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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76화. 출정 ( 1 )

       

       

       

       

       

       삑 삑 삑 삑, 삐리릭~

       

       

       공기가 싸늘해지고 해가 점점 짧아지는 것이 느껴지는 퇴근길. 도어락을 누르며 으슬하게 달라붙는 냉기를 털어내듯,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바깥보다는 따뜻하지만, 조금 서늘한 집 안의 공기가 나를 반긴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지친 몸을 달랬다.

       

       

       솨아아ㅡ

       

       

       머리부터 적시며 온몸을 나른하게 덥히는 온수가 흘러내린다. 잠시 눈을 감고 짧은 여유를 만끽했다. 퇴근 후 느껴지는 나른함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말리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익숙한 동작으로 배달 어플을 켜며 음식을 둘러본다. 평소라면 직접 요리를 해 먹지만… 오늘은 유독 노곤한 것이, 푹 쉬고 싶은 날이다.

       

       

       “… 아, 게임.”

       

       

       중얼거리며 게임을 켠다. 한스에게 ‘용기의 룬’을 무려 6시간이나 써가며 각인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뭔 효과가 있는지만 봐야지.”

       

       

       화면에 거대한 신전이 나타나고, 곧장 ‘세계탐험’ 모드로 향했다. 피곤함과 온수의 나른함에 절여진 머리가 약간 몽롱하니, 졸음이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빠밤ㅡ!

       

       

       《모험가, 한스. ‘낡은 롱소드(F 등급)’에 ‘용기의 룬’이 각인 되었습니다!’》

       

       《용기의 룬 : 소유자가 상태 이상에서 빠르게 회복합니다. 체력이 낮을수록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애매한데? 첫인상은 진짜 애매하다는 생각이었다. 상태 이상이라고 해봤자… 스턴 말고 뭐가 있나 싶기도 했고, 체력이 낮아질수록 공격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아마 광전사 컨셉의 룬이었던 모양인데, 케니스 같은 성기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각인해준다면 야만 전사인 프리가에게 해주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으ㅡ 다른 룬들은 이름에서 효과가 대충 보이니까 다행이네.”

       

       

       효과를 확인했으니 더 이상 볼 일은 없다.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 몸을 맡긴다.

       

       푹신한 침대가 몸을 빨아들이는 듯 하다. 점차 흐려지는 시야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아, 옷이라도 입어야 하는데… 볼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나…’

       

       

       실없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수마에 몸을 실었다.

       

       

       

       

       

              * * * *

       

       

       

       

       

       한스는 떨리는 손으로 이글거리는 용암처럼 빛나는 글자를 훑었다. 이 신비하고 기묘한 글자가 바로, 신께서 직접 만든 문자…

       

       

       “신성하고 거룩하기 그지없군요.”

       

       

       한스의 옆에서 지켜보던 데모닉이 짤막한 소감을 뱉었다.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데모닉의 눈은 이글거리는 글자를 향하고 있었다.

       

       

       “후… 이제 내 할 일은 끝이요. 앞으로 잘 쓰시고, 나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으니 이제 나가주쇼.”

       

       

       애덤의 축객령. 한스와 데모닉은 고개를 끄덕였다. 엿새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그의 망치질과 열정, 기술에 경의를 표하며 둘은 대장간을 나섰다.

       

       한스와 데모닉이 대장간을 나가자마자, 우르르 몰려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고!! 스승님 얼굴이 반쪽이 되셨네!!”

       

       – “어흑, 자리를 지키지 못한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 “이, 이 모지리들!! 방금 나간 손님들은 엿새 동안 열기를 견디셨는데!! 대장장이라는 놈들이 뭐? 너무 뜨거워? 뜨거워어?!”

       

       와장창ㅡ!

       

       – “으악!! 악!! 스승님 망치로 때리면 진짜 죽습니다악!!”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한스와 데모닉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뭔지는 몰라도 저 소란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만신전의 앞에 도착하자, 데모닉이 한스를 돌아봤다.

       

       

       “한스 님,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숙소로 돌아가서 푹 쉬시면 됩니다.”

       

       “아이고, 예예. 고생하셨습니다!”

       

       “별로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만.”

       

       

       엿새 동안 대장간에서 먹고 자면서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데모닉은 매몰차게 작별 인사를 건내고는 휙 돌아섰다.

       아마 곧장 복귀했음을 신고하고, 그의 숙소에서 근신하게 될 것이다.

