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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소문의 베르그가 정말 너라니…”

     

    포옹을 푼 플린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속삭였다.

     

    그의 눈이 내 몸 곳곳을 훑었다.

     

     

    “…아무리 용병이라지만, 상처는 왜 이렇게 많아진거야? 볼에는 왜 또 그렇게 큰 흉터가 있고.”

     

    그는 내 흉터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워낙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도 플린트가 흉터투성이의 몸으로 나타났다면 똑같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물었다.

     

    상대에 대해 궁금한 건 플린트만이 아니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온거야?”

     

     

    플린트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요새 인족 중에 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뭐?”

     

    “인족용병, 평민 베르그가 귀족 아내를 둘이나 품었다는데, 이런 소식이 어떻게 잠잠하겠냐. 그런 홍염단의 베르그가 뎀스 마을에 들렸다고 하니 지나칠수가 있어야 말이지. 정말로 너일줄은 몰랐다만…”

     

    “나 하나 보려고 뎀스 마을까지 온거야?”

     

    플린트는 미소를 지었다.

     

    “겸사겸사였지.”

     

    그리고는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나 상인이 됐어, 베르그.”

     

    그가 양팔을 벌려보인다.

     

    행동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원래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네 소문이 들려왔을 뿐이야.”

     

     

    그 또한 잘풀렸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이라.”

     

    “안어울리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놀랐을 뿐이야.”

     

    그 말에 플린트도 웃었다.

     

     

    “나도 놀랐다, 베르그. 네가 용병이 되었다니.”

     

    “…”

     

    “위험한 짓에서는 손 씻겠다고 말하지 않았었냐? 그래서 우리도 이별했던 거잖아.”

     

    “…”

     

    나는 곧장 대답을 내뱉을수가 없었다.

     

    간단히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내는 또 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나는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는 그의 말을 끊었다.

     

    그도 일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여관안으로 들어섰다.

     

    할 이야기가 많았다.

     

     

    .

    .

    .

     

     

    나는 나의 아내들에게 플린트를 소개했다.

     

     

    “네르, 아르윈. 여기는 플린트야. 내…고향 친구.”

     

    “고향…”

     

    네르가 그 말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예를 담아 인사를 건넸다.

     

    “네르 블랙우드입니다.”

     

    아르윈도 마찬가지로 제 이마를 톡 만지며 인사했다.

     

    “…아르윈 셀레브리엔이에요.”

     

    “내 아내들이야.”

     

    플린트는 직접 눈으로 보는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분 다 엄청난 미인이시네.”

     

     

    그리고는 숨을 죽여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소문이 다 진짜였던 거냐.”

     

    “…”

     

     

    그러더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블랙우드 영애와 셀레브리엔 영애를 뵙습니다.”

     

    두 아내는 자연스럽게 그의 인사를 받았다.

     

    “저는 플린트라고 합니다. 베르그와는 5살때부터 친구였어요.”

     

     

    “5살부터요?”

     

    네르가 놀라며 묻는다.

     

    “아, 일단 앉으세요.”

     

    그리고는 우리에게 착석할걸 제안했다.

     

     

    아내들은 플린트가 나의 친구이기에 말도 높여가며 배려해주는 듯 했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가 나는 고마웠다.

     

     

    플린트와 난 네르의 말에 자리에 앉았다.

     

    착석한 플린트가 네르의 말에 답한다.

     

    “네, 5살부터요. 크면서 이별했는데…베르그를 이런곳에서 만날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 두 분을 데리고 있을줄도 몰랐고.”

     

    “…둘은 고향이 어디인거죠?”

     

     

    플린트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말씀 안드렸어?”

     

    “…아직 기회가 없었어.”

     

     

    그가 조심스레 바라보며 묻는다.

     

    “…비밀이라거나…”

     

    “비밀 아니야. 말해도 상관없어.”

     

     

    그 말에 플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네르와 아르윈에게 말했다.

     

     

    “우리는 바트라 출신이에요. 아시나요?”

     

     

    아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한 도시 아닌가요?”

     

    플린트가 웃었다.

     

    “그렇죠.”

     

    “그럼 부유하게 자라신건가요?”

     

    “…”

     

    플린트는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게 대답할 기회를 미루는 듯 했다.

     

    사실 슬럼출신이라고 밝혀봐야 이점이 하나도 없다.

     

    슬럼출신이라는 말이 전달하는 부정적인 기운이 있다.

     

     

    이 분위기를 대표하듯, 우리는 여러 멸칭으로 불렸다.

     

    아무거나 주워먹는 바퀴벌레들.

     

    도둑질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쥐들.

     

    기회가 생기면 유리한 편에 붙는 박쥐들.

     

    뼈다귀 하나에 싸움을 일삼는 투견들.

     

     

    당연히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반길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플린트도 그 사실을 아는 듯 했다.

     

    특히나 내 두 아내가 귀족이라는, 신분차이가 어마어마한 사이에서는 더더욱.

     

     

    이미 평민인것만으로도 먼데, 슬럼출신이라는 말까지 얹어지면 거리감은 더욱 멀어진다.

     

     

    하지만 굳이 나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또 나에게 거부감을 가질까 걱정되는게 없는건 아니었지만…여전히 거짓말로 관계를 쌓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거기 슬럼 출신이야.”

     

    내가 두 아내에게 말했다.

     

    네르와 아르윈은 그 대답에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아르윈이 물었다.

     

    “…슬럼?”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긴 침묵 뒤,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에 대한 소문을 아는 듯한 플린트였다.

     

    그렇다면 분명 나의 아내들이 내게 팔려왔다는 것 또한 알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플린트가 눈치를 보다 분위기를 띄웠다.

     

    “그때는 진짜 힘들었다, 그렇지 베르그?”

