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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3

    <763 – 용사답게(9)>

     

    가짜노디의 눈물겨운 희생을 목도한 이후, 작전지역으로 돌아온 용사 이슈타르는 각오를 다졌다.

     

    “나, 실패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오늘만큼은 절대로.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

     

    사실 용사행은 언제나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을 장악하고 조직을 매수하며 조력자를 늘린다.

    어느 정도 성공한 악인들은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진다.

    개인, 많아 봤자 파티 단위에 불과한 용사 세력.

    조직, 커지면 지역 단위의 악의 세력.

    열 번의 용사행에서 한 번을 성공하면 다행이거늘, 그중 일곱은 적이 싸움을 회피하여 종적을 감춘다.

    간신히 꼬리를 잡아내어 본체까지 타고 올라가도 두 번은 패퇴하여 달아나기 급급하다.

     

    일곱 번의 허탕.

    두 번의 패퇴.

    한 번의 성공.

     

    그마저도 두 번의 패퇴중에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한 번이라도 겪으면 즉시 용사행은 종료.

    한 번의 성공을 거듭 쌓아 올리더라도 상대가 마인이고 마기를 정화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언젠가 용사행은 종료.

    성녀인 동료가 있더라도 성녀조차 정화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시점에서는 용사와 성녀의 눈물겨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마기를 더 정화하려는 성녀와 차라리 마기를 제 몸 안에 숨기는 한이 있더라도 동료는 이런 지옥 같은 삶에서 해방하고 싶은 용사의 서로를 위해 죽으려는 참혹한 우정의 시작이.

    본질적으로 용사는 이처럼 성공하기가 힘든 구조 속에서 싸워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용사는 신중해야만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악과 맞서려다간 조직적인 함정에 빠져 패배할 수 있기에.

    설령 그 악과 싸워 이기더라도 점점 늘어가는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용사행이 강제로 종료 당할 수 있기에.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동료의 목숨마저도 자신의 공명심에 의해 희생될 수 있기에.

    설령 처음에는 각오했다 할지라도 그 각오에 의해 병들고 죽어가는 자신이나 동료의 모습을 보고도 변치 않는 각오를 이어나가야만 하기에.

     

    “왜 용사님은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 거야?”

    “이렇게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결국 용사도 교단의 위선자들과 다를 바 없구나!”

     

    이슈타르는 어려서부터 굳게 입을 다물고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자신은 억울하다고.

    해당 교단의 신자들이 막아야 할 악까지 용사의 수명을 줄이려고 일부러 방치한 거라고.

    원망할 거라면 너희 교단의 추악한 실태를 욕해야지, 마기정화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마기에 중독되어 죽도록 용사를 몰아넣는 너희가 잘못한 걸 왜 내가 대신 욕을 먹어야 하냐고.

    그런 항변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들어주더라도 문제다.

    적들이 용사의 약점을 알게 되니까.

    일부만 알던 비밀을 모두가 사용하니까.

    용사는 치부를 드러낼 수 없다.

    교단의 악행은 방조된다.

    그렇게 홀로, 천천히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야 만다.

    용사의 과묵함이란, 그런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격이 비틀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못난 자신과 오크노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티격태격하며 지냈다.

     

    다른 애들을 보면서는 솔직히 그녀도 못난 생각도 많이 했다.

    나는 누릴 수 없는 평화를 누렸으면서.

    마음 편하게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서.

    수련하더라도 누구 하나 민생에는 관심 없는 용사라고 욕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왔으면서.

    너흰 왜 나보다 약하지?

    그렇게 무능하지?

     

    오크노디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런 생각을 뒤집게 만들었다.

     

    용사가 아닌데도 나보다 더 욕을 먹는 아이.

    용사인 나보다도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아이.

    강하지 않아도 인정 받는 아이.

    내가 닮고 싶은 아이.

    내가 되고 싶은 아이.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아이.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아이.

     

    “봐버렸어. 그 아이의 약한 모습, 칭얼거리는 모습, 우는 모습. 보아선 안 될 모습을 너무 많이 봐버렸어.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나를 바꾸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아이를 바꿀 차례다.

    제국의 중심에서 황제를 바꾸었을 때처럼.

    이번에는 이 칼의 끝으로 재단의 수장, 이사장의 목을 겨냥하리라.

     

    “모두들, 늦었지만 합류할게. 이 앞, 같이 가줄래?”

    “뭘 새삼스레 그러나요. 용사파티는 당연히 용사의 곁을 따라야지.”

     

    군도의 핵심시설까지 침투하며 갖은 고생을 해왔던 동료들은 이슈타르만 편하게 교장의 마법을 타고 나타난 것을 시샘하는 대신, 그녀의 합류를 반겼다.

    오는 길에도 크고 작은 싸움은 있었으나 당장 사방에서 만만찮은 실력을 지닌 강자들이 기척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용사의 등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는 우리 비밀장학결사가 맡겠다.”

