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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4

        

       낡은 건물의 옥상에 한 사람이 있다.

       저 멀리 반짝이는 수많은 야경의 불빛을 반딧불이처럼 두르고, 어둠 속에 제 몸을 감춘 채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젊은 남자.

       마치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기 직전의 자세 그대로 시간을 멈추어놓은 듯한 자세로 남자는 밤바람을 맞으며 옥상의 중심에 있다.

       고개는 하늘을 향하여.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 저 너머, 반짝이는 별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그리고 남자의 아래에 있는 것은 네모반듯하게 잘려있는 대리석 패널들.

       인테리어에 쓸법한 패널들은 질서 있게 쌓여 단(壇)의 형태를 만들고, 하드보드지와 폴리우레탄폼으로 즉석에서 제작한 기둥들은 마치 토템처럼 단의 주변을 호위한다.

         

       하드보드지에는 조각칼로 난도질이 되어있다.

       얇기도, 굵기도 한 선들은 제각각의 깊이를 가진 채 이어지기도 끊어지기도 하며 하나의 형상을 그리는데, 그것은 가까이서 본다면 낙서처럼 보이는 것이었지만, 멀리서 본다면 얼핏 동물의 형상과도 닮아있다.

         

       “하늘의 숨결. 수다 떠는 바람. 잠자는 벼락. 힘을 기르는 폭풍우. 부지런한 구름에서 하늘의 시작점, 물의 뿌리, 땅속에 잠들어있는 뜨거운 핏물.”

         

       그것은 인류 초창기의 우상(偶像).

       제대로 된 재주도 없을 인간들이 노력하여 만들어냈을 형상.

       만물에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그 생명을 숭배하는 것으로 그 생명이 가진 특성을 복제할 수 있으리란 믿음. 그 생명 가진 것이 자신에게 힘을 기꺼이 내어줄 것이라는 광오하기까지 한 그 원시 신앙을 위한 도구.

         

       현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제단과 우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간이 뒤틀리기 전, 독일의 한 유적지에서 발견하였던 고대인들의 애니미즘(animism).

       하지만 비슷한 시기 독일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기원전 만들어졌을 나무다리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였더란다. 그렇게 충분히 주목받아야 했을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 저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실제로 박진성이 거액을 주고 그 자료를 사들이는 것을 끝으로 잊히기도 했고.

         

       하지만 보라.

       지금 이곳에 고대인들이 행하였던 원시적 제의가 재현되고 있다.

         

       얼기설기 만들어진 토템.

       판판한 돌을 겹쳐서 쌓아 올린 제단.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제사장.

         

       어설퍼 보이지만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기가 힘든 그 의식이 지금 이곳에서 거행되고 있나니.

         

       “하늘에 나의 말을 전해줄 날개 달린 것. 땅에 나의 말을 전해줄 길쭉한 것. 물에 나의 말을 전해줄 비늘 달린 것. 풀과 나무에 나의 말을 알려줄 꿈틀거리는 것. 그 모든 전령을 두고 묻습니다.”

         

       박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국어.

       고대인이 그 시절에 사용했을 말도, 단어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박진성이 지금 행하는 원시 주술은 그러한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정확한 형태의 제단과 토템.

       박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의(意).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약을 먹지 않는 이상 끌어올리기가 불가능할 수준의 고양.

         

       어설퍼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엄격한 보안이다.

       단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실행되지 않는 것이니까.

       심지어 고양 상태에 이르러서는, 아마 그 당시 이 의식을 행하던 이들의 비전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것을 섭취해야 하는지- 그 섭취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제조하는지까지.

       그 모든 것이 극소수의 인물에게만 전달되었겠지.

         

       하지만 박진성에게는 그러한 보안은 의미가 없다.

       수없이 행한 주술 의식 덕분인지, 그는 특별한 약물 없이도 트랜스(trance) 상태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세상을 떠돌며 주술을 수집해왔던 주술사의 정신과 경험은 녹록한 것이 아니며, 그는 몸을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뜨리면서까지 반복했던 경험을 통해 충분히 간단한 명상만으로도 트랜스 상태에 접어들 수 있게 되었다.

         

       “오오….”

         

       어쩌면 그것은 무인들이 말하는 천지교태(天地交泰)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천지(天地)의 구분이 모호해져 자연의 기운을 마음껏 끌어 쓸 수 있게 되는 경지.

       세간에서 일컫기를 반선(半仙)의 경지라 일컫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트랜스 상태가 일반적인 오감에서 벗어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을 마음먹을 때마다 쉬이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은 곧 그와 같은 경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주술사의 업은 그것의 공능을 채 느끼기도 전에 스러지는 꽃과 같은지라.

       혹은 스러질 때가 지났음에도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썩어가는 고목과도 같은 것인지라.

       그리하여 정신이 아무리 고양되고 올라간다 한들 신과 소통하고 그들의 힘을 받으려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신은 존재하는가?

       초월적 존재들이 존재함은 널리 알려졌고, 그들이 초월종이니 초월자니 불리게 된 것 역시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다. 다만 사람들이 신앙하고 숭배하였던 그러한 존재, 정말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해야 하는’ 모순 끝에서야 간신히 그 윤곽만을 추측할 수 있을 그러한 존재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 탐구란 어렵고도 어렵다.

