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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정말로 가지 않아도 괜찮겠어?”

        

       “예, 저는 괜찮습니다.”

        

       배워야 할 건 배웠고.

        

       무엇보다 지금 찾아가는 건…… 드라마틱하지 못하니까.

        

       나도 나름대로 검성을 나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검성도 한번 찾아오라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다음 날 바로 찾아가는 건 조금 그렇지.

        

       게다가 산은 이미 너무 많이 탔다. 이제는 그만 타고 싶어.

        

       “……하긴, 쉬고 싶을 만도 해.”

        

       나의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모두 내 말을 이해해주는 모양이다.

        

       그래, 이제 슬슬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만약 내가 명상을 배우기 전이었다면 어떻게든 따라가 시간을 돌려가며 이것저것 배우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좀…… 당장 오전에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돌아오기도 했고.

        

       “올라가면 내일쯤 내려올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올라가서 그 오두막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일행들은 다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아, 그럼.”

        

       나에게 그 ‘언니’라는 호칭에 얽힌 이야기를 곧장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그런 건 어차피 돌아와서 들어도 될 일이니까.

        

       “다녀올게, 언니!”

        

       클레어가 손을 크게 흔드는 것을 보고 여전히 일행들은 적응 안 된다는 듯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별로 놀라지 않는 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레오였다. 아무래도 클레어에게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

        

       나는 커다란 승합용 마차에 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몸을 돌렸다.

        

       *

        

       “어이~ 거기 아가씨!”

        

       곧장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 걸까.

        

       나는 곧바로 이상한 남자와 엮이고 말았다.

        

       “여기야, 여기! 자리 있으니 와서 같이 놀지 그래?”

        

       그렇게 크게 소리치는 남자에게 시선이 모였다. 북부 사람들은 대부분 무뚝뚝한 편이다. 그리고 경박한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남자에게도 별로 좋지 못한 시선이 모였지만, 정작 남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한 번 보면 눈에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의자 앞에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두고 그 위에 발을 올리고 있었는데, 카페 주인장은 그런 남자를 인상을 찌푸린 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남자를 쫓아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무척 고급스러운 옷이라 그랬을까? 척 보기에도 고위 귀족이니까. 괜히 얽혔다가는 귀찮으니 일단은 그대로 두는 거겠지.

        

       이 동네에 귀족이 있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윈터필드 가의 손님이거나 군인이거나, 둘 중 하나니까.

        

       하지만 그 남자는 귀족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며, 군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황족이었고, 딱히 누가 불러서 온 것도 아니고, 군대와는 적성은 몰라도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루카스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루카스는 반갑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의자 위에 올려두었던 발을 내린 뒤 손으로 탁탁 털어서 내 쪽으로 밀어주었지만, 나는 말없이 옆에 있는 다른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물론 루카스는 나의 그런 태도를 보고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여행은 즐겁냐? 여동생.”

        

       “……조금 전까지는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나 때문에 즐거움을 망쳤다는 소리 같잖아.”

        

       “…….”

        

       다 알고 있구만.

        

       루카스 본인도 내가 본인을 반가워할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윈터필드의 주인 역할을 대신하고 있던 제니퍼가 자리를 비워서? 앨리스가 잠깐 이곳을 떠나서?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보였다. 머리가 타는 듯 붉은 루카스는 그 자체로 눈에 띈다. 나는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몰개성한 얼굴은 아니었다.

        

       제국 황녀가, 이름 모를 미남과 단둘이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있다.

        

       뭐, 소문이 퍼지더라도 금방 사그라들긴 하겠지만. 진짜 고위 귀족이라면 루카스도 알고 있을거고, 우리 둘의 정체를 알고 나면 이 상황이 훈훈하거나 가십거리로 보인다기보다는 눈도 함부로 마주쳐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으로 보일 거다.

        

       “언제부터 제 뒤를 감시하고 있었습니까?”

        

       “다 알면서 묻냐.”

        

       아니, 진짜로 모르는데.

