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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시간이 흘러 약속했던 도게자 백작가와 미팅하는 날이 되었다. 

         

       “공녀님,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내 부름에 낮잠을 자던 프란체가 눈을 부비적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헬레나를 불러주렴.”

       “예.”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대기하고 있던 헬레나와 마주했다. 그런데…….

         

       “헬레…….”

       “히익!”

         

       아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나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도망친다. 나는 재빠르게 헬레나의 손목을 붙잡아 세웠다.

         

       “아니, 저번부터 계속 도망치는 이유가 뭔데?”

         

       이유를 묻자 시선을 피하는 헬레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공녀님이 무슨 말 하셨어?”

         

       내 물음에 그제야 삐걱거리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덜덜 떨고 있는 건 여전했다.

         

       “그, 그게…….”

       “뭔데? 말해봐.”

       “비밀이에요. 죄송해요…….”

         

       뭐지, 진짜 프란체의 말대로 그냥 내가 싫어졌던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공녀님이 부르시니까 들어가 봐.”

         

       헬레나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뒤 방안으로 들어섰다.

         

       “…….”

         

       왜 저러는 걸까…….

         

       마음 속에 생긴 상처를 잊으려 고개를 젖혔다. 멍하니 서서 천장의 패턴을 분석하고 있자니, 프란체가 나왔다.

         

       “가자.”

       “예.”

         

       그렇게 프란체와 같이 공작저를 나오고,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덜컹.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프란체가 물었다.

         

       “오늘 얘기하고, 도장만 찍으면 바로 시작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탑 건설과 동시에 마석 사업이 시작되겠구나.”

       “맞습니다. 마석 광산의 위치는 알고 있으니 엑시드에 맡겨서 매입만 하면 될 겁니다.”

         

       마석을 이용하는 사업은 꽤 나중이 될 테지만, 마탑이 완성되고 마법사들만 모으면 금방 해결될 문제다.

         

       남은 건 시간과의 싸움.

         

       “일이 잘 풀리는구나.”

       “다 계획하고 있던 거니까요.”

         

       사실 여기서 할 게 더 많았지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여기서 포기다. 이 정도만 해도 제국 최고의 권력자 자리는 확정이니 뭐.

         

       “이제 너의 병만 어떻게 고치면 좋을 텐데.”

         

       내 얘기가 나오자 프란체가 울적해지며 그림자가 일렁였다.

         

       “…카자르가 해결해줄 겁니다. 새로운 고대 마법서를 해석 중이니까요.”

         

       가능성이 적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프란체와 헤어지고 싶지 않기에 그 일말의 희망에라도 기대고 싶다.

         

       “있잖아, 진.”

       “예?”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니?”

         

       내가 하고 싶은 것? 이 세계에 들어와서 가장 최우선시되는 건 생존이다. 그리고 프란체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후는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그냥 기존 목표만 말하는 게 좋겠지.

         

       “공녀님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입니다.”

         

       프란체가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정말 그것뿐이니? 다른 건 없어?”

         

       사실 너와 같이 있고 싶다는 것도 있다만, 이건 작은 내 소망에 불과하니까.

         

       “딱히 없네요. 그냥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정도?”

         

       내 작디작은 소망에 프란체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단순해서 좋구나.”

       “원래 단순한 게 가장 좋은 법이니까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좋다. 그래야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스트레스 같은 건 받지 않으니까.

         

       “나는 항상 걱정이야.”

       “뭘 걱정하십니까?”

         

       프란체가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언젠가 내 곁에서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항상 두려워서 잠도 잘 안 오지.”

         

       그렇게나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가. 어쩌면 나는 이미 프란체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알아본 마법이 있어.”

       “무슨 마법입니까?”

       “영혼 결속 마법이야.”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살짝 벌려졌다. 이전에 카자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가?

         

       “영혼 결속 마법이요…?”

       “그래. 너의 혼과 내 혼을 연결하는 거야.”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영원히 함께 하는 거야. 죽어서도, 살아서도, 다시 태어나도.”

         

       뭐야, 그거. 무섭잖아.