       길의 끝이 없는 것이 그와 같은 이치요,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진리 또한 없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치다. 그러하니 그러한 무궁한 궁리가 이어진다 한들 어찌 모순을 극복할 수 있으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상상할 수 없으니 그 순간 모순이 되어 저 멀리 목표물은 다시 달아나게 되고, 다시 한번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는 끔찍한 폭거를 강요하게 만든 과연 뭇 현자들이 궁리를 포기하고 광기의 세계에 접어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즉.

         

       다만 그래.

       그러하니 박진성은 다만 초월을 원할 뿐이니라.

         

       –

         

       아.

       별이 답해주었다.

         

       너는 그리할 수 있으리라고.

       너는 능히 할 수 있으리라고 소리 없는 속삭임을 그에게 내려주었도다.

         

       그리고 또한 자신에게 가까워진 이에게 속삭이기를.

       야경의 불빛을 깨져버린 별빛처럼 두른 이에게 말해주기를.

         

       -온다.

       -손님이 온다.

         

       아!

       소리 없는 모호함이여.

       형체 없는 형상이여.

       뜻도 없이 알맹이도 없이 그것은 다가와 그에게 깨달음을 주니.

       과연 별빛과도 같이 은밀하고 산산이 흩어져버리는 귀띔이로구나.

         

       그리하여 박진성은 제단 위에서 굳어버린 석상처럼 유지하고 있던 자세를 풀고 일어선다.

       그러고는 얼마 전 더더욱 증설해놓은 보안 장치들을 건드리지 않게 주의하며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며 건물의 입구에 다다랐으니.

         

       “진-성! 안-녕안녕-!”

         

       그곳에는 하얀 소녀가 있었다.

         

       아샤.

       회귀 전 그의 동료였으며, 지금은 여동생의 친구인 그녀.

         

       아샤는 박진성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반갑다는 듯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고, 그러다가 갑자기 퍼뜩 멈춰서더니 손을 자기 정수리에 올리고는 천천히 그것을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가늠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 손과 박진성을 번갈아 가며 보고는.

         

       “오오. 진-성. 보이시나요. 요새 몸이 쑤시더니, 제 키가 자라났어요.”

         

       그러고는 대뜸 자신의 신장이 자라난 것을 자랑하기 시작하였다.

         

       잘 때마다 무릎이랑 허리가 쑤셔서 깨고 있다느니, 그렇게 쑤신 것 때문에 잠에서 깨면 다른 의미로 좀이 쑤셔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느니, 그래서 꿈에서 가져온 모찌-슬라임을 두들겨 패면서 간단한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잠을 잔다느니.

       얼핏 들으면 어린아이가 자랑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나스타시아는 어린아이의 체형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조금 자라나기도 했고, 몸에 굴곡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얼마나 자랐겠는가.

       심지어 조금이라도 키가 커 보이려는 듯 은근슬쩍 발돋움하는 것을 본다면 더더욱 어린아이처럼 보일 수밖에.

         

       박진성은 그러한 아나스타시아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성장기라.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고통이 끝나고 난다면 그 결실이 맺히게 되겠지요.”

         

       “흐흠. 좋은 단어기는 해요. 아픈 것만 뺀다면 말이죠!”

         

       아나스타시아는 박진성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가 슬쩍 주위를 훑어보고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서-

         

       “…특히 제 동생, 엘라보다 더 성장할 것 같아서 더 좋은 것이에요.”

         

       히힛.

         

       아샤는 소곤소곤 그렇게 말하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몸이 많이 아픈 걸 보니 금방 자랄 것 같기도 한데, 얼만큼 자랄지는 모르겠네요-?”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웃으며 박진성에게서 슬쩍 멀어졌다.

       그러고는 자신이 메고 온 배낭의 지퍼를 열고, 무언가 하얗고 몽실거리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구름?

       아니, 뭉클거리면서도 쫀득한 느낌의 그것은 떡과 비슷했다.

       그것도 찹쌀떡 같은….

         

       “아. 이건 충격 방지용 모찌-슬라임이니 신경 쓰지 마세용~”

         

       휙.

       토옹.

         

       아샤는 뽁뽁이 비닐처럼 사용한 모찌-슬라임을 가차 없이 집어던졌다.

       몽실거리고 쫀득거리는 외형만큼이나 무게도 적게 나가는 것일까?

       얇고 작은 아나스타시아의 팔뚝으로 던졌음에도 그것은 무려 2층 근처까지 날아갔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토옹 소리를 내면서 몇 번이나 튕기고, 처음 부딪쳤던 부위에는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커다란 하얀색 반창고가 X자로 붙여지기까지 했지만….

       모찌-슬라임의 마음을 모르는 잔혹한 아나스타시아는 슬라임의 고통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외면하였다….

         

       그녀는 배낭에서 조심조심 무언가를 꺼낸다.

         

       “…입이라.”

         

       소금과 모래를 반죽해서 만든 입 모양의 조각상.

       톡 건드리면 바스러져 버릴 것 같은 위태위태한 모습의…현실에서 가져온 것 같지 않은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묘한 무언가.

         

       “진-성에게 전달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택배 배달을 왔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것을 박진성에게 내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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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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