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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크라슈가 뒤늦게 도착한 마차 구역.

   그곳에는 가슴팍이 거의 다 날아가 버린 펜달과 그 앞에 엉엉 울며 치유 마법을 쏟고 있는 백마도사 올리비아가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고개 숙인 라크라디온과 입술을 꽉 깨물고, 감정을 참고 있는 부대장 솔드리크가 있었다.

     

   뒤늦게 크라슈의 인기척을 느낀 라크라디온이 고개를 들었다.

     

   “……크라슈 님, 무사하셨군요.”

   “그래.”

     

   그녀가 흔들리는 눈으로 말했다.

   크라슈는 대충 대답하곤, 옆에 있는 크림슨가든을 힐끗 보았다.

     

   “어떻게 된 거냐.”

     

   그러곤 크림슨가든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슬쩍 물었다.

     

   [ 분신 녀석이 쏜 화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라크라디온 대신 펜달이 맞았다. 그 뒤에는 네 녀석이 무장공주를 다른 곳에 보내면서 분신 녀석들도 다 무너졌고. 저 꼴이지. ]

     

   이어진 말을 듣고, 크라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펜달이 희생했다고?’

     

   회귀 전, 펜달을 기억하는 크라슈다.

   그는 그야말로 마성궁의 망나니처럼 살고 있었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자였다.

     

   실제로 크라슈도 그 패악질에 직접 당해봤으니 안다.

   펜달이 얼마나 글러 먹은 녀석인지 말이다.

     

   그러니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 했다.

   왜냐하면 펜달은 실제로 크라슈 네를 방해했으니까.

     

   ‘그런데 라크라디온을 구했다고?’

     

   크라슈가 잠시 동안 혼란을 겪는 순간이었다.

     

   “라크, 가, 져가라.”

     

   예전 그녀의 애칭을 부르며 그가 옥천을 밀어왔다.

   묵묵히 옥천을 받아 든 그녀는 아주 잠시 이카루스의 팀장이었던 카이란을 떠올렸다.

     

   그러나 회상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펜달.”

   “……원, 래 너한테 가야 하, 는 거였다. 네가 안, 받는다 해서 가지고 있었을 뿐.”

     

   펜달이 힘겹게 말하였다.

     

   “대장, 그만 말해!”

     

   올리비아가 외쳤으나 펜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죽어가는 눈으로 라크라디온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이어 받으마.”

     

   자신을 왜 구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우선시 한 라크라디온이 고개 숙여 말하였다.

   펜달은 그걸로 됐다는 듯 이내 크라슈를 돌아 보았다.

     

   “발, 하임 직계.”

     

   어설픈 웃음과 함께 그는 숨소리를 가늘게 내쉬었다.

     

   “방, 해해서 미, 안 했다.”

     

   울컥하고 솟아난 핏물이 펜달의 입술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펜달의 사과를 들은 크라슈는 천천히 이마가를 쓸어 올렸다.

     

   누군가 죽는 것은 지겹도록 많이 봤다.

   인간 사이에 벌어진 전쟁부터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 심지어 세계 침식이 최흉으로 번지며 쏟아진 세계는 그야말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갔으니까.

     

   그중에는 크라슈가 나름 정을 쌓은 녀석들도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 남은 이는 사실상 아서와 자신, 그리고 그 세 명뿐.

     

   그러니 크라슈는 모든 이의 죽음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 크, 낙, 천을 쓰러트려, 줘라.”

     

   하지만 펜달의 죽음을 보며 크라슈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크라슈는 딱히, 펜달과 정을 쌓은 건 없다.

   오히려 적이면 적이었지.

     

   펜달은 크라슈에게 있어 지나가는 인연조차도 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 크라슈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다.

     

   ‘나는 고작 회귀 정도 했다고 거기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 거냐.’

     

   크라슈는 스스로를 향한 깊은 한심함을 느꼈다.

     

   딱, 한 번 스쳐 지나간 인연.

   그때 본 모든 것으로 누군가를 자신 스스로 정의하고 행동한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사람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그건 한때나마 인생을 한탄하며 세상을 욕하기만 바빴던 자신이 제일 잘 알지 않던가.

     

   ‘알량한 줏대로 뭘 멋대로 판단해서.’

     

   크라슈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래서는 자신도 아서와 다를 바 없는 꼴이 아니던가.

     

   이미 자신보다도 더 많은 회차를 반복한 아서가 왜 매번 세계를 멸망에서 구하는 걸 실패하고, 끝내 자신에게 회귀까지 빼앗겼는가.

