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69

       

       

        * * *

       

         

       

       

       

       

       아나스타시아를 돌려보낸 박진성은 다시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아나스타시아가 『 지금 보니까 진-성의 빌딩이 제가 언제 꿈에서 봤던 끝없이 이어지는 버려진 빌딩하고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한번 탐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닌 끌림적인 끌림이 샐러드에 뛰어들어서 어우러지는 초콜릿바 같은 느낌으로다가 맴도는데 초콜릿바-샐러드처럼 달콤하게 저 빌딩을 한 번 탐험해도 될까요? 』 라는 길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박진성의 혼을 빼놓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기는 했지만…박진성은 자연스럽게 빌딩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나스타시아의 시도를 좌절시키고는 얌전히 돌아가라며 택시를 불러서 태워주었다.

         

       ‘안돼-! 내 백룸-!’

         

       아나스타시아는 무언가 미련이 남는 듯 단말마 같은 외침을 내뱉으며 그렇게 사라져버렸고, 다시 침묵이 찾아온 빌딩 속에서 박진성은 천천히 고민했다.

         

       ‘방화선, 불꽃, 띠….’

         

       조금 전 아슈토쉬 싱이 박진성에게 했던 말들.

       협상이 결렬되고 박진성이 중국에 가겠다는 의도를 보이자마자 나온 아슈토쉬 싱의 그 말.

         

       은유로 점철이 된 것 같은 단어의 나열….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슈토쉬 싱이 인간의 무의식을 탐험한다는 것, 그리고 불꽃과 관련된 주술을 주로 사용하는 화염술사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대략적으로 어떤 짓을 벌일지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좁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흐음. 인도에 무슨 일이 있었지….’

         

       회귀 전 박진성은 아슈토쉬 싱과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 만날 일이 없었음을 아쉽게 여겨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가 사용할 방법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3차 세계대전의 초창기, 그러니까 박진성이 용병 일을 할 때를 떠올려보아야 하는데…애석하게도 그때에도 인도와 인연이 별로 없었다.

         

       인도의 용병들은 구르카(गोर्खा)와 영국 출신의 용병들이 자리를 꽉 잡고 있었다. 역사와 인맥을 통해 그들은 인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가장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면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현지인 용병들이었는데, 종교와 신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장벽이 외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꽉 막고 있었다.

         

       「 우리와 같은 종교가 아니라면 탈락. 」

       「 같은 종교라고 해도 인종이 다르면 탈락. 」

       「 외국인? 그러면 애초에 카스트로는 수드라인데. 감히 수드라가 우리랑 같은 일을 하려고 해? 」

         

       차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장벽.

       외부의 것을 무한히 포용하는 듯하면서도 끔찍할 정도로 배타적인 그 무형의 장막은 정말 위험하거나 더러운 일이 아니라면 외국인 용병이 인도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 세웠다. 물론 그러한 배타적 장벽도 거세지는 전쟁의 불길에 죄다 죽어 나가게 되자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개방했는데도 공백을 다 메우지는 못했지.’

         

       그렇게 배타적으로 외국인 용병들을 대하던 이들이 다 죽어 나간 이후로는 외국인 용병들이 인도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었냐?

         

       아니다.

         

       업보.

         

       그들이 자주 입에 담는 카르마(Karma)가 그들을 덮쳤다.

         

       인도에 어떻게든 들어가 용병 활동을 했던 이들은 끔찍할 정도의 배척은 물론이고, 멸시에 대놓고 행해지는 차별, 공정하지 못한 잣대까지 골고루 경험했다. 인도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로 말이다.

         

       당장 박진성이 알던 어떤 용병만 하더라도 ‘빌어먹을 카레 장교 새끼가 군인들 끌고 와서 내 장비를 죄다 뺏어갔어! 빌어먹을 나라 같으니! 신고해도 듣는 척도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빌어먹을 새끼가 브라만인지 뭔지 하는 계급이었다더군!’이라면서 기회만 된다면 그 빌어먹을 새끼의 골통을 날려버리겠다고 술을 마실 때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소리치곤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겪은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일들은 인도 출신, 혹은 인도와 관련이 있는 역사와 인맥을 다져온 이들로 해결이 되는데…굳이 외국인 용병들을 고용해서 일을 처리하려 했다는 것은 아무도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일.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래서 굳이 외부인을 불러야 하는 일.

         

       그런 일에 하자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

         

       일의 주체가 끔찍할 정도의 신용도를 가지고 있거나, 인도에 계속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가 뒤따른다거나, 의뢰 성공 확률은 낮은 것은 물론이고 생존을 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거나, 끔찍한 후유증이 뒤따르거나 도저히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일이라거나.

         

       외국인 용병들을 기다리던 것은 당연히 그런 일들뿐이었다.

