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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끼익, 차가 멈추고 약간의 관성력에 루크의 머리칼이 살짝 앞으로 흩어진다.

    루크는 자신의 머리칼을 다시 정리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달칵, 손잡이에 손을 가져간 루크를 보고 예르나는 당부하듯이 말한다.

    “루크, 볼일 끝나면 전화해, 데리러 올테니까.”

    “알겠다. 예르나, 참으로 고맙군.”

    “잘 다녀와.”

    예르나의 배웅에 루크는 씨익 웃으며 차에서 내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

    루크가 연구소를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한 예르나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면서 괜스레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 말도 안돼.”

    10살짜리가 드랙상 후보라니?

    물론 루크의 ‘가설’이 사실로 증명이 되었을때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라움은 결코 깎여나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루는 못하는게 없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어떻게 한 아이가 이토록 다재다능할 수 있는지, 이전엔 그저 굉장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루크 이루시…….”

    어쩌면 루크는 실제로 루크 이루시의 환생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한동안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던 예르나는 고개를 젓고 만다. 예르나는 핸들 위쪽에 이마를 올려두고 중얼거렸다.

    “학대받은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루크 이루시의 환생이라고…….”

    입으로 뱉고나니 더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게 느껴졌다.

    환생같은 비마법적인것을 믿지도 않고, 또 그런 상상을 틀어막는 루크의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만 나면 박스에 들어가서 휴대폰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 

    사진을 찍을때마다 브이자를 만들고, 자주 얼굴을 붉히면서, 항상 고맙다며 잘 웃어주는 그런 아이가…….

    인간같지도 않은 카리스마를 지녔었다고 전해지는 루크 이루시의 환생이라니.

    오늘날, 루크 이루시에 관한 일화는 하나같이 신화적인 이야기만 쓰여져 있었다.

    섬을 만들었다던가, 하늘을 열었다던가, 시공을 주물렀다던가, 차원을 비틀었다던가…….

    어느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까지는, 신이나 다름 없던 전설적인 영웅.

    세계를 내려다보며, 용조차 무릎꿇릴 수 있던 압도적인 존재.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가장 오만했던 마법사가, 지금은 소녀의 모습이라니…….

    “말도 안되지.”

    예르나는 말도안되는 상상에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막말로, 정말 루크가 그 ‘루크 이루시’라면 어쩔건가?

    사실 달라지는것도 없지 않을까?

    루크는 여전히 루크고, 자신은 그런 루크의 보호자일 것이다.

    만약, 루크가 스스로 자신을 떠난다면 몰라도…….

    지금은 그저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좋다.

    그래, 그뿐이다.

    “뭐, 지금은 그걸로 됐어.”

    ———-

    루크는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이 시대의 연구시설은 어떤 형태일까, 마력시는 처음부터 맹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파이는 눈을 반짝거리는 루크의 앞에 나타나 고개를 갸우뚱 하듯이 좌우로 회전한다.

    -루크, 기대돼?

    “그래, 아주 기대되는구나. 너는 기대되지 않느냐?”

    -…… 기대돼!

    루크는 잠깐 파이의 몸을 쓰다듬어 파이의 몸을 이루는 마나의 느낌을 만끽한 뒤,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철컥.

    문을 열자 마자 느껴지는 시선.

    연구원들이 제 갈길을 걷다가도 멈칫, 하고 루크를 구경한다.

    이 타이너 연구소에 10살짜리 아이가 들어오는 것은 결코 흔한일이 아니었으니까.

    개중엔 몇명이 루크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도 했다.

    “저 애가 교수님이 말한?”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어린데.”

    “생각보다 더 귀엽네.”

    그 대화가 잘 안 들렸던 루크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파이와 눈을 맞췄다.

    조금 기다리니 안쪽에서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제임스가 달려왔다.

    “왔구나. 어때, 오는길 헤매진 않았니?”

    제임스는 루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예르나가 데려다 줬으니 헤맬 일이 없었다네. 그나저나, 시설이 참 좋군.”

    “하하, 칭찬 고맙구나.”

    루크와 제임스는 그렇게 악수를 나눴다.

    “다른 연구원들에게 네 소개는 나중에 시간 날때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일단은 내 사무실로 가자. 너도 그게 좋겠지?”

    “단도직입적이라서 좋군.”

    ———

    “듣기로는, 코코아를 좋아한다고.”

    제임스는 루크의 앞에 코코아를 내려놓았다.