   그건 전부 아서가 지난 수많은 회차 동안 크라슈를 봐왔고, 거기서 평생 멈춰 있을 거라 생각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서는 단정 지었다.

   크라슈의 스킬은 기껏해야 저주나 빼앗을 수 있을 뿐, 스킬 같이 고유한 능력을 빼앗는 건 힘들다고 말이다.

     

   그러니 크라슈의 앞에서 방심하고, 회귀라는 스킬의 존재를 알렸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 채로 말이다.

     

   ‘그런 주제에.’

     

   크라슈는 지금 펜달이라는 이를 회귀 전 기억으로 판단하고, 결론 내렸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아서와 달리 자신의 회귀는 한 번뿐.

   두 번째 회귀가 또 가능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크라슈의 손에는 회귀가 직접 쥐어져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이번 회차에 멸망을 막지 못한다면 세계는 끝장이다.

   크라슈는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엿같은 세계를 지키려면.’

     

   회귀에만 의존하는 이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한다.

     

   사람은 수없이 많이 바뀐다.

   그것을 크라슈는 자신을 통해 알았고, 비앙카와 같이 회귀 후 만난 인연들을 통해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겠다.

     

   “펜달.”

     

   그러니 크라슈는 펜달을 향해 말하였다.

     

   “난 오늘 너희와 함께 마성궁에 들어왔다.”

     

   펜달은 잠자코 크라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희 모두와 함께 낙천을 물리치고, 9층을 열 거다.”

   “하…….”

     

   펜달은 아주 짧게 소리를 내더니 곧 웃음을 삼켰다.

     

   “귀족, 다운 명예스러운 말이구, 만.”

     

   비아냥이 담겨 있었지만, 그의 웃음에는 이보다 더 편안한 죽음은 없다는 듯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을 끝으로 펜달의 눈이 감겼다.

     

   “대장, 대장! 대장!”

     

   올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듯 펜달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에도 펜달의 몸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올리비아.”

     

   그녀가 오열을 쏟는 순간 솔드리크가 그녀를 감싸 안았다.

     

   “이만 보내주자.”

   “흐윽, 흑.”

     

   솔드리크의 품 안에 안겨 울고 있는 그녀를 두고 크라슈는 라크라디온을 돌아 보았다.

   그러자 라크라디온이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라슈 발하임 님.”

     

   그러는 순간 솔드리크가 크라슈를 불러왔다.

     

   “당신들의 길을 막은 건 전부 제 책임입니다. 제가 지시를 내려…….”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장공주에 대응할 시간을 벌게 된 것도 사실이니까.

     

   “펜달을 잘 거둬가라.”

     

   크라슈는 그리 말하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크라슈가 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손을 들자 거기에는 옅은 스파크가 스쳐 지나갔다.

     

   ‘라이오너.’

     

   그건 다름 아닌 펜달의 스킬이었다.

     

   마지막 순간, 펜달의 라이오너를 크라슈는 블랙 후드를 통해 훔쳐왔다.

     

   [ 호적수 이상으로 인정받을 것 ]

     

   어느새 두 번째 다이얼이 풀리고 나타났던 세 번째 다이얼.

     

   [ 펜달의 염을 이을 것. ]

     

   그 다이얼을 위해 크라슈는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 덕분에 풀려나간 다이얼과 함께 크라슈는 라이오너를 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치졸하다고 해도 좋다.’

     

   이 망할 세계는 이런 식으로라도 모든 걸 집어삼키지 않고서는 멸망을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

     

   처음 회귀한 그날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맨 정상에 서서 기어코 멸망을 막겠다고, 결심했던 일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펜달의 라이오너를 훔쳤다.

     

   ‘적어도.’

     

   헛되게 되지는 않게 하겠다.

     

     

   * * *

     

     

   낙천.

   8층 마차 지대에 맨 앞쪽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이.

     

   한때는 마성궁을 공략하던 공략자였으나 지금은 마성궁에 잡아 먹힌 비운의 사내.

   크라슈는 그런 그를 쓰러트리고자 지금 마지막 문 앞에 와있었다.

     

   하루정도 마차에서 휴식을 취하며 눈을 붙였던 크라슈는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무장공주와의 전투의 여파 탓일까.

   아직도 몸이 여기저기 쑤시긴 했지만 월음지체라는 특성 덕에 그나마 빨리 나은 편이었다.

      

   이 상태라면 낙천을 쓰러트리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괜찮다.

   

   펜달의 라이오너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어제 슬쩍 남들 몰래 시험해본 크라슈는 이거라면 낙천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라크라디온, 준비는 됐냐.”

