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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5

        

         

       박진성은 아나스타시아가 바닥에 놓은 조각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탄 냄새가 난다.’

         

       소금과 흙.

       잘 구워진 가마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코를 찌르는 타는 냄새.

         

       타버린 소금이 탄 냄새를 뿜어내며 코끝을 간질이고,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형상의 입 모양 조각상은 마치 사람이 말을 할 때 숨결과 함께 입 냄새를 뿜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박진성의 후각을 자극한다.

         

       그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어떤 동력원도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것은 움직인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입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그대로 도려내서 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곤 박진성에게 말한다….

         

       [ 구도자여. 짧다면 참으로 짧고, 길다면 참으로 긴 시간 만에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구려. ]

         

       박진성에게 익숙하게 들리는 목소리.

       인도의 현인, 불꽃의 구도자, 무의식의 탐구자.

       주술사 아슈토쉬 싱.

         

       그가 지금 조각상을 매개로 박진성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 문물이 발전하여 이제는 대화를 나눔에 있어 공간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소. 하지만 남의 말을 엿들으려는 쥐 역시도 한껏 창궐하였으니, 내가 무례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대화를 청하게 된 연유라오. ]

         

       아슈토쉬 싱이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설명이었다.

       전화나 인터넷 등의 방법이 아닌 아나스타시아라는 택배기사를 거쳐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대화를 청하게 된 이유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말로 간단한 것이었다.

         

       도청의 위험이 있었으니까.

         

       [ 전산망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는 하나 그 주인이 원한다면 그 속살을 언제든 보여줄 수 있는 법이 아니겠소? 땅을 거니는 이들이 자신은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다고는 하나 실제로 그 땅을 가진 주인이 원한다면 그 자유가 구속될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라오. ]

         

       위성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한 고차원적인 도청이 아니다.

       더 기본적이고도 폭넓은 것.

         

       전산망.

         

       전산망 자체가 누군가의 소유이며, 누군가가 원한다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놀이터나 다름이 없기에- 그렇기에 아슈토쉬 싱은 굳이 이러한 방식으로 통신을 한 것이다. 인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유지.

       무의식과 꿈이라는 통로를 사용해서 말이다.

         

       “전산망이라.”

         

       박진성은 아슈토쉬 싱의 말을 듣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염려 잘 알 것 같군요. 하나는 미국의 것이고, 하나는 중국의 것이니까 말입니다.”

         

       [ 바로 그러하오. ]

         

       통일 대한민국의 전산망은 안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외부와 네트워크가 연결되기는 하되 자신 소유의 외부와 통하는 초고속 해저 광케이블망을 갖고 있지 않았고, 대한민국이 사용하는 초고속 해저 광케이블은 미국, 중국, 일본의 것이었다.

         

       통신 장비 역시 마찬가지.

       지금까지는 국산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격 때문인지 국산은 점점 밀려나고, 중국산으로 교체가 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감시와 통제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중국산 장비는 신뢰할 수 없었으며, 높은 확률로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으리라고 짐작되고 있었다.

       얼마나 꼭꼭 숨겼는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인공위성은 안전하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처럼 빼곡하게 인공위성을 깔아서 그것을 전부 인터넷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지. 인공위성 역시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지….’

         

       우주에서 떠도는 무인이 있는 이상, 지구 주변에 돌아다니는 위성은 언제나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공간을 뛰어넘는 공격 한 방에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릴 위험 말이다.

         

       ‘그나마 보안 문제는 조금 낫기는 하지만.’

         

       물론 보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빈말로라도 최상위권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북한이 망한 뒤 북한에서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던 해커들, 통칭 ‘정보 전사’라 불리는 이들이 한국에 흡수되었고, 그들의 노하우나 육성 방식 등이 한국에 접목되면서 진일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방어로 따지자면 중위권 이상은 되었고, 공격이나 분탕질을 치는 것은…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박진성이 용병 시절 한국 해커한테 사기를 당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동료를 본 적이 있는 것을 보아 상위권 이상이리라.

         

       종합해본다면…그래.

       한국의 보안은 믿기 힘들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누군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 불꽃이여. 내가 저 아이에게 부탁하여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은 하나의 질문을 하기 위해서라오. ]

         

       그렇기에 아슈토쉬 싱은 절대로 해킹당하지도, 감청당하지도 않을 방법으로 묻는다.

