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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즉시 차단, ip영구벤, 그리고 닉네임 최대 8글자 제한 설정까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플루비아얼음물마시고사망한외할머니’를 보내버린 마리엘은 그 길로 시연장을 벗어났다.

        미지에 대한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핏줄에 흐르는 홀크로프트의 긍지는 지금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을 천명하고 있었으니까.

       

        치맛자락을 양 손에 쥔 채 향한 곳은 마탑의 행정부처가 모여있는 플로트 관이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다섯 개로 갈라진 복도가 나타났다.

       

        “연구부, 연구부가 분명히…….”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는 크로네의 운영팀은 연구부 쪽에 캠프를 차린 상태였다.

        이런 대규모 마력장을 상시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에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는 내내 주딱에게 메시지를 보내 항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갤러리에서는 스파이를 잡아야 한다느니, 커뮤니티를 이용하면 배신자라느니 말이 많았지만 뭘 모르는 소리였다.

        배신도 은혜를 모르고 뒤를 쳐야 배신이지 돈은 커녕 24시간 동안 전술핵을 지우던 그녀가 대체 무슨 혜택을 얻었단 말인가.

        주딱의 괴롭힘과 분탕들의 완장 소환술 끝에 손에 쥔 것은 코다리 조림 버튼으로 변모하게 될 포인트가 전부였다.

       

        이렇듯 자유를 위한 투쟁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파딱 직을 유지시키는 그가 더 악질이었다.

        ‘녹슨 부품도 최소 반년은 굴러간다’는 지론을 평소 설파하고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선했다.

       

        ====

        — 초천재금발미소녀 : 지금 당장 그 사악한 가면을 내려놓고 커뮤니티에서 사라지는 것이에요!!

        — 관리자 : 가면이란 가면에 매달리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 초천재금발미소녀 : 저를 그렇게 괴롭혀놓고 어떻게 제 마지막 안식처에까지 흙묻은 발을 들이밀 수가 있어요!!!

        — 관리자 : 분탕은 탈갤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야…….

        — 초천재금발미소녀 : 지금 즐기고 있는 거죠!? 어디서 들은 이상한 대사 지껄이면서 실실 웃고 있죠!!?

        — 관리자 : 언성을, 언성을 그렇게 높이지 마라…….

        — 초천재금발미소녀 : 뇨스ㅏㅔ요ㅡㅇ 드고 바요 내가 반드시……!

        — 관리자 : 느리구나, 차단하는 것조차…….

        ====

       

        열 받는 채팅을 마친 마리엘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부지런하게 시선으로 바닥을 훑었다.

        프로트 관은 각각 치안부, 정보부, 재무부, 연구부, 그리고 생활부로 통하는 길이 나뉘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해당 부처가 궁극으로 표방하는 바를 나타낸 문장이 고대어로 새겨진 상태.

        보안을 위해 주기적으로 구조가 변경되기에 매번 길을 잘 찾아야 했다.

       

        [우리는 마탑을 비추는 등불이다.]

        [전지(全知)를 발판삼아 전능(全能)을 추구한다]

        [한 줌의 금화와 한 줌의 피]

       

        생활부의 것으로 보이는 ‘복도에서 뛰지 마라’는 최근 공사를 다시 한 듯 시멘트로 메꿔지고 ‘이상(異常)은 없다’로 바뀌어 있었다.

       

        “이쪽이군요.”

       

        가장 왼쪽에서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이라는 문장을 찾아낸 마리엘은 지체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한 번 차단당한 주딱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일 뿐, 곧 심심해지면 다시 글을 쓰고자 할 것이다.

       

        어린애 같고 자기 멋대로고 남들 진지할 때 혼자 장난기 가득한데다 악의는 없어도 일을 망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다른 이들의 정체나 숨겨둔 비밀 같은 걸 아무렇지 않게 까발리는 주제에 정작 자신은 숨기고 있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순간 클락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운영팀이 머무는 회의실의 팻말을 확인하자 곧 잊혀졌다.

       

        문을 열고 들어간 마리엘은 가장 앞에 앉아있는 마법사에게 책자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 당장 이 글을 작성한 책자의 일련번호를 조회해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에요.”

        “이 아이디 말입니까? 특별히 정지 사유에 해당하는 글을 쓴 흔적은 없습니다만…….”

        “잠자코 조회하는 것이에요! 시스템 보안 부서는 어느쪽이죠?”

        “바로 옆입니다. 근데 이걸 다 크로네 님께서 허락하신 건가요?”

       

        의구심이 담긴 시선을 무시하고 옆 파티션으로 넘어간 마리엘은 인증절차를 추가해 보안을 강화하고 시연장에 모인 이들의 인적사항까지 따놓으라고 지시했다.

        추가로 공지에 ‘모든 종류의 분탕질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문구도 적어 두었다.

        아직 커뮤니티의 활성화 단계는 매우 낮은 편이고 책자 역시 많이 배포되지 않은 상황.

        제 아무리 주딱이라도 꼬리가 잡힐 게 두려워 쉽게 분탕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예 유동 아이디 자체를 금지해야겠어요. 학파와 위계를 인증한 이들만 글을 쓸 수 있게 하면 보다 전문성이…….”

        “저, 자문위원 님? 말씀하신 사항 확인했습니다.”

        “정말인가요? 어디죠!?”

       

        설마 주딱의 정체를 알아낸 건가?

