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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자, 이렇게 하는 거다.”

         

       이한은 단검을 들고 부드럽게 휘둘렀다.

         

       사르륵.

         

       -검 끝에서 꽃잎이 만개했다.

         

       생도들은 그 아름다운 꽃잎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법 물품도 아닌, 평범한 단검임을 확인했는데도 꽃잎이 번진다.

       그야말로 동화 속 마법 같은 순간.

         

       병아리들은 동화에 젖은 소녀처럼 눈망울이 촉촉하게 변했고, 곰돌이와 도련님은 옛날 음유시인들이 영지나 마을에 들를 때마다 얘기해준 기사의 무훈시 등을 떠올리며 어릴 적 웅심이 피어올랐다

         

       검으로 꽃잎을 흩뿌릴 뿐만 아니라, 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다니….

         

       완전히 무훈시 속 기사들이 내보일 법한 기예가 아닌가?

         

       사락.

         

       꽃잎은 흙바닥에 닿으며 눈송이처럼 녹았다.

       하지만, 녹은 그 자리에 남은 건 꽃잎 모양 그대로 움푹 파인 바닥이었으니.

       마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위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소년·소녀들은 동경 어린 눈길로 매화검법을 보았으며.

         

       “와, 저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아름다워…!”

       “다, 다시 보여주세요!”

         

       앵콜을 외쳤다.

         

       “…그만 좀 하면 안 되냐?”

         

       열 번째 앵콜이었고, 이한은 슬슬 지쳤다.

       이게 마냥 쉽게 하는 것 같아도 체력 소비가 엄청 심한 것이었으니까.

       허나 광대가 얼마나 힘들건 관객은 신경 쓰지 않는 법.

         

       “하, 한 번 만요, 네에? 제발요….”

       “…끙.”

         

       차마 울상을 짓는 병아리들의 애원을 거절할 정도로 그는 매몰찬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어휴, 내 팔자야.”

         

       뜻하지 않게 광대가 된 이한은 그렇게 다시금 검으로 매화를 꽃피웠다.

         

       ‘나, 길거리 공연 하면 대박 날지도?’

         

       뜻하지 않게 짭짤한 수익을 올릴 재능을 꽃피우는 이한이었다.

         

       * * *

         

       이한이 이토록 광대 노릇을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 교, 교관님, 그, 그 기술 가르쳐주실 수 없으신가요?

         

       매화검법을 간절히 소망하는 제자들.

       심지어 투기법 하나면 된다던 엘리트 녀석들마저 매화검법에 대한 욕심을 슬쩍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검법이 매력적이란 거겠지.

       하긴.

         

       ‘검으로 매화 피우는 건 못 참거든.’

         

       검으로 꽃을 피우고 그걸로 공격까지 한다?

       이건 뭐 멋이란 멋은 다 채워놓은 검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전생 시절에도 화산파 애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나 보다.

         

       …하지만.

         

       – 미안한데, 이거 아직 못 가르친다.

         

       장난스럽게 말했던 근본 무협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 문제는 이 기술이 아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는 거지.

         

       미완의 기술.

       매화검법은 사용방식도 그렇지만, 오로지 이한의 특수한 감각과 직감을 통해 깨우친 그만의 오리지널 기술이다.

       이론으로 정립할 시간도 부족했을 뿐더러, 그조차 아직은 한없이 어설프다.

         

       거기다.

         

       – 이거, 사용하고 나면 기가 너무 빨려.

         

       전날, 로엔이 보인 검기가 천재성이 돋보이는 기술의 복합적인 결합으로 완성된 예술작품이라면, 이한의 검기는 그냥 무작정 온몸의 기력과 검을 대가로 사용하는 검력(劍力)의 발현일지니.

       즉, 일회용에 불과하다는 거다.

         

       또한 일회용일 뿐만 아니라 리스크도 상당하다.

       검력을 사용한 뒤에는 검을 무조건 잃을 전제가 따라오니 말이다.

       전쟁터에서 무기를 잃는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는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한데 이뿐만 아니라 사용한 뒤 어마어마한 피로가 뒤따르기까지 하니….

         

       ‘나도 이 모양인데, 쟤들은 절대 감당 못 한다.’

         

       웬만한 기사의 열 배에 달하는 체력을 자랑하는 그조차 이토록 버거운데, 저들이 사용하면 몸에 어떤 장애가 생길지 모른다.

       실신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목숨의 위험부담도 클 터.

         

       하여 웬만해선 기술을 가르치는 데 인색하지 않은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충분하고도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생도들도 이해해주었지만.

         

       – 그, 그럼! 한 번 구경이라고 할 수 없겠습니까?

       – 보, 보고 싶어요!

         

       어느 세상에서나 대리만족의 개념이 있는 것일까.

       매화검법을 당장 배우진 못해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그들이었고, 이한은 정이 든 녀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재 말대로 내가 좀 정이 많았던 성격일지도?’

