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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레반에게는, 정말로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영상각을 만들 수 있도록 흔쾌히 도와준 것을 넘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본인 시점의 영상까지 촬영해 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레반과의 교전을 통해서 실력이 한 단계- 아니, 체감상 두 단계는 상승했다.

         

        무아지경에 가까운 상태에서 칼을 나누며 얻은 무언가로 인해, 실력이 크게 진일보한 것이다. 심득(心得)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에 무슨 깨달음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었지만.

         

        직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불안정하던 반응속도가, 그 결투를 계기로 온전히 내 손아귀에 잡힌 건 사실이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안목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은 재밌고.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가 고민일 뿐이다. 보답은 꼭 하고 싶은데.

         

        솔직히, 그렇게 친하지 않은 남자한테 선물을 주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친한 사이라면……설령 목숨을 구해줬더라도 게임 캐시나 좀 충전해 주고, 피시방에 선불로 10만원 정도 턱 넣어준 다음에, 삼겹살 구워서 대령해주면 ‘야 좋긴 한데 이제 부담스럽다’ 소리가 나왔을 텐데.

         

        야심차게 제안한 강퇴반사권도, 강제방종권도, 자유저격권도, 비방듀오권도 모두 맹렬한 기세로 거절당한 후-

         

        궁여지책으로 치킨 기프티콘을 구매하여 디스코스 메시지로 보내두었지만……초라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스트리머 간에는 이럴 때 어떻게 보답하는 건지. 뭔가, 관습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스트리머 간……이긴 하니까.

         

        아직도 잘 와닿지는 않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제는 스스로를 스트리머라고 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내 생각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그러하는 사람들이 산재해 있었기에 더더욱.

         

        -딸깍.

         

        눈앞의 게시글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의 흔적이었다.

         

        [작성자: ㅇㅇ]

        [제목: 악질 방송인 아따먹은 각성하라]

        [뒤풀이 사진 한 장 올리고 사라진 씹악질 스트리머 아따먹은 들어라

         

        노방송 챌린저런 한 거랑 뒤풀이 없이 사라지고 휴방을 하는 건 참겠다

         

        대회 신청하겠다고 챌린저 찍어놓고 정작 대회 신청했는지는 안 알려주는 것도 참겠다

         

        돌아와서 보나마나 오카리나부터 쳐 불 거 같은데 그것도 참겠다

         

        지튜브라도 좀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도 무시하는 것까지도 참겠다

         

        다음 일정이 합방이라고 해놓고 언제 누구랑 합방인지 얘기 안 한 것도 참기는 할 거다

         

        근데 언제 돌아올 건지는 좀 공지해라…….

         

        만약 이것도 해주지 않을 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

        –     존나 많이 참네;

        –     사리 생기겠다 야

        –     이 정도면 그냥 다 참아라

       –     ㄴ ㄹㅇ 씹좃혐나도 참는데 뭔들 못 참겠냐

       –     ㄴㄴ 나는 앞으로 인생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텐련 씹좆혐나도 견디던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낼 거야

         

        음…….

         

       댓글은 좀 그렇지만……본문은 일리가 있네.

         

        -드르륵.

        -딸깍.

         

       스크롤을 내려 추천 버튼을 클릭하고, 게시글 목록으로 돌아갔다.

         

        언제부턴가, 잡다한 생각들이 몰려올 때면 ‘도적부흥운동회’ 위게더 게시판을 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정말이지, 머리를 비우는 데는 제격이더라. 

         

       채팅과는 달리, 정적이어서 읽기 편하기도 하고- 나름, 읽는 재미도 있었다.

       

       방송에 관한 감상. 서로에 대한 비난. 다음 방송을 향한 기대. 그리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에 대한 이런 저런 요구사항들까지.

         

        ……솔직히, 마지막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나에 대한 이런저런 욕구들을 토해 놓는 것이 주를 이루는 갤러리를 읽는 것에 비하면, 한결 편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욕구와 요구. 원하든 원치 않든……인간관계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

         

        방송을 시작하고 느낀 건, 방송 역시 하나의 사회생활이자 인간관계라는 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 눈에 시청자들이 보이진 않더라도, 저들 역시 각자의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니.

         

        그들이 내게 들이미는 것들 중에서는……정말이지, 진짜 알고 싶지 않았던 욕구가 있는가 하면, 언젠가 꼭 들어주고 싶은 요청도 있었다. 언젠가는.

       

       여하튼, 지금으로서 가장 눈에 밟히는 건,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공지에 대한 요청이었다.

         

        공지.

         

        그래. 공지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맞는데.

         

        누구를 속이랴. 나는, 솔직히 계획적인 사람까지는 아니다.

