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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쿠구구구…!!

         

       요란하게 꿈틀거리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발광하는 술식.

         

         

       《자, 잠깐! 위험…!!》

         

       “아……”

         

         

       당황으로 번지는 진행자의 목소리.

         

       그리고 폭풍의 중심에서 가만히 탄식을 뱉어내고 있는 마하렛.

         

       그 모든 것이 시야를 스쳤다.

         

       나는 완전한 상황 파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블링크(Blink)×10.”

         

         

       빠르게 입술을 달싹이며 영창을 읊는다.

         

       흩어지는 날숨을 따라 눈앞으로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

         

         

       -띠링!

         

       [스킬 ‘단거리 순간 이동(Blink)’를 10회 사용합니다.]

         

       [남은 사용 횟수 (0/20)]

       

       [다음 충전까지 1시간 29분 58초]

         

         

       파직,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점멸하는 다음 순간.

         

       나는 마하렛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충격에 대비하는 것인지,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소녀의 은색 머리칼이 흉포한 마나의 흐름에 흐트러진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양팔을 뻗어 휘청이는 마하렛을 품 안으로 당겨오고.

         

       그와 동시에 아공간으로 손을 넣어 비탄을 움켜쥐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은 부름을 받자, 부르르 떨면서 반응해왔다.

         

       그것이 주는 전율감을 느끼며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비탄이여, 찢어발겨라.”

         

       -마나 디스펠(Mana Dispel)-

         

         

       나는 비탄에게 명을 내리고.

         

       비탄은 그에 응하며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토해낸다.

         

         

       -키이이이익!!

         

       기이한 울음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슬픔은 비극의 싹을 잘라내며 근원을 먹어치운다.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있던 술식은, 어느새 부스러기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귓가에 짧은 기계음이 울렸다.

         

         

       -띠링!

       

       [신물 ‘비탄’의 고유 스킬 2번, ‘마나 디스펠(Mana Dispel)’이 발동되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나는 녹아내리는 마나의 잔재들을 응시하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잠시 놀란 마음을 달래고 있으면, 곧 가슴팍에서 가녀린 신음이 들려왔다.

         

         

       “으, 읏…?”

         

         

       턱 밑으로는 멍하니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마하렛이 보였다.

         

       흔들리는 적안과 시선이 교차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향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으, 어…?”

         

         

       아직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넋을 놓고 있는 마하렛.

         

       나는 자꾸만 비틀거리는 소녀의 허리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끔 잠시 기다려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술식이 폭주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하렛이 더듬거리며 의문을 흘렸다.

         

       흐릿한 목소리에는 혼란이 묻어있었다.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설마, 당신이 구해준 건가요…?”

         

       “그럼 이곳에 저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나는 마하렛의 질문에 담백한 답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복잡하게 물들어갔다.

         

         

       “……당신, 뺨에 상처 났어요.”

         

       “상처…? 아, 정말이군요.”

         

         

       뺨을 한번 쓸어보니 손끝에 옅은 핏물이 번져있었다.

         

       어쩐지 따끔거리더라.

         

       아무래도 디스펠을 시전하던 순간, 튀어오른 마력 파편이 스친 모양이었다.

         

         

       “왜 구해줬어요… 당신까지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고 있으니, 마하렛이 나의 무모함을 나무랐다.

         

       나는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공녀님께서 위험에 처해있는데 제가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

         

         

       마하렛은 나의 무심한 대꾸에 굳어버렸다.

         

       붉은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침묵했다.

         

       한편 연무장 안으로는 흥분한 듯한 진행자의 탄성이 앵앵대고 있었다.

         

         

       《위기에서 멋지게 파일러 공녀를 구해내는 리시트 공자!》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완벽하게 정리합니다!!》

         

         

       -와아아아!!!

         

       관객석으로부터 열렬한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뒤를 이어 진행자의 은근한 목소리가 장내를 간지럽혔다.

         

         

       《두 사람, 그림이 아주 좋은 걸요~?》

         

         

       “…..?”

         

       “…..아.”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은 마하렛이 몸부림치며 품에서 벗어났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이내 안색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떨궜다.

         

       진행자는 경기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자~ 그럼! 대충 승자가 정해진 것 같군요!》

         

       《이번 제 4경기의 승자는 바로 라이덴 리시트입니다!》

         

         

       휘파람을 비롯한 환호가 경기장을 강타했다.

         

       대련을 꽤나 화려하게 치러서일까, 관객들은 흥분을 덮어쓰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경기였어!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마지막에 공녀님을 구하는 장면도 멋있었지?

         

       -마지막에 선보였던 기술은 디스펠인가…? 희귀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네.

         

         

       뜨거운 관심.

         

       괜히 어색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저 잠자코 서있었다.

         

       시선을 어색하게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면, 힘없이 연무장 밖으로 향하고 있는 마하렛이 보였다.

         

       나는 묵묵히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녀의 걸음은, 입안으로 씁쓸한 맛이 맴돌게 했다.

         

         

       “……”

         

         

       엉성한 모양새로 뒤엉키는 감정.

         

       나는 은색의 머리칼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그녀를 좇았다.

         

       그렇게, 제 4경기가 종료되었다.

         

         

         

       ***

         

         

       연무장을 나온 마하렛은 비틀거리며 걸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괜찮으십니까.

         

         

       귓가에는 금방 들었던 한 마디가 반복하여 재생되는 중이었다.

         

       저음의 부드러운 미성.

         

       마음 한 켠을 삐걱거리게 만드는 울림에 마하렛은 귀를 막았다.