         

       하여 펼쳐진 매화검법의 시범.

         

       귀왕이랑 싸웠을 때처럼 전력으로 펼친 건 아닌지라, 단검이 금방 부서지진 않았으며, 온몸의 기력을 모조리 탕진하지도 않은 바.

         

       뜻하지 않게 매화검법의 수련도 되는 상황이었고, 대략 여덟 번째 매화검법 시범에선 이제 가벼운 손동작만으로도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허나 완숙해진 대가로.

         

       “아이고야, 나 죽네….”

       “교, 교관님, 괜찮으세요!? 여기 물이랑 음식 좀 드세요!”

       “…고맙다.”

         

       기어코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이한은 풀밭에 누워 아이린 윈들러가 주는 음료와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런 이한을 보며 아이린 윈들러는,

         

       “이이…!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안 그래도 전날 그렇게 고생하신 분을 이렇게 고생시키면 어떻게요!”

       “그, 그게….”

       “변명하지 마요!”

       “……아직 변명도 안 했습니다만.”

         

       불같이 화를 내는 소녀였고, 생도들은 시선을 푹 숙이며 눈치를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한이 수련 삼아 더 신나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지만, 연심에 눈이 먼 소녀에겐 다른 생도들이 악당에 불과할 뿐.

         

       소녀가 으르렁거렸고, 생도들은 더 없이 기가 죽었다.

         

       평소 아이린 윈들러가 으르렁거려봤자 포메라니안마냥 귀여울 따름이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마법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들어.’

       ‘엄청난 마법이었지.’

       ‘절대 심기를 건드리면 안 돼. 괜히 건드렸다 우리 영지도 박살 날라.’

         

       보지 않았던가.

       마냥 체력 고자로만 생각한 소녀가 마법으로 호수 전체를 조종하며, 더 나아가 돌풍마저 조작하여 용오름을 일으켰던 전율적인 마법을.

       비록 작은 용오름이라 해도, 중소 영지쯤은 쓸려나갈 위력이었고, 이를 생각하면 소녀에게 대드는 건 절대 해선 안 될 짓이었다.

         

       워낙 친근해져서 그렇지, 역시 아이린 윈들러 또한 로엔과 마찬가지로 규격 외의 천재라 불릴 만한 괴물임을 새삼스레 인지한다.

         

       “애들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도중엔 나도 신나서 검기를 펼친 거니까.”

       “힝.”

         

       허나 그런 괴물 소녀를 조련하듯 진정시키며, 누웠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피로한 낯이지만, 그래도 교관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며.

       그러며 그는.

         

       “이제 질리도록 감상했겠지?”

       “…….”

       “타박하는 게 아니야. 물어보는 거다. 이 검법을 본 감상을.”

       “으음.”

         

       그제야 교관이 그들을 타박할 마음이 없고, 진지하게 물음을 던진다는 걸 깨달은 생도들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싶어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진지하게 고심한다.

       얼마 있지 않아 우등생의 대표격인 파란 머리 소녀가 손을 들었다.

         

       “…트, 틈이 많은 기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꽃잎처럼 검기가 퍼트려지니 확실히 위협스럽지만, 그래도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단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아, 물론 제 수준으로 가능하단 애기는 아니에요. 그저 아르노 님이나 쿤타 님, 아니면 가란드 님이나 로엔 공자님이라면….”

         

       슥.

         

       소녀의 시선이 닿았고, 네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붙는 경어가 낯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냥 쿤타면 된다. 그리고 곰순이 말대로 막을 순 있다. 대신 팔이나 다리 중 어딘가는 희생해야 할 것 같다.”

       “편히 말씀하시죠, 영애. …저도 답하자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틈이 확실히 많더군요.”

       “낯간지럽게…. 크흠, 다른 녀석들처럼 대항 가능한 건 맞수다. 다만 마물에겐 확실히 위력적인 수단이 맞을 것 같구먼.”

       “이하동문이다.”

         

       그들의 발언이었고, 생도들은 눈을 끔뻑였다.

       마냥 화려하고 강력한 기술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으니 좀….

         

       “그러니까 말했잖아. 근본이 없다고.”

         

       그다지 강한 기술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한이 마냥 매화검법을 저평가했던 게 아니었고, 광대 노릇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능이 한없이 낮은 마물에게야 통할 테지만, 인간을 상대론 미묘한 기술이 아닐 수 없는….

         

       화려할 뿐, 아직은 가성비가 극악인 기술임을 말이다.

         

       “검법이나 격투기나 겉모습이 화려하다 하여 실속마저 있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본 교관이 존경하는 어떤 무인이 말하길, 천 개의 발차기 기술을 쓰는 사람보다, 한 개의 발차기를 천 번 연습한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이처럼 검술 또한 몇백 개의 검술을 알고 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번의 베기를 어느 정도로 제대로 연마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그러니 기본을 중시하고, 다른 녀석들이 검기를 쓰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라. 나의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이는 생도들에게만 주는 가르침이 아니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 느낀 거지만, 이한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놈인지를 인지해야 했다.

