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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오해를 할까봐 미리 설명을 해두자면 딱히 흡혈귀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날 죽이려 들었기에 그에 대응했을 뿐이다.”

       “그건 알아. 정말 원한이 있었다면 날 살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군. 겁에 질려서 도망이라도 쳤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졌을 테니까.

       

       본인은 스스로의 무고를 설명하는 데에 무척이나 서툴러서 말이다. 벨라가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면 난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림에서도 그랬다. 내 악명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서투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평범한 이들 중에 내 무고를 믿어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사실 절반 쯤은 내가 치기 어릴 적에 쌓은 업보 때문이기는 했다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한 것이니 말이다.

       

       옛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시 앞을 보니 신기하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벨라가 있었다.

       

       “정말 인간 맞아? 신의 사도라거나, 용의 분신이라거나 하는 거 아니지?”

       “그런 것도 있는 건가.”

       

       용의 분신은 전혀 관심이 없지만 신의 사도라는 것은 좀 궁금하군.

       

       초월적인 존재에게 선택을 받은 이라 분명 강할 테지.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신의 사도 중에서 화령 씨가 처음 잡은 용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요.>

       “…굳이 초를 쳐야겠나?”

       <나중에 실망하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그건 그렇다만. 으음.

       

       기분이 팍 새는군. 그 흡혈귀의 군주라는 것은 도대체 언제 등장하는 것인가.

       

       

       벨라와 쓰잘데기없는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해가 땅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제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보이긴 한다만 잠시 기다리거라.”

       

       밤은 벨라의 시간이기도 했으나 그녀를 노리는 다른 흡혈귀들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저들에게 벨라는 무척이나 귀중한 존재인가 보군. 밤이 되기 무섭게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말이야.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다.

       

       “엔리. 일전에 내가 기척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네. 이야기 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다. 지금 이 동굴 입구를 포위하는 흡혈귀는 몇 명일까.”

       

       냄새는 맡지 못할 지라도 소리는 들을 수 있지 않느냐.

       

       <6명이요.>

       “…응?”

       <6명이에요. 지금 여기에 있는 흡혈귀들은.>

       

       엔리는 내 물음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했다.

       

       “정답이긴 하다만 어떻게 한 거지?”

       

       아무리 보아도 기척을 느끼고 주변을 관찰해 내린 결론은 아닌 것 같은데.

       

       <외우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어떤 적이 나오는 지를 암기하고 있다고?”

       <네!>

       

       엔리의 해맑은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대체 이 게임을 얼마나 많이 해 본 것인가.

       

       내가 동굴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숲의 그림자에서 흡혈귀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저들도 동굴 안에 머무르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화령. 지금.”

       “기다리고 있거라. 금방 정리될 테니.”

       

       벨라를 동굴 안에 내버려 둔 채 앞으로 나서자 한 흡혈귀가 거친 목소리를 냈다.

       

       “오만하구나. 인간아.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런 망발을 입에 다는 것이냐?”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한 쪽은 오히려 그대 아닌가.

       

       – 흡혈귀들아! 도망쳐!

       – 니네 앞에 있는 건 흡혈귀를 장난감으로 보는 악마야!

       – 이미 늦었어. 흡혈귀를 조질 생각으로 가득한 저 눈 좀 봐.

       

       “왜 다들 본인이 악당인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냐?”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를 납치하기 위해 몰려든 무리가 바로 앞에 있는데 왜 나 대신 저들을 응원하는 것이냐.

       

       <죄송하지만 이번엔 저도 변호 못하겠어요. 흡혈귀 파이팅! 힘내!>

       “엔리. 그대마저.”

       

       내가 흡혈귀들에게 무얼 했다고 이러는 것이냐.

       

       워낙에 튼튼하기에 제압을 하는 김에 이런저런 실험을 하긴 했다만 명줄은 붙여주지 않았느냐.

       

       그 정도면 충분한 자비일 터인데!

       

       억울했지만 이미 여론은 저들의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구나.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악당이 되는 수밖에.

       

       말없이 손을 까딱임으로써 도발하자 멀리서 화염이 날아들었다.

       

       도마뱀이 쓰던 것에 비하면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마법이구나.

       

       그래도 도마뱀 녀석이 쓰던 것은 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것은 영.

