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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분명히 별장에서 한 시간 정도는 있을 거라고 했는데.

       

       황급히 시간을 확인해보았지만, 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렸다고 한들 그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나지는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어? 분명히 한 시간 뒤에 온다고···.”

       

       “그걸 믿었니?”

       

       “···뭐?”

       

       “아무리 짐이 있다고는 해도, 한 시간이나 걸리지는 않죠. 시간은 조금 걸려도.”

       

       

       싱글벙글 웃는 아멜리아와 도로시의 웃음을 보며 눈치챘다.

       

       이 녀석들, 다 보고 있었구나.

       

       

       “그래서, 어땠어? 즐거웠어?”

       

       “···.”

       

       “응? 어때? 아르테의 살결을 만진 감상은? 응? 응?”

       

       

       배신감이 치솟았다.

       

       아멜리아는 그렇다 쳐.

       

       맨날 터무니없는 계획을 내세우고 그걸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아멜리아는 뭐, 오늘도 시작이구나 하며 넘길 수 있었는데.

       

       설마 도로시마저 가담했었다니.

       

       그 덕에 정말 한 시간이나 걸릴 거라고 속아버렸다.

       

       

       “도로시, 너마저···!”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만···.”

       

       

       결국 도로시도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란 말인가.

       

       가끔 도로시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감수성이 뛰어나구나, 싶었는데.

       

       설마 그 감수성을 이런 곳에다가 사용하다니.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신경 쓰는 게 너무 재미있었는걸요.”

       

       “그치?”

       

       “···.”

       

       

       근묵자흑이라고 했던가.

       

       도로시도 어느새 아멜리아에게 물들어 버린 게 아닐까?

       

       로맨스를 좋아하는 기색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멜리아를 만나 그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강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결국 어땠는데?”

       

       “뭐가.”

       

       “아르테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좀 예쁘거든? 남정네가 그걸 가까이에서, 맨손으로 만지작거렸는데 아무 일 없었을 리가 없어!”

       

       “아무 일 없었는데?”

       

       “거짓말 마! 우리가 멀리서 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너 흥분했지?!”

       

       “안 했어.”

       

       “···정말?”

       

       

       거짓말이다.

       

       남자가 그런 걸 보고, 만지고, 귀여운 비명을 듣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멀쩡하겠는가.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고충이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야, 아멜리아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가라앉았으니까.

       

       의심스럽게 바라봐도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아무리 예쁘게 생겼으면 뭐 해.

       

       아멜리아인데.

       

       덕분에 거짓말을 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이상하다. 너, 기능에 장애는 없지? 있으면 안 되는데···.”

       

       “멀쩡하거든?!”

       

       “흐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멜리아에게 기가 찼다.

       

       이 년은 내가 남자고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제정신이 박혀있다면 내게 이런 말을 할 리가···.

       

       아, 아멜리아는 제정신이 아니었지.

       

       순식간에 납득했다.

       

       

       “···뭐야, 그 눈은. 불쾌한데.”

       

       “아무것도 아냐. 그래서? 들고 온 거, 그건 뭐야? 먹을 거랑 음료수라기에는 좀 많은데.”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는 아멜리아를 무시하고 화제를 넘겼다.

       

       입학했을 무렵의 나였다면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어림도 없다.

       

       아멜리아에게 익숙해진 내게 저 정도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니지.

       

       

       “좋은 질문이에요!”

       

       

       좋은 질문을 들었다는 듯, 도로시가 들고 온 짐을 잔뜩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오, 맛있어 보이는데.”

       

       “그치? 그래도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응?”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고기들 사이에 숨어있는 채소 약간.

       

       아무리 봐도 아멜리아가 준비한 듯한, 그녀의 취향이 묻어나오는 바비큐 재료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역시 고기가 좋지, 하며 군침을 다시는 사이 열리는 두 번째 상자.

       

       그 안의 내용물을 보고서 나는 잔뜩 당황했다.

       

       

       “···술?”

       

       “히, 역시 여행에는 술이 제격 아닐까?”

       

       “아니, 뭐···. 그렇기는 한데.”

       

       

       도로시가 들고 온 짐의 내용물에는 수많은 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색깔과 모양이 다 제각각인 것을 보아 다 다른 술이겠지.

       

       얼추 봐도 병이 수십 가지는 되어 보였다.

       

       

       “···이걸 다 먹게?”

       

       “미쳤어?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칵테일 만들 때 쓸 거야.”

       

       “만들어 본 적은 있고?”

       

       “걱정하지 마. 대충은 만들 줄 아니까.”

       

       

       아멜리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슬슬 해도 저물겠다, 저녁 먹어야지? 바닷가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하는 파티, 어때?”

       

       “히, 재밌을 것 같아요.”

       

       

       행복한 듯 웃어 보이는 두 명의 모습을 뒤로한 채로, 바닷가 한가운데에 둥둥 떠다니는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멜리아가 사용하던 튜브를 뺏어서는 그 위에 올라타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느긋해 보이는 그 모습에 살짝 미소 지으며 외쳤다.

       

       

       “아르테! 저녁 먹자! 빨리 와!”

       

       

       

       ***

       

       

       

       치이이이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고기와 꼬치구이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가님이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으으윽···. 배, 배고파···. 저는 왜 이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글쎄.

       

       불만이라면 직접 내려와서 먹으면 되겠지.

       

       진짜로 내려온다면 한 대 때려주겠지만.

       

       애초에 내려올 수는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멜리아는 생각보다 아는 게 많네요.”

       

       “생각보다?”

       

       “아뇨, 그게···.”

       

       

       능숙하게 지거로 계량을 한 뒤 셰이커에 넣고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꽤 본격적인 모습이었다.

       

       

       “아, 이거? 할아범한테 좀 배웠어. 멋있어 보이길래.”