     

    “…”

     

    “원해서 부모한테 그런 길가에 버려진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하하. 맨날 무시당하고 맞고…어휴.”

     

    제 시도가 통하고 있지 않다는걸 깨닫자 플린트는 말을 돌렸다.

     

    그런 그의 바보같은 행동을 보며 오랜 추억이 떠올랐다.

     

    “그…그래도 거기서도 베르그는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친구였죠. 이제와 생각해보면 너도 대단했다.”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네르가 플린트에게 물었다.

     

    “…베르그는 그때 어땠는데요?”

     

    “같은 편일때는 너무 든든했어요. 베르그가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엄청 챙기거든요. 말만 안하지 정이 많아서…”

     

    “…”

     

    “…”

     

    네르와 아르윈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호응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속에서 플린트는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 근데 또 자기 사람이 아니면 매몰차기도 해서,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매몰차다고요?”

     

    아르윈이 묻는다.

     

     

    플린트는 또 급히 변명했다.

     

    “자, 자기편이 아니면요. 자기편이면 엄청 챙기죠. 그때는 그랬다는 말씀이에요. 지금은 또…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엄청 의지할 수 있는 친구였어가지고…”

     

     

    플린트의 말이 이어지던 중 아르윈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반응에, 플린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알게모르게 귀족이라 그는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두 분은 완전히 베르그의 사람이잖아요?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아요. 베르그가 잘 챙겨주죠?”

     

     

    네르와 아르윈은 서로 눈치를 보다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잘 챙겨줘요.”

     

    네르가 답했다.

     

     

    그렇게 첫 번째 주제가 마무리되며, 찰나의 어색한 틈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아르윈이 말했다.

     

    “베르그. 먼저 돌아가 있을게요. 친구분이랑 이야기하다 돌아오세요.”

     

    그녀는 나를 배려하여 시간을 내어주려는 듯 했다.

     

    눈치를 보던 네르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응. 나도 돌아갈게 베르그. 식사는 어차피 다 했으니까. 오늘 피곤하기도 했고.”

     

     

    그들의 배려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나도 플린트와 대화를 하고 싶던 참이었다.

     

     

    일어서는 네르에게 내가 말한다.

     

    “네르. 발은…”

     

    “혼자 돌아갈 수 있어. 뒷꿈치로 걸으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서.”

     

    “…그래. 그러면…”

     

     

    나는 뒤를 돌아 대원들을 찾았다.

     

    “숀, 잭슨.”

     

    술을 마시다 그들은 자리에서 고분고분히 일어섰다.

     

    “네르랑 아르윈 좀 숙소까지 호위해줘.”

     

    그들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플린트와 아내들이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만나 봬서 영광이었습니다.”

     

    “이야기 나누세요.”

     

     

    그리고는 여관을 떠나간다.

     

     

    ****

     

     

     

    아르윈은 새로 알게 된 베르그의 정보에 놀라던 참이었다.

     

     

    슬럼출신.

     

     

    이제야 자신을 구했던 베르그의 모습이 이해가는 듯 했다.

     

    엘프 검사 중 최강이었던 갤리아스를 눕힌 베르그다.

     

    그의 움직임 속에는 무자비한 잔인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갤리아스를 눕힌뒤 주먹을 내지르던 그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질 않았다.

     

     

    “…”

     

    1년전까지만 해도 슬럼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던 아르윈이었다.

     

    더럽고 잔인한 족속이라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어왔다.

     

    슬럼 출신은 살아남기 위해 빼앗는 법 밖에 못 배운다고 들었다.

     

     

     

    하지만 베르그가 슬럼 출신이었다는 말을 듣자…처음 느꼈던 감정은 그런 거부감이 아니었다.

     

     

    외려 연민을 느꼈다.

     

    베르그가 대상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움직임이 몸에 체득된 걸까.

     

    얼마나 살아남으려고 힘을 냈을까.

     

     

    5살부터 슬럼 생활을 했다고 했다.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을 나이다.

     

     

    그가 힘들게 자라왔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올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아.”

     

    곁에서 네르도 한숨을 내쉬었다.

     

    둘의 눈이 잠시 맞는다.

     

     

    하지만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

     

     

    문득 잠자리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지는 아르윈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베르그와 같이 자는 날이었다.

     

     

    하지만 플린트라는 베르그의 고향친구가 여관에 들어올 때, 방이 없다던 여관 주인의 말을 들었었다.

     

    어쩌면 베르그의 친구가 숙소가 필요한게 아닐까?

     

    어쩌면 아르윈은 오늘 네르와 함께 방을 나눠야하는 걸지도 몰랐다.

     

     

    “….”

     

    그 사실을 확인해야만 할 듯 했다.

     

    겸사겸사 베르그와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고.

     

     

    “네르. 잠시 베르그에게 물어볼게 있어서 돌아갈게.”

     

    “네?”

     

    “먼저 가고 있어. 발 아프잖아?”

     

     

    그리고 아르윈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베르그의 부하, 숀이 그녀를 따랐다.

     

     

     

    이내 그녀는 금방 여관에 들어서서 베르그를 찾았다.

     

    베르그와 플린트는 어째서인지 무거워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베르그가 먼저 아르윈을 발견한다.

     

    하지만 아르윈을 등지고 있던 플린트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순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베르그가 친구를 급히 부른다.

     

    “…플린트.”

     

    마치 플린트의 입을 막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너무 순간적인 일이었고, 플린트는 입을 열었다.

     

    다가서던 아르윈은 곧장 플린트의 물음을 듣게 된다.

     

     

     

    “…….걔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름빵과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보신것 같아 저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어려울것 같아요. 무책임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저도 회차 예측은 힘들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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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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