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7

       디오게네스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설문조사에 임했다.

       

       

       내 철저한 준비에 좀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만년필을 잡고 천천히 원하는 것을 써내려갔으니.

       

       

       서로의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어도 글을 보기에는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대마법사라는 듯 설문조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가 설문조사에 집중한 사이 난 샐리, 물호랑이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 도련님. 흐, 흙바닥이신데…….”

       

       

       “어차피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너도 경계 그만하고 편히 쉬어.”

       

       

       “하, 하지만 도련님 호위가.”

       

       

       “거지 대마법사가 날 해칠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해쳤겠지.”

       

       

       애초에 샐리, 물호랑이를 데려온 건 그냥 같이 가자는 뜻이었지 날 지켜달라는 의미가 아니였으니까.

       

       

       물호랑이도 키웠던 덩치를 다시 작게 만든 채 내 무릎 위에서 다시 졸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검을 든 채 디오게네스를 노려보는 샐리도 손을 잡고 옆에 끌어앉혔다.

       

       

       “도, 도련님의 뜻이 그러하신다면…….”

       

       

       “잠시 눈 좀 붙여. 피곤해 보이는데.”

       

       

       “……….”

       

       

       벌써 잠든 건가.

       

       

       조용히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샐리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마침 졸렸던 건지, 아니면 피곤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릎 위에는 물호랑이, 어깨에는 샐리를 자게 둔 채 계속 만년필을 놀리는 디오게네스를 바라보았다.

       

       

       “디오게네스 님,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이미 그러고 있단다. 다만,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 정리하는 게 오랜만이다 보니 색다른 느낌이로구나.”

       

       

       “보드게임은 킬 더 킹 말고 해본 적 없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고독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다녔지. 악기, 책, 조각, 인형극, 그림………그리고 이번에는 네 보드게임까지.”

       

       

       “……그럼 예술가들 앞에서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신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단다. 날 찾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부터가 너와 같은 이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으니.”

       

       

       결국 내가 보드게임을 퍼트리기로 결심한 이상 디오게네스와 만나는 건 필연이었다는 건가.

       

       

       물 흐르듯 대화를 나누면서도 디오게네스가 펜을 쉬는 일은 없었다.

       

       

       “…………….”

       

       

       “………….”

       

       

       대화 끝에 찾아온 미묘한 공백.

       

       

       나까지 잠드는 건 무례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설문조사를 작성하는 디오게네스와 달리 샐리와 물호랑이를 위해 자세를 유지하며 가만히 앉아있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알려주신다는 마법은 어떤 겁니까? 그것도 나중에 들어야 하나요?”

       

       

       “그건 아니란다. 미리 마법을 알려줄 수는 없으나, 무슨 마법인지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 가뜩이나 네 인연이 배우는 마법인 만큼 신경쓰이겠지.”

       

       

       “인연……….”

       

       

       “이미 직감하지 있지 않느냐? 외부인, 네가 어릴 적 뒷골목에서 그 소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렇긴 합니다.”

       

       

       왜인지 목덜미의 흉터가 쑤시는 느낌이네.

       

       

       이세계에 전생하고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귀족 아들로 태어났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떄라 샐리와의 만남은 꽤 충격적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죽을 뻔 했었으니까. 결국 잘 풀려서 다행이지 잘못하면 그 때 제 2의 인생이 끝날 뻔 했다.

       

       

       “그보다 디오게네스 님께서는 어찌 아시는 겁니까? 다른 대마법사분들을 만났지만, 황성의 그 분을 제외하면 과거까지 아시는 분은 없었습니다만.”

       

       

       “꼭 대마법사라 해서 아는 건 아니란다. 그보다는 일종의 저주에 가까울 테지.”

       

       

       “예?”

       

       

       “자세히 듣고 싶다면 내 의뢰를 완수하면 된단다. 그보다 무슨 마법을 알려줄 건지 보여주마.”

       

       

       한 손으로 설문조사를 작성하던 디오게네스는 다른 손을 들어올려 조그만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러자.

       

       

       “……쓰레기가?”

       

       

       “청소한 거란다.”

       

       

       “어,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

       

       

       “그래. 청소 마법이란다.”

       

       

       “하지만 그건……….”

       

       

       청소 마법. 기초적인 생활 마법 중 하나인 그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인 마법이었다.

       

       

       심지어 마법에 대한 재능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내가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 중 하나.

       

       

       물론 청소라는 건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쓰레기 하나만 치우면 청소이고, 누군가에게는 걸레질까지 해야 청소다. 그 간격을 결정하는 건 청소 마법이 아니라 마법사였다.

       

       

       때문에 고위 마법사일수록 청소 마법의 청소가 더욱 깔끔해진다. 내가 마나 포션을 빨아가며 어떻게든 사용해봤자 쓰레기 하나를 쓰레기통에 넣는 정도이지만, 올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아델라만 되어도 청소 마법 하나로 방 하나를 깔끔히 청소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샐리도 이미 익히고 있습니다만.”