         

       “…공녀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뭐가?”

       “후회하실 수도 있잖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걸. 너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잖아?”

         

       아…….

         

       이미 계획은 준비하고 있고, 내 대체자들도 구하고 있다. 사업도 이것으로 마지막이고, 우리의 관계도 결말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저렇게 나를 신뢰하고 있는 프란체를 배신해야 한다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저는 그 마법에 반대합니다.”

       “…뭐?”

         

       일순 프란체의 눈에 생기가 사라졌다. 마차 안의 공기가 싸늘해지며 목덜미가 서려왔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나는 서둘러 변명했다.

         

       “공녀님을 위해서입니다. 도덕적, 인도적 차원에서 막는 게 혼에 관련된 마법입니다. 괜히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에요.”

         

       까득. 프란체가 이를 악물었다.

         

       “너는 나와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거니?”

         

       살기가 일렁인다. 프란체가 나에 대한 집착과 의존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물론, 저도 같이 있고 싶습니다만. 괜히 혼을 건드렸다가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습니까.”

         

       그제야 흑마법의 기운이 가셨다. 프란체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네. 혼이 엮이는 데 실패할 수 있으니까. 전문적인 주술사가 없으니 힘들겠지.”

         

       나는 다른 걸 말한 건데…….

         

       “크흠, 아무튼. 혼에 관련된 마법은 일절 금지입니다. 공녀님이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항상 공녀님을 걱정해서 말하는 겁니다.”

         

       이걸로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마는. 프란체의 눈빛을 보니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그러던 그때. 덜컹! 마차가 멈췄다. 마부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문을 열고 내려와 프란체의 손을 잡아주었고, 도게자 백작과 만나기로 한 카페로 들어갔다.

         

       일일이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대머리가 훤히 보였으니…….

         

       “저기 있네.”

         

       프란체도 바로 찾은 듯하다. 민머리만 둥둥 떠있는데 못찾는 게 이상하지.

         

       우리는 도게자 백작이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백작님.”

       “아, 오셨군요. 공녀님.”

         

       프란체는 자연스레 자리에 앉았고, 나는 그 옆에 섰다.

         

       “드디어 탑의 건설 계획이 이행되는 겁니까?”

         

       도게자 백작은 참지 못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손바닥을 싹싹 비빈다. 돈을 쓸어 담고 업적을 세울 생각으로 가득 찼나 보다.

         

       “그래요. 그리고 사업이 또 있어요.”

       “어떤 겁니까?”

       “광산 사업이에요.”

       “광산 사업이요…?”

         

       스윽. 백작이 손수건을 꺼내 반들거리는 민머리를 닦았다.

         

       “혹시 보석점을 연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아니요. 다른 거예요.”

       “내용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나중에 알게 되실 거예요.”

         

       싱긋 웃는 프란체. 상대방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능력을 잘 배웠군.

         

       “그, 그러시군요…….”

         

       여전히 궁금증은 가시지 않은 것 같지만, 백작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돈만 되면 상관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래서 이제 구체적인 얘기로 넘어가고 싶습니다만…….”

         

       백작의 말에 나를 힐끔 쳐다보는 프란체. 나는 준비해온 자료들을 프란체에게 건넸다.

         

       “여기, 저희가 준비해온 자료예요. 광산과 탑의 규모가 적혀있어요. 이걸 보고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해주세요.”

         

       백작은 턱을 어루만지며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건 인력이 생각보다 더 많이 들어가겠군요.”

       “그런가요?”

       “예. 탑의 규모도 크고 광산의 숫자가 많습니다.”

         

       사락. 자료들이 계속 넘어간다. 백작의 표정은 점점 진지해졌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감당 가능합니다. 곧장 마법사들을 더 모집하는 게 좋겠군요. 부족한 인력은 일당직으로 충당하고요.”

         

       다행히 불가능한 건 아닌가 보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잘 부탁드리고, 그때 했던 계약은 아시죠?”

       “…탑 건설이 이행되면 비용의 3할을 깎아달라는 계약 말씀이십니까?”