        

       ……그런데 루카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실습 내내 내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면 당연히 내가 전장에서 싸우는 것도 보았을 거다.

        

       그런 인간 같지 않은 전투를 벌이는 존재가, 자기 뒤에 따라붙었던 루카스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면 말이 되지 않겠지.

        

       “언제나, 였겠죠.”

        

       “그렇지, 뭐.”

        

       내가 말하는 것에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자기 앞에 있는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이들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잡았는지, 커피는 아직 식지 않고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었다.

        

       다시!……를 외칠 것을 감안하고 찍었는데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언제나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고?

        

       “아, 생각해보니까 24시간은 아니었네. 네가 방 안에 들어가면 추적도 어렵고 해서 굳이 따라가진 않았거든. 황제 폐하께 보고하는 시간도 있었고, 나도 먹고 싸고 자야 했으니까.”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그렇다는 말은, 누군가와 교대해가면서 나를 감시하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방 안에 뭔가 장착해두었다면 어차피 네가 다 알아차렸을 거고.”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간파해보려고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시간을 다시 되돌려서라도 전부 없애버리는 쪽이 안전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루카스의 얼굴을 바라본다고 그 표정 이면의 거짓말까지 전부 간파할 능력은 없었다. 독심술도 없고, 내 눈 자체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일단은 루카스의 말이 참이라고 두고 넘어가고, 앞으로 조심하기로 했다.

        

       ……방에 돌아가면 죄다 뒤집어서라도 한 번 찾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지금 제게 모습을 나타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니퍼와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면 솔직히 나 말고 내 친구들을 따라가는 쪽이 나았을 거다. 루카스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검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을 테니까.

        

       원작에서도 루카스는 검성의 위치를 알고 나서도 자신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더 수련했으니, 지금 들킨다고 해도 원작과 이야기가 크게 틀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게.”

        

       루카스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울 정도로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제도에서는 여기저기서 매연이 뿜어져 나와서, 아카데미 근처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푸른 하늘을 보기가 꽤 어렵다. 여기도 증기기관을 쓰고 매연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조금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뭐죠?”

        

       “……너.”

        

       나를 불러놓고도 루카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죠?”

        

       괜히 그 시선이 끈적하고 기분 나쁘게 느껴져서 그렇게 물어보니, 루카스가 입가에 씩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너, 언제 한 번 나랑 싸워주라.”

        

       “……예?”

        

       “서로 목숨 걸고, 제대로.”

        

       “…….”

        

       얼굴에 놀란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 노력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내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음.”

        

       내 표정을 본 루카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술 양 끝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앨리스가 네 표정을 어떤 식으로 읽는 건지 조금 알 것 같다. 걔도 대단하네.”

        

       내가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루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 손으로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자리를 떠버렸다.

        

       “…….”

        

       어.

        

       뭐지.

        

       나는 그 상태로 한동안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있다가, 겨우겨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나와 싸우는 것이 검성과 겨루는 것보다 더 즐거울 거라는 결론을 내린 건가?

        

       “…….”

        

       어, 그러니까.

        

       나 망한 건가?

        

       *

        

       살기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 말을 하는 순간 등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쏘아 쓰러뜨리고 단신으로 벙커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도, 루카스는 실비아에게서 그 어떤 살기도 느끼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명경지수의 경지인가? 아니면 그저 상대가 너무 약하기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걸까?

        

       ……아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종류가 다소 달랐다.

        

       그보다는, 마치.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태도.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태도.

        

       실비아가 싸우며 보였던 태도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자신이 실비아를 베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인가.”

        

       그런 실비아를 진정으로 이겨낼 수만 있다면,

        

       루카스는 ‘미래’를 베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실비아를 향해 몇 번이나 검을 휘두르던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확신. 직감.

        

       그렇기에 루카스는 결국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 미래를 베어보겠다고.

        

       “그렇게 끝내주는 상대를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냐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루카스의 입가에는, 호승심 넘치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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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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