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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파라메르 수색전의 소식. 들었어?"

       "네.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보다는, 언제 출발할 거냐는 질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텔님."

         

       에스텔은 한숨을 내쉬었다. 벽에 기대 이자벨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도 아무것도 없을 수 있어."

       "알고 있습니다."

       "이미 시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떠나는 것만으로도, 뱀 교단에 반기를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래도 괜찮아?"

       "…네."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목숨을 구원받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저 그 뿐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냥…"

         

       이자벨라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시선을 떨궜다.

       눈물이 툭 하고 무릎에 떨어졌다.

         

       "그냥…구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

         

       사랑에 빠진 소녀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에스텔은 한숨을 내쉬었다. 검을 잡았다.

         

       "혼자서는 무리야."

       "…그래도 가겠습니다."

       "하지만 둘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예?"

       "그와 약속한 게 있어. 사도의 이름으로 한 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었어. 약속의 대상자가 죽으면 약속은 아무 의미 없어지니까 어쩔 수 없겠지. 거기다가…"

         

       에스텔이 문을 열었다.

         

       "뱀 교단의 성기사를 이렇게나 많이 사지로 내몰 수는 없어."

         

       어두운 불꽃이 흔들렸다. 이자벨라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늘어서 있다. 수많은 그림자가. 이자벨라의 성기사단.

         

       검은 비늘이 복도에 빼곡히 메워져 있다.

         

       "…단장님."

       "너희들…왜…"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성기사들이 말했다.

         

       "목숨을 한 번 빚졌던 사람입니다."

       "저희가 비록, 빈민가에서 태어나 사람의 은혜를 입어본 적이 드무나, 알 건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장님을 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교단 내부에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혀도, 저희를 감싸주셨지 않았습니까."

       "내쳐도 따라가겠습니다."

       "이 어두운 뱀 교단에 있어, 단장님은 저희의 빛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정놀음. 한때의 치기.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

         

       에스텔은 쓱 이자벨라를 돌아보았다. 뱀 교단 내부에서는 드문 일이다. 정보다는 돈으로, 약속보다는 이득에 의해 사람을 가리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이자벨라를 따른다면, 그녀의 방법 또한 옳았다는 말이 아닐까. 다가오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 그녀 특유의 방식이 오히려 사람을 불러 모았다는 것이겠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틀리지 않았던 방식.

         

       "이자벨라."

       "…네."

       "있잖아."

         

       에스텔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자하드. 이번에 겸사겸사 구해주면서 스카우트하면 넘어오지 않을까?"

         

       뜬금없는 소리에 이자벨라가 피식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흘러나온 눈물을 쓱 닦았다.

         

       "분명 넘어올 겁니다. 가죠. 에스텔님."

       "응. 이자벨라. 가자."

         

       에스텔이 손을 뻗었다. 이자벨라의 붉어진 눈매를 쓱 닦아주었다.

         

       "이번에는 혼자 보내지 않을게."

         

         

         

       . . .

         

         

         

         

       "도박입니다."

         

       뒷골목의 마티어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하지만 오조(五爪) 전원은 고개를 저었다.

         

       "도박이라도 가야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게 누구 덕인데."

       "…은혜를 갚는다."

       "대장이라도 똑같이 행동했을걸?"

       "맞아요. 무섭지만 그래도…!"

         

       마티어는 이마를 짚었다. 중요한 순간이다. 기껏 자리를 잡은 이 도시에서 완전히 발을 빼버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상대는 파라메르입니다. 도시 하나를 무너트렸던 전력입니다.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입니다."

       "전쟁은 뭐, 우리가 매일 치르던 거 아닌가?"

       "그런 뒷골목 싸움이랑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헥토르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노력을 수포로 돌릴 생각입니까?"

       "알지. 잘 아는데…"

         

       헥토르가 누구랑 비슷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래도 대장이 가장 먼저야. 마티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왜…!"

       "대장이 바꿔준 인생이야. 그리고 그걸 지금 갚아줄 때가 왔고."

       "나중에 보란 듯이 살아오면 왜 안 왔냐고 갈구겠지."

       "…대장은 그런 사람."

       "핀잔 듣기 싫으니까, 미리 가서 대기할래요."

       "당연한 거예요. 마티어."

       "아니…!"

         

       마티어가 열변을 토해냈다.

         

       "지금 여기서 당신들이 빠지면 조직의 기반이 무너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후딱 끝내고 돌아오면 되는 거잖아?"

       "그런 스케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잖습니까?!"

       "대장이라면 그런 스케일까지 내릴 수 있어."

         

       헥토르가 손을 들었다. 성흔에서 기묘한 어둠이 흘러내렸다.

         

       "난생 처음 써보는 힘이지만…익숙해. 태양은 사라졌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지."

       "신도가 사제를 안 따르면 쓰나."

       "…말려도 소용없다."

       "우리는 갈 거에요. 마티어."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마티어. 왜 그런지 알아요?"

         

       나타샤가 생긋 웃었다.

         

       "저희는 대장의 신도들이거든요!"

         

       마티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망할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서까지 말썽이냐!!!

         

       오조(五爪)는 블랙 스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빠진 블랙 스틸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마티어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보낼 수 없습니다."

       "보내야 할 텐데?"

       "이대로는 보낼 수 없습니다."

       "…응?"

         

       마티어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빠르게 계산했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도박. 기껏 여기까지 올라와 놓고서는 모든 것을 내던지는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조(五爪)가 빠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자신은 여전히 블랙스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하드.

         

       당신이…만약에…정말로 그 사지에서 돌아올 수 있다면…!

         

       "…으득."

