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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이것은 극의 기본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발단은 시청자에게 그 이야기를 계속 볼지 말지 선택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꼭 봐야지!”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 주는 제시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나 장소의 설명, 인물들 간의 관계 등을 최대한 빠르게 보여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설명조 같은 루즈한 흐름 말고 극적인 사건을 통해 보여야 임팩트가 크다.

         

       예를 들면 돌발적인 사건을 겪는다던가, 점진적인 사건을 제시한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회상이라는 방식도 있겠지.’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상했던, 어쩌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리프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이 방식을 잘만 활용한다면 극의 기본적인 클리셰조차 비틀 수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인 절정을 가장 앞에 구성하는 방식도 가능하겠지.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절정 부분을 등산에서의 정상이라 표현했을 때, 정상에 올라서서 어떻게 올라왔는지를 되돌아보는 느낌이다.

         

       만약 이 방식을 그대로 채용한다고 가정한다면…….

         

       대본의 배경은 어느 학교의 교실.

         

       그곳에서 연기자들은 각자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상태로 극이 시작된다.

         

       시작 장면부터 이런 독특한 연출을 표현한 이유에는, 문뜩 학교라는 곳의 정의를 한번 생각해본 것이 계기였다.

         

       보통 학교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곳으로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러한 환경에서 ‘잠’을 청한다는 아이러니함을 시청자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물론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연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엎드려 있는 책상 중에는 극 중 내내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 있을 거다.

         

       그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도 분명 흥미로운 포인트겠지.

         

         

       “야!”

         

         

       어쨌든 시놉시스는 대충 이 정도면…….

         

         

       “서은우!”

       “……?”

         

         

       문뜩 내 옆에 앉아있던 차무식이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쓰으읍…….

         

       나 무슨 문제라도 저질렀나?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차무식을 바라보자, 녀석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동아리 시간 끝났다고.”

         

         

       벌써 동아리 시간이 끝났다고?

         

       동아리 시간은 오후 교시를 거의 통째로 쓰기 때문에 족히 4시간 정도 된다.

         

       사실 박하준에게서 노트북을 받은 건 동아리 활동 시간이 시작되고 1시간 뒤니까, 사실상 3시간 정도 작업을 했다고 봐야 무방했다.

         

       어쨌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본을 적은 걸 보니 아무래도 또 직업병이 도진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덕분에 시놉시스가 막힘없이 글로 표현되었다는 점일까나.

         

       이제 짬나는 시간에 인물들의 성격 같은 걸 완벽하게 구상하고, 다음 주 동아리 시간에 대사까지 다 적으면 당분간 이 동아리에서의 내 역할은 모두 끝이 난다.

         

       근데 말이다…….

         

         

       “…….”

       “…….”

         

         

         

       부실의 분위기가 뭔가 묘했다.

         

       뭔가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

         

       하긴, 몇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키패드만 기계처럼 두드렸는데 의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건가.

         

       그때 박하준이 해맑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혹시 오늘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물어봐도 될까?”

       “대충 시놉시스까지요.”

       “음, 그렇다는데 송가람?”

       “그걸 왜 나를 쳐다보면서 얘기해!”

       “아니… 아까부터 계속 궁금해했잖아.”

         

         

       박하준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다들 시놉시스를 고작 몇 시간 만에 다 적은 것이 제법 놀라운 모양.

         

       딱히 이 부분에 관해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대본의 내용에 관해 생각하기도 했고, 그것을 그대로 글로 표현했을 뿐이니 감탄할 정도로 빠르게 끝낸 편은 아니었다.

         

       뭐… 어차피 대본에서 속도보다 중요한 건 무조건 퀄리티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시놉시스조차 읽어 보지도 않았는데 놀라는 건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읽어봐도 되냐?”

         

         

       은근슬쩍 내 옆에 앉아있던 차무식이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싫어. 뭔가 내 속이 너한테 보여지는 것 같잖아.”

       “오우, 갑자기 끔찍한 소리를 하네. 그리고 어차피 네 대본, 나중에 부원들한테 다 보여줘야 하거든?”

         

         

       맞는 말이긴 한데…….

         

       아쉽게도 대본이 완성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뭔가 부족함이 있는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귀찮은 사람이 아니다.

         

       단지, 대본에 관한 부분에서만 조금 민감할 뿐이지.