         

       [ 불꽃이여. 내가 말한 불로불사의 단서는 찾으셨소? ]

         

       그 물음에 박진성은 대답한다.

         

       “그 윤곽만은.”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로불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것은 찾을 수 있었다.

         

       해저에 만들어진 생체연구소.

       신앙과 공포를 연구하던 그곳에서 만난 것.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가 어떠한 목적으로 발전시켜가던 그것.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끔찍하고 비인도적인 실험이 함께하고.

       생체실험과 첨단공학이 교차하며 진화를 향해 나아가게 하려 한.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던 바로 그 인공지능.

         

       아나엘.

         

       그것은 분명 박진성이 바라던 것과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과 관련이 있으리란 것 역시 짐작하고 있지요.”

         

       박진성은 아슈토쉬 싱의 말에 긍정을 표하면서도, 은근히 의문 하나를 끼워 넣었다.

         

       중국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돌고 돌 필요가 있었느냐.

       어차피 중국에 다다르게 될 것인데 어째서 나의 주의를 미국으로 돌린 것이냐.

         

       박진성은 그렇게 약간의 의문과 질타를 섞어서 은근히 물었다.

         

       [ 각자를 가로막던 장벽이 사라지고 세상이 하나로 연결이 되었으니 인과 역시 마땅히 이어지는 법이 아니겠소. 옛적 순례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였던 옛날과는 다르게 참으로 쉽게 세계를 동네처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음이니 그것은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닐 것이오. ]

         

       [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지라 줄기에서 열매가 열리고 그 뒤에 뿌리가 열리지 아니하는 것처럼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열매가 열리게 되는 것이 순리인즉 나 역시 그러한 순리를 걷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꽃을 인도하였음이니, 마치 종이에 불을 붙인 뒤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더 큰 불꽃이 되도록 안배하였을 뿐이오. ]

         

       아슈토쉬 싱은 박진성의 질문에 몰랐었다며 시치미를 떼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세계가 연결되어 있으니 중국과 연결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 그리고 자신은 올바른 순서를 위해서 미국에 있는 단서를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허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박진성은 그러한 아슈토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순서’가 무슨 뜻인지 대강 알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더 깊은 지식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는 법.

       중국에 있을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존재나 그것에 얽혀있는 이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말이나 자료 등으로 알려주었다면 일이 더 쉽게 해결되었을 테지만-

         

       아마 저 불꽃의 현인은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알려주었어도 닿지 못한다면 인연이 없는 것이고, 닿게 된다면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목적 역시도 약간은 넣었으리라.’

         

       물론 그것 역시도 노림수 중 하나일 뿐이다.

         

       박진성은 아슈토쉬 싱이 굳이 미국으로 자신을 보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시간.

       박진성이 중국에 관심을 거두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 ‘시간’이야말로 아슈토쉬 싱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었을 것이다.

         

       중국에 있을 수많은 사람의 무의식과 꿈.

       그것을 탐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딱히 거기에 불평할 생각은 없다.

       결국은 약간의 시간을 쓰기는 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않았던가.

       아슈토쉬 싱의 조언이 방향을 지정해주지 않았다면 그것을 찾아 헤매게 될 일도, 그것과 마주하게 될 일도 없었을 테니- 굳이 따져보자면 아슈토쉬 싱은 박진성에게 이득을 안겨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자신의 이득 역시도 챙기고 말이다.

         

       모두가 좋은 일이니.

       아슈토쉬 싱과 박진성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았다.

         

       ‘아직은.’

         

       그래.

       아직은…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다.

       아슈토쉬 싱이 굳이 아나스타시아를 통해서 입 모양 조각상을 전달하면서까지 박진성에게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누군가 한 명은- 혹은 두 명 모두 손해를 볼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박진성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침묵하며 조각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각상은 그 무언의 재촉을 받아 입을 열어 말하기를-

         

       [ 구도자여. 불꽃이여. 나는 일찍이 그대에게 길을 인도하였소. ]

         

       [ 하지만 불꽃은 파괴적이면서 제 몸을 불리려는 성질이 있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번져 나가려 하는바. 그것이 산에 닿으면 산불이 되고, 도시에 닿으면 화마가 되어 잿더미로 만들려고 하지….]

         

       [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길을 인도하려 하오. ]

         

       [ 독일에도 불로불사의 단서가 있으니 한 번 찾아가 봄이 어떻소? ]

         

       -길을 인도해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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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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