    루크를 위해 어제 미리 구매해서 준비해둔 물건이었다.

    “고맙군.”

    루크는 그것을 받아들어 후, 후 불면서 새어올라오는 열기를 식혔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사무실은 적당히 넓었다.

    허나 모든 벽에 책장이 놓여져있고, 그 책장엔 모두 책이 꽂혀있어서 마치 도서관같은 분위기였다.

    제목을 보니 역사서나 마수생물학에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간간히 수학이나 마법에 관한 책도 꽂혀있기는 했지만, 그 빈도수가 훨씬 적었다.

    하지만 모든 책에 공통적으로 여러번 읽었다는 흔적이 남은것으로 보아, 아마도 제임스는 여기있는 책들을 모두 읽어보았을게 분명하다.

    처음부터 중고인 책을 구매한게 아니라면 말이다.

    책장에 시선이 고정되어있던 루크에게 제임스가 말했다.

    “흐음, 무슨 책에 관심이 있나? 저기서 관심 있는게 있다면 빌려주지.”

    “사실은 모든 책에 관심이 있다네.”

    “하하, 전부 빌려주긴 어렵겠네. 들고 갈 수도 없을테고.”

    “뭐, 그렇다면야. ‘3000년, 잊혀진 역사’가 가장 읽고싶은 책이로군. 괜찮겠는가?”

    잊혀진 역사에 관한 내용은 학교 교과서에도 나와있지 않은 것이었다.

    오래전의 이야기들은 모두 역사가 아니라 동화의 형태로만 남아있을 뿐인데, 저 책은 루크가 본 것중에선 가장 오래된 역사를 다루는 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이지. 돌아갈때 가져가라고.”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제임스가 문득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루크가 출판사로 보냈던 자료들이었다.

    “이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역시 단도직입적이군.”

    후룹, 코코아는 아직 뜨거웠다.

    루크는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컵을 입가에서 내리고는 테이블 한켠으로 치웠다.

    앞으로 이어질 대화들은 꽤 길어질 조짐이 보이니, 코코아를 식히는데엔 충분할 것이다.

    ——–

    이야기는 점차 줄어들고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수많은 질문과 의문점, 그리고 자료의 모순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루크는 거침없이 답을 내놓았다.

    ‘과감하고 짜임새있는 추측이로군.’

    제임스는 점점 루크의 설명에 빠져들어가는것을 느꼈다.

    루크가 설명하는 마계는 중간계와는 전혀 다르지만 그럼에도 생물이 살아있을 법한 생태계가 제임스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제임스는 감탄하며 말했다.

    “루크, 확실히 네 추측엔 헛점을 찾기 어렵구나. 틀렸음을 증명할 수 없겠어.”

    하지만 루크는 제임스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잡아냈다.

    “하지만, 반대로 맞음을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게 아닌가.”

    “……그래. 현재 마수학의 가장 큰 걸림돌이 그것이지. 마계 생물학에 대한 추측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것이 문제로군.”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그야 직접 보고 들은 정보다.

    틀릴리가 없는 추측을 말했지만 증명할 수단은 없었다.

    5000년 전에 막힌 마계의 문을 열어버리고 싶다면, 이제는 9서클의 마법사가 되어야할 것이다.

    ‘9서클이라…….’

    루크가 상 한번 받기 어렵구나, 하고 중얼거리자 제임스는 그야 당연하지 않나 하며 맞장구를 쳤다.

    “흐음.”

    루크는 이제 충분히 식은 코코아를 후룹 하고 머금는다.

    역시 코코아는 꽤 맛있는 음료였다.

    그리고 이어서 코코아를 한모금을 목으로 넘긴 후 말한다.

    “헌데, 마계의 생태에 관련된 자료가 어째서 그렇게 부족하지?”

    “3000년 전, ‘잊혀질 전투’탓이지. 그날 이후, 수많은 손실이 있었다. 생명, 자료, 심지어는 ‘기억’까지도.”

    루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까지? 아무래도 그게 일반적인 전투는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대체 누가, 어떤 것과 싸운게지?”

    “그것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잊혀질 전쟁’이라고 불리우는거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니, 우리가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면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혀지지 않겠는가.”

    제임스는 비장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루크는 그런 제임스에게 이상함을 느껴 물었다.

    “잠깐, 그렇다면 저 역사서에는 대체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단 말인가?”

    루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빌려갈까 하고 생각했던 책, ‘3000년, 잊혀진 역사’였다.