         

       이렇게 된 이상 살아 돌아와야만 할 것이다! 반드시!

         

       "…낭만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둥이 무너지면 조직이 무너진다.

       조직이 무너지면 기껏 투자했던 돈이 모두 휴짓조각이 되어버린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

         

       "용병들을 최대한 모아보겠습니다."

         

       가자.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기 위해.

         

       "오조(五爪)는 혼자 가지 않습니다."

       "그 말은…?"

       "지갑을 열겠습니다."

         

       구두쇠처럼 아껴두었던 마티어의 보물 창고가 열렸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법이죠."

         

         

         

         

       . . .

         

         

         

         

       "…당돌하군."

         

       낮의 무녀, 티엘라는 눈을 떴다.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상처투성이의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얼굴은 성하지 않다. 어디 한 곳도 제대로 된 곳이 없다.

         

       팔은 너덜너덜. 부러진 뼈는 셀 수도 없을 정도지.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다. 눈빛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저건 대체 뭘까.

         

       살아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재능의 '괴물'이지 않은가.

         

       티엘라는 일어섰다.

         

       "신학학술원을 일주일 만에 졸업…"

       "……"

       "불과 보름 만에 예비 성기사를 꺾고…"

       "……"

       "낮의 무녀인 그리모어의 눈에 띄어, 후보로 뽑히는가 했더니…"

         

       티엘라는 웃었다.

         

       "이제는 라의 성물인 '타른헬름'을 빌려달라? 파라메르에 살아있는지도 모를 이단심문관을 찾기 위해?"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꼿꼿하게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눈. 저 꺾이지 않은 의지.

         

       "대체 무엇이 널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지?"

       "…인연입니다."

         

       대답은 무거웠다. 그렇기에 티엘라는 더없이 웃겼다.

       저토록 담담하게, 모든 고통을 이겨내면서까지 말할 수 있는 인연이란 무엇일까.

         

       어차피 한 때의 감정일 뿐이다. 낮의 무녀가 바라보아야 할 건 오로지 라의 뒷모습.

         

       그 외의 사적인 감정은 사치다.

         

       "낮의 무녀가 되고 싶다고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소년 하나를 위해서…사지로 직접 뛰어들겠다는 건가? 제국군도 어찌하지 못하는 곳에?"

       "예."

       "그 인연이란 것이 그토록 무거운 건가? 네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가 있나? 낮의 무녀라는 꿈을 버릴 정도로 소중한 건가?"

         

       물방울이 떨어졌다.

         

       상처투성이의 성기사, 아이린은 고개를 들었다.

         

       입을 열었다. 담담히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있습니다."

       "왜지?"

         

       아이린의 시선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꺾이지 않았다.

         

       "데리러 가겠다고…약속했습니다."

         

       …데리러 가겠다.

         

       이 얼마나 웃긴 답변이란 말인가.

         

       "…크큭."

       "어, 언니…그 정도 하는 게…이, 이쯤 됐으면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

       "닥쳐라. 그리모어."

         

       낮의 무녀, 그리모어가 움찔했다. 구석에 찌그러졌다.

       티엘라는 아이린의 앞에 섰다. 상처투성이의 몸을 검 끝으로 꾹 눌렀다.

         

       신음은 없었다. 비명 또한 없었다. 부러진 곳을 누름에도, 아이린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의.

       의지.

         

       "…그 녀석이 누군지 몰라도, 복에 겨운 녀석이군."

         

       …한때는.

         

       한때는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지.

         

       티엘라는 검을 거뒀다. 반지를 벗어 아이린의 앞에 툭 떨어트렸다.

         

       "써라."

       "…감사합니다."

       "어, 언니?! 지, 진짜 줘요?!"

       "버릇을 고칠 거였으면 네 선에서 해야 했다. 그리모어. 내게 굳이 데려온 건, 혹시나 모를 희망 때문이 아니었나?"

       "하, 하지만 진짜 줄 줄 몰랐다고요! 그, 그건 라의 성물 중에서도 오직 낮의 무녀에게만 허락된…!"

       "아이린."

         

       아이린은 시선을 들었다. 티엘라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넌 아직 낮의 무녀가 아니다."

       "…예."

       "당연히 타른헬름도 빌려 갈 수 없다. 아직 네가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성물이기도 하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져가고 싶다면, 맹세해라. 남은 미련마저 털어놓는다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티엘라는 작게 웃었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너 같은 꼴통은 한다면 하는 녀석이지. 분명 어엿한 낮의 무녀가 될 수 있을 거다. 쓸만한 후배가 들어오면, 나도 좀 쉴 수 있겠지."

       "어,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나?"

         

       아이린은 반지를 주웠다. 상처투성이의 팔을 붙잡고 일어섰다.

         

       "…돌아오겠습니다."

         

       푸른 눈이 차갑게 빛났다.

         

       "돌아와, 이곳에 다시 서겠습니다. 티엘라님."

       "그럼 꺼져라. 꼴통. 그리모어. 대충 치료해서 보내라."

       "아, 아니?! 언니?! 아이린?! 이, 이게 대체 무슨…!"

         

       아이린은 반지를 꾸욱 쥐었다. 낮의 무녀에게만 허락된 성물.

         

       지고(至高)의 갑옷 '타른헬름'.

         

       아이린은 시선을 들어 밖을 보았다. 태양은 여전히 내리쬐고 있다. 파라메르의 도시 안에 있을 그 또한 이걸 보고 있을까.

         

       …데리러 간다고 했으니까, 지금 가겠습니다.

         

       당신이 어디 있든, 그곳이 내가 있을 자리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아…

    오타쿠는 주인공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조연들의 합류를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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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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