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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0

        

         

       “허, 허억!”

         

       축객령이 내려진 직후 매니저는 액셀을 밟으며 차를 급히 출발시켰다.

       마치 물에 빠졌다가 육지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커다랗게 숨소리를 내면서, 당장 멀어져야 한다는 본능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차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는 남자가 서 있다.

         

       남자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손을 가져다 댄다.

       그것이 왼손이냐 오른손이냐는 커다란 의미가 없다.

       두 손의 형태가 똑같으니 그 쓰임도 같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사이에 둔 것 같이 서로 다른 형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손.

       오른손과 왼손의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울 하나가 존재한다.

       그 거울을 사이에 두고 손의 형태가 뒤집힌 채로 붙어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거울의 상이라는 것은 반대로 비쳐야 의미가 있는 법.

       제 모습을 그대로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을 과연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비친 것은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거울이라면 본래 비쳐야 할 형상을 반대로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을 과연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그것을 만질 수도 있으며, 그것과 나의 차이가 없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거울인가 또 다른 나인가?

         

       손이 올라가고 얼굴을 긁적인다.

       갈고리처럼 세워진 손가락이 밭을 긁는 갈퀴처럼 얼굴을 긁고, 본래 나 있는 주름과는 또 다른 주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듯 거칠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주어 긁어내리면 땅의 속살이 드러나듯 피부 안에서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액체.

       핏물이라기에는 너무나 검고, 핏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핏물 특유의 질감을 가지고 있는 그것.

         

       남자는 그 핏물이 새어 나오는 상처에 더더욱 깊숙하게 손톱을 박는다.

       그리곤 손톱이 무려 반절이나 피부 속으로 파고들 때가 되었을 때, 그는 손 모양을 다시 굽혀 손톱을 더 깊숙하게, 손가락 마디 하나를 피부 안으로 쑤욱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피부를 잡아채려는 듯 강하게 붙잡고는 쫘아아악.

         

       그렇게 남자의 피부가 벗겨진다.

       주름이 가득했던 남자의 피부가 벗겨진다.

         

       “아.”

         

       앞서 말하였듯 거울이라는 것은 제 앞에 있는 것을 비춰주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거울은 유리로 만들되 그 반대편이 새까만 어둠이 자리 잡아야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빛으로 비치되 어둠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 과연 깊은 이치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거울을 제사에 사용하였다.

       품고 있는 의미가 깊고도 깊었고, 신을 나타내는 요소와 인간을 나타내는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었으니까.

         

       얇은 유리 하나를 두고 존재하는 빛과 어둠.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아니하던가.

         

       그러하니 그 이치가 이곳에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아.”

         

       거울이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빛과 어둠을 품었다면 거울과 비슷한 사람 역시 그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함이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밖이 참으로 밝으니,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내면과는 다르게 항상 바뀌는 외부의 존재가 그러한즉 세상은 외부요 피부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은 어둠으로 차 있어야 하는 내면인지라.

       그러한지라 남자의 피부는 새까만 색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까맣다.

       어둠을 긁어모은 듯한 색감.

       그러면서도 빛의 세기에 따라 그 색이 바래지고 짙어지기를 반복한다.

       윤곽을 가지고 있으나 자세히 본다면 평면이며, 입체적으로 보이나 만지면 형체가 없으니 허상과도 같다.

       그러면서도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실존하는 것인지라 거울에 비친 허상과 같고,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만지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만지면 존재하지 않으니 실재와 비실재가 교묘하게 얽혀있는 감각의 혼동이다.

       현대예술이 그러할까.

       어두컴컴하고 조명이 제한적인 공간에 들어섰을 때의 기분이 이러할까.

         

       현대예술 중에는 그러한 것이 있다.

       인간의 감각과 착시를 교묘하게 이용해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는 것.

       남자의 형상이 바로 그러하다.

         

       존재 자체가 착시요 허상이요 동시에 존재하는 무언가이니.

       이것을 두고 과연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아아아….”

         

       새까만 어둠을 품고 남자의 피부는 꿀렁인다.

       발을 한 발짝 움직이면 소리 없이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따라 그림자가 같이 걷는다고 하여 그림자가 실제로 걷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남자의 움직임 역시 그렇게 보이기는 하되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저 흉내 내기, 허상,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있지만 존재감이 없는 것, 인지하더라도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아니하는 바로 그것.

         

       그림자.

         

       남자는 움푹 팬 구멍을 입처럼 활용하여 소리를 내뱉는다.

         

       그 소리는 바로 지금 형상의 본래의 주인.

         

       그림자가 어디 홀로 존재할 수 있던가.

       그림자는 무언가에 따라붙는 현상이며 허상이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형상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형체가 변화한다고 한들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림자가 있는 것은 반드시 그것의 주인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 주인은 지금 그와 함께한다.

         

       그래.

       그 존재감을 드러내려 지금 소리를 내고 있지 아니하던가.

       살아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소리를 내기 마련이니, 그림자를 품은 존재에게서 소리가 나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일인지라.

         

       그리하여 그림자를 두른 남자는 나아간다.

         

       입체적인 그림자가 움직이고 제 몸에 품은 숙주가 움직인다.

       그림자의 움직임과 제 숙주의 움직임이 일치한다.

         

       그것은 일상에서 보아오는 광경과 다르지 아니하다.

       걸음걸음마다 그림자가 형태를 바꾸니 그것이 어찌 일상에서 벗어날 일이던가.

         

       다만 묻는다.

         

       사람이 움직이고 그림자가 움직인다.

