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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타라는 분노로 끓는 듯한 눈동자로 이사악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어째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런 짓을 한 거야?”

       

       “어째서라니요? 무엇을 말이죠?”

       

       “가족을 죽이고⋯⋯ 그 죽음을 모욕하는 끔찍한 일을, 어떻게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냐는 말이야-!”

       

       이사악은 타이르듯이 말했습니다.

       

       “가족 같은 하찮은 개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타라.”

       

       “⋯⋯뭐?”

       

       “10년이었을까요, 아니면, 20년?”

       

       “⋯⋯⋯⋯.”

       

       “운이 좋아도 30년 안에 아브라함은 죽었을 거예요. 인간의 육신에 갇혀서. 땅에 묻히고 얼마 안 가 살점은 분해되고, 뼈만 남아 썩어가겠죠. 백 년이 흐르면 시체는 먼지가 되어 온데간데없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남지 않을 테고요.”

       

       그녀의 눈동자가 긴긴 세월을 여행하는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사람은 고작 백 년도 안 되는 삶을 살아간 뒤에 죽고, 남긴 것은 덧없이 사라집니다. 시간의 단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의 발버둥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안타까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결국 우주에 고고하게 남는 것은, 위대하신 분 하나뿐이신데.”

       

       수십, 수백억 년 후에 예비된 모든 것의 멸망.

       

       그러니 우주와 역사를 함께해 온 악신을 섬기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치 없는 회색빛으로 보였습니다. 

       

       “결국은 먼지만도 못한 가족이라는 관계에, 어째서 그렇게까지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네요.”

       

       “이사악──!!”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더라도, 당신은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타라. 아버지의 영혼은 그분의 곁에서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오래도록 남겠죠. 아버지에게 고통을 줘야만 했던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저는 뿌듯함마저 느끼고 있어요.”

       

       밤하늘에서 외신을 목격하고, 그것을 깊이 탐구하게 된 사악한 성녀는. 두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경건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었으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연히 선택당하고, 우연히 힘을 받았을 뿐인, 곧 성녀가 아니게 될 소녀는. 아브라함과 지난날을. 노인의 웃음과,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위했던 삶의 태도를 되새기고 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선언했습니다.

       

       “네가 포기한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 모르고 있다면⋯⋯ 내가 그 머리통에 쑤셔 박아 주겠어──!!”

       

       타라의 외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저는 별에서 그분의 흔적을 보았죠. 인간의 하잘것없는 뇌로는, 흔적마저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지만. 저는 그분과 연결돼 있다는 걸 느껴요.”

       

       쩌적. 쩍.

       

       공간이 불안한 소리를 내며 떨려오고, 이사악의 뒤로 균열이 일며 깨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공간의 틈 사이를 비집고, 반투명한 구체형의 무언가가 흘러나왔습니다.

       

       우우우웅-!

       

       존재만으로도 시간과 공간을 뒤틀고 썩혀 먼지로 흩어버리는. 악신의 아주 작은 일부. 시공을 넘나드는 사람 크기의 거품이 세 개.

       

       그것은 둥실거리며, 이사악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녀는 그 한가운데에서 별빛을 받아 춤추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바로 은의 황혼 교단의 성녀, 이사악.”

       

       “──피해라!”

       

       “⋯⋯!!”

       

       타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일견 둔한 듯했던 거품은 순식간에 쏘아져, 타라가 있던 곳의 지면을 깨끗하게 지워버렸습니다. 

       

       파인 구덩이의 단면이 매끈했습니다. 두터운 지면도 이토록 부드럽게 지워낼 수 있다면, 사람이 맞았을 때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터.

       

       베네트는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패링,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저 꼴이 될 테니까.

       

       “제물을 바치죠. 그분께서 조금이나마 기뻐하실 수 있도록!”

       

       이사악이 그렇게 외치며 손을 휘젓자, 광신도들은 품 안에서 제사용 단검을 꺼내 들었습니다. 민간인들을 죽이고 죽여, 그렇게 모인 힘을 자신들의 성녀에게 보내려는 그때.

       

       “성녀에 대해서 얕보고 있는 모양인데⋯⋯!”

       

       타라는 성표를 앞으로 내밀며, 신성력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녀의 주변에 금빛의 광채가 아른거렸습니다.

       

       “운이 좋아서 받은 힘이지. 맞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녀라고 불리우며 떠받들어진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넌 알아야 해.”

       

       여신에게서 마력을 빌려 받는다는 것. 그것은.

       

       우화(羽化)란, 자신의 신념으로 영혼을 물들여, 변이된 영혼이 발산하는 특수한 마력으로 발현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특수한 마력’을 신에게서 내려받는 신성력이란──.

       

       여신의 우화를 빌려 쓸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승계우화(承繼羽化) – 『톱니바퀴 : 항상성』!”

       

       끼리릭. 끼릭. 쿠웅.

       

       타라의 배후에 거대한 톱니바퀴가 나타나,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광신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표식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상관없으니, 어서 제물을 바치세요!”

       

       이사악의 명령을 들은 광신도들이 시민들을 단검으로 찌르자, 단검은 질긴 가죽에 틀어막힌 것처럼 긁힌 상처만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마저도, 금빛에 휩싸여 치유되었습니다.

       

       “칼이 안 들어갑니다!”

       

       “제물을, 제물을 바쳐야 하는데⋯⋯!”