         

       프란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 기억하고 있죠…….”

       “그럼 이제 끝이네요. 또 다른 용건이 있다면 전서구를 보내주시길.”

         

       프란체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를 따라 카페를 나왔다.

         

       “어때, 잘 된 거니?”

       “아주 잘 됐습니다.”

         

       뭐, 되고 안 되고도 없지. 어차피 별 내용 없었으니까.

         

       “매장 관련 일은 엘반 자작에게 맡기고, 저희는 한동안 이쪽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석을 캐내는 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지만, 탑을 건설하는 일은 꽤 시간이 걸릴 거다.

         

       “탑을 건설할 위치가 걱정이네. 아무리 엑시드에서 알아봤다고 하지만, 그런 탑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알아보니 땅이 튼튼한 곳으로 정했더라고요. 시간도 많이 단축될 겁니다.”

         

       건설에서 중요한 건 땅과 골조다. 공사 시간 대부분을 땅을 다지는 것과 골조를 세우는 데 집중하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고.”

         

       프란체는 웃으며 내게 팔짱을 끼웠다.

         

       “오랜만에 여유도 생겼으니 거리 좀 둘러볼까? 식당도 가고, 디저트 점도 가고.”

       “그래요. 가끔은 이렇게 평범한 날도 있어야죠. 최근엔 일이 많았으니.”

         

       나와 프란체는 공작령의 거리를 둘러보며 데이트를 시작했다.

         

       유명한 레스토랑을 가고, 공작령에서 제일 잘 나가는 디저트 점도 가고, 연극도 보러 가고.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날도 있으니 좋네.”

       “그러게 말입니다.”

       “다음에도 또 나오자.”

       “…예.”

         

       씁쓸하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내 마음이 기울어져 간다.

         

       떠나고 싶지 않다고. 좀 더 프란체와 같이 있고 싶다고.

         

       하지만…….

         

       ‘허용되지 않겠지.’

         

       그러니 나는 지금 내게 허락된 시간을 즐길 뿐이다.

         

         

       * * *

         

         

       그 시각, 카자르는 진이 가져다 준 고대 마법서의 룬 문자를 해독하고 있다.

         

       “어, 이거…….”

         

       그런 와중에 카자르의 눈에 들어온 건.

         

       “…공녀님이 찾던 마법이잖아?”

         

       영혼 결속의 마법.

         

       카자르는 마법의 룬 문자를 해독했다.

         

       [경고! 이 마법은 금지된 마법입니다.]

         

       초장부터 경고를 날리고 시작한다. 카자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마법사는 호기심이 없으면 시체와 같으니까.

         

       “어디 보자…….”

         

       이 고대 마법서를 계속 보며 해독해서 그런지 익숙한 문자들이 많다. 카자르는 계속해서 룬 문자를 읽어 나갔다.

         

       [영혼 결속의 마법. 시전자와 대상의 영혼을 결속시켜 영원을 노래합니다.]

       

       “…….”

         

       [이 마법은 저주와도 같습니다. 절대 풀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며, 죽음과 삶을 초월합니다.]

         

       “이거…….”

         

       [죽음을 맞이해도 영혼은 계속 함께하며, 다시 태어나도 결속으로 인해 이어지게 됩니다.]

         

       [혼과 혼을 연결해 생을 공유합니다.]

         

       [술식의 이름은 <간절한 영원의 노래>.]

         

       [절대 사용하지 마십시오.]

         

       카자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심지어 마지막에 적힌 경고는 붉은 룬 문자로 적혀있다.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 마법…….

         

       어찌 보면 낭만과도 같은 마법이지만, 사실은 저주에 가깝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며 혼과 혼을 연결해 생을 공유한다니? 이 어찌 무서운 마법인가.

         

       인간의 힘을 초월한 마법이다.

         

       ‘이걸 절대 공녀님에게 들키면 안 돼…….’

         

       이 마법의 존재를 아는 즉시, 그 공녀님은 진에게 사용할 것이다.

         

       자신과 진의 영원을 노래하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이번 사업이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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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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