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떠하오? 좀 바뀌었소?”
딸랑 –
욱신.
이번엔 온몸이 아파 왔다.
저리고 쑤시고 난리도 아니었다.
확실한 건 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것.
도대체 몇 사람들이 죽음을 피한 건지….
“확실히 신관들이 언데드에 강하긴 한가 보네요. 지금까지중에 제일 괜찮아요.”
“그럼 교단이 선봉을 서는 것에 이견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오.”
“제가 뒤를 바치도록 하지요. 후미에서 붙어 가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노르딘 백작의 상태는 아직 위험했다.
이걸 말해 줘도 백작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네.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법이지.”
씁쓸한 웃음.
그런데도 백작의 어깨는 당당하게 펴져 있었다.
“…전 다른 사람들 점도 봐주러 갈게요. 참, 복채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다들 주셔야 해요.”
“이미 이야기는 들었네. 그것을 주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지? 내 다 모아서 전달하도록 하겠네.”
나는 천천히 돌아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알루어드 역시 회의에 참여할 생각인지 밖으로 나온 사람은 나와 세레나, 루나뿐이었다.
“세레나는 내 옆에 꼭 붙어 있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신관들부터 시작하자.”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성기사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뒤에서 문이 열렸다.
“백작님?”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노르딘 백작이었다.
“자네,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했는가?”
“네, 맞아요.”
내 대답에 백작이 다행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죽어본 적이 없어서 말일세. 영혼이 되어도 말을 할 수 있는가?”
“영혼끼리는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산 사람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는 힘들어요.”
“그렇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백작이 턱을 매만졌다.
“잘 기억해주시게.”
백작이 돌연 오른팔을 하늘로 쭉 뻗어 올렸다.
“동작이 크니 멀리서도 볼 수 있을 것이네. 이렇게 오른팔을 들면 그대로 공격하라는 뜻이네.”
“예?”
이번에는 왼팔이 하늘로 올라가서 좌우로 흔들렸다.
“이건 동작을 조금 추가했네. 지금의 모습이 보이면 무조건 퇴각하시게.”
“….”
백작이 다시 양팔을 동시에 흔들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일세.”
“…백작님 설마?”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와서 이런 것을 왜 물어보겠는가?
교단에서 선봉을 맡았음에도 백작의 상태가 그대로인 것은 본인이 죽기로 마음먹어서 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백작이 하는 말은 내 생각대로였다.
“내가 죽게 된다면, 영혼인 상태로 산에 오를 것이네.”
“….”
“정찰을 맡도록 하지.”
“지금은 영혼들이 뭔가에 홀려 있어요. 백작님도 그럴 가능성이 커요.”
“그리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잘 기억해 두시게나.”
그 이후로 몇 가지 신호를 더 알려주고서야 백작이 떠나갔다.
“하….”
나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아까 정신을 깨워주었던 어르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이지만 절대로 산에 올라가시면 안 돼요.”
– ……..
“저기로 갔다가는 영혼이 타락 할 수도 있어요. 위로는 해드릴 수 있지만, 타락해 버리면 병 안에 갇혀 있어야 해요. 벌써 한분 계시거든요?”
– …..
“알아들으신거 맞죠?”
내가 봤을 때는 이 어르신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죽어서도 싸우려고 저러고 있을까.
싸움에 미친 영혼이면 말도 안 한다.
저게 다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행동들이란 말이다.
“어르신들이 죄다 고집불통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신당뒤에 있는 묘지의 어르신들까지.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은지….
이러니까 조상신들이 후손들을 보살피겠답시고 고생하는 것이다.
“거기 성기사님들 전부 이리로 와보세요.”
“저희들 말씀입니까?”
“일단 돈 가진 거 있으면 성의껏 꺼내 봐요. 최소 5쿠퍼 부터 최대 5실버까지.”
“….돈을요?”
주섬주섬.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돈을 꺼내기는 하는 기사들.
“동종업계 분들은 선불이라서 이해해주세요. 거기 다섯분은 안 오셔도 괜찮아요.”
전부 다 보려면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단위의 인원인데 이걸 어떻게 다 본다는 말인가.
딱 봐도 큰일 날것 같은 사람들만 추려야 했다.
딸랑 –
“기사님은 내일 다리 조심하세요. 웬만하면 동료분들과 붙어 다니시고요.”
“예! 감사합니다!”
“거기 기사님은, 내일을 잘 넘겨야 해요. 인생이 꼬이는 수가 있어. 이리 와 보세요.”
“예…예!!”
인생이 꼬인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기사.
나는 품속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 손에 쥐여주었다.
“액막이 부적이에요. 뭔가 충동적인 생각이 들 때 그거 딱 잡고 마음을 가라앉혀요.”
“감사합니다!”
“거기 사제님은 턱이 전부 날아갈거에요.”
흠칫.
사제가 몸을 굳히는 게 느껴졌지만 내 머릿속에 지나간 장면이 더 충격적이라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턱이 뜯겨서 죽을 사람이라니.
“어디 갑옷이라도 구해서 입고 가요.”
그 옆에 있는 기사는 또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뿜어내는 빛은 찬란하지만 노력을 이상하게 한 사람.