       

       시민들을 포함한 범위 내의 모든 아군에게 작용하는 무제한적인 치유와 보호. 광신도의 번제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타라가 꺼내든 것은, 모든 산제물들을 죽지 않게 한다는 해답이었습니다.

       

       “광역 치유에, 저항력의 상승⋯⋯ 인가?”

       

       [쉽게 제물을 바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사악의 공간을 도려내는 힘은 막아낼 수 없을 거예요.]

       

       “충분해. 이제 우리들의 차례다⋯⋯!”

       

       베네트는 이사악을 향해 달려 빠르게 거리를 좁혔고, 니오레가 뒤에서 마법을 쏘아 이사악을 견제했습니다.

       

       “vir, C’thls, I’n-!”

       

       끄드득, 쐐애애액-!

       

       불길한 영창과 함께, 고깃덩어리가 배배 꼬인 새빨간 나선 창이 이사악을 향해 쏘아졌습니다. 이사악은 손가락을 까닥여,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거품을 앞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거품에 삼켜진 나선 창은 증발하듯이 사라졌습니다.

       

       [공격이⋯⋯!]

       

       “공간을 도려내는 거품, 공격수단이자 방어 수단이라는 거냐⋯⋯!”

       

       우우웅-!

       

       베네트에게 거품이 날아왔습니다. 돌진으로 거리를 좁히려던 그는, 지면을 삭제시켜 버리는 위협적인 견제에 방향을 꺾어야 했습니다. 

       

       이사악의 주변에 소환된 거품의 수는 셋. 그녀는 두 개를 방어에 쓰고 있고, 하나를 공격용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투사체는 삼켜지고, 접근은 견제당하며, 설령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한 대만 제대로 맞으면 죽어버리는 상황. 

       

       공수일체의 포진을 뚫기 위해서는, 억지로나마 빈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V’ine, N’ihl⋯⋯.”

       

       촤자자작!

       

       이사악의 주변에 뼈와 살로 이루어진 장벽이 여럿 솟아올랐습니다. 시야가 가려져, 베네트와 니오레를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이까짓 주문, 그분의 힘으로 지워버리면 그만⋯⋯!”

       

       이사악은 거품 두 개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켰습니다. 거품에 닿은 장벽이 지우개로 지워지듯이 사라지며, 막힌 시야를 틔웠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 사각에서 베네트가 뛰쳐나갔습니다.

       

       거품 둘은 장애물 제거를 위해서 사용했고, 이사악의 주변에 대기 중인 거품은 하나. 그것이 베네트를 향해 정면으로 쏘아졌습니다.

       

       우우우웅-!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거품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베네트는 차분하게 숨을 골랐습니다.

       

       일반 광신도의 주문에 비해 훨씬 강화된 형태. 패링의 난이도도,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한참이나 높을 것이지만. 해내야 했습니다. 그래야 칼 한 방을 먹여줄 수 있을 테니.

       

       극한의 집중 상태에 들어가자,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습니다.

       

       대기가 거품에 집어삼켜져 빈 공간이 생기니, 빨려드는 듯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거품을 향해 나풀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그녀의 거품이 광신도의 주문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윤곽이 꽤 또렷하다는 것입니다. 반투명하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던 일반 광신도의 주문과는 달리, 공간을 도려내고 있기에 새까맣게 보였습니다.

       

       궤적을 계산하고, 조심스럽게 거품의 단면에 비스듬히 칼을 대었습니다.

       

       베네트의 발치에 뼈다귀가 솟아올라, 니오레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7, 49, 6. 패링의 올바른 위치와 타이밍을 알리는 숫자열.

       

       가까이서 집중하니, 거품이 품은 강대한 힘이 피부가 따갑도록 느껴졌습니다.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지워지리라는 확신.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감각.

       

       긴장은 하되, 당황하지는 않으면서.

       

       “『공간 확장』.”

       

       공간의 틈새에 마법을 밀어 넣었습니다. 잠깐은, 계산대로 거품의 궤적이 꺾이나 했지만.

       

       쩌적, 쩌저적.

       

       공간 확장 마법이 출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직 충분히 궤도를 틀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밀고 들어오면 죽지는 않더라도, 오른팔 정도는 깔끔하게 날아갈 터.

       

       그때.

       

       “『여신을 지키는 들개』⋯⋯!”

       

       약간 부족했던 내구성을, 타라의 마법이 채웠습니다. 개 머리의 형상이 베네트의 칼날 위에 깃들었습니다. 거품과 맞대고, 밀어냅니다. 산을 밀어내는 듯한 막대한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이를 악물고, 호흡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서 롱소드를 뿌리쳐내면.

       

       끼기기기긱──!

       

       기이한 소음과 함께, 거품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타라의 마법이 깨져나가며 금빛 파티클이 흩날렸습니다.

       

       그 너머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이사악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위대하신 분의 권능이, 한낱 인간에 의해 튕겨 나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완전한 무방비.

       

       휘익-!

       

       “지옥으로 떨어져라──!”

       

       베네트의 칼날이 이사악의 어깨부터 골반까지 사선으로 가르고 지나갔습니다. 

       

       “⋯⋯⋯⋯.”

       

       그러나, 베어 가르는 느낌도. 손끝에 걸리는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허공을 통과한 것처럼. 

       

       투웅-!

       

       상황을 파악한 베네트가 한 번 더 이사악을 베려고 할 때, 무형의 충격파가 터져 나와 그를 날려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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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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