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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무, 뭘 보는 건가요?!”

         

       진성이 자신의 가슴께를 쳐다보며 헛웃음을 터뜨리자 엘라는 무엇을 오해한 것인지 가슴을 양손으로 가리면서 몸을 확 옆으로 비틀었다. 그러더니 부끄러움과 수치를 각각 절반씩 담아서 그를 노려보았다.

         

       “숙녀의 가슴을 뚫어질 듯 쳐다보다니! 과년한 처녀에게 그런 성희롱을 하다니요!”

         

       그녀는 화가 난 듯 크게 소리쳤다.

         

       진성은 그녀의 분노 섞인 말에 반응하는 대신, 어이가 없다는 듯, 안쓰럽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서 주술에 당해서 온 겁니까?”

       “네?”

         

       화를 내려던 엘라는 주술을 묻혀서 들어왔냐는 진성의 타박에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주술을…? 제가 주술에 당했다고요?”

         

       약간의 불안감이 담긴 듯 묻는 엘라를 보며 진성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슬쩍 미간을 찌푸렸으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끔찍하군요.”

         

       그는 엘라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빼앗더니 그녀의 앞에 가져다 댔다.

         

       “일단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을 해드려야겠군요.”

       “네, 네?”

       “지금 프라우 빈터가 봤다고 하는 문양은 말입니다. 크롬 크루어히의 인신공양 문양입니다. 과거 켈트 문화권에서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할 때 사용했던 문양이라 이 말이에요.”

       “네?!”

         

       진성은 안쓰럽다는 듯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엘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프라우 빈터는 그 사악한 주술사, 그래요. 프라우 빈터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그 점술사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이미 제물로 낙점이 된 상황이고, 아마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조만간 잡혀서 인신공양의 재료로 사용이 되겠지요.”

       “네?”

         

       엘라는 진성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혹은 이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계속해서 되물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듯 양손으로 그녀의 볼을 꽉 부여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엘라는 본능적으로 진성의 양손 안에서 뭉개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원상복구 하기 위해 뒤로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의 손아귀가 바이스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에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는 진성과 시선을 마주한 채, 그의 단호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집중해주세요! 프라우 빈터! 당신이 지금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그는 한참이나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가 이해했다는 듯 뭉개진 발음으로 알았다고 말을 꺼내고 나서야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볼에 손자국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얼굴에 제 손을 가져다 대고 연신 문질렀지만, 진성은 그녀가 외형에 신경을 쓰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프라우 빈터. 저는 당신이 지금 이 일을, 당신에게 닥친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인지는 빠르게. 한시라도 빠르게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당신이라는 제물을 확보하기 위해 그 점술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당신이 스스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만큼 좋은 호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는 단호하게.

       그리고 걱정스럽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그런 사악한 점술사에게 잡혀서 제물로 생을 마감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것을 인지해주십시오. 그리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제 여동생이자 당신의 친구인 이아린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간곡하게 자신을 설득하려는 진성의 태도에 엘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슬쩍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는, 손을 뻗어서 멍하니 얼굴에 올리고 있는 손 하나를 내려서 자신의 양손 안에 가두었다.

       갑작스럽게 남자에게 손을 잡힌 엘라는 느껴지는 온기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이내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제가 어려 보여도 주술에 대한 지식은 꽤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그 점술사가 하려는 인신공양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고,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수작을 분쇄할 방법도 있으니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네? 아, 알았어요….”

       “하지만 제가 지켜드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결국, 그 점술사를 찾아서 붙잡지 않으면 소용이 없겠지요. 제아무리 열심히 방어한다고 한들, 한 번 공격당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진성은 손에 살짝 힘을 주어 온기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제 설명을 잘 들어주십시오.”

         

       진성은 진지한 얼굴로 다시 엘라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주었다.

       

       “이, 이해했어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심각하다는 것만은 이해했답니다.”

       

       그녀가 자신의 설명을 어느정도 이해한 듯 보이자 진성은 결론을 짓듯 단호하게 말했다.

         

       “미숙한 우리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전문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그러해야만 합니다.”

       “그렇…겠죠?”

       “그렇습니다.”

         

       엘라는 진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떨까요?”

         

       잠시간의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나름의 해결책.

       하지만 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네? 어째서요?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는 유능한 교사도 잔뜩 있고, 경비업체랑도 계약이 되어있어요. 게다가 믿지 않는다니요. 집안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무시도 못할 텐데요.”

         

       엘라의 의문은 당연하였다.

         

       그냥 학교라면 사건이 일어나면 묻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을 지닌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는 그렇게 묻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당연히 최우선으로 처리해줄 수밖에 없었고.

         

       엘라의 생각으로는 학교에 위험하다고, 점술사에게 노려지고 있다고 말하면 그녀를 보호해줄 사람들이 파견을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바로 상식이었으니까.

