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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컷! 이것으로 2차 팀 경연을 마치겠습니다! 모든 참가자 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봐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났다는 신PD의 컷 사인과 함께 나는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세트장 밖으로 나왔다.

         

       “아…, 벌써 밤이네.”

         

       아침에 시작했던 촬영이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벌써 늦은 밤이었다.

         

       날이 풀린 지 꽤 됐음에도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조금 으슬으슬했다.

         

       추위를 가시려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키니 옆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예린아!”

         

       “아…, 언니.”

         

       이혜정이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조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이번 주도 수고 많았어, 예린아.”

         

       “네, 언니도 수고 많으셨어요. 무대 잘 봤어요. 완전 찢어 놓으셨던데요?”

         

       “에이, 뭘….”

         

       내가 지금 이혜정에게 한 말은 절대로 빈말이 아니었다.

         

       이혜정이 속한 5팀은 오늘 2차 팀 경연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대를 선보였으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메인보컬이자 리더인 이혜정이 있었다.

         

       그녀의 시원한 고음과 프로라 해도 믿을 정도로 손색 없었던 애드립은 경연이 끝난 지금도 아른거릴 정도였다.

         

       분명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과 제작진 그리고 관객들도 오늘 이혜정의 모습을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했을 터.

         

       이런 사실을 스스로도 조금 알고 있는지 이혜정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예린이 너도 오늘 완전 무대를 뒤집어 놨잖아. 어쩜 우리 예린이는 매주마다 고점을 갱신하는 거야?”

         

       “제가 좀…, 잘나서요.”

         

       “뭐? 푸핫.”

         

       “크큭.”

         

       이혜정과 나는 이제 이 정도 농담은 스스럼없이 나눌 정도의 사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하 웃으며 고생 많았던 이번 2차 팀 경연의 여운을 함께 나눴다.

         

       그리고….

         

       “근데…, 예린아. 유진이는….”

         

       “…….”

         

       이혜정이 곧 표정을 어둡게 하더니 서유진에 대해 운을 띄었다.

         

       “…괜찮을까? 오늘 일…, 분명히 타격이 있을 텐데.”

         

       “…….”

         

       원래도 사람에 대해 정이 많은 이혜정이다. 심지어 이혜정은 서유진과 함께 1차 팀 경연도 함께 했으니 더욱 걱정이 되는 듯싶었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별 수 없죠, 뭐. 제작진 쪽에서 알아서 편집 잘 해주길 바라는 수 밖에.”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다 잘 될 거예요, 언니.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괜찮겠지? 하아…, 그래, 알았어. 예린아 나는 먼저 가 볼게.”

         

       이혜정은 애써 표정을 돌리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음 주에 보자.”

         

       “네, 다음 주에 봬요. 그리고 다음 주에는 저희 같이 팀하죠.”

         

       “오호, 1위 참가자께서 같이 팀하자고 하면 저야 영광이죠~”

         

       “아, 언니.”

         

       “흐흐, 그래, 다음에 팀 하자. 그럼 안녕!”

         

       그렇게 이혜정은 부모님 차로 추정되는 차를 타고 세트장을 떠났다.

         

       그때 마침…, 강형만에게서 안쪽 주차장에 차를 댔다는 문자가 날라왔다.

         

       ‘오늘도 오셨구나.’

         

       나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강형만의 문자를 보고 씨익 웃으며 인적이 드문 안쪽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유진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

         

       누군가 호되게 꾸짖는 소리에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숨겼다.

         

       고개를 빼꼼하는 동시에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확인하니 그곳에는 총 4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선은 서유진 그리고 그녀 양옆에는 중년과 노년 사이 나이대의 한 부부가 보인다.

         

       ‘저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부부는 유진이네 부모님인가. 그러면 그 앞에는….’

         

       그리고 서유진 가족 앞에 있는 사람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무척 큰 여잔데 캐주얼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답답한 듯 붉어진 얼굴로 서유진에게 일갈했다.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거기에 사람이 몇 명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자의 꾸중이 이어지자 서유진이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실장님…! 제가 다 설명했잖아요…! 근데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잘못한 건 제가 아니라 그 언니….”

         

       아무래도 여자는 SAV엔터 직원이었나보다. 실장…, 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거 보면 제법 높은 사람인 것도 같고.

         

       아무튼 서유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 굴자 실장이 성이 난 듯 빼액 소리쳤다.

         

       “이게 진짜 정신을 못 차리고!”

         

       “우으….”

         

       이에 서유진이 놀라 움츠리자 서유진 양쪽에 있던 그녀의 부모가 일제히 서유진을 껴안았다.

         

       “실장님…, 저희 애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좋게 타일러 주실 수 없을까요?”

         

       “어머님, 아버님…! 하아….”

         

       서유진의 부모까지 그녀를 두둔하자 실장이 답답했는지 자기 가슴을 두어 번 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그냥 쉽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번 일로 유진이 아이돌 인생이 아예 끝날 수도 있어요.”

         

       “…그, 그 정도로 큰일이라고요?”

         

       “…우선은 제가 큰일이 되지 않게 제작진 쪽과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유진이 일주일 동안 인터넷 못하게 해주세요. 그냥 일주일 동안 폰을 뺏으면 더 좋고요.”

         

       “포, 폰 뺏으면…, 싫은데….”

         

       “서유진-!”

