조건을 확인하자, 황금 사신이 화들짝 놀라더니 황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황금 사신의 파괴 조건은 간단했다.

    <황금 사신 정원을 파괴한다.>

    황금 사신 정원이 생기면서 지속 시간이 사라진 건가? 

    요즘 황금 사신들 활동 시간을 생각해 보면 돌아가고 싶어지면 돌아가는 것 같기는 했는데….

    황금 사신 정원의 파괴 조건은 이미 확인해 뒀었다.

    <회색 사신을 파괴한다.>

    황금 사신이 죽을 염려는 좀 내려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죽기 전에는 안전하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내가 안전한 상태라면 황금 사신들이 나보다 더 튼튼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뚜시뚜시.

    사라졌던 황금 사신을 다시 불러내자, 엄청나게 화내면서 나를 작은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손바닥으로 황금 사신 펀치를 받아주면서 놀아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린이가 놀란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며 격리실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깡!

    예린이가 격리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격리실 문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나보다 예민한 황금 사신은 뭔가를 느낀 건지 펀치를 멈추고 일어서서 문 너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신아, 미친 펭귄이 나타났어! 막, 막. 금속도 씹어먹고! 그게, 지금 엄청. 많은데. 그게.”

    땀에 푹 젖고 숨을 몰아쉬는 예린이 뭔가를 막 횡설수설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펭귄’ 이야기를 듣자마자 예상되는 것이 있었다.

    둠칫둠칫 춤추는 펭귄!

    인간에게 악의를 가진 종류의 오브젝트였는데, 그 녀석이 나타난 건가?

    퍽!

    펭귄의 부리가 강철로 된 격리실 벽을 뚫고 나타났다.

    “꺄악! 사신아!”

    예린은 화들짝 놀라면서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꼭 껴안았다.

    끼이익, 끼이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톱질을 시작하는 펭귄의 부리.

    끼익. 끼익.

    쇠가 우그러지고 갈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격리실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

    “어… 어떡하지 사신아?”

    장작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감정.

    예린이가 엄청나게 당황하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장작이 커지는 감각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어깨 위에 있던 황금 사신이가 화를 내면서 갑자기 내 뺨에 뚜시를 날리고는 격리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지금 미적거린다고 혼낸 건가?

    밥 먹을 때 때리는 게 제일 서러운 건데!

    왠지 황금 사신은 예린의 당황이나 공포를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긍정적인 감정만 먹을 수 있는 식으로 열화된 건가?

    황금 사신을 따라서 격리실 밖으로 나가보니 연구소 복도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복도에는 촘촘하게 두꺼운 강철로 된 격벽들이 잔뜩 내려와서 봉쇄 조치가 취해져 있었는데, 그 격벽을 물어뜯는 펭귄들이 내는 쇳소리로 엄청 시끄러웠다.

    복도에는 펭귄의 사체가 즐비했다. 

    도대체 펭귄이 얼마나 있는 거야?

    이 정도 숫자면 ‘둠칫둠칫 펭귄 사진’을 전 직원 대상으로 10장씩 배포한 수준인 것 같은데.

    방금 나간 황금 사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내 시야에는 살아있는 펭귄은 보이지 않았다.

    연구소 복도를 뚜방뚜방 걸어 다니다 보니, 회의실 앞에서 보안팀이 길을 틀어막고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막아!”

    “방패를 물지 못하도록 해! 가만히 있지 마!”

    특수 합금으로 만든 방패와 무겁고 튼튼한 진압봉으로 무장한 그들은 펭귄을 향해서 마구 진압봉을 내려쳤지만,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유령화로 가볍게 다가가서 회의실 앞의 펭귄들의 머리를 터트려 주었다.

    펭귄이 모두 죽어서 회의실 앞 상황이 안정되어 가고 있을 때, 연구소 내에 존재하는 다른 펭귄들을 모두 죽인 황금 사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아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래그래, 잘했어. 

    세희 연구소는 소중한 곳이니까.

    그나저나, ‘둠칫둠칫 펭귄 사진’의 인기가 엄청 많아서 여기저기 잔뜩 팔렸다고 들었는데….

    꽤 큰 피해가 발생할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근데 사진 대부분을 ‘데일리 오브젝트’에서 팔았다고 했었지.

    이번 사건으로 아예 망해버릴지도 모르겠네.

    ***

    까치산을 오르는 중턱에서 나는 땀을 닦으며 산 밑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건물들과 도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적당히 식혀주었다.

    도대체, 왜 산 위에다가 연구소를 만든 거야? 

    아무리 언덕 같은 산이라도 불편하기만 한데.

    그리고 오랜만에 산을 올라서 그런지, 까치산에 오른 뒤로 묘한 햇볕 냄새가 계속 나고 있었다.

    딱히 태양 빛이 특별히 강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태양 냄새라기보다는 태양에 잔뜩 가열된 모래 냄새 같았다. 

    그런데 모래에 냄새가 있었던가?

    위를 올려다보니, 아직도 올라가야 할 길이 꽤 남아 있었다.

    “하아, 오랜만에 움직이니까 힘드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누군가가 쓱쓱 닦아주었다.

    너무 작은 손이라 별 도움이 안 됐지만… 작은 손?

    옆을 보니 어깨 위에 황금 사신이가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가방 속에 사신이를 집어넣고 내려다봤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서류와 지갑, 핸드폰 사이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사신이가 보였다.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골치가 아프네. 

    황금 사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자동차 키를 품에 안고 가방 속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나는 가방 속에 손을 넣어서 황금 사신의 머리를 쓱쓱 문질러 주었다.

    “여기, 사탕을 줄 테니까. 심심해도 가방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황금 사신은 알사탕을 품에 안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아직 콘퍼런스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치는 느낌이다.

    그냥 세희 연구소로 돌아가 버릴까?

    ***

    까치산 연구소가 위치한 곳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산 중턱. 

    그 인적이 드문 곳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땅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것이다.

    땅에서 치솟는 붉은 모래가 마치 끓는 물처럼 거품을 만들면서 땅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기이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햇빛을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없는데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의 형상은 다양했다.

    정육면체 같은 도형 형상의 그림자.

    인간처럼 팔다리가 달린 형상의 그림자.

    그리고 도저히 형태를 파악할 수 없는 그림자까지 다양했다.

    하늘에는 희미하게 붉은색 달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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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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