       

       

       그 정도로 기초적인 마법인 만큼 당연히 샐리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견습이라 하나 마법사다. 당연히 청소 마법이야 할 줄 알았다. 다만 마법을 쓰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훨씬 깔끔하고 효과적이니 사용하지 않을 뿐.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에 디오게네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단다. 다만 내가 알려줄 건 청소 마법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이지.”

       

       

       “활용……?”

       

       

       “가령, 사람을 청소한다던가.”

       

       

       “…………….”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내게 설명하듯 말하는 와중에도 계속 펜을 놀리던 디오게네스가 말을 이었다.

       

       

       “청소는 상대적이기에,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결정된단다. 그러니 일정 이상의 역량에 다다른 마법사는 조금 다른 것도 청소할 수 있게 되지.”

       

       

       “그게……사람입니까?”

       

       

       “예시가 조금 과격했구나. 당연히 다른 것도 가능하단다. 먼지, 폐허, 산사태, 전쟁터………정말 모든 걸.”

       

       

       “………….”

       

       

       “난 그렇게 대마법사가 되었단다. 그보다 작성이 끝났구나.”

       

       

       툭.

       

       

       내 앞에 꼼꼼히 작성된 설문조사를 내려놓은 디오게네스는 기지개를 하듯 일어나 머리를 긁으며 하품했다.

       

       

       마치 뒷골목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지처럼.

       

       

       ‘더럽지만 청결하다 느낀 건 그 청소 마법 덕분인가?’

       

       

       참으로 모순적인 거지이자, 왜 굳이 거지로 다니는지조차 이해되지 않는 인물.

       

       

       디오게네스는 땟국물이 가득한 손으로 만년필을 돌려주었다.

       

       

       더러운 손과 달리, 분명 그 손으로 잡고 썼음에도 일체의 얼룩조차 묻지 않은 만년필을. 

       

       

       “일주일 후, 이곳에서 보자꾸나.”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그도 아니면………그 자리를 ‘청소’한 것처럼.

       

       

       “…………….”

       

       

       순간 온 몸에 돋는 소름에.

       

       

       디오게네스가 사라졌음에도 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샐리와 물호랑이가 깨어날 때까지.

       

       

       

       *

       

       

       

       “……디오게네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기인(奇人)이 어째서……….”

       

       

       어젯밤의 일을 들은 올핀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올핀은 대마법사 중 가장 발이 넓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좀……특이하다 할 수 있는 대마법사들 대다수와 안면이 있거나 친분이 있는 상태니까.

       

       

       그런 올핀이 기인이라 단언할 정도의 인물.

       

       

       그게 바로 디오게네스였다.

       

       

       “난 그만한 인물이 기아스 영지에 들어온 지도 몰랐네. 제작자,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거지 대마법사께서 올핀 탑주님의 감각을 피할 정도라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게 그 기인의 특이한 점이라네. 거지 대마법사라는 이름처럼 어느 영지의 뒷골목에서 언제 발견해도 이상하지 않은 작자니까. 제작자,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네.”

       

       

       “그 분이 위협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도 대화해본 적 없는 인물이니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어떻게 황제에게서 대마법사의 인증을 받았는지 아나?”

       

       

       “잘……….”

       

       

       “그는 섬 하나를 지워버렸다네.”

       

       

       “예?”

       

       

       어, 음. 물론 대단하긴 한데.

       

       

       얼마 전에 스텔라의 운석, 시샤의 얼음, 올핀의 환상을 보고 온 입장에서는 뭐랄까.

       

       

       엄청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말이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가 마법을 사용했다는 걸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었지. 그저 손짓 한 번 했을 뿐인데, 분명 존재하던 섬 하나가 마치 지워버린 것처럼 사라졌다네. 부순 것도, 이동시킨 것도, 얼려버린 것도 아니야. 마치 처음부터 그 섬이 없었다는 것처럼……….”

       

       

       ………청소 마법.

       

       

       그걸로 섬을 ‘청소’해버린 건가?

       

       

       “괜히 황실이 경계하는 대마법사 1위인 게 아닐세. 자칫하면 자네도 화를 입을 뻔 했어.”

       

       

       “그 분의 마법이 청소 마법이라는 걸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불가해한 것이지. 나는 물론이고, 그 어떤 대마법사도 청소 마법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청소 마법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디오게네스가 어떻게 청소 마법을 사용하는지 모른다네. 애초에 그걸 청소 마법이라 할 수 있을까?”

       

       

       말은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그 섬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

       

       

       ‘인간을 청소할 수도 있다 했지.’

