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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땅이 다져지고, 투기장이 열리고, 기사들이 하나둘 몸을 단련하는 사이.

     “정말로 이걸 축제에 넣을 것이더냐?”

     “예.”

     나는 아버지에게 보육원에서 있었던 놀이들을 축제에 도입하기로 했다.

     “기마전이라는 형태의 대결, 물건을 던져서 쏘아 맞히기, 그 외에 보육원에서 있었던 다양한 육체 활동들. 이를 축제에 접목해 ‘도박’처럼 만든다.”

     “그리고 그걸 위한 화폐가….”

     “이 토큰, 축제에서만 사용되는 화폐인 ‘솜누스 골드’죠.”

     나는 솜누스 꽃이 가운데 박혀있는 동그란 나뭇조각을 꺼냈다.

     “축제에서 사용되는 화폐로서, 하나에 100골드의 가치를 가진 특별한 물건.”

     “…….”

     “안심하십시오. 축제에서만 활용하고자 하는 놀이일 뿐입니다. 이미 제작은 들어갔고, 홍보도 이루어지고 있죠.”

     “그래. 알고 있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말콤 집사장이 한소리를 했습니까?”

     “…….”

     아버지가 한창 축제를 준비 중인 나를 부른 이유.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도련님 소꿉장난에 이런 예산을 쓰시려는 겁니까’라고 하더군.”

     “진짜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군요.”

     “말콤도 네 앞에서는 직접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저택의 그 어떤 누구도 내 앞에서는 직접 말하지 못한다.

     “도련님이 고작 보육원에서 제법 잘된 일을 가지고 모든 게 다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나본데,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라고 하더구나.”

     설령 말하더라도 최대한 돌려 말하며, 그걸 수합하여 전하는 것도 원색적인 비난을 쳐내고 정제한 발언이다.

     “그레이. 이건-”

     “그렇습니까. 로버트 경이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레이 이 머저리 같은 인간이 백작성 재산을 축내려고 개짓거리한다’라고 하던데.”

     “……누구더냐?”

     “잡아 족치시려면 늦었습니다. 이미 상응하는 적당한 조치는 취해뒀으니. 그보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뒤, 다시 솜누스 골드를 들고 흔들었다.

     “그렇게 봐주는 사이, 저희는 이 솜누스 골드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켜본다?”

     “예. 현재, 지브롤터 영지에는 외지에서 오는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죠.”

     지브롤터에서 가벼운 축제를 연다.

     귀족들이 오는 성대한 파티는 아니지만, 거리에 야시장이 열리고 온갖 행사가 펼쳐지는 축제에 상인들이 빠질 수 없다.

     “이미 축제를 열기로 한 날에 이웃 영지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빌리아와 말라가에서 온 상단들이 벌써 오전에 도착해서 상업행위 허가서를 제출했지.”

     돈 냄새 나는 곳에 상인들은 어디든 찾아가는 법.

     “말콤이 그들에게 이번 축제의 화폐 사용 및 정산에 관해 이야기를 하더구나. 이거, 진짜 괜찮은 거냐고.”

     “백작성 자산이 거덜날까봐 걱정해서 그런 거겠죠. 말콤 집사장, 정말이지 충신이 따로 없습니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축제에서 열리는 모든 거래는 솜누스 골드로 진행하며, 모아온 솜누스 골드를 백작성에 제출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골드를 지급하겠다.”

     아버지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그려지는 그림만 벌써 십수 가지구나.”

     “어떤 의미에서요?”

     “상인들이 장난질을 칠 그림이.”

     아버지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실적 부풀리기.”

     “실제로 물건을 팔고 얻은 게 아닌 솜누스 골드를 가져와서 정산해달라고 하겠죠.”

     “화폐 위조.”

     “상인 중 몇몇은 나무토막을 잘라 솜누스 꽃을 붙여올 겁니다.”

     “…골드를 몰래 사용하는 것.”

     “애초에 이런 걸 굳이 사용할 필요 없이, 진짜 골드로 거래하려고 하겠죠. 귀찮으니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상인들의 얄팍한 수작들이 있겠지만-

     “그런 걸 오히려 보고 싶다는 말 같구나.”

     “예.”

     오히려, 바라던 바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인간이 자기 이윤을 내기 위하여 어디까지 창의적으로 장난질을 칠지.”

     “골드가 아니기에, 이걸 가지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심판할 수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손해 보는 것도 감수하고 있고, 그 돈은 제 주머니에서 충당할 것입니다.”

     “…상인들을 상대로 실험이라도 하겠다는 건 알겠다만, 결국 이걸로 노리는 게 무엇이냐?”