       

       

       “음… 그러면 나도 가서 좀 쉴까?”

       

       

       엿새 동안 딱딱한 대장간의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더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한스는 곧장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꽤 오랜 시간 방치된 한스의 작은 숙소는 누군가 관리를 했는지 먼지 하나 없었다.

       

       

       촤아아악ㅡ

       

       

       “어흐ㅡ 이제 좀 살겠네.”

       

       

       시원한 물로 묵은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깨끗한 솜을 채운 침대에 몸을 실었다. 농부, 모험가로 지낼 때는 지푸라기를 채운 침대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솜 침대에서 자는 인생이면 성공한 것이다.

       

       

       “이게 인생이지.”

       

       

       천장을 바라보며 한스가 중얼거렸다. 

       

       

       쾅 쾅!

       

       – “이봐, 아직 준비 안 끝났어? 얼른 나와! 이제 곧 집합이야!”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킨 한스. 집합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벌컥 문을 열자 커다란 짐을 짊어진 누군가 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옷과 투구를 쓰고, 허리춤에 검을 찬 모습이 당장이라도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뭐야, 아직 하나도 준비를 못 했어? 집합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아니,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는 이제 막 씻고 일어나서ㅡ”

       

       “이거야 원! 칠칠치 못한 친구였네! 이제 막 일어나면 어쩌나!”

       

       

       사내는 한스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멋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 전날에 훈련을 열심히 했으면 그럴 수 있지! 나도 어젯밤에 설레어서 잠이 안 왔거든! 달밤에 땀 좀 흘리고 나면 잠이 잘 오긴 해!”

       

       “예?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는 방금 막 복ㅡ”

       

       “걱정하지 말게, 친구! 우리가 누군가! 가족 같은 사도 부대 아닌가! 우리가 금방 도와줄 테니, 친구는 내려가서 갑옷부터 입도록 하게!”

       

       “예? 어? 어어ㅡ?”

       

       “이봐! 여기 밤늦게까지 훈련하다가 지금 일어난 친구가 있어! 어서 모여서 도와주자고!”

       

       “뭐? 크헤헤, 그런 성실한 친구를 가만히 둘 수는 없지.”

       

       “크큭… 너처럼 성실한 녀석은 내려가서 방어구나 입는 게 딱이야…”

       

       끼익 쾅ㅡ!

       

       “어?”

       

       

       우르르 몰려든 사내들에게 떠밀려 방에서 쫓겨난 한스.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 그 사내와 같이 완전 무장에 커다란 짐까지 짊어낸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뭔…’

       

       

       이제 좀 씻고 편하게 자나 싶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이! 거기 너! 아직 갑옷도 안 입고 뭐 하는 거야!”

       

       “… 예?”

       

       “얼빠진 녀석!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냐!”

       

       

       대뜸 다가온 근육질의 대머리가 한스에게 큰소리쳤다. 한스는 영문도 모르고 잔뜩 움츠러들었다.

       

       

       “이런 덜떨어진 녀석! 당장 따라와! 갑옷부터 입어!”

       

       

       대머리는 정신 못 차리는 한스를 이끌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척 척 척!

       

       

       한스에게 튼튼한 갑옷이 입혀졌다.

       

       

       차착!

       

       

       머리에 잘 손질된 투구도 씌워졌다.

       

       

       ‘어…?’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한스는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 그들 모두가 한스처럼 통일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여긴 어디…?’

       

       

       하루종일 걷다가, 해가 지면 평탄한 곳에 임시 숙소를 만들고 잔다. 일어나면 밥을 먹고 다시 걷는다. 그리고 다시 잔다.

       

       

       ‘나는 도대체 왜…?’

       

       

       주변에 물어보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ㅡ

       

       

       – “우리의 영광스러운 의무를 행하러 가는 거지!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친구!”

       

       – “모르는 건가…? 그렇군, 아직 너는 모르나. 그런가…”

       

       – “여섯 번째 신께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전장으로 부르신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록타ㅡ! 아, 록타는 사투리니까 신경 쓰지 말게.”

       

       

       하나같이 나사 빠진 대답들. 그나마 신의 이름으로 출정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게 뭔…”

       

       

       한스는 당장 탈주하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퍼진 것인지 항상 한스를 지켜보는 이들이 존재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지금도 저 멀리 모여서 한스를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 “저 친구가 그… 부대에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 맞지?”

