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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8

        

         

       꿈 밖에서 연락한 손님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형상이 허물어지고 소금과 모래로 분해되어야 할 조각상은 이곳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듯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마치 정신이 들면 사라지는 결의 잔향처럼 그렇게 허무하리만치 쉽게 허공에 녹아들며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박진성과 하얀 소녀.

         

       박진성은 고개를 돌려 택배 배달을 온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슉. 슈슉. 슈슉. 슉.

         

       그녀는 빌딩 근처의 골목길 어귀에서 이상한 선인장과 함께 있었다.

       아나스타시아의 절반 정도 키를 가진 은색 선인장은 마치 아나스타시아에게 격투기를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듯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펀치와 킥을 현란하게 사용하는 것이 킥복싱을 주력으로 삼는 것처럼 보였다.

         

       가시가 뾰족뾰족 솟아나 있는 왼손과 오른손이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뭉툭한 발이 움직일 때마다 달빛과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며 하나의 선을 그린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선인장의 움직임을 모방하려는 듯 애써 따라 해보지만, 무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서 그런지 하나하나가 어색했다. 마치 초등학생이 난생처음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해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슈슉. 슉. 슉.

         

       하지만 기본적인 학습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나스타시아가 꿈에서 가져왔을 저 선인장에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확연하게 무술 동작이 다듬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단순히 초보자가 초반에 학습이 빠른 것일지도 모르고.

         

       박진성은 열심히 운동하는 아나스타시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샤.”

         

       “으응? 진-성?”

         

       박진성이 부르는 소리를 듣자 반응하며 고개를 돌리는 아나스타시아.

       그녀는 자신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는 듯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고, 얼굴과 목덜미에는 땀이 약간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피곤함이 담긴 듯한 눈동자는 운동에 집중하느라 자신은 박진성이 하던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온몸으로 어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루한 대화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넹?”

         

       그래.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박진성은 아나스타시아가 지금 보이는 모습이 연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용병 시절 저런 모습을 보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박진성은 아나스타시아가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하는 말을 잘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다른 일에 열중한 것처럼 저렇게 시치미를 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었다.

       회귀 전의 아나스타시아가 말하기를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를 사용한 고도의 기법을 사용한 영리한 방식의 정보 수집’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효과가 꽤 뛰어나긴 했다. 도무지 행동과 생각을 예측할 수 없는 아나스타시아가 평소 행실 탓인지, 저런 모습을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들 이해하고 말았으니까.

         

       거기에 더해서, 괜히 따지거나 의심하면 아나스타시아의 보복이 따른다는 이유가 있기도 했고.

       회귀 전의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에게 시비를 걸거나 의심을 하는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았고, 설령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빼도 박도 못할 수준이 아니라면 가벼운 보복이라도 반드시 행했다.

       동료끼리 의심하는 것은 내분을 부를 수 있으며 팀워크를 방해하는 것이니까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뭐, 보복이라고 해 봤자 꿈속에서 데려온 크립티드와의 대련이라거나, 크립티드와 함께하는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 같은 조금 무서운 놀이라거나, 악몽을 꾸게 하거나 가위를 눌리게 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박진성은 그러한 가벼운 장난 같은 보복에서도 예외에 속했다.

       아나스타시아랑 친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혹은 그러한 보복이 들어오면 바로 역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는 주술사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

         

       “하하. 듣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아왔던 박진성이다.

       그러니 회귀 전과 모습도, 성격도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나스타시아의 그 버릇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헤헷.”

         

       아나스타시아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고는 괜히 머리를 긁었다가, 머리를 다 긁은 후 방황하려는 손길을 잠시 멈춘 뒤 무술 수련을 하는 기분을 내기 위해 포니테일로 묶었던 자기 머리를 풀기 위해 뒤통수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머리 끈을 휙 하고 풀고는 그대로 선인장에 집어 던졌다.

         

       뿅.

       뿅.

       뿅.

         

       은색 선인장은 아나스타시아가 집어 던진 머리 끈을 집어 들고는 기쁘다는 듯 펄쩍펄쩍 뛰었다.

         

       선인장은 꿈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유였지만 아나스타시아에게 빼앗겨서 위치가 이동 당하였으며,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며 소유권마저 상실해버릴 뻔했던 소중한 머리띠를 다시 자기 머리에 동여맸다.

         

       아나스타시아와의 체격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선인장과 인간이라는 종의 차이 때문일까?

       아나스타시아에게는 머리 끈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끈이 선인장의 머리로 가니 무술가들이 사용하는 머리띠가 되었다.

       심지어 꽤 그럴싸한 분위기의.

         

       처억.

         

       그렇게 머리띠를 동여맨 선인장은 만족했다는 듯 엄지를 ‘척’ 하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스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만족하였다는 듯이….

