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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1

        

         

       “문제…라니요?”

         

       “그, 그게….”

         

       매니저의 질문에도 호텔 직원은 쉬이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무어라 대답해야 눈앞의 손님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지를 고민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호텔의 실수로 예약이 꼬였습니다. 필요한 조치는 다 해드릴 터이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앞의 말과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무슨 문제인지는 언급하지 않고 말을 돌리는 모습.

         

       그것은 빈말로라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앞서 커다란 일을 겪었던 매니저와 차이네는 딱히 그걸 가지고 드잡이질하면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호텔 직원이 잘못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잘못했다고, 보상을 주겠다는 말로 시작을 하는데…. 여기서 뭐라고 해 봤자 트집 잡기밖에 더 되겠는가?

         

       호텔 측에서 뭐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겼거니, 혹은 외국인에게는 말하기 힘든 어떠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그냥 약간 기분이 상한 채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매니저와 차이네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를 운전해서 다른 호텔로 향했다.

       호텔 직원이 협조를 구했다는 다른 호텔로 말이다.

         

       “하아….”

         

       축축 늘어진다.

       평소에는 그렇게 지겨웠던 차 시트가 최고급 침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한 번 크게 긴장했다가 확 풀렸던 까닭일까?

       이상하게 몸이 축 늘어지고 졸음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고, 차량의 진동 소리나 밖의 시끄러운 소리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질 지경이다.

         

       ‘지금 자면 안 돼.’

         

       하지만 차이네는 애써 졸음을 참았다.

       차에서 잠을 자기에 불안하다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이 잠을 자면 매니저 혼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훨씬 놀란 매니저만 그렇게 놔두는 것은 양심에 찔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매니저는 여러 수준 이하 매니저를 거친 후 간신히 찾아온 제대로 된 매니저가 아닌가?

       이 정도면 매니저는 그녀의 배려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아무렴.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믿음직한 전우가 얼마나….

       얼마나….

         

       ‘핫.’

         

       순간 졸았다.

         

       졸음이 어찌나 밀려오는지.

       과장 좀 더해서 저기 더러운 길바닥에서 벽돌을 베개로 삼고도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암.

         

       차이네는 입을 가리고 하품하며 애써 눈물을 짜냈다.

       그리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듯하면서도 이국적인 듯한 중국의 풍경.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한자로만 이루어진 간판들, 넘쳐나는 사람들, 상의를 끌어 올려서 배 부분만 까고 다니는 배불뚝이 아저씨-

         

       ‘아. 공안한테 걸렸네.’

         

       배를 까고 다니던 아저씨가 공안에게 붙잡혀 혼이 나고 있다.

       둥그런 배는 티셔츠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쭈그러진 얼굴로 신분증을 내보이고 있다.

       과연 요새 저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더니….

         

       ‘조금 흉물스럽기는 해.’

         

       차이네는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어디 마라톤 대회라도 있는 것인지 본격적인 차림으로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

       저 멀리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수많은 노인.

       사이버펑크 창작물에서나 나올법한 펑키한 디자인의 방독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자….

         

       ‘저 마스크…. 특이하네….’

         

       다시 눈꺼풀이 감기는 와중에도 그 마스크가 똑똑히 보인다.

       색이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 그 자체로 특이하게 생긴 모습.

       방독면의 아랫부분만을 잘라서 툭 붙여놓은 다음 파란색으로 빛나는 LED 전선을 곳곳에 깔아서 혈관이나 어떤 문양처럼 보이게 만든…그런 모습….

       특히 입고 있는 옷이 양복이라서 더 이질적인 느낌이다.

         

       ‘아…. 이젠 진짜 졸린데….’

         

       생각이 흐려진다.

       머릿속에 안개가 끼고 잠겨 들어가는 느낌이다.

       연습생 시절 끔찍한 수준의 연습을 하고도 이 정도로 졸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면 이길 수가 없다….

         

       차이네는 그렇게 잠에게 패배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믿음직한 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미야. 호텔 다 왔다.”

         

       호텔에 도착했다는 아주 감미롭게 들리는 말.

       차이네는 매니저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초롱초롱한-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흐릿하고 졸려 보이는 듯한-눈으로 발랄한 몸짓으로 차에서 내렸다.

         

       “예약하신 성명이….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차이네는 기존에 예약했던 방보다 훨씬 좋은 방에서 쉴 수 있게 되었고, 무서운 일을 겪었던 매니저는 호텔 지하에 있는 바에서 칵테일 몇 잔을 마시고 술기운을 빌려서 다른 방에서 그대로 잠을 청했다.

       솔직히 업그레이드된 차이네의 방의 크기를 본다면 같은 방에 묵어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성별이 다른데 그럴 수야 있겠는가. 대신에 매니저는 자신의 방 역시 업그레이드된 것에 만족하면서 그대로 잠들었다.

       씻지도 않고 대충 말이다.

         

       그리고 넓은 방에 혼자 남은 차이네는 매니저처럼 바에 가는 대신 그냥 씻고 잠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술기운을 빌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지금 상황에서 술을 먹으면 진짜 마시다가 쓰러져버리는 게 아닐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옷을 벗고 샤워하기 시작했는데….

