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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쮜이이익!”

       “쮜익!”

       

       진형을 갖춘 크랫들이 우르르 덤벼들었지만.

       

       “쀼! 쀼! 쀼! 쀼!”

       

       아르의 입 앞에서 기관총처럼 발사된 불덩이에 맞은 크랫들은 차례로 나가 떨어질 뿐이었다. 

       

       “쮜이이!”

       “그래, 올 줄 알았다. 이 녀석아.”

       

       촤악!

       

       아르가 불을 뿜는 사이에 몰래 땅을 파고 들어와 나타난 크랫은 내가 맡아 단검으로 처리했다. 

       

       열 마리는 족히 되는 크랫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거나 새까맣게 타 움직이지 못했다. 

       

       “쀼웃!”

       

       입 앞에서 나는 연기를 조그만 손으로 휙, 치운 아르가 칭찬을 기다리는 듯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래, 그래. 역시 우리 아르가 최고라니까.”

       “쀼!”

       

       나는 아르의 머리와 빵실한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르는 눈을 감은 채 내 손에 얼굴을 부볐다. 

       

       ‘하아, 진짜 너무 귀엽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드래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10년 동안 레키온 사가에서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레키온 사가 인생의 절반 수준이 아니라 그냥 전체를 다 손해 본 거 같은데.’

       

       나는 아르의 턱을 좀 더 긁어 준 뒤에야 일어나 좀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뽈뽈뽈.

       

       ‘따라오는 것도 귀여워 죽겠네.’

       

       아르가 ‘아르두 레온이랑 가치 옆에서 걸어 갈래!’라고 하기에 어깨에 얹는 대신 걸어서 따라오게 내버려 뒀더니 내 걸음에 맞추려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뽈뽈뽈 따라오고 있었다. 

       

       “아르야, 힘들지 않아?”

       “우응! 난 갠차나! 맨날 레온 어깨에 이쓰면 레온도 무거우니까 걸어서 따라갈래!”

       “나는 아르 하나도 안 무거운데?”

       

       아무래도 내가 이번에 크랫 던전까지 오느라 험준한 산을 아르를 데리고 넘는 동안 힘들어한 게 마음에 걸린 모양.

       

       ‘내 걱정까지 해 주다니, 기특해라.’

       

       하지만 그때는 사실 아르가 없었어도 힘들었을 거고, 평소에는 한쪽 어깨에 오래 올라가 있으면 좀 뻐근해지는 정도라 괜찮았다.

       

       내가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자 아르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는지 덧붙였다. 

       

       “그래두, 레온 맨날 열씨미 수련하니깐 아르두 열씨미 움직일 고야!”

       “그럼 걸어가다가 힘들면 바로 말해야 된다?”

       “알게써! 지금은 갠차나!”

       

       뽈뽈뽈.

       

       아르가 씩씩하게 잘 따라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티 나지 않게 조금 보폭을 줄여 천천히 걸었다. 

       

       대신 주변 지형을 살피며 길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일단 첫 갈래길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큰 길로 가는 게 맞아.’

       

       캐머해릴 쪽에 있는 이 크랫 던전은 요번이 처음이지만, 지금껏 레키온 사가를 하면서 다른 지역에 있는 크랫 던전은 수도 없이 많이 가 봤다. 

       

       ‘크랫이 파 놓은 던전끼리는 구조가 다 대동소이하지.’

       

       덕분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크랫이 나올 때마다 아르와 내가 마법과 단검술의 합작으로 크랫들을 간단히 물리치고 다시 전진하기를 반복하자, 우리는 어느새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그곳은 학교 체육관보다 좀 넓은 크기의 방이었는데, 크랫들이 대기하고 있긴 했지만 특별히 덩치가 더 큰 보스급 크랫은 보이지 않았다. 

       

       ‘보스가 따로 없는 던전인가? 아니면 실비아 씨 쪽에 보스가 있는 걸 수도 있고.’

       

       보스 경험치를 못 먹게 되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의뢰 품목인 펜던트를 찾는 것. 

       

       “쀼! 쀼! 쀼! 쀼!”

       “하아압!”

       

       방 안의 크랫들을 정리한 우리는 안쪽에 놓여 있는 석판 쪽으로 다가갔다. 

       

       보통 이 자리에는 보물상자 같은 게 놓여 있어야 하지만, 어디서 주워 오지 않은 이상 크랫들에게 쇠로 된 튼튼한 보물상자를 만들 능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석판을 치우면….’

       

       드르르륵.

       

       “오오!”

       

       석판 밑, 크랫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는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모아 온 반짝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엇, 저건가?”

       “쀼!”

       

       나는 섞여 있는 물건들 중 목걸이로 보이는 걸 발견하고 바로 꺼내 들었다. 

       

       “이거 맞는 거 같은데?”

       

       꼬마가 말했던 대로, 펜던트를 열어 보니 안쪽에는 마법으로 인화해 놓은 듯한 한 여성과 꼬마의 사진이 있었다. 

       

       ‘이거 마법 인화 서비스 겁나 비싼 건데.’

       

       당연하지만 이 세계에는 사진기라는 게 따로 없다. 

       다만, 마법으로 염료를 아주 세밀하게 다루어서 자신이 본 풍경이나 인물을 거의 사실에 가깝게 종이나 직물에 그려 내는 서비스는 존재했다. 