         

       …그렇게 은색 선인장은 모습을 감추었다.

       성불을 한 것처럼.

         

       물론 실제로 성불하지는 않았다.

       비물질의 형태로 돌아간 것일 뿐.

         

       아마 그러한 능력을 갖춘 크립티드였으리라.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아나스타시아가 꿈속에서 가지고 오는 것들은 특이한 능력을 갖춘 것들이 많았으니까.

         

       “유쾌한 선인장이로군요.”

         

       “오오. 관심이 있나요?! 저 선인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플라스틱과 색유리 모래들이 쫙 깔린 무지개 사막에 갔을 때의 일인데-”

         

       “하하하.”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선인장을 사용한 것이 훤히 보인다.

       뭐, 실제로 저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넘어갈 방법처럼 보이긴 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엄지를 척 내밀더니 성불하는 은색 선인장이라니…어지간히 중요한 주제가 아닌 이상에야 저걸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지.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고 해도 머리 한구석에 저것의 잔상이 남아 집중을 방해하기도 할 테고.

         

       “그리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샤.”

         

       “넹?”

         

       “그리 대단한 대화는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박진성은 슬쩍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물론 아샤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겠지요. 방금 택배를 배달한 그 사람, 꿈속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아닙니까.”

         

       “으음~”

         

       아나스타시아는 박진성의 말에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마치 고민을 하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침음성을 잠깐 낸 뒤 눈을 번쩍 떴다.

         

       그 고민은 매우 짧았다.

       숫자로 따지자면 1초조차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정도면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미리 답을 냈던 것을 빠르게 떠올린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빨간 눈동자로 박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관없을 것 같아용!”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이다.

         

       “뭐 제가 빚져서 받은 것도 아니고, 순수한 선의만으로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면 깔끔한 거래? 비즈니스 관계? 그런 느낌이니까- 대충 그런 것이랍니다.”

         

       아나스타시아의 맑은 눈동자가 박진성의 눈과 마주친다.

         

       붉은 눈동자.

       알비노 특유의 눈동자와 하얀색 머리카락, 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하얀 속눈썹.

       달빛에 반사되는 창백한 피부.

         

       마치 꿈을 두른 것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그녀는 꿈속의 일을 떠올린다.

         

       엘라와 함께 꿈속을 돌아다니다가 아슈토쉬 싱을 만났던, 사용이 끝난 인류 집단 무의식 네트워크(표면) 1회 접속권을 주는 것을 대가로 조언받았던 그때의 일을.

         

       그것은 아슈토쉬 싱이라는 한 인물에게 미약한 호의를 품기 충분하였고, 안면을 마주하였기에 인연이 생겼다고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봤자 그것은 거래일 뿐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마음이 동해서 음식을 사 먹거나, 노점상이 파는 싸구려 액세서리를 사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거래.

       

       그렇게 가볍게 마주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박진성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러니까 저는 진-성이 무엇을 하건 상관없어요.”

         

       그것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소녀의 미소.

       현실에 닻을 내리고 꿈속을 탐사하는 여행자의 미소.

       무의식이란 터전이었고, 고향이었고, 놀이터.

       하지만 그녀의 집은 이곳 현실에 존재한다.

       그녀가 내린 닻은 그녀를 현실에 고정하고 표류하지 않게 도와준다.

         

       그 닻 중 하나는 바로 박진성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꿈속에서 만나고, 꿈속에서 끝난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닻.

       그녀의 은인, 그녀의 인연.

       꿈도 정신도 아닌 현실에 그녀를 존재케 하는 사람들….

         

       “그렇습니까?”

         

       “네엥~”

         

       아나스타시아와 박진성의 시선이 마주친다.

         

       맑은 붉은 눈동자 안에 보이는 것은 어린 소녀의 외견과는 상반되는 깊은 마음의 창.

       본질에 가까운 인간의 감정, 몽환 속에서 기괴한 옷을 입었던 광기들을 관람한 경험.

         

       회귀 전, 용병이었던 아나스타시아의 눈동자에 보이던 노련한 잔혹함은 보이지 않지만- 아직 새싹의 상태로 점점 자라나고 있는 순수한 잔혹함이 보인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충분히 간접적으로 보며 익숙해진.

       용병이 가지고 있기에 적합한 그러한, 육식동물이 어린 시절에 품을법한 그러한 순수한 잔혹함의 새싹이.

         

       “아.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

         

       아나스타시아는 몽환적으로.

       회귀 전의 그녀를 똑 닮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그리고 박진성은 과거를 떠올린다.

         

       과거라면 저 질문에 잠시라도 고민했겠지만-

         

       “아뇨.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하하.

         

       박진성은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만우절이니까 표지를 한 번 바꿔봤습니다.
    4월 1일 한정 엘라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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