         

       “힉!”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지….

         

       아무 생각 없이 샴푸를 하고 헹궜는데, 그 거품 속에서 벌레가 섞여있었다.

       하루살이 같은 자그마한 벌레도 아니고, 왜 저걸 몰랐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길고 가느다란 지네가 말이다.

         

       소름이 끼친다.

       언제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저 지네랑 살을 맞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아까 그 사람이랑 대화할 때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저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차이네는 아까 전 스마트워치를 가져갔던 남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두렵고 압도적인 분위기였기에 지네가 머리 위에 기어 다니는 것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차이네는 평소보다 몇 배는 꼼꼼하게 씻었다.

       그리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이 벗어 던진 옷을 들춰보았고….

         

       “아, 여기도 있어….”

         

       옷을 탈탈 털었을 때 죽은 거미 몇 마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질겁하고야 말았다.

         

       숲속에서 뒹군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리 많은 벌레가-

       하아.

         

       차이네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캐리어에서 잠옷을 꺼내 입고는, 벌레 퇴치용 스프레이를 사방에 뿌렸다.

       호텔 내부이니 뿌릴 필요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뭐- 효과가 있든 없든 적어도 기분은 좋아졌으니 그걸로 벌레 퇴치 스프레이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차이네는 벌레가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그리고 혹 자신이 자는 자리에 벌레가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을 마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꿀 같은 잠이었다.

       진짜로.

         

       …

       …

         

       마즈무아젤-

       거스름돈이 남더군-

       …

       …

       내 선물이 마음에 드는가-?

       …

       …

         

       …잠결에.

       혹은 꿈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 * *

         

         

         

       다른 나라에서 중국의 공안을 두고 ‘중국의 경찰’이라고 번역하곤 한다.

       실제로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공안이 경찰의 역할을 하는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로 딱 들어맞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중국에서 공안이라는 것은 거대한 공룡이나 맹수와도 같은 집단이었으니까 말이다.

       수사권이니 뭐니 하는 절대적인 힘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일반적인 경찰을 넘어서서, 거의 군대와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었다.

         

       일반적인 공안이라고 하더라도 비상 상황이 터지면 기관단총 같은 군대에서나 쓸법한 무기를 들고 나서며, 필요하다면 양산형 아티팩트나 주물까지도 들고 출동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해당 지역에 있는 문파에서 사람을 징발해서 사건에 투입하기도 하는 등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도 우징(武警)이라고 불리는 무장경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우징(武警)은 정말로 군대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경찰 조직이 장갑차와 기관총, 심지어 대전차 로켓까지도 보유하고 있다면 믿어지는가?

       무장경찰은 평화로울 때는 인민해방군 급의 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무력 집단이 지금, 한 곳을 포위하고 있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몇 층?”

         

       “9층입니다.”

         

       “8층의 귀빈들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안을 위협하는 위험인물’이 이 호텔에 묵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군대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 무장경찰이 본격적으로 장갑차까지 끌고 와서 포위할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 말이다.

         

       하지만 신고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재빠르게 주위 CCTV를 확인하고 출동을 한 상태였지만…안타깝게도 일은 터진 상황이었다.

       위험인물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미 조용해져 있었다.

         

       조용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그래. 조용한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위험인물이 묵고 있으며, 그 위험인물을 잡기 위해서 장갑차에, 대전차 미사일에, 기관총에,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가지고 온 상황이다.

       아무리 담이 센 사람이라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다고?

       조금 끗발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 누구누구인데 지금 여기서 나가야겠다면서 부탁하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텔 밖으로 빠져나가려 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도 아니면 살려달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거나 말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너무나 조용하다.

         

       저 호텔 내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본다면 유령 호텔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저 호텔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명도 호텔을 빠져나가지 않았으니까.

         

       ‘아니지. 몇몇 손님들은 호텔 직원이 목숨을 걸고 돌려보냈지….’

         

       그나마 운 좋은 몇 명은 휘말리지 않았다.

       의기 가득한 호텔 직원 한 명이 기지를 발휘해 호텔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손님들을 돌려보내며 다른 호텔에 연락, 은근히 자기 호텔에 심각한 일이 생겼다면서 암시를 준 덕분에 공안이 출동할 수 있었다.

       그 손님들은 자신들을 돌려보낸 호텔 직원에게 목숨 빚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약 호텔 직원이 죽었다면 대신 제사를 지내줘도 모자랄 것이다.

         

       ‘호텔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은 건…. 아니겠지?’

         

       무장경찰들은 너무나 조용한 호텔을 보며 불안한 상상을 떠올렸다.

       그들은 제발 안에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호텔 내부를 스캔하기 시작했고-

         

       퍼엉-!

         

       …스캔하려는 그 순간, 기계가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 터져버린 기계에서 새어나오는 기화되는 마력은 구체 형태로 모이고, 안쪽에서 회로들이 핏줄처럼 움직이며 마법 하나를 짜 올린다.

       그리곤 구체 내부에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

         

       액상 마력 전지 순환 장치가 탑재된 방독면을 쓴 양복 입은 남자.

       세계 곳곳을 오염시키고 다니는 테러리스트.

       ‘오염운반자’라고 불리는 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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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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