         

       뭐 그런 일이라도 보상이 좋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긴 하다.

       어디 용병이 뭐 찬밥 더운밥 가려서 먹었던가.

       돈 많이 주고 일할만하면 뛰어들었지.

         

       그런데 말이다.

       더럽고, 힘든 일들을 하는 용병들을 보고 현지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현지인들은 아무도 도맡으려 하지 않는 일을 굳이 하려고 뛰어드는 용병들을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심지어 그 용병들이 외국인이고, 카스트로는 수드라 취급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면?

         

       당연하게도 뒤따르는 것은 멸시와 차별이다.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외국이라고 해도 신분이 높다면 크샤트리아 취급은 받지만….’

         

       용병 중에 그러한 사람이 있겠는가?

       애초에 가진 것이 없어서 제 몸뚱이를 사용해서 돈을 벌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가진 것은 몸뚱이고, 할 줄 아는 것은 싸움.

       그런 이들이 돈이 어딨고 권력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크샤트리아 취급을 받을 리가 없다.

         

       그렇게 인도 사람들은 외국인 용병들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차별은 더럽고 아니꼬와도 돈을 받기 위해 참는 용병들의 모습, 결국 차별과 멸시에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둘렀다가 제압당하고 인도 밖으로 쫓겨나가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고 ‘저놈들은 막 대해도 되는 놈들이구나.’ 라는 하나의 공감대를 만들었고, 점점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냥 차별해도 문제가 없는데, 이제는 괴롭혀도 뒤탈이 없다는 것까지 공인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니 점점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내 그렇게 학습된 차별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었다.

         

       차별.

       혐오.

         

       용병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조차도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일들의 연속.

         

       그렇게 인도에 들어갔던 외국인 용병들은 인도에 대한 혐오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자신들의 혐오와 울분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저 빌어먹을 놈들의 배를 쑤셔버릴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업보의 날이 찾아왔다.

         

       인도에서 정말로 외국인 용병들이 필요해서 그들을 부르려 했을 때, 용병 대부분이 보이콧을 한 것이다. 아니, 보이콧을 넘어서 아예 상대측에 붙는 용병들도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업보는 돌아왔다.

       중국은 인도의 영토 일부를 점령하였고 그곳에 있는 민족들을 엄격하게 판단해 등급을 나눴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중국인들을 대거 이주시킨 뒤 한족의 핏줄을 효율적으로 늘리기 위해 인종을 개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현지인들?

       대부분이 죽었고, 살아있다면 노예처럼 부려 먹히거나 인종 개량 작업에 동원되었다.

         

       중국의 계층 분류에 따르면 황인종이 가장 위, 중간이 흑인, 가장 아래가 백인이다.

       인도인들은 이러한 분류에서 ‘계층 외’였다.

         

       그래,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비유하자면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계급으로, 계층으로 차별하던 이들이 그 차별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렇게 된 것에는 그들이 쌓았던 업보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지….’

         

       나쁜 일은 하나만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쌓아왔던 업보는 한두 개가 아니었으며, 반드시 엿을 먹여야겠다면서 이를 갈고 있던 이들 역시 한둘이 아니었다.

         

       인도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인도와 원수 사이로 유명했던 나라인 파키스탄에서는 핵무기를 쏴서 인도 곳곳을 폭격했으며, 미얀마에서는 ‘인도가 망명한 로힝야 난민들을 명분으로 삼아 침략을 준비하였다.’라고 말하며 군대를 끌고 인도-미얀마 국경 장벽을 넘어 침략하였다.

         

       평소 인도가 아르메니아와 친하게 지내며 자기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거슬렸던 터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도 내부의 탄압받는 무슬림들을 위한 구조대’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보내 침략을 시작하였고, 터키가 총대를 메는 것을 본 이슬람 문화권은 마침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도를 팰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기뻐하며 ‘탄압받고 있는 무슬림을 구하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고 소리치면서 인도 내부에 온갖 분탕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침략이 지속되자 기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민족주의니, 하나의 종교로 이루어진 독립 국가 건설이니 하면서 내부 역시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외부와 내부가 같이 뒤흔들리는 끔찍한 혼란 속.

       아슈토쉬 싱은 그러한 혼란 속에서 민간인들을 구원하고,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어떻게 구원했다고 했더라?’

         

       떠올린다.

       아슈토쉬 싱의 행동에 감명받은 이들이 행했다고 알려진 일들을.

       끔찍한 혼란 속에서 시크교도들이 행했던 행동들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적으로 싸웠으며, 수류탄이나 폭탄을 품에 안고 전차와 산화를 하는 의기를 보여주었다고 하였던가….’

         

       아.

         

       박진성은 아슈토쉬 싱이 말했던 ‘장작’의 의미를 깨닫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4월 1일 한정 엘라는 사라지고 대신에 멋진 주술사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