    만약 3000년 전, 어떤 원인과 목적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전투 이후 비어버린 자료와 기억을 메꿀길이 없다면, 대체 저 책에는 무슨 내용을 담았다는 말인가?

    “소실된 역사를 다루는거지. 현재 어떤 부분이 비어있고, 어떤 추측이 가장 신빙성 있는지 말이야.”

    “……매우 흥미롭군.”

    루크가 아는 지식은 5000년 전의 것, 그 중간에 관한것은 루크 자신도 알 길은 없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역사가 지워졌을까, 이건 꽤나 호기심이 동한다.

    루크가 곰곰히 생각하는것을 본 제임스는 문득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고는 이크,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시간이 꽤 지났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말았어. 오늘안에 연구자료를 정리해야 했는데.”

    “하고 오게, 나는 기다리고 있겠네.”

    “그래주겠어? 금방 다녀오지.”

    제임스가 문을 나서려고 하자, 루크는 문득 그를 불러세웠다.

    “아, 잠깐 제임스.”

    “뭔가 궁금한게 있나?”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으로 사무실 더욱 깊숙한 곳에 놓여진 괴상한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인장과의 식물이 심어진 화분이었는데, 화분 치고는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한 마력식이 채워져 있었다.

    사실은 중간부터 궁금했지만 대화의 흐름이 끊길까봐 꺼내지 못한 질문이었다.

    “저건 대체 뭐지?”

    “아하. 저건 ‘컴퓨터’야. 집에 없나?”

    “나는 저것을 처음보는군.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고도의 계산을 풀이할때나, 많은 양의 정보를 취합, 분류할때 사용하지. 검색같은걸 할 수도 있고……. 아니, 그런데 요즘같은 시대에 컴퓨터를 모른다니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데.”

    제임스는 볼을 긁었다.

    요즘 컴퓨터가 없는 집이 없을텐데, 어떤 생활을 하면 컴퓨터를 못 보고 사는걸까.

    ‘무슨 기억상실이라도 걸린게 아니고서야…….’

    아니면 ‘보호자’가 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엄한걸까?

    뭐, 아이를 키우는 집에 컴퓨터가 없을수도 있기야 하지만…….

    루크는 제임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지 천진하게 물었다.

    “그 말은……. 저게 계산기나 사서랑 비슷한 거란 말인가?”

    “그건 아니지만……. 흐음……. 처음 본다고하니 설명하기 어려운데. 뭐, 그냥 써보는게 제일 좋겠지.”

    “……내가 만져도 되나?”

    제임스는 루크의 물음에 컴퓨터로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후우웅- 하는 마력 구동음이 들리고, 화분의 선인장으로 마나가 크게 흡수되었다가 빠져나가면서 컴퓨터의 마력회로를 작동시킨다.

    루크는 그 과정을 마력시를 켜고 빠짐없이 살핀다.

    그 모습은 휴대폰이 구동하는것과 비슷했다.

    마석과 코어만을 사용해 작동하는 휴대폰과 달리, 선인장의 부분이 마력회로에 과도한 열기가 모여 손상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모양이다.

    “음, 중요한 자료들은 모두 백업을 해두었으니 괜찮겠지. 그동안 만져봐도 좋아.”

    “정말인가!”

    루크는 순식간에 테이블로 달려가 의자를 빼며 눈을 빛냈다.

    “여기 이 수정구슬을 이용해 조작하는건가?”

    “그래, 그걸로 조작하면 된다. 화면에 검색창을 띄워놨으니, 뭔가 궁금한게 있다면 검색해봐도 좋고.”

    “알려줘서 고맙네!”

    제임스가 자리를 비우고, 루크는 의자에 앉아서 수정구슬에 손을 올렸다.

    “이건 또 색다른 경험이로군.”

    루크는 수정구슬로 미래를 다뤄본 경험은 있지만, 이런 마도기기를 다뤄본 경험은 없었다.

    그 탓에 괜히 가슴이 뛰고만다.

    -…….

    파이는 수정구슬을 보며 그르릉거렸다.

    마치 자신을 닮은 것을 루크가 쓰다듬는것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 같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르나 : 에이, 루크가 그 루크라고? 그건 말이 안되지.

    수정구슬로 조작하는 식물성 컴퓨터!
    선인장은 파워 겸 쿨러입니다.
    근데 식물로 쿨링을 하면 그건 수냉식인가 공냉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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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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