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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76 – 철인의 강의>

     

    혹시나 정말로 히든룸에 들르면 어쩌나 싶어서 슬쩍 외출하기를 잘했다.

     

    ‘와. 하마터면 거짓말 들킬 뻔했네!’

     

    매일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하필 헤스티아가 히든룸에 도착한 날에 내 모습이 안 보이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어?

    심지어 즈앙까지 함께 있었으니 실은 5교시에도 강의를 같이 들었고, 헤스티아가 대화한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는 것까지 줄줄이 다 들킬 뻔했다.

    다행히도 그런 헤스티아 흑화 플래그는 무사히 방지할 수 있었다.

     

    “암살자라면 반드시 한 번은 다녀야 할 아카데미라고 스승님이 극찬한 이유가 있었어. 이런 곳을 졸업한 암살자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걸까…”

    “2학년이 될 미래가 두려워.”

     

    즈앙과 헤스티아의 눈이 굉장히 거멓게 죽어버렸지만, 분명 늦은 시간까지 깨있어서 그런 거겠지!

     

    “앞으로는 둘이서만 종종 놀러와도 좋아!”

    “오크노디는 안오는 거야?”

    “다 외웠으니까!”

     

    헤스티아가 방 안의 띠지를 둘러보았다.

    반대쪽 벽면에 천의 자리까지 올라간 띠지의 숫자가 보였다.

     

    “오크노디, 머리 엄청 좋구나?”

    “수석이잖아. 당연히 좋겠지.”

    “후우. 우리는 가져가서 외우는 수밖에 없겠네.”

     

    오크노디가 바로 손을 저었다.

     

    “아, 그거 안 돼. 띠지는 비밀의 방 바깥으로 유출하면 혼자 불타서 사라지니까.”

     

    게임기능으로 암기판정에 성공하거나 플레이어의 현실두뇌로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

     

    “잠을 자지 않는 훈련은 한참 배울 때에도 싫어하는 훈련이었는데….”

    “당분간 밤에 잠은 못 자겠네….”

     

     

    * *

     

     

    지난새벽, 양면띠지의 방에 찾아가서 알리바이를 속인 덕분에 두 사람을 속이는데 성공했다.

    플라톤 교수의 야외훈련장에 나온 두 사람의 퀭한 눈을 보니 밤새 암기를 하느라 의심 같은 걸 떠올릴 여유도 없어 보인다.

     

    ‘근데 플라톤 교수의 두 번째 강의도 원래는 산에서 하지 않았나?’

     

    목요일 1교시.

    산뜻한 아침부터 <상급반 체력단련> 강의로 학생들의 하체를 조져버려야 할 플라톤 교수는 어째서인지 산과 이어진 강턱으로 학생들을 데려왔다.

    학생들은 가벼운 구보로 강의가 대체된 거 아니냐며 기뻐했지만 플라톤 교수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학생들이 반 넘게 두 다리로 멀쩡하게 돌아가다니, 내 교육이 부족하였구나!

     

    한 번이라도 학생들이 악에 받쳐서 체력을 키우고 교수의 강의를 거뜬히 견뎌내거든 마치 대죄를 범한 것처럼 스스로를 탓할 교수!

    물론 그 다음 강의는 누구도 선 채로는 끝마칠 수 없을 극악무도한 체력탈곡기가 시작된다.

     

    ‘그런 교수님의 강의가 고작 조깅? 아무리 생각해도 어림도 없지.’

     

    아니나 다를까, 플라톤 교수는 강에 도착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자, 다들 휴식은 충분히 취했나?”

    “…교수님. 저희 여기 도착한지 30초 지났는데요.”

    “그게 휴식이랑 무슨 상관이지? 가벼운 조깅으로 미리 몸을 풀어두지 않았느냐.”

    “……!!”

     

    후라이드치킨 가문의 창술사 호너가 비극적인 운명을 직감한 영웅처럼 탄식을 금치 못했다.

    변방과 제국을 막론하고 모든 상급반 학생들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드리웠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이 처할 운명을 생각하면 그것을 정녕 짙은 수심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우선 묻겠다. 너희들은 철인삼종경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아카디아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수영과 기마술, 달리기를 겨루는 저희 피렌체 왕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인데요.”

    “반은 맞구나. 남의 나라의 문화는 뭐든지 다 섞어서 제 것으로 만드는 것도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

    “걱정 말거라. 나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르는 사람이니까. 방금 비웃은 녀석들은 전부 포인트 5점 감점이다. 강의를 듣는 교수의 모국 정도는 알아두도록.”

     

    아카디아를 비웃던 제국 상급반 학생들이 나란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근본 없는 피렌체 왕국은 해상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별로 없었기에 어디 가서 피렌체 왕국 출신이라 하면 “심심하면 해적한테 털리는 그 국가?” 소리나 듣기 딱 좋았다.

    하필이면 그런 나라에서 건강한 정신에 미쳐서 건강한 몸에 자신의 영혼을 집어넣은 미치광이 교수가 태어났을 줄이야!

     

    “헤헤.”

     

    아카디아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는 피렌체 왕국을 플라톤 교수가 태어난 국가라고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걸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옆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선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본인이 좋다는데 찬물 끼얹기도 그렇지.

    이제부터 싫어도 잔뜩 끼얹게 될 텐데.

     

    “실은 철인3종경기란 본인이 아카데미에 입적하기 전에 진정한 철인이 되기 위해 쓸 만한 경기종목을 합쳐서 개발한 종합훈련코스이다.”