        그도 자신이 관장하는 갤러리 밖에서라면 한낱 인간임이 까발려지는 것일까?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가간 마리엘에게 운영팀 직원은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바로 이 회의실인데요?”

        “네?”

       

       

       

        *

       

        “자, 여기 그때 만들었던 노트랑 똑같은 사양으로 바꿔놨어. 이걸로 그분의 부탁은 더 없는 거지?”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클로에에게 VPN이 탑재된 책자를 건네 받았다.

        관리자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그녀는 부리나케 별장에서 뛰쳐나와 도움을 주었다.

        그 대가로 주딱에게 전해들은 것이라며 옛날 용 사냥 썰들을 몇 개 풀어주었으니 서로에게 도움되는 거래인 셈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있었다.

       

        “참, 복귀는 언제쯤 하시나요?”

        “극채색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왜, 의장님이 나 찾아?”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연구부 쪽에서도 완전히 손 떼셨다고 들어서요. 이번 학회에서 이 연구를 발표할 때 메릴린 동상을 가져다 쓰던데 혹시 이유를 아시나요?”

       

        마리엘과 만났던 날 밤, 멜과 함께 4대 불가사의 중 마지막 하나인 메릴린 동상을 보러 갔으나 창고에서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 크로네 팀의 시연장에 서 있는 것을 조금 전 보고 온 것이었다.

        굳이 메릴랜드 관에서 엡실론 관까지 동상을 옮긴 이유가 궁금했다.

        의외로 클로에는 태연하게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 그거? 그 동상, 제작할 당시 무슨 마법적 처리라도 했는지 대규모 마력장이 둘러져 있거든.”

        “마력장(魔力場)이요?”

        “마력의 고유한 파장을 마력흔이라고 하잖아? 그게 좀 더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건데…… 뭐, 말하자면 선대가 남긴 유산 같은 거지.”

       

        원소 중 뇌전을 다루는 칼레이도스 학파의 창시자인 메릴린의 마력흔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물건이라고 한다.

        칼레이도스 학파 측에서 88층의 천섬(天閃)으로 옮기려 했으나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마력장은 주인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적어도 해를 끼치진 않는다는 걸 확인했어. 아마 그쪽에서 전파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던 게 아닐까?”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었나요? 밤마다 혼자 움직인다든가.”

        “글쎄, 몇 차례 조사는 했던 모양인데 위험했으면 진작 폐기됐겠지. 아무튼 용건 끝났으면 이만 가, 난 조금 전 들은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해야 하니까.”

        “여긴 제 방인데요.”

       

        나는 클로에의 축객령에 역으로 사감실에서 나오며 어그로성 글을 몇 가지 작성했다.

        차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활개칠 수 있게 되어서인지 사고회로가 빠릿하게 돌아갔다.

       

        ++++

        <마탑이 탑인 게 왜 상식이야……?>

        <메테오 색깔 논란 파검 vs 흰금>

        <마탑주 고양이 근황.jpg>

        <물샤워가 그렇게 더러워?>

       

        .

        .

        .

       

        ++++

       

        도저히 누르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는 게시글의 제목과 댓글창을 불태우기 딱 좋은 내용.

        예상대로 조회수가 폭주하며 커뮤니티가 빠르게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생각보다 그 효과가 크지 않음을 확인하고 침음을 흘렸다.

       

        “흐음…….”

       

        평소였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분탕을 칠 수 있었겠지만 역시 유입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갤러리 유저들의 반감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 외부의 존재에 배타적인 법이니까.

        엡실론 관에서 책자를 나눠주고 있다는 소식이 이미 전해졌음에도 굳이 커뮤니티를 찍먹해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봤자 금방 시시해지기 마련.

        그 사실을 깨달은 마리엘 역시 의미없는 글삭과 차단 대신 내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어 회유하기 시작했다.

       

        ++++

        — 초천재자문위원 : 이제 놀만큼 놀았죠? 그만 원래 묻혀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 험한것 : 싫어

        — 초천재자문위원 : 여긴 아무도 관심 안 가지는 유령 게시판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아무리 방해해봤자 황실의 지원을 받고 홀크로프트의 명성을 되찾는 건 이미 반쯤 정해진 일인 것이에요

        — 밑에묻혀있던더험 : 나는 포기 안 해

        ++++

       

        그런 사악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니!

        비나의 얼음물을 대상으로 올려놓기 위해 지금껏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 입장에서 마리엘의 선언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

        — 초천재자문위원 : 제 아무리 물고기라도 물이 없는 곳에서 헤엄칠 수는 없기 마련

        — 초천재자문위원 : 결국 저의 승리인 것이와요

        — 초천재자문위원 : 이와요이와요~

        ++++

       

        한껏 기고만장해져 요상한 아가씨 말투를 뽐내는 그녀의 정수리에 지금이라도 비나의 롤케익을 떨어뜨리고 싶었다.

        분탕의 왕을 이 정도까지 몰아 붙이다니.

        이제는 나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주딱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되면 마리엘한테 물려줘야겠군.’

       

        허나 아직 무르다.

        나는 고민 끝에 갤러리에 공지를 하나 작성했다.

       

        단숨에 커뮤니티의 유입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학회에서의 평판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

       

        ====

        관리자

        [저희 가게 문 닫습니다]

       

        옆집을 이용해주세요

        ====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건 내 몫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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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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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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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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