     

    자쿠를 위시로 한 재단장학생들은 비밀통로까지의 안내에 이어 신속한 돌파가 요구되는 장소마다 과감하게 적에게 뛰어들어 길을 만들었다.

     

    드드드…

     

    저 멀리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빙결영역이 해안을 따라 설치된 적의 해안포를 동결시키고 샌드쿠커의 지진마법이 절벽 위에 설치된 진지를 무너뜨리는 굉음이 대지를 타고 이따금 전해졌다.

    앞으로 하나.

    이 하나의 지부만 넘어서면 이사장의 머무르는 재단의 심처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그리하면 재단의 심처에 보관된 오크노디를, 오크노디의 찢겨진 영혼을 되찾을 수 있다.

     

    “타 지부의 패잔병들이 경고했던 지부사냥꾼인가.”

    “어리석은 녀석. 우리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 오래다.”

    “용사여. 겁도 없이 재단에 칼을 들이민 만용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재단지부장들이 나서는 순간, 이슈타르의 시야가 좌우로 길게 늘어지며 적의 모습이 여럿으로 늘어났다.

     

    <아즈몬드의 환각술>

    <효과 : 마력시와 마주한 대상의 인지감각을 빠르게 왜곡한다.>

     

    여럿의 적이 동시에 손을 들어 올리자 실내의 불이 꺼지며 사방에 설치된 87종의 마법진이 서슬 퍼런 마나광을 뿜어내었다.

     

    “미친. 눈만 마주쳐도 걸리는 환영이라니. 이래서는 궁수의 기술은 시작조차도…!”

    “스콜라. 엄살은 그만 부려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싸우는 방법 정도는 상급반 강의에서 배웠잖아요?”

     

    이슈타르의 이름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해왔던 인물이지만, 성녀 유피는 그 이슈타르가 자신의 파트너이자 첫 번째 동료로 고를 정도로 든든한 동료였다.

    유피의 커다란 참수낫이 번뜩이며 허공을 베어내자 그녀의 기물공간에 수납되었던 성물이 우후죽순 쏟아져 내렸다.

     

    <뇌광마의 축성받은 머리>

    <역병군주의 축성받은 머리>

    <악귀 케게모노의 축성 받은 머리>

    <괴도 산타클로스의 축성 받은 머리>

    <미친유니콘의 축성 받은 머리>

     

    돌연 허공에서 쏟아져 나오는 성스러운 기운에 둘러싼 수많은 머리의 존재에 재단의 각 지부에서도 그 무위와 악독한 성미로 대적할 자가 없을 지부장급 인사들이 모조리 움찔했다.

    무슨 마인의 배낭이라면 모를까, 성녀의 기물공간에서 무슨 저딴 흉흉한 머리통들이 나온단 말인가?

    허나 머리의 용도를 안다면 그런 생각조차도 온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몰라도 됐다.

    경험은 무지한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니.

    겪고 나면 알 수밖에 없다.

     

    “홀리 배리어. 그리고… 홀리밤!”

     

    용사일행을 둘러싼 신성장막.

    그 너머로 힘껏 던진 머리통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막대한 신성력이 분출되었다.

    도저히 피할 길도 없는 엄청난 양의 신성력의 대방출에 지부장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직접 참수한 범죄자들의 머리통을 폭파시키는 공격은 그 수법의 악랄함도 악랄함이지만 동반되는 신성력의 침투도 장난 아니게 위험했다.

    당장 마법진이 가동하며 그 너머로 차징형, 혹은 영창형 공격들을 충전하고 시전했다가 일거에 내지를 예정이었을 지부장들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골고다의 참수의 신성력을 무방비하게 맞이했다간 언제 신체가 참수당할지 모르기에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서 저항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암흑마나?!”

     

    문제는 신성특효의 암흑장막을 펼쳤더니 신성력의 너머로 암흑마나가 같이 침투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공격 속에 공격을 감추다.

    신성력 속에 암흑마나를 감추다.

    유피에게는 익숙한 전투방법이었다.

     

    “당신네 ‘아가씨’의 기술은 어떠신가요. 강력하죠? 아주 미치겠죠?”

     

    보통 암흑마나도 아니다.

    도대체 아카데미에서 사람 머리통에 대고 무슨 짓을 해왔는지 독성과 저주, 각종 상태이상의 효과가 덩달아서 따라붙었다.

    그간 아카데미에 있었던 무수한 주간이벤트에서 나타난 현상들에서 술식을 ‘참수’하여 ‘수확’하고 머리통에 저장해온 유피이기에 가능한 악몽의 상태이상 대연발 신성암흑 이중특효공격.

    신성과 암흑.