       

       “···네 그 집사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뭐, 이상한 사람은 아니야. 그냥 아는 게 남들보다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남들보다 많은 할아범이지.”

       

       

       흔들리는 셰이커 안에 담긴 얼음이 시끄럽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운치 있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바빴어.”

       

       “아, 라이오넬 씨가 네 부모님이었지.”

       

       “내 또래 애들한테 그런 말 들으니 좀 어색하네. 뭐, 맞아. 유명한 사람이니까 하루하루가 바빴거든.”

       

       

       흔들리던 셰이커가 멈추고, 이내 역삼각형 모양의 잔에 셰이커에 담긴 술이 따라졌다.

       

       네 잔의 술이 잔에 담기고, 아멜리아는 썰어둔 라임을 장식으로 꽂은 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할아범은 그래서 고용된 사람이야. 아빠보다 더 익숙할 정도라니까?”

       

       “가족이나 다름없겠구나.”

       

       “그래. 사실 고용관계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지. 나도 할아범도, 이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마티니 글라스에 담긴 술을 한잔 들이켰다.

       

       설탕을 넣어서일까? 살짝 느껴지는 단맛.

       

       그리고 그와 함께 올라오는 라임의 상큼함과 럼 특유의 맛.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어때?”

       

       “맛있네요.”

       

       “다행이네. 남한테 대접해본 건 처음이었거든.”

       

       “어째서?”

       

       “···만들어 줄 친구가 없었으니까.”

       

       

       또 술을 한입 머금자, 이번에는 새콤달콤했던 술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씁쓸한 재료는 들어가 있지 않았을 텐데도, 쓰디쓴 약을 먹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으음···. 내가 좀 잘났잖아?”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건가요···.”

       

       “아, 왜. 도로시. 사실이잖아.”

       

       “···뭐, 객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긴 해.”

       

       

       잘난 집안에, 히로인으로 선정될 만큼 예쁜 외모.

       

       아멜리아가 자기 입으로 말하고, 시우가 말했듯이 그녀는 잘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음···. 조금, 질투를 받는 일이 많았거든.”

       

       “···.”

       

       “친구라고 할 법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음···. 내 외모, 집안. 그런 걸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었지.”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분위기에 취해, 술기운에 취해 느긋하게 말하는 저 이야기는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겉으로만 친구일 뿐, 정말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은 없었어.”

       

       

       저 이야기 또한 알고 있었다.

       

       작가님이 설정한 이야기니까. 내가 작가님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니까.

       

       

       “그래서···뭐, 이런 걸 만들어줄 사람은 없었지. 학생 때 다들 일탈 한 번씩은 해본다고 하길래 열심히 배웠었는데.”

       

       

       성인이 되기 전에 어른 몰래 친구들이랑 술을 먹어보는 게 꿈이었다며 아멜리아는 웃었다.

       

       예전의 자신이 부끄럽다는 듯.

       

       

       “할아범도 어릴 때 그런 경험 한 번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이라 쉽게 배울 수 있었고. 뭐, 결국 쓰지는 못했어.”

       

       “···그렇구나.”

       

       “평생 배우기만 하고 써먹을 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홀짝이던 술을 한꺼번에 마신 그녀가,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너희들이랑 만나고 꿈을 이뤘네!”

       

       “···반쪽뿐이지만. 우린 이미 성인이잖아.”

       

       “에이, 뭘 그래! 해봤으면 된 거 아냐?”

       

       “그래요. 다행이네요.”

       

       

       다들 기분 좋다는 듯 웃기에 따라 웃었다.

       

       ···그래, 그랬지.

       

       작가님이 말하길, 아멜리아는 어렸을 적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다.

       

       그랬기에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는 설정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었다.

       

       작가님이 말한 그대로다. 작가님의 설정 그대로야.

       

       아멜리아는 어렸을 적 친구가 없었고, 그렇기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원했어.

       

       ···하지만, 과연 그 과정마저 작가님이 정했을까?

       

       아멜리아는 친구를 원했고, 그랬기에 집사 할아버지에게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아멜리아는 부잣집 따님이라는 설정도 있었지.

       

       그렇기에 유명한 영웅인 아버지를 두게 되었고, 그렇기에 시간이 부족한 아버지를 대신에 길러준 집사 할아버지가 생겼다.

       

       그리고 그 모든 설정이 모여, 아멜리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칵테일을 만들어주며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과연 아멜리아가 칵테일을 만들 줄 안다는 설정을 작가님이 해두었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나는 회의적이었다.

       

       

       “···맛있네요. 한 잔 더 주실 수 있나요?”

       

       “응? 좋아! 바텐더 아멜리아 님의 실력이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네에. 부탁드려요, 바텐더님.”

       

       “맡겨줘!”

       

       

       즐거운 듯 다시 얼음을 퍼 셰이커에 담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을 인형극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죽였던 건 모두 정말 사람이고, 이곳은 그저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몰라.

       

       그저 그들은 작가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된 사람일 수도.

       

       아니면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 죽어 마땅한 빌런일지도 모른다.

       

       

       “자, 여기!”

       

       “고마워요.”

       

       

       나는 취기 어린 눈동자로 잔에 담긴 술을 바라보았다.

       

       설탕의 단맛, 라임의 상큼한 맛, 럼 특유의 맛이 뒤섞여 새로운 맛을 자아내는 칵테일.

       

       작가님은 그저 완성된 칵테일에 자몽 조금을 더 추가해 맛에 변주를 주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모르겠다.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멜리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던 설정 탓일까?

       

       술을 다시 한번 머금었다.

       

       과연 내가 그녀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머금은 술에서는 알코올 향이 짙게 머물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탕, 럼, 라임이 들어가는 술을 고르시오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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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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