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6

       

       

       이유하는 숨을 참고, 거대 모찌넨도의 내부를 수영하듯 나아갔다.

       

       치이익……!

       

       피부를 덮고 있는 빙결 보호막과 산성이 맞부딛혀 증발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유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의복까지는 보호하지 못했기에 조금씩 색이 바래며 부식되고 있었지만, 수 분 동안은 괜찮을 것.

       

       ‘…….’

       

       이유하는,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백철연을 놀라게 해주기 위해 큰맘먹고 장만한 옷인데, 정작 너덜너덜한 모습만을 보이고 말았으니.

       

       게다가 누구는 나름대로 작정을 하고 단장한 모습이었는데, 백철연의 그 싱거운 태도는 뭐란 말인가.

       

       ‘신기하다, 라니. 당췌 감상이 그것밖에는 없는가.’

       

       그런 백철연이 얄미웠으나, 한편으로는 또한 부끄러웠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유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모찌넨도의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모찌넨도의 내부를 채운 점액질이 조여오듯 꿀렁거리며, 흡수할 수 없는 ‘이물질’을 배출하려는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수영하듯이 더 깊숙히 나아가던 이유하는—

       

       마침내, 모찌넨도의 중심부에서, 대왕고래의 심장만해진 모찌넨도의 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푸르게 발광하는 그 핵에, 이유하는 백철연이 말한 대로 쇠사슬 끝의 갈고리를 박아넣었다. 하지만 갈고리는 박히지 않았다.

       

       ‘……!’

       

       이미 갈고리 따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 핵. 이유하는 어쩔 수 없이, 쇠사슬 주위를 돌며 핵에 쇠사슬을 칭칭 두르고는, 빙결을 방출해 얼어붙게 만들었다.

       

       

       

       ***

       

       

       

       이유하가 거대 모찌넨도의 몸 속으로 빠져들고, 인자들도 한걸음 물러난 뒤. 

       

       ‘……젠장.’

       

       잘 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이유하는 정말 괜찮은 게 맞을까? 몇 분 지나지도 않았건만 벌써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렇게 초조함 속에서 시간을 세던 중, 모찌넨도가 갑자기 격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유하가 핵에 갈고리를 고정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양복자에게 외쳤다.

       

       “지금이야! 스위치를 눌러!”

       “응! ……눌렀어!”

       

       쿠웅!

       

       쇠사슬을 들어올리는 리프트의 조작 스위치는 이미 파악해 둔 뒤였다. 양복자가 스위치를 넣자, 쇠사슬 리프트가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톱니바퀴 기어가 걸리는 소리와 함께, 몇 톤이나 될 법한 거대 모찌넨도가 천천히 끌려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올라가는 모찌넨도를 따라 철골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모찌넨도가 서서히 사일로의 위로 올라오자 나는 렌까에게 시선을 주었다. 렌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펄쩍, 뛰어 쇠사슬의 위로 올라갔다. 언제라도 쇠사슬을 자르기 위함이었다.

       

       “우왓, 무서워……!”

       

       나를 뒤따라 철골 비계 위로 올라온 양복자가 끌어올려지는 모찌넨도를 보며 말했다. 사일로로부터 올라오는 열기를 감지한 모찌넨도가 마구 발광했던 것이다. 

       

       저 내부에서는 이유하가 빙결을 발동하고 있을테니 모찌넨도는 분열하지도 못하고, 그저 수 톤에 달하는 몸을 뒤틀며 촉수를 사방으로 뻗칠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묶인 채라고 해도 저 촉수에 휘말리는 순간 끝이다.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나는 양복자를 한켠으로 밀어세우며 말했다.

       

       “조심해.”

       “으응.”

       

       드드드드…… 드득!

       

       마침내 쇠사슬 리프트가 정지했다.

       

       이제 완전히 사일로 위에 위치하게 된 모찌넨도. 여기서 렌까가 쇠사슬을 끊기만 하면 모찌넨도는 아래로 떨어져, 부글부글 끓는 합성고무 용액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 이유하가 빠져나오지 않았다. 비계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렌까가 외쳤다.

       

       『리 상은 아직입니까? 지금 끊어야 해요!』

       

       나도 안다. 사방으로 촉수를 뻗치는 모찌넨도. 지금 바로 끊지 않으면, 모찌넨도가 다른 구조물을 붙잡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 때, 이유하의 손이 불쑥 보이더니, 상반신만 겨우 빠져나왔다. 점성이 강해서 쉽사리 나올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나는 황급히 다른 쇠사슬을 붙잡고, 이유하를 향해 내려가며 외쳤다.