    둘 중 하나만 적중해도 온갖 상태이상이 줄줄이 따라붙는 공격은 상태이상으로 시간을 벌고 강공을 날리려던 지부장들의 기본적인 전투방침과 같았으나, 그 위력에서 위험도가 차원이 달랐다.

     

    ‘손가락이 마비됐다…!’

    ‘술식이… 떠오르지 않아?!’

    ‘마나가, 마나가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

     

    마비독, 망각독, 마나독.

    독성만 해도 온갖 종류의 억까이벤트들이 즐비했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주간이벤트.

    교장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하고 또 개발한 주문.

    그리고 위험요소들.

    이를 일개 재단의 지부장이 감당하기란 불가능했다.

    유피는 지금 교장의 학생을 괴롭히겠다는 악의를 자신의 공격에 담아 지부장들에게 펼친 것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만들고, 지령을 내리며 폐기처분하고, 쓸모를 비웃었을 당신들. 어디 한번 맛보세요. 당신들이 버려왔던 장학생들이 어떤 역경을 넘어왔는지.”

    “비, 비겁한…”

    “비겁? 웃기시네. 그 아이는, 오크노디는 단 한 번도 이 정도로 엄살 부리지도 않았어. 변명이라면 당신들이 영혼을 도려낸 아이 앞에서 하세요!”

     

    유피의 외침 너머, 태세를 정비한 용사파티의 맹공이 쏟아졌다.

     

     

    * * *

     

     

    이겼다.

    비축한 머리는 특제품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모했으나 유피는 지부장들의 사살에 성공했다.

    최후의 술식은 용사파티의 손에 들어왔다.

    앞서 제공받은 술식과 합친다면 열쇠술식은 비로소 완전해지고 이사장의 거처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저건…!”

     

    마나밀도가 급격히 무거워지자 용사파티는 급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배자급 고위계 몬스터, 폭주비공정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거대한 비공정이 상공 저편에 강림했다.

     

    “재단의 기함이야.”

     

    용사파티의 궁수 스콜라가 비공정의 정체를 식별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떡할 거야?”

    “세계각지에서 오늘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있어. 여긴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용사파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가야지.”

     

    이슈타르는 이사장의 등장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뒤로한 채, 술식으로 만든 열쇠를 돌려 허공에서 문을 열었다.

     

    “이사장이 나왔다면 오히려 절호의 기회야. 이사장과 마주치는 일 없이 오크노디의 찢어진 영혼을 구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사장의 공격에 여기 있는 우리 학교 동기들이 공격받는 건 어쩌고?”

    “다들 많은 일을 겪고 성장했어. 분명 버텨주겠지.”

     

    용사파티의 통신마도구로 들려오는 지원요청을 이슈타르는 깨끗하게 무시했다.

    뭔가 감동적인 분위기를 잡으려는 이슈타르와 도움을 외치는 통신마도구 너머의 친구들.

    전원을 뚝 꺼버리는 유피의 행동에 용사파티 동료들은 정신을 차렸다.

     

    ‘동기들이랑은 4년 보고 말 거지만 용사파티랑은 평생을 같이 보고 가는구나!’

    ‘니세가 배신하는 것 같으면 나도 배신한다냐!’

    ‘사실 용사파티의 탱커 노릇만 하느라 다른 애들이랑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뭐… 확실히 조금 강해지긴 했었지. 굳이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

     

    이슈타르의 선택을 용사 파티의 동료들은 기꺼이 따라주었다.

     

    “우린 1인분 하긴 했지.”

    “모두들, 힘들겠지만 제대로 버텨달라고.”

    “지금의 이슈타르라면 왠지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냐!”

    “참수의 골고다께서 큰 힘을 빌려주셨으니, 다음엔 저희 벽력성천신교의 성광의 마데우스 님의 힘을 보여드리겠어요.”

    “그런데 오크노디에게 듣기로 마데우스는 악신이 되시지 않았나요.”

    “시끄러워요.”

     

    씩씩거리며 이슈타르보다도 먼저 가시메이스를 들고 술식관문을 통과한 니세.

    모두가 급히 니세의 안전을 위해 뒤따랐으나, 멍하니 선 니세를 보고 나란히 앞 사람의 뒤통수나 등짝에 머리를 부딪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문을 통과하면 뒷 사람을 위해서 비켜주는 게 매너잖…”

     

    불만스레 항의하려던 스콜라의 눈이 니세가 바라보는 탁 트인 시야의 저편으로 향했다.

    이거, 하늘 위인데.

    밑에 보이는 광경이 왜 익숙하지.

    잘 보니 여기, 비공정이다.

    갑판에는 눈에 익은 고급정장이 잘 어울리는 젊은 미남도 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이사장?”

     

    스콜라의 황망한 말에 모두가 실감이 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재단의 기함.

    적진 한복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친구들의 지원요청에 목숨을 걸고 적의 기함에 돌진한 용사파티(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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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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