       그림자가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인다.

         

       그 둘의 모습이 같다면 그 둘에는 무엇이 차이가 있는가?

         

       그 둘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주인과 종의 구별이 존재하는가?

         

       주인과 종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림자인가?

         

         

         

         

        * * *

         

         

         

       “허, 허어억, 허어억….”

         

       누군가 목을 조르다가 풀기라도 한 것처럼 격한 숨소리가 퍼져 나온다.

       경련을 하는 것처럼 가늘게 떨리는 몸뚱이는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핸들을 강하게 붙잡은 손은 힘이 너무 들어가 새하얗게 변한 상태다. 거기에 핸들 위쪽에 투욱 쳐박은 머리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다리는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덜덜덜 떨리면서 제 통제를 잃어버린 상태다.

         

       “허억, 흐으으으….”

         

       반쯤 감긴 눈은 그렁그렁한 것이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콧잔등에 맺힌 방울은 눈물인지 땀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질질 흘려지는 침과 콧물, 땀까지.

         

       운전석에 있는 매니저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에 질린 사람 그 자체였다.

       누가 보더라도 아주 무서운 체험을 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으며,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을 지어도 무방한 상황.

         

       하지만 놀랍게도 이 매니저는 무섭다는 감정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해냈다.

         

       갑자기 차를 막아 세우고는 점을 봐주겠다고 말한 이상한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벗어나 사람이 잔뜩 있는 도시에까지 온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차에 타고 있는 연예인, 차이네를 생각한 것인지 본능인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예약된 호텔에까지 도착한 상황.

         

       지금 운전대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남자가 해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엄청난 위업이었다.

         

       “…괜찮아요. 그 남자는 사라졌어요. 진정하세요.”

         

       그 매니저의 옆쪽, 조수석에는 차이네가 앉아서 매니저를 위로하고 있다.

       호텔에 도착했으니 매니저 따윈 내버려 두고 그대로 위로 올라가도 무방했을 텐데, 매니저처럼 그냥 마주친 것이 아니라 아예 대화를 나누고 점까지 보았던, 심지어 스마트워치라는 복채까지 지불하는 경험을 했던 차이네라면 호텔 위로 올라가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인데….

       차이네는 굳이 예약된 방으로 가는 대신 주차장에 매니저와 함께 남는 것을 택했다.

       아니, 함께 남는 것을 넘어서 제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매니저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만났던 도무지 믿음을 줄 수가 없었던 매니저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의, 겁은 좀 있는 것 같지만 필요할 때는 용기를 쥐어짜서 해야 할 일을 해내고야 마는 믿음직한 매니저를 향한 존중의 표시였다.

         

       혹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의 동병상련의 마음가짐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지금 이 순간 매니저와 차이네는 전우였다.

       갑작스레 등장한 괴인의 습격이라는 일을 같이 겪고 헤쳐 나간 전우.

         

       그리고 전장에서 그러하듯, 전우가 존재한다면 빠르게 혼란을 벗어날 수 있는 법.

         

       “후우…이거, 하. 미안하게 됐다. 내가 너무 추한 꼴을….”

         

       “아니에요. 저도 무척 놀랐는걸요.”

         

       차이네의 상냥한 위로 덕분인지, 아니면 자신의 옆에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매니저는 곧 패닉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차량의 글러브 박스에서 비닐에 감싸져 있는 수건을 뜯고는 제 몸을 흠뻑 적신 땀을 닦고는 차량을 출발시키기 전에 샀던 버블티를 거칠게 마셨다.

         

       “켈룩! 커흑! 켁!”

         

       하지만 버블티를 갑작스럽게 마셨기 때문일까?

       남자는 사레가 들려서 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타피오카 펄이 목에 걸려서 죽는 줄 알았네….”

         

       한참을 기침한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이제는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차이네를 보았다.

         

       “선미야. 내가 너무 놀라서 그런지 너를 신경을 못 써줬다. 너는…괜찮아?”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는데….”

         

       매니저의 질문을 받은 차이네는 애매하게 웃었다.

         

       “…제가 겪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그렇게 놀랍지는 않네요….”

         

       무서운 경험도 경험이라는 것일까?

       놀랍게도 차이네의 역치는 꽤 올라가 있었다.

       지금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기절초풍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점 얘기를 들었을 때 복채 얘기부터 꺼낸 것이고, 스마트워치를 복채로 주겠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사건은- 의외로 소중한 양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후.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너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한 경험이 없던 이에게 이것은 커다란 충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매니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차창.

       이상한 남자가 튀어나와 핏물로 차창에 그려놓은 뭉개진 오선지.

         

       “일단 위로 올라가서 쉬자. 방에 들어가서 좀 쉬면서 우리 둘 다 좀 진정을 해야 할 것 같아.”

         

       “…네. 그러면 다음 스케줄은….”

         

       “아니 선미야…. 이 상황에서 스케줄 걱정이 드니? 내가 책임지고 위에 보고할게. 위에서도 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스케줄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을 거야.”

         

       매니저는 이런 상황에서도 스케줄 걱정을 하는 선미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한 번 웃고는 차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올라갔다.

         

       그리곤 예약해 놓은 방에 들어가려 했으나….

         

       “죄송합니다 손님. 정말 죄송하오나 지금…호텔에 문제가 생겨서 예약해 놓으신 방에 숙박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환불은 물론이고 다른 호텔에서 훨씬 좋은 방에 묵으실 수 있도록 할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죄송하다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는 호텔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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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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