         

       만약 그가 발타르처럼 단칼로 마물의 목을 벨만한 검기(劍技)를 수련했었다면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토록 허무하게 패배하진 않았을 테지.

         

       ‘너무 위력만 믿어서 그런 거야.’

         

       마냥 육체의 기능만을 믿는 게 아니라, 이제 자신이 가진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기본도 기본이지만, 기술의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

         

       금강.

       사자후.

       궁신탄영.

       백보신권.

       내가중수법.

       관일창.

         

       그리고 이번에 얻은 매화검법까지.

         

       이 모든 걸 깊게 수련하여 위력이 아닌 기술에 대한 완성도를 끌어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귀왕이건 뭐건 내 손으로 죽인다.’

         

       누군가에게 운명을 결정짓게 하지 말자는 결심이었다.

         

         

       이한은 부디 제 제자들이 자신처럼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루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라였고, 제 나름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전했다.

         

       * * *

         

       한편, 어느새 꿔다 놓은 보따리 신세가 된 데릭은 한숨을 쉬는 중이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

         

       그는 운동부 타입이 아닌데, 왜 이 세계관 운동부의 끝판왕에 와 있는 걸까?

         

       ‘이게 빚쟁이의 삶이란 걸까?’

         

       ‘빚을 갚을 거면 몸으로 갚든가, 아니면 정보로 갚아야겠지?’

       -라는 발언으로 그를 강제로 검술학부로 편입시킨 그였고, 데릭으로선 한없이 당혹스러우나 그에게 저지른 게 있으니 그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냥 데릭이 빚 때문에 그의 곁에 머무는 건 아니었다.

         

       ‘나도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해.’

         

       이번 일로 깨달았지 않은가.

       언제까지 방관자일 수 없고, 이번처럼 도와주길 기다려선 안 된다.

       차라리 믿음직한 사람이 있고, 주역들이 모인 곳에 있는 게 옳은 선택지일 터.

         

       일이 발생한다면 대응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여 검술학부에 온 것은 마냥 빚을 갚기 위해서만이 아닌, 먼저 움직여보자는 큰 각오가 아닐 수 없었다.

       한데 이렇게 살펴보니….

         

       ‘이, 이제 보니 네임드만 모여 있네?’

         

       데릭은 검술학부에 모인 인원들이 하나같이 네임드 클래스임을 깨달았다.

         

       바바리안과 검공의 핏줄, 용병왕의 제자 등은 최고의 조력자가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며.

       원래라면 <악녀 영애 – ‘아이린 윈들러 토벌전’>에서 큰 활약을 펼칠 인물들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악역 영애도 악역 영애가 아닌 것 같지만.’

         

       어디서 루트가 꼬인 건지, 악역 영애 캐릭터는 없어진 것과 같았으니, 다른 중요 조역들이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지 모르겠다.

         

       ‘북부 대공도 그렇고, 악역 영애도 그렇고….’

         

       자기가 아는 것과는 이미 180도 달라진 현실.

         

       데릭은 골이 아파왔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떠한 나비 효과에 의해 북부 대공이 되어야 할 남성이 아카데미 생도가 됐는지, 악역 영애가 순진무구한 소녀가 됐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최선을 다한다면 운명을 뒤집을 수 있는 거야.’

         

       저분이 보여줬듯이.

         

       듣도 보도 못한 영웅 클래스가 보여준 운명에 대한 반역.

       이를 본 이상 데릭은 더는 이 세상을 마냥 게임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당장 중요한 건 자기가 아는 정보를 써먹되, 휩쓸리지 않고 적절히 사용하는 현명한 길이라라.

         

       그래 예를 들자면.

         

       스윽….

         

       ‘…훗날 거물이 될 사람의 불행을 막아야할지. 아님, 내버려둬야 할지를 결정해야겠지.’

         

       데릭의 시선은 푸른색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어느 소녀에게 닿았다.

         

       자기가 알던 얼굴과 너무 달라서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었다.

       허나 이름을 듣고, 소녀의 성을 확인하며 깨닫는다.

         

       실상 로엔이나 아이린 윈들러보다 중요할지 모를, 기획 단계에서 ‘2부 주인공’을 맡겨보자 했던 흥미로운 설정을 가진 소녀를 말이다.

         

       ‘……성녀를 어떻게 해야 할까.’

         

       훗날 용병왕이 죽은 후, 용병들의 성녀로 등극할 소녀.

         

       ‘용병여왕 [레비 잔 다르크].’

         

       15년 후, ‘혁명전쟁’의 선봉장으로서 귀족들의 공포라 불릴 소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데릭이었다.

         

       …소녀의 엔딩에는 이름에 걸맞도록 해피엔딩이 없음을 알기에.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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