       

       

       그렇게 보면 올핀의 염려가 이해될 만 했다. 올핀조차 디오게네스의 방문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만약의 이야기지만 거기서 디오게네스가 날 ‘청소’했다면 아무도 범인이 누구인지 몰랐겠지.

       

       

       올핀 입장에서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마탑의 귀빈이 사라질 뻔 했던 것이다.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자네를 탓하는 건 아니네. 결국 그를 눈치채지 못한 내 탓이지. 만나기 2분 전에 편지를 받았다니 내게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다만.”

       

       

       “다만……?”

       

       

       “……아닐세. 슬슬 어리광은 그만 받아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보다 그 기인에게서 설문조사……를 받아왔다지?”

       

       

       대놓고 말을 돌린 티가 났지만 넘어갔다. 나도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위험했던 건 위험했던 거고. 지금은 보드게임이 더 중요하니까.

       

       

       “여기 있습니다.”

       

       

       “양이……상당하군?”

       

       

       “딱히 무언가에 받치고 쓴 것도 아닌데 굉장히 정갈한 글씨체라 알아보기 쉬웠습니다. 보시다시피 굉장히 상세하고 길게 적어주셨지만 요점은 셋입니다.”

       

       

       첫째, 혼자서도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일 것.

       

       

       둘째, 플레이 타임이 최소 1시간 이상은 될 것.

       

       

       그리고 셋째.

       

       

       “게임에 확률 요소를 넣지 않을 것.”

       

       

       “……잠깐, 제작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보드게임에 확률 요소를 넣지 말라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올핀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말이 확률 요소지, 이것 하나로 금지되는 게 수없이 많으니까.

       

       

       주사위는 당연히 안 되고, 카드를 뽑는 것 또한 어떤 카드를 뽑을 지 확률로 정해지니 들어가면 안 된다. 그걸 넘어 처음에 역할 등으로 카드를 나눠받는 것 또한 확률이니 불가능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요트, 카일갈리, 정령포커, 아브라카다브라, 카탄, 뱅을 전부 부정하는 조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올핀은 이를 디오게네스의 폭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런 보드게임을 어떤게 만든단 말인가? 확률적 요소가 없다면 매번 플레이가 똑같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재미가 있단 소리인가?”

       

       

       “말씀 그대로입니다. 확률이 없다면 뱅에서도 항상 같은 역할, 같은 카드만 뽑게 되는 셈이겠지요.”

       

       

       “이건 처음부터 보드게임을 의뢰할 생각 따위 없었던 걸세. 왜인지는 몰라도 자네의 꼬투리를 잡으려 한 거야. 걱정하지 말게. 내 당장 조치를……!!”

       

       

       “그렇다면 그런 보드게임을 만들면 될 뿐입니다.”

       

       

       “………제작자?”

       

       

       “확률이 없어 항상 같은 카드를 뽑고, 같은 걸 하는 게 문제라면.”

       

       

       발상을 전환하면 된다.

       

       

       “딱 한 번만 하면 되는 보드게임이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한 번……? 자네가 만든 보드게임들은 한 번만 즐기는 게임이 아니잖은가.”

       

       

       “그렇죠. 그러니 완전히 다른 형식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항상 똑같이 나오는 카드에는 매직 미사일이 아니라 특정한 이야기나 문제가 적혀있는 겁니다.”

       

       

       “이야기? 문제?”

       

       

       “그럼 플레이어는 카드에 적힌 문제를 풀고, 다음 카드를 받아 다시 문제를 푸는 방식이죠.”

       

       

       말만 들으면 너무 단조롭고 지루해 보이지만.

       

       

       여기에 배경 설명, 소품, 여러 그림.

       

       

       그리고 ‘탈출’이라는 개연성을 부여하면 어떨까?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풀고 탈출해야 하는 보드게임.”

       

       

       “……….”

       

       

       “말 그대로 딱 한 번만 플레이할 수 있는, 다시 해봤자 의미가 없는 게임입니다.”

       

       

       여럿이서, 운이나 전략에 맡겨 플레이한다는 보드게임의 모든 전제를 깨부수는 게임.

       

       

       이번에 내가 만들 건.

       

       

       방탈출 보드게임이었다.

         

       

       

        

       

    다음화 보기


           


Became a Board Game Producer in Another World

Became a Board Game Produc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보드게임 제작자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oard Game Playing Guidelines] Using magic to break dice or tokens does not result in a draw.

Hallucination spells are not tolerated during the game. If caught, the consequences are your responsibility.

Asking spirits to peek at opponent’s cards is cheating. If the spirits are not participating in the game, kindly let them watch quietly.

Making noise by ringing a bell with your hand is acceptable. Using a bell to strike your opponent and make noise is not acceptable.

There is absolutely no racial discrimination, but when playing with Dwarves, please check the game board in advance. It may be a ‘special’ board ga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