         

       어차피 이 정도면 아무리 늦어도 중간고사가 끝나면 바로 대본 연습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내 대본이 부원들에게 공개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뜩 부원들의 반응이 엇갈린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집중해서 글을 적는 모습과 더불어 시놉시스를 짧은 시간 안에 끝낸 것에 별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차무식과 박하준이 대표적인 예였다.

         

       박하준이야 기대했던 대로라는 느낌이었고, 차무식은 내가 집중할 때의 안 좋은 버릇을 알고 있으니 대충 ‘서은우가 또 서은우했네’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선을 마주하게 된 설소영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까지 수첩에 무언가를 필기하고 있는 것 같던데 도대체 뭐지…….

       

       어쨌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이다혜였다.

         

       그것이 조금 의외였기에, 혹시 몰라 그녀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2년 전에 기억해? 너랑 대표님이 둘이서 작업실에서 계속 눌러앉았을 때.”

         

         

       당연히 기억한다.

         

       플라이 하이의 OST 제작을 위해 백준영 대표님과의 합작은 제법 생소한 경험이자, 재밌는 경험이기도 했다.

         

       물론 백준영 대표님 쪽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흠. 섭섭하게.

         

         

       “한번은 내가 그곳에 몰래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까 전혀 기억 안 나는 것 같네.”

         

         

       ……?

         

       그녀의 말대로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애초에 누가 작업실에 방문한 적도 없었던 것 같고.

         

         

       “둘 다 누가 방문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업에 집중하고, 열중하더라고. 뭔가 압도되는 것 같아서 눈치껏 작업실에서 나왔어.”

         

         

       이어서 그녀가 말하기를.

         

       먼저 그 모습을 보고 나니까 오늘 내 모습이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순수하게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거, 나는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해.”

         

         

       이다혜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나는 그녀의 그 미소를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확실히…….

         

       이다혜에게 팬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준다.

         

       그것이 아름다운 얼굴 덕분일 수도 있고, 지금 짓고 있는 환한 미소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저 나를 향해 멋있다고 말해주던 그 순수한 모습에서 뭔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또다시 동아리 활동 시간이 찾아왔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대본을 작성했다.

         

       사실 학교에서 종종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 대본을 채우긴 해서 이제 완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심지어 중후반부에 인물들 간의 대사 부분과 그때마다 표현되는 몸짓, 말투, 표정만을 적으면 되니까 뭐…….

         

       내겐 가장 익숙한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탁─

         

         

       키패드의 소리가 멈춘다.

         

       인물들 간의 대사를 적다가 처음으로 막히는 부분이 생겼다.

         

       그것은 감정선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이 대본의 구성은 초반에 매우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청소년을 위한 대회라는 취지에서 많이 벗어날 테니까.

         

       참고로 내가 막힌 부분에서의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소중한 인연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뜩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엄청 가까이에서 지내왔던, 소중한 인연을 무기력하게 떠나보낸 적이 있던가?

         

       조금 당연한 소리지만, 이번 생의 삶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반대로 전생의 삶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떠나는 입장이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부모님보다 먼저 암으로 죽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천하의 불효자가 아닐 수가 없다.

         

       어쨌든 전생에서의 기억을 조금 더 떠올려보자면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에 갔었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장례식장 안의 분위기, 어딘가 씁쓸한 사람들의 표정, 은은하게 피어오르던 향기 냄새 정도.

         

       하지만 고작 이런 희미한 기억들만을 가지고는 제대로 된 감정선을 글에 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전체적인 틀이 좋다고 하더라도 극의 흐름이 이상해지겠지. 즉, 시청자의 몰입이 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유의 경험을 한 사람에게 찾아가 조심스럽게 면담을 요구하는 단순무식한 방법이나, 그것도 아니면 ‘감정 이입’이라는 방식도 있었다.

         

       보통 잘 된 글은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많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몰입이 잘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자소전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지.

         

       하지만 세상 모든 작가들이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만 적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가지고도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감정 이입이다.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직접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 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질까 상상해보는 것.

         

       연기자들이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하듯이, 작가들도 이런 식의 몰입을 한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았다.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낸다라…….

         

       차무식에게 조금 미안한 소리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녀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드르륵-

         

         

       한창 상황에 몰입해 있던 그때.

         

         

       쾅!

         

         

       부실의 정문이 거세게 열리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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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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