“기사님은 기도 연습만 하셨나요?”
“그걸 어떻게…!”
“기사의 팔자를 타고났으면 검을 휘두르기는 해야 했는데…”
팔자에 맞는 직업을 가졌으면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하는 법이다.
삶 자체가 그렇게 흘러갈텐데 흘러가는 대로 노를 저어야 편하지 않겠는가.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반드시 힘든 고비가 찾아온다.
바로 이렇게.
“검술 수련을 게을리해서 문제가 생기겠네요. 이건 단기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적극적으로 싸우지 마세요.”
“…옙!”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의 점을 봐줬다.
생각보다 불길한 점괘가 많았다.
엘프를 불렀음에도 불에 타죽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교단을 지나 일반 병사들까지.
성 밖으로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도 포함이었다.
거기다 전체적인 점괘에 관한 공수까지 받으니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후… 굿판 한번 벌린것처럼 피곤하네…”
“괜찮으시겠어요?”
세레나가 안절부절하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무당팔자가 다 이런 거지.
“코피 안난 게 다행이야.”
예전이었다면 쌍코피가 줄줄 흘렀을 것이다.
그동안 나름 경지가 깊어졌기에 망정이지.
“출정준비는 끝났다네. 엘프만 오면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하네.”
“영감님.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 오셨어요.”
옆으로 다가온 파라몬 영감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자네는 언제나 고생만 하는군.”
지금은 고생이고 뭐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출발은 바로 해야 해요.”
“엘프의 합류 없이 말인가?”
“같이 가면 불하고 관련된 것들이 전부 사라지기는 하는데, 그만큼 죽는 사람이 늘어요.”
내 예상으로는 엘프들을 확인한 저들이 계획을 바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전히 산봉우리와 관련되면 공수가 내려오지 않아서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한테서 발견된 공통점이예요.”
“가도록 하지. 대형만 갖춰지면 바로 출발할 수 있네.”
영감의 말대로 대다수의 병력들이 이미 성밖으로 나가 있었다.
만약을 대비한 최소한의 인원만이 성벽 위에 올라 있을 뿐.
성문을 나가서도 한참을 걸어서야 겨우 선두에 있는 대열에 합류 할 수 있었다.
“성검을 받으시오.”
지휘관급의 인물들이 모두 선두에 나와 병사 들과 마주 보고 섰다.
내가 있을 자리일까 싶었지만, 나 역시 함께 서 있었고.
“성검은 어떻게 쓸 계획이시오?”
“…”
“크리스 도령?”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광경이 참 복잡했기 때문이다.
넘실거리는 액운들.
그 밑으로 갈아 앉은 감정들.
루나 역시 비슷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조용히 등 뒤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스님?”
알루어드가 나에게 다가오려다 멈춰 서는 게 보였다.
아니, 느껴졌다.
움찔.
저 멀리서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제법 나를 닮아 있었다.
굿을 하는것처럼 양팔을 흔드는 것 같기도 했다.
세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지가 흔들리고 있어요.”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
가지가 흔들리며 나에게 힘을 줬던 일을.
푸석푸석해졌던 내 정신이 또렷함을 찾아갔다.
천기를 누설하며 받았던 피로들도 깔끔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우우웅 –
“서…성검이…”
알루어드의 목소리와 함께 파라몬 영감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크게 소리를 치는 것을 보니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것 같았다.
우우웅 –
성검이 떠는 소리에 루나가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들었다.
“하부?”
이윽고, 나무를 향해 고개를 돌린 루나가 공기를 내뱉으며 입술을 떨었다.
푸르르.
“비가 오려나 보네.”
아기가 투레질하면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다.
어떻게 흘러갈 일인지는 몰라도 기꺼운 일이다.
루나가 등에 바짝 붙으며 뭐라 말을 했다.
“자우우!”
“성검 좀 주시겠어요?”
하얀 천에 감싸여 있는 성검.
천을 풀어내자 서늘한 검신이 드러났다.
“도움을 받으려고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줄은 몰랐네.”
성검을 쥐자마자 씻겨내려가는 피로들.
나무도 성검도 더없이 호의적이었다.
“땅에 박을 필요도 없겠네.”
양팔을 좌우로 쭉 뻗었다.
성검과 방울의 머리가 하늘로 향하도록.
휘릭 –
자연스럽게 회전하는 몸.
성검이 사방을 향해 신성력을 흩뿌렸다.
번쩍 –
세상이 빙글 돌아가며 어지럽게 흩어지는 성검과 방울의 잔상들.
지나다니는 잔상들 사이로 다른 것들이 보였다.
산 곳곳에 언데드들이 모여 있었다.
이상하게 뭉쳐져 있는 마나들도 느껴졌다.
시기 또한 지금이 적기였다.
바로 출발하면 딱 좋을 시간대.
우뚝.
몸을 멈춰 세우니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넋이 나가 있던 영혼들도 깨어난 듯했다.
“….도령이 또 일을 낸 듯 하오. 성검에서 이런 빛이라니.”
“자네…”
무언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파라몬 영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바로 출발해야 해요.”
“미리 말해주지 그랬나… 내 나름 정성을 들인 연설이었거늘…”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