       

       – “그래. 아직 적응도 못 했는데, 이번에 급하게 출정하게 됐다더라. 많이 힘들 거야.”

       

       –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지켜보면서 잘 챙겨주자고.”

       

       – “그럼 그럼! 우리는 신께 사명을 받은 가족들 아니겠어? 함께 잘 보살펴주자고!”

       

       

       실상은 신입을 챙겨주려는 마음 따뜻한 이들이었지만, 한스는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만 좀 훔쳐봐…!’

       

       

       부담스러운 시선에 한스는 터벅터벅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짐을 뒤적거렸다. 어차피 도망은 글렀다.

       

       적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자기의 몸은 알아서 지켜야 하는 법.

       

       두툼한 짐가방에서 단검을 꺼내 나무의 잔가지를 툭툭 잘라냈다. 그리고 풀썩 주저앉아서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갈기 시작한다.

       

       그리 위협적인 무기는 아니지만,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법. 한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호신 무기인 셈이다.

       

       

       사각사각

       

       

       구석에 앉아서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갈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서 한스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기서 뭐 하세요?”

       

       

       춤추는 불꽃처럼 화려한 머리칼, 태양을 머금은 듯 화사한 눈동자. 선택받은 용사, 케니스였다.

       

       

       “어? 아? 요, 용사님?”

       

       “한스 씨, 여기서 혼자 뭐 하세요?”

       

       

       갑작스레 다가온 케니스의 질문에 당황한 한스가 허둥지둥 나뭇가지를 숨겼다. 하지만 용사의 동체시력은 이미 모든 걸 본 지 오래.

       

       

       “나뭇가지? 나뭇가지를 갈고 계신 거예요?”

       

       “… 예. 혹시나 쓸 곳이 생길까 싶어서.”

       

       

       괜스레 부끄러워진 한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케니스가 잠시 갸웃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나뭇가지를 한 움큼 들고 왔다.

       

       그러고는 옆에 주저앉더니, 한스를 따라서 나뭇가지를 슥슥 갈기 시작했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는 좋은 거죠.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한참을 침묵 속에서 나뭇가지 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의 소리가 둘의 주변을 에워쌌다.

       

       

       “어? 아니, 이게 왜 안 되지?”

       

       

       뭔가 잘 안되는 모양인지, 끙끙거리는 케니스. 가는 족족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진다. 보다 못한 한스가 옆에서 거들었다.

       

       

       “용사님. 그 나뭇가지는 오솔오솔 나무인 것 같은데요? 오솔오솔 나무는 속이 비어있는 나무라서, 가는 건 힘드실 겁니다.”

       

       “아ㅡ 이 나무가 속이 빈 나무예요?”

       

       “예. 그래서 그냥 장작으로 쓰죠. 속이 빈 나무라 바람 불면 덜덜 떤다고 해서 오솔오솔 나무라고 많이 부릅니다.”

       

       “와. 처음 알았어요! 한스 씨는 이런 걸 어떻게 알고 계세요?”

       

       “저야 뭐… 태생이 농부인지라 겨울철에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도 캐고, 아버지 따라 산도 돌아다니고 했습죠.”

       

       

       한스는 제법 날카로워진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천으로 감싸서 주머니에 챙겼다. 아버지와 함께 흰겨울 뿔토끼를 잡던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신은 사도라는 것이 되었다.

       

       

       ‘아버지는 잘 지내시려나…’

       

       

       한겨울에도 웃통을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던 분이다. 알아서 잘 지내고 계시리라.

       

       잠시 상념에 빠진 한스를 깨우는 케니스.

       

       

       “있잖아요…”

       

       “예?”

       

       “사실 한스 씨랑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어, 예?! 저랑요?”

       

       

       화들짝 놀란 한스가 케니스를 돌아봤다. 기분 탓인지 어둠 속으로 옅게 달아오른 케니스의 뺨이 보이는 듯했다.

       부끄러운지 낮게 시선을 내린 케니스의 눈동자가 힐끔힐끔 한스를 올려다본다.

       

       저 멀리서 타오르는 모닥불이, 케니스의 눈에도 있는 듯 반짝인다.

       

       

       ‘손녀 이름은 루시라고 짓고, 집은 작은 오두막 정도가 좋으려나?’

       

       

       그 순간, 한스는 머릿속으로 손녀의 이름까지 계획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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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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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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