     아버지는 내가 앞에 한가득 제출한 계획서를 두드렸다.

     “정말로 모든 것들이 네 예상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모든 것까지는 아닙니다. 제가 무슨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너는 이 계획서의 아래,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적어놓았다.”

     “예.”

     매국노 그레이 변경백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아버지께 적혀있는 내용들이 전부 일어난다면 저는 아버지께 저를 다시 한번 증명하게 되는 셈이 될 것이며.”

     나는 상인들이 이 ‘가짜 화폐’를 두고 머리를 굴려 지브롤터를 후려칠 경우의 수를 생각나는 대로 전부 적어놓았다.

     “그리고 만일 제가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방식이 있다면.”

     “그런 자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고 했지.”

     “예.”

     경우의 수를 벗어난 자가 있다?

     둘 중 하나다.

     “천재의 발상을 벗어난 존재.”

     매국노 그레이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자료를 넘어서는 존재-희대의 매국노.

     “아니면, 천재 그레이를 뛰어넘는 천재.”

     혹은 상업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존재-나의 경우와는 다른, 노스트럼 왕국의 특산물.

     “전자는 처형해 마땅할 범죄자지만, 후자는 반드시 영입해야 할 영웅이죠.”

     “상업의 영웅이라는 건가.”

     “그런 존재가 나타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국의 화폐가 들어오고 온 나라가 제국에 빚을 졌을 때, 그 모든 빚을 일거에 지워버릴 수 있는 영웅이.”

     “네 입에서 ‘영웅만능론’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는데.”

     “농담입니다. 그냥, 기대하는 거죠.”

     나는 영웅을 믿지 않는다.

     그 영웅들, 전부 황제에게 살해당했으니까.

     “혹시나 모르잖습니까. 에단 세자르처럼 통발을 던져뒀는데 대어가 낚일 수도 있고.”

     “그건 정말로 요행이니, 네 목적은 전자로구나.”

     아버지가 결국 도장을 꺼냈다.

     “좋다. 침대 아래에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다면, 그 벌레가 사람을 무는 놈들이라면 박멸해서 나쁠 게 없지.”

     쿵.

     “그래도 명심해라.”

     아버지가 승인을 내렸다.

     “결국 너는 바보 취급당할 것이고, 승냥이들은 너를….”

     “저를 이용해 먹기 좋은 녀석으로 알아야 접근하겠죠.”

     “…….”

     “모기가 인간의 피를 빨아먹을 때, 인간을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아둔한 거인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실은 인간이 모기가 앉은 부위에 힘을 잔뜩 주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강자에게 달라붙는 자들보다 더 다루기 쉬운 이들은, 그런 강자보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약자입니다.”

     이 모든 건 투자인 동시에, 미끼다.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달라붙어 지브롤터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기꺼이 저는 구정물에 발을 담그려고 하는 겁니다.”

     “…….”

     “그 과정에서 집을 좀 더럽힐 수는 있겠지만, 그렇기에 따로 나와서 살고 있잖습니까?”

     “그래. 이미 예전부터 보육원에서 따로 지내는 덕분에…내놓은 자식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더구나.”

     실상은 두 공주를 향한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지만.

     더불어서,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개인적으로 수련하기 위함이지만.

     “…그레이,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처럼 보이십니까?”

     “…….”

     “어린아이가 그저 어른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천재인 줄 알고 소위 나대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이 모든 행동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직접 일을 진행하고 있는 당사자가 들으면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뒤에서 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레이.”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족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결국 네가 모기를 잡아봐야, 흡혈귀를 잡을 수는 없지 않으냐.”

     “갑자기 뭔가 엄청나게 비유가 커진 느낌입니다만.”

     “송사리를 몇 마리 잡았다고 그물을 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는 크라켄의 먹이가 되고 말지. 아니면 상어에게 잡아먹히거나.”

     “…….”

     아버지가 머스킷이 든 상자가 놓여있던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로 과연 제국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런 쪽으로는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해 도움을 줄 수 없어 그저 믿고 지지해 주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지만….”

     

     아버지는 설령 나를 믿는다고 해도, 주변 가신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네가 하는 행동들을 소꿉장난처럼 생각하고 있더구나.”

     “13살 아이의 소꿉장난.”

     “…그렇기에, 나는 네가 걱정된다. 네가-”

     “제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나는 괜찮다.

     “오히려 좋습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 피를 계속 빨아먹으면서 안심하겠죠.”

     그런 반응 또한 계획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더 진실을 숨기기에 적당한 연막이 될 테니.

     “그 피에, 독이 들어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레이.”

     “아버지. 진정한 독살이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순간에 죽이는 게 아닌.