       

       “유하!”

       “……철연.”

       “내 이름 말고, 손 내밀어!”

       

       나는 이유하의 내민 손을 붙잡았다.

       

       ‘윽!……’

       

       이유하의 전신을 둘러싸고 빙결 보호막이 발동되어있는 상태인지라, 그녀의 손을 붙잡자 마치 얼음장같은 느낌이었다. 한겨울에 밖에서 얼어붙은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처럼 손이 쩍 달라붙은 것이다.

       

       비계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던 양복자가 『잡았어요!』하고 일본어로 외치자, 저 위에서 쇠사슬에 매달려있던 렌까가 모찌넨도를 들어올리고 있던 쇠사슬을 끊었다.

       

       쇠사슬이 끊어지자, 거대 모찌넨도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발작하며 아래를 향해 떨어져갔다. 그리고는,

       

       풍-덩-!

       

       부글부글 끓는 고온 고열의 합성고무 용액에 빠진 모찌넨도는, 촉수를 마구 내뻗고 육중한 몸을 마구 뒤틀며 발작하더니, 

       

       마침내 전신의 점액질이 모두 흐트러지고 위로 떠오른 핵까지 바스라져 용해되는 것을 끝으로 완전히 잠잠해졌다. 죽어버린 것이다.

       

       쇠사슬을 붙잡고 다시 비계 위로 끌어올려진 나는 이유하의 상태부터 살폈다.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나는 괜찮소. 허나, 그대의 손이야말로,”

       

       이유하는, 차가워진 자신의 손을 붙잡느라 동상을 입었을 내 손부터 걱정한다. 이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는 이유하를 끌어안았다. 

       

       “……!”

       

       몇 분동안 빙결 보호막으로 둘러싸였던 이유하의 몸은 차가웠으나, 곧 차가움의 밑으로 따뜻한 체온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괜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유하.”

       “……처, 철연?”

       

       그거 아니라니까. 언제 한번 날 잡고 설명해주든가 해야지.

       

       그런데 그때, 우르르르, 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철골 비계 위로 인자들이 모여들었다. 아까 모찌넨도를 상대하느라 수가 줄었지만 족히 열 명은 되는 숫자였고, 우리들을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뭐야?’

       

       설마, 아까 모찌넨도가 등장하기 전처럼, 다시 날 죽이려는 셈인가? 설마, 렌까도 함께 있는데?

       

       척, 쇠사슬 위에 있다가 인자들과 내 사이로 내려선 렌까가 인자들을 향해 물었다.

       

       『……뭐죠?』

       

       렌까가 묻자, 인자 무리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렌까에게 말했다. 

       

       『아가씨. 이 쪽으로 오시죠.』

       『……예?』

       『안타깝지만 저들을 여기서 살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저 인자 대장놈이 말하는 ‘저들’이란, 나와 이유하, 그리고 양복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렌까의 눈이 싸늘해졌다.

       

       『……뭐라고요?』

       『저들을 살려두기엔 이미 많은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저의 친—』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어차피 대의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조선인이지 않습니까?』

       『……!』

       

       인자 대장의 발언에 놀란 놀란 렌까가 반박했다.

       

       『부차적, 이라뇨……. 조선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무슨 대의라는 것이죠?』

       『당주님께서!』

       

       복면 대장이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당주님께서 아가씨를 왜 조선에 보내셨는지 헤아리십시오. 그깟 조선인 학우 때문에 당주님의 기대를 저버릴 셈이십니까? 가문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보다 위에 있는 ‘대의’를! 당주님께서 따르시는, ‘대동아공영회’의 대의를!  당주님의 아가씨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본래 일본어에서는, 존칭을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뒤에 「사마」를 붙이지 않는다. 「사마」를 흔히 ‘님’으로 번역하지만, 좀 더 높고 무거운 감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어에서는 ‘사장’, ‘선생’ 같은 평범한 존칭에는 사마를 붙이지 않고, 진정으로 섬기는 존재에게나 사마를 붙인다.

       

       그리고, 저 인자들은 당주의 뒤에 꼬박꼬박 사마를 붙여 호칭하고 있었다.

       

       인자들이 ‘님’까지 붙이며 존칭을 하는 당주라는 사람은, 바로 렌까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언급되자 렌까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걸고있는…… 기대……』

       

       렌까는 인자들이 서 있는 쪽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혼란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시라바야시 상……』

       

       나는 렌까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렌까.』

       

       나는 렌까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녀의 두 눈—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은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렌까 역시 내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시라바야시 상, 저는…… 아버지를, 그, 그렇지만 당신을……』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돼.』

       

       나와 렌까는 서로의 눈을 가까이,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다. 렌까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그만두고, 꿀꺽 침을 삼켰다. 