   “예, 언제든 출발 하셔도 됩니다.”

     

   라크라디온의 대답을 들은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그러곤 그대로 손을 들어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이익-

     

   녹슨 중첩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크라슈의 눈에 덜컹거리는 마차의 방이 보였다.

   이번 마차 구역은 다른 마차들과 달랐다.

     

   의자는 텅 비어 있고, 나무 바닥도 중간중간 금이 간 듯 이리저리 상처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특이점은 문이 단 한 개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 문 앞에 한 노인이 기다란 검집에 담긴 검 한 자루를 지닌 채 앉아 있었다.

   낙뢰에 맞은 나무를 깎아 내기라도 한 양, 검은색 바탕에 번개 줄기가 그려져 있는 우뢰성을 지닌 노인.

     

   낙천.

   

   

   

   

     

   지난 날, 9층에 진입을 줄곧 지켜왔던 그가 백색으로 노화한 눈썹을 늘어트린 채 그곳에 있었다.

     

   끼익, 탁-

     

   그를 본 크라슈가 라크라디온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 마차 문을 닫았다.

   그러자 닫힌 문을 시작으로 낙천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그럼과 동시에 그의 몸이 두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면 뼈가 재조립되는 듯한 소리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소리만큼 그동안 8층에 많은 이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소리와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낙천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라크라디온, 알고있겠지.”

     

   그런 낙천을 보고, 크라슈가 라크라디온을 호명했다.

   낙천을 물리칠 방법은 사전에 라크라디온에게 말해 두었다.

     

   크라슈가 이그니스를 통해 마차를 전부 불태울 동안 낙천과 싸워 버텨내는 것.

   그것이 라크라디온의 임무였다.

     

   그러니 그녀가 옥천을 뽑아 듦과 함께 크라슈의 앞에 섰다.

     

   “예.”

     

   그 말을 끝으로 낙천이 우뢰성을 뽑았다.

   하지만 뽑힌 그 검에는 날이 없었다.

     

   텅빈 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들게 하였다.

   날이 없다는 건 검의 기능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우뢰성이 어째서 세계 10대 천검에 들어가는지를 증명하듯 우뢰성의 코등이에서 황금의 빛이 치솟아 올랐다.

    

   쿠궁!

     

   우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황금의 빛은 일순간 주위 분위기를 반전 시킬 만큼 강렬한 힘을 토해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 황금의 빛이 일순간 압축 되듯 줄어든 순간.

   그곳에는 황금빛 검날이 기운을 넘실거리며 그 날카로운 날을 드러냈다.

     

   다루는 이의 오러를 증폭 시켜 날을 만들어 내는 검.

     

   우뢰성(雨雷盛)

     

   지닌 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우뢰성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천하제일의 검이 되기도 하고, 어느 것도 베지 못하는 최악의 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검을 다루는 이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만약 세계 제일의 검사가 검을 고른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야 말로 우뢰성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크라슈가 절대로 검존에게 우뢰성이 넘어가지 않도록 막으려 했던 이유였다.

     

   쿠궁!

     

   그런 우뢰성은 지금 낙천을 만나 그 검날을 황금빛으로 빛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압도적인 황금빛은 라크라디온을 긴장케 했다.

     

   왜냐하면 그 황금빛이야 말로 낙천의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온다.”

     

   크라슈가 짧게 평한 순간이었다.

   라크라디온이 급히 검을 들어 올렸을 때 그 앞에는 어느새 낙천이 도달해 있었다.

     

   채엥!

     

   낙천이 내딛은 발을 따라 움직인 라크라디온이 옥천으로 우뢰성을 막아섰다.

   하지만 정작 검을 막아낸 라크라디온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노인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낙천의 힘은 궤를 달리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깨달았다.

     

   그날 이카루스가 왜 낙천의 앞에서 그렇게 무너졌고, 이카루스의 팀장인 카이란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도망치게 했는지 말이다.

     

   화륵!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온 화염 소리를 듣고, 라크라디온이 숨을 삼켰다.

   크라슈가 묵검에 피어오른 흑염을 마차에 박아 넣으며 본격적으로 불태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낙천의 안광이 뒤쪽으로 향했다.

   그또한 크라슈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크라디온은 즉시, 크라슈를 가리듯 그의 시선 앞에 섰다.

   크라슈에게 가려면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내 역할은 시간을 버는 것.’

     

   그때는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와라.”

     

   라크라디온의 말이 짧게 이어진 순간 이윽고, 낙천과 라크라디온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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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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