         

       실장은 다시 발걸음을 세트장 내로 향하기 전 서유진을 보고 경고하듯 한마디를 남겼다.

         

       “노래 잘하고 춤만 잘 춘다고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 같니? 아이돌 되려면 평생 대중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해. 근데 너는…!”

         

       “…….”

         

       “하아…, 아니다. 이건 먼저 파악 못한 우리 잘못이다. …우선은 돌아가서 쉬고. 내일 회사에서 보자.”

         

       “…네에.”

         

       서유진이 기죽은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실장이 서유진의 부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아버님. 유진이 케어 잘 해주시고…, 먼저 들어가 보세요. 저는 지금 나아아 제작진들 좀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네, 실장님. 죄송합니다. 괜히 저희 유진이때문에 고생하셔서….”

         

       “…아닙니다. 그럼 이만.”

         

       실장은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뛰듯이 나아아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신PD를 만나러 가는 듯했다.

         

       서유진네 부모님들은 그런 실장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유진아, 일주일간 고생 많았지?”

         

       자동 반사처럼 서유진을 꼬옥 끌어안았다. 서유진도 익숙하게 자신의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아….”

         

       “실장님이 다 잘 처리해 주실 거야. 다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 응? 우리 어서 집 가자. 여보, 운전.”

         

       “응, 얼른 집에 가자. 유진아, 혹시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빠가 집 가면서 다 사줄게.”

         

       그렇게 화목해 보이는 세 가족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아아 세트장을 떠났다.

         

       ‘서유진네 집도 부자라더니….’

         

       심지어는 가족 분위기도 좋은가보다. 정말 우리 가족과는 정반대의 가족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다가 나는 SAV 실장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SAV 쪽에서는 이미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듯싶다.

         

       어떻게든 제작진 쪽에 로비해서 상황을 무마시키려 하는 것 같은데…, 과연 가능할까.

         

       ‘뭐가 어찌 됐든 잘 됐으면 좋겠네.’

         

       나는 서유진을 향한 걱정에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짐을 챙겼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혹여 강형만이 기다릴라 얼른 주차장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린아.”

         

       “…사장님.”

         

       이제는 익숙하게 나를 기다리는 강형만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보는 것과 동시에 반가움을 느끼며 달려갔다.

         

       하지만….

         

       “……엇.”

         

       강형만이 타고 온 검은 세단.

         

       그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캐리어를 싣고 올라타려는 누군가를 보고 나는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린아? 어디 가는….”

         

       “죄송해요, 사장님. 잠시 얘기 좀 하고 올게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동안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겠지.

         

       이에 나는 몸을 날려 차에 타려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언니.”

         

       “…뭐야.”

         

       내게 손목이 붙잡힌 유 설이 피곤하다는 기색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저랑 얘기 좀 해요.”

         

       “…….”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의 유 설은…, 늘 그렇듯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

         

         

         

       그래도 다행히 유 설은 내 대화에 응해 주었고 우리는 자리를 주차장 구석으로 옮겼다.

         

       “뭔진 몰라도 빨리 용건만 말해, 피곤하니까.”

         

       “…….”

         

       고된 촬영으로 피곤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유 설과 사족을 붙여 잡담을 할 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기도 하고…, 이에 나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이번 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 짠 거예요?”

         

       “……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의 참사가 단순히 서유진의 평소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나는 확신했다.

         

       ‘흑화’라는 추가 특성을 지닌 유 설이 오늘 일의 배후라는 것을.

         

       아픈 척 일부러 연습을 참가하지 않아 무대 퀄리티를 낮추고.

         

       팀원들이 실수할 부분에서 개입할 준비를 마치고.

         

       단순한 서유진을 살살 긁어 말실수를 유발한 것까지.

         

       내가 대충 파악한 정황만 이 정도였다.

         

       분명히 유 설은 지난 일주일간 치밀하게 오늘의 일을 설계하고 계획했을 터.

         

       이런 생각이 내 눈빛에 담겨 있었는지 유 설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 설마 오늘 걔 바보같은 짓을 한 게 다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이유야 많았다.

         

       “그래야 언니 개인 득표수가 많아지니까요.”

         

       “…….”

         

       내부를 결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

         

       오늘 일이 방송에 나가면 유 설과 서유진의 버즈량이 올라가게 될 거고 두 사람은 상반된 여론의 반응을 맞이할 것이다.

         

       서유진이 욕을 먹으면 먹을 수록…, 유 설에게는 더 플러스 효과가 나겠지.

         

       “…언니가 얼마나 간절한지는 알겠어요. 근데….”

         

       “…….”

         

       “…그게 그 어린 애를 희생시키기까지 해서 얻어야 하는 거예요? 유진이도…, 언니랑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연습생인데.”

         

       내가 그리 말하는 동안 유 설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

         

       이에…, 나도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본론을 전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 없도록 하죠.”

         

       그랬더니….

         

       “…오늘같은 일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언니한테도.”

         

       “하, 진짜…, 하아.”

         

       유 설이 내 말을 끊고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어느 거센 칼바람보다도 차가웠다.

         

       “예린아, 뭐 정의의 사도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거니? 착한 아이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게 아니라.”

         

       “근데 이번엔 좀 더 알아보고 말하지 그랬니.”

         

       “…예?”

         

       유 설은 그 말이 끝냄과 동시에 메고 있던 에코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가슴에 내던졌다.

         

       툭.

         

       “…이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나는 순간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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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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