         

       어쩌면 엘라의 생각은 맞았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나 무인, 범죄자.

       심지어는 암살자한테 노려진다고 한들, 학교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줬으리라.

       그리고 그 보호는 성공적으로 끝났겠지.

         

       하지만 이번에 그녀를 노리는 것은 그런 상식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람마다 그 기술의 형태나 힘이 다르고, 기인 취급을 받는 주술사다.

       주술, 그것도 흑주술에 속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그녀가 인의 장막에 틀어박혀 있던 마법이 떡칠이 된 벙커에 처박혀 있든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애초에 진성이 회귀 전에 용병 생활을 하면서 허구한 날 하던 것이 암살 의뢰였으니, 목표 하나 죽이는 것은 닭 모가지 비트는 것처럼 쉽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주술사인 것이 문제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계속 저주를 날리면 강한 무인이 얼마가 있던, 마법사가 얼마가 있던 의미가 없을 테지요.”

       “하지만 그 정도는 액막이 부적이나 마법으로….”

       “되겠지요. 주물(呪物)이나 아티팩트(Artifact)를 이용한다면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학교 측이 멍청하지 않은 이상 당연히 그런 물건들도 꽤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되겠습니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지간한 건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신공양을 하고 다니는 미친 주술사가 작정하고 계속 저주를 건다면 그걸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주물과 아티팩트는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을 지켜보다가 방심하고 있을 때, 혹은 프라우 빈터가 착용하고 있는 물건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할 때 저주를 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커다란 대가를 감수하고 흑주술 의식을 행하면 그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장담컨대 조금이라도 효과가 들어가는 순간, 프라우 빈터의 인생에 먹구름이 낄겁니다.”

         

       진성은 담담하게 그렇게 읊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듯, 네가 인지해야 할 사실이라는 듯이.

         

       엘라는 가만히 자신이 유학을 온 학교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우리 학교에, 주술사가 있던가?’

         

       없다.

         

       ‘경비업체에는…?’

         

       없다.

         

       진성은 고민하는 그녀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왜 그리 고민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라우 빈터. 당신의 스승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그런 쉬운 해결책 대신에 자신을 위험에 던지는, 불확실한 방법을 계속해서 선택하려 하는 겁니까?”

       “…스승님이요? 스승님은 지금 연락이 안 되고, 다른 사람은 연락이 되기는 하는데….”

         

       엘라는 약간 망설였다.

         

       “싸우기라도 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껄끄럽기라도 한 걸까요? 프라우 빈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철천지원수가 아닌 이상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란 말입니다. 지금 당신의 목숨이 걸려있어요. 당신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후우.”

         

       엘라는 진성의 호통을 듣고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가 몇 번 갔을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무슨 일이냐? ]

         

       젊은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대마녀님, 저 엘라에요….”

       [ 그래. 안다. 나를 스마트폰도 쓰지 못하는 머저리로 보는 게냐? 네 이름 정도는 읽을 수 있다. ]

       “그게, 스승님과 연락을 하고 싶은데….”

       [ 쯧. 아주 오랜만에 너 같은 짐 덩어리와 떨어져서 휴가를 즐기고 있을 네 스승하고 연락하고 싶다고? 그렇게 유학을 가고 싶다고, 러시아에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는 질렸나 보구나? 왜, 힘들다고 찡찡거리기라도 할 테냐? 너는 항상 그랬지. 진득하니 뭔가에 집중할 줄 모르고 꼭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는, 금방 질려서는 네 스승에게 졸라대고는 했어. ]

         

       목소리는 빈말로라도 호의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 그나마 유학이라도 갔으니 성장을 했으리라 기대를 했건만. 결국,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전화를 하다니. 비싼 돈 들여서 보내줬더니 나에게 주는 것이 이런 실망인 게냐?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너는 내 제자의 유일한 오점이자 실수일지도 모르겠구나. ]

       “그….”

       [ 쯧쯧쯧. 염치라도 있으면 죄송하다고 끊을 것이지. 무슨 부탁이 있다고. ]

       “제가.”

       [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돈이면 다 되는 거 아니냐? 넉넉하게 보낼 테니까 연락할 생각 마라. 네가 유학에서 돌아오는 날은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그 전에는 너를 생각도 하고 싶지 않구나. ]

         

       진성은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폭력적인 언어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 참으로 인연이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언젠가 카니발로 죽였던 진상과 연이 있었다니.’

         

       놀랍게도 저 목소리는 진성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그가 졸부라면 학을 떼게 만든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으며,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진상짓을 일삼아서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처리한 사람이기도 했다.

         

       진성은 쩔쩔매는 엘라에게 다가가 그대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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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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