     “언젠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중독된 순간, 갑자기 픽 죽어버리는 거죠.”

     미량의 독이 중첩되고, 쌓여,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게 되는 순간.

     “스스로 만들어낸 꿈 같은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 자신이 죽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설령 눈치 빠른 기생충들이 몰래 도망을 친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때는 늦었을 것이다.

     “영영 꿈 속에 갇혀, 현실의 자신은 죽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겁니다.”

     * * *

     늦은 밤.

     “아으, 더럽게 시끄럽네.”

     라이트 마법을 걸어둔 마석의 빛에 의지하며 빠르게 깃털펜을 움직이던 아르쉔 길라루스는 창밖의 소리에 절로 짜증이 일었다.

     “고작 푼돈 좀 벌겠다고 이 대마법사의 집중을 방해하다니. 씁….”

     창밖.

     밤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로 된 기둥이 쓰러지지 않게 바닥에 잘 고정하고, 위로는 천막을 펼치고, 아래로는 가판대를 조립하느라 뚝딱거린다.

     “온종일 바가지 씌운 돈으로 물건 팔아봐야 결국 내 일당보다 더 벌지도 못하는 쓰레기들이, 감히 내 귀중한 연구의 시간을…쯧쯧.”

     마음 같아서는 확 소리라도 지르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지브롤터 백작의 명령이다! 상인들은 한 시간 내로 설치 작업을 마치도록! 이 이상 늦은 저녁에 소리를 낸다면, 소음공해로 잡아가겠다!”

     “네 놈 목소리가 더 크다, 이 목소리만 큰 하급기사놈아.”

     아르쉔은 들리지 않게 작게, 창밖에서 쩌렁쩌렁 울려오는 소리에 화답했다.

     “젠장. 이제 얼마 남았지? 1시간? 하아. 미치겠네.”

     자신이 온 이유도 사실 축제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다.

     체재비는 물론이거니와 교통비도 사비가 아닌 지브롤터 백작가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했고, 심지어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면 모르가니아 공작가에서 보너스도 받기로 했다.

     축제날 밤하늘을 향해 불꽃 마법을 난사해 주는 걸로 500만(+보너스 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 축제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쓰으읍….”

     

     하지만 이건 곤란하다.

     양피지에 한가득 적혀있는 이 발상과 기초이론은 500만이 아닌 5억-아니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기술이 될 수도 있으니까.

     “계약만 아니라면….”

     똑똑똑.

     순간,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

     아르쉔은 급히 책상 위를 정리한 뒤, 비릿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끼이익.

     “아,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약간 색이 바랜 회색 같은 머리칼의 여인이 꽃바구니를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머리칼, 갈색 눈동자…. 맞군.”

     “지, 지명에 감사드립니다…!”

     호텔에서 보기에는 어색한, 낡은 평민 복장.

     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목에 분홍색 스카프를 감은 여자.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존재.

     “저, 저기…. 길라루스…님?”

     “그래.”

     “꼬, 꽃을 팔러 온 메이엔이라고 하는데요….”

     “들어와.”

     길라루스는 입맛을 다시며 메이엔을 안으로 들였다.

     끼이익, 철컥.

     문이 닫히고, 길라루스는 메이엔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침대 쪽으로 인도했다.

     “우선은-”

     

     순간.

     “읍…?!”

     메이엔이 바로 아르쉔을 뒤에서 덮쳤다.

     “커헉, 크윽…! 이봐…! 이런 거친 플레이는 요청 사항에 없었, 으읍?!”

     침대에 쓰러진 아르쉔이 저항하려고 한 순간, 아르쉔은 입 안에 쑤셔지는 무언가에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을 쓸 수는 없을 거야. 저항하면, 죽을 거고.”

     “읍, 으읍…!”

     아래로 흘러내리는 회색 머리칼 너머.

     “너는 내 수족으로서, 내일 하루 그림자가 되어줘야겠어. 그러려면….”

     “에, 엘…프읍?!”

     어딘가 뾰족한 귀가 스치듯이 보였고.

     “하아. 꼴에 마법사라고 나름 버티는 것 좀 봐. 안 되겠네. 이것만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메이엔은 가슴골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곧 아르쉔의 얼굴 위에 집게처럼 만든 손을 올렸다.

     “너는 지금부터, 내 권속이 되는 거야.”

     “으, 으읍!!”

     갈색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간으로서 죽기 전에 좋은 경험은 하게 해줄게. 아.”

     사르르.

     “다, 꿈이겠지만.”

     메이엔이 손가락을 가볍게 꼼지락거리자,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하얀 가루가 아르쉔의 코를 향해 떨어졌다.

     * * *

     축제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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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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