       

       『렌까.』

       

       나는 렌까의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렌까의 볼에 가져다댔다. 렌까의 부드러운 볼이 장갑 너머로도 느껴졌다. 그리고는, 

       

       짜악-! 

       

       『에엑……』

       

       나는 축 늘어져 쓰러지는 렌까를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렌까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고 인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서 냉큼 사라져.』

       『……!』

       

       나는 렌까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안, 렌까. 잠깐만 잠들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렌까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변수였기 때문이었다. 

       

        렌까가 만약에라도 내가 아닌 저쪽 편을 들어준다면…… 

       

       나와 내 조선인 친구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인자들에 의해 모조리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 나의 행동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인자 대장이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인의 주제에 감히 아가씨의 몸에 손을 대다니! 아가씨는 네놈을 친히 친구라고 불렀지만,  비열한 조선인인 네놈은 이렇게 손쉽게 배반하는구나! 그러고도 네 놈이 무사할 것 같으냐!』

       

       놈의 말대로, 물론 후폭풍이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렌까에게는 자신의 가문과 관련된 일이었으니 내가 다짜고짜 기절시킨 것에 대해서 화를 내리라.

       

       하지만 이번 상황만 넘기면, 렌까는 나중에 적당히 달래주는 것으로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감각도 있었고,

       

       『글쎄, 적어도 지금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낫겠지.』

       

       나는 힘빠진 렌까의 가늘고 흰 목덜미에 칼을 위협적으로 가져다대며 말을 이었다.

       

       『자, 렌까가 다치면 너희들에게도 좋지 않겠지. 안 그래? 너희들이 섬기는 그 당주님이라는 분께는 뭐라고 할 거야?』

       『크읏……!』

       

       그리고 무엇보다, 렌까를 저런 녀석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뭐?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 부차적인 조선인? 놈들이 말하는 ‘대의’가 뭔지는 몰라도, 뭔가 몹시 구린 짓을 하기 위해 렌까를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렌까의 목에 칼을 겨눈 채, 협박 연기를 이어갔다.

       

       『그래. 난 피도 눈물도 나라도 이름도 없는 조선인이지. 그런 나에게 형편좋게 친구 따위인들 있을 것 같아? 앙? 이대로 그어버려?』

       『……!』

       

       내 블러핑이 먹혀들었는지, 아니면 내 기세에 질렸는지, 인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마침내 인자 대장이 다른 놈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자.』

       『옷스!』

       

       인자들은 의외로 순순히, 나타났을 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인자까지 사라지고, 그 뒤로도 한동안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자, 그제서야 나는 렌까의 목덜미를 위협하던 칼을 내리고, 렌까를 바닥에 뉘였다.

       

       “후우……”

       

       끝났다. 모찌넨도도 해치우고, 인자들도 몰아낸 것이다. 긴장이 풀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계의 철골 바닥에 주저앉았다. 곁으로 이유하가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테요?”

       “글쎄, 힘이 빠져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네.”

       “후후…… 나도 매한가지요.”

       

       이유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나에게 몸을 기대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겠지. 일단 이 공장에는 폭탄이 설치된 채였다. 나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일단 경찰부터 불러야지. 폭탄 제거는 경찰한테 맡기고…….”

       

       꽤 큰 규모의 공장이었으니, 1층의 복도에 공장 사무실과 전화가 있을 터였다. 나는 양복자를 불렀다.

       

       “복자야.”

       “으, 응?”

       “렌까 데리고 먼저 내려가. 1층 복도에 사무실? 같은 거 있을 거거든. 가서 경찰에 신고 좀 해줘.”

       “으응! 그나저나, 언제쯤 도미꼬라고 불러줄까나-”

       “아래 창고에 무라사끼 있으니까 걔도 챙기고…… 아 참. 거기에 복면 뒤집어 쓴 여자애도 있을거야. 걔도 사무실에 데려다 놔 줘. 묶어놓은 건 풀지 말고.” 

       

       복면 소녀를 언급하자 양복자가 놀라며 말했다.

       

       “에엣? 복면 소녀? ……혹시, 아까 그 놈들이랑 한패야?”

       “응. 깨우지 말고 일단 오토바이에 태워.”