         

        나 홀로 보내는 하루 일정을 당일에 정하는 것도 충분히 힘겨운데……수천 명이 얽매일 방송 일정을 미리 공지하라니.

         

        여행을 갈 때도 비행기표만 예매하고 떠나곤 했던 내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생활, 인간관계. 세상엔 사람과 사람 간에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설령 3평 남짓한 안온한 요새에 몸을 숨긴 채,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인연일지라도.

         

        내게 가능한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한 끝에, 글쓰기 버튼을 클릭했다.

         

        [작성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제목: 안녕하세요. 비방송&지튜브 공지입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챌린저)입니다. 앞으로 아이디 옆에 티어를 이렇게 괄호로 쓰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논쟁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은 비방송 공지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방송이 없을 예정입니다.

         

        언제 방송을 할지는 정해지면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지튜브 관련해서도, 많은 분들의 의견 잘 확인했습니다.

         

        현재 고민 중이며, 정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챌린저) 드림]

         

        작성 완료를 누르기에 앞서, 써 내려간 글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음.

         

        괜찮……은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챌린저 등반 방송 이후 휴방을 한 지, 벌써 엿새.

         

        시기를 고려하면, 내용이 좀 너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하다못해 합방 관련이라도 확정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디스코스를 켜서 아크와의 채팅에 접속하자, 가장 최근에 오간 채팅내역이 나를 반겨주었다.

         

        [아크: 예나님]

        [아크: 그……강퇴반사권이요]

        [아크: 농담이셨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아크: 아니 울지 마세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진짜 아니었어요?]

          

       [아크: ……제가 예나님 드린거 말고, 레반님한테 드리겠다고 하셨다는 거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진짠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가끔 방송 보시는 것 같아서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채팅 좀 자유롭게 치고 싶어 하시는 느낌이던데]

         

        [아크: 레반님이요?]

        [아크: 그럴 리가 없는데]

        [아크: 아 예나님 방송 얘기가 아니라 채팅을……그럴 분은 아니어서요]

        [아크: 아무튼 알겠습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들어가세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새삼 다시 보니, 오해가 좀……있었나 보네. 나름 고민해서 레반이 원할 것 같은 선물을 고른 거였는데.

         

        익명401294가 남긴 채팅들을 보여줄 수만 있었더라면. 그러면 분명, 아크도 동의했을 텐데.

         

        무언가 하고싶은 말이 잔뜩 있는데도 꾹꾹 눌러 담아 참고 있는 티가 나는, 그런 채팅들이었다고. 분명히.

         

        항상 쓰고 싶은 채팅을 참고 또 자제하며 여러 방송을 시청해 왔기에, 그런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아볼 수 있다.

         

        ……함부로 남의 부계정을 폭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지만.

         

        옅게 한숨을 내쉬고, 인사말을 적어 나갔다.

         

        .

        .

        .

         

        그렇게 메시지를 적었다가, 삭제하기를 수차례.

         

        언제부턴가,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좋을까.

         

        합방……인터뷰, 언제 할 건지 물어보면 그만인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어떻게 물어보는지에 따라 다시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손가락이 선뜻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애매하게 가까워진 탓이겠지. 그냥 스트리머와 시청자……그런 느낌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톡도 주고받고, 디스코스로 통화도 하며, 그래도 지인 정도의 관계가 되었다고 느껴지니,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덜컥 두려움이 생겨난 모양이었다.

         

        아마도……21살 이예나스러운 메시지는 어떻게 보내면 될지, 아직도 도저히 모르겠는 탓이겠지.

         

        문득 머릿속에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가 떠올라,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거, 여기서도 클리셰려나. 달라진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검색해 보기 전엔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몰려오는 감정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모니터에서 깜빡이는 커서에 시선을 집중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아니, 비즈니스 이메일을 보낸다는 감각으로……? 이것도 아니지 않나.

         

        방송을 켠 상태에서는 조금 더 편했던 것도 같은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운 걸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찬 듯한 기분.

         

        ……이럴 땐 또 특효약이……있긴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어쩐지 축축 처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냉장고로 향했다.

         

        .

        .

        .

         

        그렇게 약 1시간, 그리고 1.5병 후.

         

        기분 좋은 취기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기로 한 거, 굳이 미룰 이유 있나?

         

        그냥 아크한테 전화해 보자.

         

        * * *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안녕하세요 아크님, 혹시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하단에서 떠오르는 메시지.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몸을 지배했던 탓이다.

         

        ‘제발, 레반님 관련만 아니길……아니, 그 강퇴반사권 얘기도 아니길……아, 그때 듀오 얘기도 아니길…….’

         

        그러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한없이 길어지는 목록은, 준비한다고 편안해지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기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음성채팅 버튼을 클릭했다.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nowOne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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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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