       

       불꽃을 손등으로 걷어낸 후 일부러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겨우 이 정도인가?”

       

       그러자 혈기를 못 이긴 흡혈귀 하나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리구나. 이런 도발에 당하다니.

       

       동굴 안에서 흡혈귀의 상대는 지겹도록 해보았다.

       

       저들의 몸이 어느 정도의 내구를 가졌으며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지도 이미 연구를 끝마쳤지.

       

       흡혈귀의 몸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동일하다. 단지 훨씬 더 내구성이 좋고, 회복력이 무척이나 빠를 뿐이다.

       

       겨우 그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불사의 생물처럼 보일지 모르겠다만 내 눈에는 그저 좀 튼튼한 샌드백으로 보일 따름이지.

       

       그렇잖느냐. 생물인 이상 내구에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고, 회복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결국 부서질 때까지 때리다 보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지.

       

       조갑처럼 자라난 흡혈귀의 손톱을 피한 후 턱을 가격함으로써 뇌를 뒤흔든다.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린 흡혈귀의 허리를 발로써 짓누른다. 척추를 짓누른 뼈가 끊어짐과 동시에 흡혈귀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새 나온다.

       

       단순히 끊어놓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몇 번 정도 더 발을 움직여 척추를 조각낸 후 옆구리를 걷어차 치워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내 시선이 닿자마자 주춤거리는 흡혈귀들이 보였다.

       

       왜 다들 겁을 먹고 있는 게냐. 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방금 전까지 보이던 자신과 자만은 어디에 내버린 것이야.

       

       네놈들이 가만 서서 망설이기만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야 하지 않느냐.

       

       – X를 눌러 흡혈귀들에게 조의를 표하세요.

       – X

       – X

       

       흡혈귀를 처리하는 것은 귀찮은 작업에 불과했다.

       

       여기 있는 무리 중 그 누구도 일전에 상대했던 도마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저들이 뭉친다 하여 결과가 달라질 리가 있나.

       

       적당히 공포를 심어 도망치게 만들 작정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흡혈귀들은 나를 괴물보듯 하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나와 자신의 뒤편을 힐끗힐끗 살피다 될대로 되라는 듯 나에게 달려들었을 뿐.

       

       그렇게 다섯의 흡혈귀를 흙바닥과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만들어 준 후 남은 하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동료들이 처참히 당하는 걸 가만 구경하기만 하던 놈이다.

       

       겁을 먹어 굳어 있던 건 아니었다. 눈동자에도 몸짓에도 여전히 자만이 남아 있었으니.

       

       “인간치고는 강하군. 동굴에 있던 벨라를 네 놈이 데리고 나온 건 우연이 아닌 듯 해.”

       

       – 인간치고는 강하다고? 얘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칼 한자루로 용을 떨구는 사람이랑 우리를 똑같은 취급하지 마!

       – 맞아!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고!

       

       “그럼 본인은 괴물이라는 것이냐?”

       

       – 네.

       – 당연한 걸 왜 물어보세요?

       

       괴물이란 소리는 예전부터 지겹도록 들어보았다만 이렇게 농조가 섞인 대답은 처음 들어 보는 구나.

       

       대개 나를 괴물이라 부르던 자들은 나를 두려워하거나 질시하던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웃음을 흘리며 흡혈귀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지만 네 놈도 인간인 이상 우릴 이기지 못해. 벨라를 내어준다면 명줄 정도는 붙여주지.”

       “닥치고 덤비기나 하거라.”

       “흐음. 알겠다. 바라는 대로 해주지.”

       

       흡혈귀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으로 그림자가 퍼지더니 그 속에서 여러 생물들이 튀어 나왔다.

       

       뼈로 된 병사나 움직이는 석상이나 다른 흡혈귀 같은 것들이.

       

       그 수는 어림잡아도 백에 이르렀으니 군세라 부른다 하여도 이상함이 없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잡졸에 불과했다.

       

       귀찮군. 수가 많으면 무엇이라도 될 것이라 생각했나?

       

       수적인 우위가 무의미하단 소리는 아니다. 다수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격차가 크지 않을 때의 일이다.