    “본래는 달리기 하나라도 철저하게 배우라고 한 달간 달리기만 시켰겠지만 지난 강의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생각을 달리하였지.”

    “자신의 체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낼 수 있는 학생이 다섯 중에 하나 꼴로 있으니, 어찌 너희를 달리기 하나에 국한시킬 수 있으랴!”

     

    다섯 중에 하나?

    40명 남짓한 상급반 정원을 감안하면 여덟 명 이상이 지난 강의를 성공했다는 말이다.

    원래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숫자여서 의아했는데, 옆에서 콧김을 뿜는 손오천과 뭔가 뿌듯해하는 도로시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원래는 상급반은커녕 아카데미에 합격하지도 못할 이들이 내 덕분에 상급반에 합격한 탓이구나!

     

    “그러니 오늘의 강의는 수영이다. 이 강을 헤엄쳐서 건너는 학생들은 즉시 강의를 끝마칠 수 있다.”

    “반대로 강의가 끝날 때까지 강을 건너지 못하는 학생들은 모두 주말보충교육이지만!”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보충교육이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주말은 친우들과 사냥을 나가거나 주점에 놀러가 술을 마시는 날이 아니었나?!”

    “그럼 저희 주말다과회는 언제 해요?!”

     

    은근히 살기 좋은 세상인지라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판타지 세계에서 주말보충교육은 노예들이나 하는 주말노동과 다를 바 없었다.

    울분을 토로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헤스티아와 즈앙이 나를 흘끗 돌아봤다.

    너희도 그거 봤구나?

     

    130-1 : 1학년은 성적이 좋으면 보충교육을 듣지 않는다.

    130-2 : 2학년부터는 몇몇 교수가 정규교육시간에 다 가르치지 못한 강의내용을 보충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수강생 전원’을 주말에 불러내어 가르친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주말을 허락하지 않는 교수들의 악랄한 보충교육!

    2학년이 되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아는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보충교육을 피하려는 몸부림이 무의미하고도 딱하게 보일 뿐이다.

     

    “시끄럽다! 사냥이나 다과회가 알 게 뭐냐. 실습은 이미 시작됐다. 수영을 아는 자들은 즉시 입수하고 모르는 이들은 내 앞으로 모여라.”

     

    얼굴에 수심이 드리우다 못해 정말로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학생들.

    선뜻 강 속으로 뛰어드는 학생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냐냐! 이건 물고문이다냐!”

    “벽력성천신교의 수녀복은 사슬갑옷 위에 휘장을 두릅니다. 강에 들어가면 가라앉는 것입니다…….”

    “오 젠장. 털 젖는 일은 질색인데. 원숭이수인한테 물에 들어가라는 건 종족차별 아니냐?”

     

    투덜거리는 학생들 옆으로 아카디아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으며 앞장섰다.

     

    “후후. 해상국가 피렌체의 공녀인 제게 수영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아카디아. 우리 조금만 기다렸다가 들어가요!”

    “디? 물이 무서운가요?”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있잖아요!”

    “아. 북부대공녀…….”

     

    지난 번 상급반 체력단련 강의에서 거대한 얼음벽으로 모두의 진로를 가로막으며 엄청난 실력을 선보였던 북부대공녀 아이린.

    평지에서도 당해낼 사람이 손꼽을 정도로 강력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물을 만났다.

     

    쩌저저저적!

     

    가볍게 물 표면에 발을 내딛자마자 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는 강물표면!

    한겨울의 빙판처럼 얼어붙는 강에 수영 도중에 휩쓸렸다간 오도 가도 못하고 몸이 걸리거나 빙판 아래에 갇히는 공포체험을 하게 된다.

     

    “저건 좀 그렇지.”

    “지난번에 오크노디가 북부대공녀의 뒤를 따라서 들어갔었지?”

    “우리도 그거나 해볼까?”

     

    1등은 따놓은 당상처럼 압도적으로 편리하게 강을 건너는 아이린.

    그녀의 뒤를 따라 빙판에 발을 올린 창술사 호너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졌다.

     

    “살얼음?!”

    “전 바보가 아니에요. 두 번이나 무임승차를 허락하지는 않아요.”

     

    정확히 자신이 건널 얼음만 남겨두고 지나간 길의 얼음은 녹고 깨지며 흩어지게 만든 것!

    치사하긴 해도 확실하게 1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수영이 아닌 방법으로도 강을 건너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말이다.

    플라톤 교수가 세숫대야에 손을 담그고 휙 당기자 강물이 크게 일어나 아이린을 입구로 밀쳤다.

     

    “?!?!”

     

    영문도 모르고 입구까지 떠밀려온 아이린.

     

    “나는 ‘헤엄을 쳐서’ 건너라고 말했네. 반칙은 허락되지 않네!”

    “와, 엄청 공정한 시합이네!”

    “이거라면 할만할지도!”

     

    순진한 학생들은 이 강의의 공정함을 주목했다.

    그러나 영악한 학생들은 세숫대야에 주목했다.

     

    “방금 저거 뭐였지??”

    “세숫대야의 물이 떠오르는데 강물이 왜 같이 떠올랐지?”

    “저거 설마, 교수님이 세숫대야 속의 물을 가지고 장난치면 강물도 똑같이 움직이는 거야?”

    “…혹시 한 사람도 강을 건너지 못하게 방해할 작정으로 그러는 거 아니야?”

    “뭘 위해서?”

    “그게 재밌으니까?”

    “아하하, 설마.”

    “그렇지?”

    “…….”

    “…진짜 농담 맞겠지?”

     

    다른 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농담 아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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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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