       

       ‘사진에 가까운 초상화나 풍경화 그리기 같은 느낌이지.’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충분한 연습을 통해 거의 사진 수준으로 그려 내는 게 충분히 가능하지만, 실제로 이 연습을 하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마법사란 사람들은 대부분 더 높은 경지에 올라 강력한 마법을 쓰고 싶어하지, 그런 서비스직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니까.’

       

       재능이 별로 없어서 성장이 더디고 일찍 한계에 부딪힌 마법사들은 인화 서비스라도 하며 돈을 벌고 싶어할지 모르겠으나, 애초에 그런 마법사는 해상도 높은 인화 서비스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한테 맡길 바에야 초상화 그리는 화가한테 맡기고 말 테니, 수요가 없을 수밖에.’

       

       하지만 인화 서비스를 맡길 정도의 실력이 되는 사람들은 반대로 그런 서비스 ‘따위’는 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달성하고자 하니, 이 서비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돈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기에, 돈이 된다는 걸 안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익명으로 인화 서비스 부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건 맞지만 여전히 비싼 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펜던트에 들어갈 작은 사진인데도 선명하게 꼬마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라면, 진짜 돈 좀 들였겠는데.’

       

       이런 사진은 객관적으로는 금전적인 가치가 별로 없기에 의뢰 계약서에 써 있는 품목의 물품 가액이 낮게 책정된다. 

       

       ‘하지만 이 꼬마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인화하는 값보다도 더 가치 있는 물건이겠지.’

       

       나는 여러 모로 펜던트를 찾았음에 감사하며, 펜던트에 그려진 지금보다 더 어린 꼬마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아, 아침에 바떤 꼬마가 목걸이 안에 이써!”

       

       어느새 내 옆에 꼬옥 붙은 아르가 신기한 듯 동그래진 눈으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푸흣. 꼬마라니….’

       

       따지고 보면 꼬마 쪽이 우리 꼬마 해츨링보다 나이는 훨씬 많은데.

       

       “아르는 사진을 처음 보는구나. 이게 뭐냐면….”

       

       나는 인화 서비스에 대해 아르에게 설명해 주었고, 아르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내 설명을 들었다. 

       

       “싱기해! 구럼 여기 있는 사람이 꼬마 엄마인 고야?”

       “그런 것 같네.”

       “사이 조아 보여! 아르도 레온이랑 실비아 온니랑 가치 사진 찍고 시퍼!”

       “좋지. 근데 아마 캐머해릴에는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야. 보통 대도시에나 가야 있거든. 그것도 소문 통해서 알음알음 찾아야 되고.”

       

       사진을 찍어 줄 정도로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고상하신 분들이라 자기가 이런 부업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하니까.

       

       “우응….”

       

       아르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곧 다시 나를 올려다 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럼 아르가 사진 배울래! 구러면 찍고 시플 때 마음대로 사진 찌글 수 이짜나!”

       “아르 네가 직접?”

       “우응! 마법으루 하는 거자나. 아르 마법으로 하는 거는 자신 이써!”

       

       그야 드래곤이니까 자신이 있긴 할 텐데.

       

       아무리 그래도 사진 인화 같은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누구한테 배우지 않고서야….

       

       [사역마 ‘아르젠테’가 「이해」, 「습득」, 「응용」 특성을 힘껏 발휘했습니다!]

       [스킬 「인화」를 습득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응?

       

       “쀼우!”

       

       아르는 곧바로 내 발밑의 흙바닥을 보며 영창했고.

        

       스스스스스—

       

       흙바닥에 있던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아르의 마력에 반응해 차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그리고 잠시 후, 꽤나 고해상도의 내 얼굴이 흙바닥 위에서 완성되었다. 

       

       색깔을 표현할 만한 염료는 없었지만, 고운 흙 알갱이의 밀도를 통해 명암을 조절해 마치 갈색 연필로 실사급 초상화를 그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와…. 이건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이게 되지?

       

       눈앞에서 또 한 번 ‘진짜 재능’을 목격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때? 아르가 레온 사진 찍어 바써! 아직 색깔은 업찌만….”

       

       아르가 기대 반 걱정 반 섞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쩔어.”

       “우응?”

       “진짜 대단해. 아르야. 이 정도면 조금만 연습하고 염료만 구해다 놓으면 바로 아르가 원하는 사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대답에 아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지짜? 헤헤헤, 아르 열씨미 연습해 보께! 레온이랑 실비아 온니랑 가치 사진 찍자!”

       “그래. 꼭 그러자.”

       

       인화 스킬에 셀카 모드 같은 건 없을 테니, 거대한 전신 거울 같은 거 하나 구해서 나랑 실비아 씨랑 레온이랑 포즈 딱 잡고 아르가 그 모습을 그대로 인화하면 될 거다. 

       

       재료야 돈 주고 사면 되는 거고.

       

       “그럼 펜던트를 챙겼으니 의뢰는 이걸로 완료됐고. 아, 신호 보내 놔야지.”

       

       나는 반지에 마력을 두 번 흘려 보내 실비아에게 신호를 보내 놓고, 여전히 내 사진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는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머지는 뭐, 잡동사니들인 것 같으니….”

       

       펜던트 말고도 뭔가 쓸 만한 게 있나 싶어서 뒤적거리다가 슬슬 일어나려는 순간. 

       

       “어?”

       

       바닥에 닿은 내 손끝에 뭔가 딱딱한 게 걸렸다.

       

       “석판이 하나 더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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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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