       

       이 복면인들이 뭘 하려는 놈들인지, 대동아공영회 운운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렌까랑은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를 복면소녀를 통해 알아낼 생각이었다.

       

       “으응, 와깠다! 그럼 나 먼저 내려갈게!……”

       

       양복자는 염동력의 힘으로 렌까를 부축하며 먼저 철골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차피 경찰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조금만 더 여기서 쉬자는 생각이었다.

       

       ‘후우……’

       

       나는 문득, 나에게 기대어 앉은 이유하를 바라보았다. 급한 상황은 다 끝났으니 아까 못했던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너희들은 어쩌다 여기에 온 거야? 그 옷은 또 뭐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부식되어 해어지긴 했지만, 꽤 때깔이 좋은 코트며 블라우스였다. 지금은 이렇지만 아마 처음에는 꽤 예뻤을 것이다.

       

       이유하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조금 주저하다가 여기까지 온 경위를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양복자와 함께 본정, 그러니까 혼마찌에 놀러갔단다.

       

       시대에 뒤쳐지는 기분이 들어서, 달라지고 싶어서, 양복자와 함께 옷을 사입었다고. 이유하는 자신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쩐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소만……”

       “그러게 왜 굳이 내키지도 않는 옷을 사입은 거야? 뭐, 어울리기는 하지만.”

       

       내 말에 이유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항상, 나를 옛사람 취급하며 은근히 놀리지 않았소? 하여 내 한번은 제대로 양장으로 단장해서 그대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소. 그래, 좀 놀랐소?” 

       

       그 말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음, 내가 놀렸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간 그런 걸 내심 신경쓰고 있었구나. 아무리 겉으로는 양반댁 규수처럼 굴어도 속으로는 열일곱 여자애 아니랄까봐, 의외로 이런 쪽으로 델리케이트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유하는 그렇게 옷도 사입고 본정 거리를 거닐다 양복자와 함께 주택단지로 왔고, 거기서 모찌넨도와 렌까를 마주쳐서 이곳으로 온 거라고. 

       

       거기까지 말하고 한동안 말이 없던 이유하는 문득, 발개진 얼굴로 물었다.

       

       “그대는, 바다에 가본 적이 있소?”

       “바다? 바다는 왜?”

       “해수욕 말이오.”

       “아아.”

       

       뜬금없이 왜 해수욕 이야기지? 뭐, 21세기에서는 가끔 가긴 했는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자니 이유하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 사실이오?”

       “뭐가?”

       “그, 그곳에 가면 정말로 남녀가, 헐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옷을 입고……”

       

       나는 피식 웃었다. 아마 양복자와 함께 옷 쇼핑을 하다가 수영복이라도 본 모양이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였으니 비키니는 있을리도 없고 거의 해녀복 비슷한 것 뿐이었겠지만, 그거나마 얘한테는 컬쳐쇼크였겠지.

       나는 한 마디 해주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시대에 따라가려고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어.”

       “……?”

       “다른 사람을 따라하려다가 되려 본연의 네 모습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뿐이야. 그러니까 그런 것보단, 너 스스로의 가치를 갈고닦는 것이 중요-”

       

       그렇게 내가 꼰대처럼 한 마디에 두 마디를 보태려던 그 때,

       

       콰아앙!

       

       “……!”

       

       공장의 한켠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비계가 크게 흔들렸다. 폭탄이 터진 것이다. 뒤이어 또 한방의 폭탄이 터지며, 공장 설비 한 쪽이 무너져 내렸다.

       

       ‘개 새끼들, 이미 폭탄이 터지게끔 세팅을 다 해놓고 도망친 건가?’

       

       “꺄아아악! 다메요! 다스께떼(도와줘)!”

       

       이번에는 양복자의 비명소리였다. 흘깃 아래를 내려다보자, 렌까를 끌어안은 채로 인자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양복자의 모습이 보였다. 놈들이 렌까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모양이었다.

       

       ‘……젠장!’

       

       하지만, 그 쪽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콰아앙!

       

       또 한번 커다란 흔들림과 함께 폭발음이 터졌다. 이번엔 가까웠다. 지금 나와 이유하가 올라와 있는 철골 비계의 한쪽 끝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계의 한쪽 끝이 끊어져 아래로 기울기 시작했고,

       

       “아앗…… 처, 철연!”

       

       이유하가 미끄러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급히 몸을 날려 쇠사슬을 붙잡고, 곧바로 떨어지려는 이유하의 소매자락을 붙잡았다.

       

       “내가 잡았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어서 한편 더!!!!!!
    이번 에피소드도 거의 마무리네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