         

         

       -그저, 공녀님을 걱정하는 마음에…

         

         

       시끄러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

         

       끓어오르는 혼잣말이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욱씬거리고 목이 죄여왔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눈앞으로는 소년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중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가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괜찮으십니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울렁거리는 탓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시야는 어지럽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리는 것은……

         

         

       -두근두근…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며 박동하는 심장이었다.

         

       마하렛은 가슴팍을 꽉 쥐며 그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라이덴의 도움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그가 너무 미워서,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세웠던 오기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그냥… 중간에 기권하고 나올 걸 그랬네요.’

         

         

       떫은 한숨이 겨울을 타고 부서졌다.

         

       마하렛은 두통이 일렁이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제발, 정신 차려.”

         

         

       그것은 자신에게 겨누는 암시였다.

         

       소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분명 이기지 못할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답지 않게 오기를 부렸다.

         

       항상 라이덴과 엮이는 일이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제가 그 사람을 너무 미워해서 그런 걸까요…’

         

         

       소녀는 괴로운 독백을 곱씹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어렸다.

         

       복합적인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소녀는 진하게 남아있는 감정을 그저 증오라고만 생각했다.

         

       단단한 껍질 뒤에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

         

         

       마하렛은 멍하니 하늘만을 올려다봤다.

         

       푸르스름한 하늘이 새빨간 눈동자를 물들였다.

         

         

         

       ***

         

         

       마하렛과의 경기가 있었던 첫째 날이 지나고.

         

       랭킹전의 두 번째 날이 찾아왔다.

         

       따로 예약된 대련이 없었던 나는, 아카데미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최종으로 계획을 검토했다.

         

         

       ‘이제 내일이면 침공이 온다.’

         

         

       미리 구비한 마법 스크롤들과, 적들의 예상 습격 경로, 샛길 등을 전부 체크한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준비에 만전을 기했으니, 잘하면 후문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주인공 일행에게 맡기면 되려나.”

         

         

       이 참에 생각난 거, 앨런의 상태나 보러 가야겠다.

         

       불화가 있었던 날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으니까.

         

       녀석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지금이 딱 앨런이 랭킹전을 치르고 있을 시간인데.”

         

         

       나는 발을 옮겨 공개 연무장으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해보니, 정말로 앨런의 경기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

         

         

       “별의 연소(Burn of Star).”

         

       -콰아아아아!!

         

         

       찬란한 기술들을 뽐내며 상대를 압도하고 있는 앨런.

         

       섬광이 번쩍이는 화려한 전투 스타일 때문일까, 관객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격의 차이를 보여준 앨런 학생! 랭킹전의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르올 학생을 꺾고, 승리를 가져갑니다!!》

         

         

       -와아아아아!!!

         

       경기를 마치고 연무장에서 내려오는 앨런은, 관객석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뭐, 걱정할 필요 없겠네.’

         

         

       저 정도면 내일도 별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슬쩍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북적이는 아카데미 거리를 걷고 있으니, 별안간 불어오는 칼바람이 머리를 헝클였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모든 준비는 완벽해.”

         

         

       일부러 소리를 내서 말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나는 조금씩 혓바닥을 내미는 불안감을 보이지 않게 치워버렸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면 된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아카데미를 지켜낼 수 있다.

         

       그러니 계획대로만.

         

       계획대로만……

         

         

         

       ***

         

         

       한편, 칠흑으로 젖어있는 실내.

         

       불길한 오라가 맴도는 공간에서는 어둠이 태동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쌍둥이 마족은, 그들의 앞으로 놓여진 나무 의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허름한 좌석에는 백발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흉흉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노인의 정체는 사천왕 파이렌.

         

       지난 수학여행 습격 사건에서 수석 교사 루카스 크레이든을 살해한 범인이었다.

         

         

       파이렌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예를 표하고 있는 쌍둥이를 내려다봤다.

         

       주름진 입가 위로 지독한 미소가 걸린다.

         

         

       “흘흘… 드디어 시작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어르신.”

         

         

       파이렌의 혼잣말에 답하는 것은, 쌍둥이 악마 중 첫째인 라키우스.

         

       그는 엄숙한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침공은 새로운 용사에게 건네는 최고의 선전포고가 될 것입니다.”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라키우스는 침공에 쏟아부을 병력들에 대해 설명했다.

         

       잘만하면 아카데미의 대부분을 몰살 시킬 수 있는, 꽤나 거대한 규모의 군세였다.

         

       하지만 그것을 들으면서도 파이렌은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흠…”

         

       “왜 그러십니까?”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라키우스.

         

       턱수염을 쓸어내리던 파이렌은 입을 열었다.

         

         

       “병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네.”

         

         

       대략 한 달 정도 전.

         

       파이렌은 수학여행을 나온 아카데미와 부딪쳐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교수가, 꽤 강했거든.”

         

         

       루카스의 존재로 인해 아카데미 교수진들에 대한 파이렌의 평가는 한껏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아카데미 교수진이, 저희의 예상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쌍둥이는 파이렌의 긍정에 골치 아픈 침음을 흘렸다.

         

       파이렌은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해결책을 제시했다.

         

         

       “상급 간부, 레쿠스를 함께 데려가게.”

         

         

       쌍둥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예? 레쿠스라면… 그 ‘창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왕 할 거 확실하게 가는게 좋지 않겠나?”

         

       “흠음… 난폭하다는 점이 흠이라지만, 확실히 실력은 좋으니…”

         

         

       그렇게, 이야기는 꼬여간다.

         

       계획대로만… 이라고 중얼거렸던 라이덴의 기도에는 애석하게도.

         

       세계는 이미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대 위로 등장하는 새로운 배우.

         

       그가 이번 시나리오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리메이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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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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