       

       잡졸들과 나 사이에 벌어진 계곡은 시체로 산을 쌓아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깊었으니 저들의 수가 백을 넘어 천을 향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해골은 물렀다. 힘을 줄 필요도 없이 툭 건드리자 바닥에 뼈가 흩어졌지.

       

       석상도 물렁했다. 가볍게 지른 권에 박살이 나는 그 모습은 유리나 다름없었다.

       

       흡혈귀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전에 상대했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적당히 제압을 해줬다.

       

       그렇게 바닥에 널부러진 적의 수가 하나가 되고, 열이 되어 이윽고 백을 넘었을 때 땅에 서 있는 것은 나와 적을 불러낸 흡혈귀밖에 없었다.

       

       <화령 씨한텐 패배 이벤트가 의미가 없네요.>

       

       – 이 이벤트 빡세게 준비 안 하면 지는 게 맞는데.

       – 준비 하고 가도 어지간하면 못 깨. 컨실수 한 번 하면 다구리 당해서 죽잖아.

       – 원래 용언이랑 마법 갈기면서 깨야 하는 건데 왜 주먹으로 다 해결되지?

       

       짝짝짝.

       

       흡혈귀가 박수를 쳤다.

       

       자신이 불러낸 부하들이 모두 다 쓰러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놀랍군. 정말로 놀라워. 인간이 이만한 위업을 벌일 수 있다니!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백화령.”

       “멋진 이름이군! 반갑네. 본인은 하르키아라 한다네.”

       

       저 자가 나를 칭찬해주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자신을 하르키아라 밝힌 흡혈귀는 은연 중에 나를 아래에 두고 있었다.

       

       자기보다는 못하지만 인간치고는 괜찮으니 인정을 해주겠다 말하는 것이었다.

       

       실로 건방진 언행이구나.

       

       “보여줄 것은 이것으로 끝인가?”

       “안타깝게도 그러하네. 지금은 준비된 게 많지 않아서 말이야.”

       

       더 이상 수가 없음을 밝히는 하르키아에게선 어째선지 여유가 느껴졌다.

         

       나를 이길 수 없음을 알 터인데 어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이런 행동을 하던 이를 본 적이 있는데.

         

       아. 떠올랐다.

       

       “지금 쓰고 있는 게 네 본래 몸이 아니군?”

       “눈치가 빠르군. 잠시 빌려 쓰는 중이지.”

       

       이해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 그러니 나를 앞에 두고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겠지.

       

       남의 몸을 빌려 돌아다니는 자를 보는 건 이번으로 두 번째인가.

       

       이런 짓을 한 녀석이 혈교주를 칭하던 그 쓰레기 말곤 없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자는 미묘하게 혈교주를 닮았군.

       

       은근히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동작이라던가, 여유로운 체 하는 저 웃음이라던가, 남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본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점이.

       

       그 놈 생각을 하니 또 짜증이 나는 군. 혈교를 상대하던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거슬리는 순간 중 하나였으니까.

       

       마음이 차게 식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즐기는 중이었거늘.

       

       “자. 마무리를 짓게. 다음번엔 더 재밌는 걸 준비해서 돌아오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싶었지만 이곳은 아직 게임 안이었다. 내가 바란다 하여 곰방대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저 웃음을 찌그러트림으로써 분풀이를 하는 수밖에.

       

       하르이카에게로 다가간다. 녀석은 두 팔을 벌린 채 내가 공격을 하길 기다리고 있다.

       

       허나 나는 주먹을 뻗는 대신 살기를 피워 올렸다.

       

       평소처럼 상대를 위해 가감을 두지 않았다. 모든 살의를 모아 눈앞의 흡혈귀를 찍어 눌렀다.

       

       “왜 그러느냐?”

       

       얼굴이 굳었구나. 방금 전의 여유는 어디다 내버렸느냐.

       

       이런 건 예상을 하지 못했나 보구나.

       

       그렇지? 네 놈은 네 놈에게 위협이 가해지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혈교주 그 놈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너무 겁먹지 말거라. 안 그래도 허연 얼굴이 더 하얗게 물드니 꼭 귀신이라도 된 것 같지 않으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화를 올리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문을 부수는 것에 앞서 아라가 헤매는 장면이 꼭 필요하진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난 화 전반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스토리 진행엔 영향이 없으니 돌아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수정이 없도록 더 신중히 글을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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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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